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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를 잡는 방법 (29)화 (29/106)

29화

“…….”

사내는 돌연 심각해졌다. 무섭게 굳었다 이내 기묘한 표정이 된 사내가 소리 내어 웃었다.

“와, 진짜 미치겠네.”

한껏 텐션이 올라간 사결이 여원의 손목을 가볍게 쥐었다. 이젠 숫제 자연스럽다. 여원은 속절없이 이끌려갔다.

“카페 안에서 만나자고 할까 했는데, 생각해보니 그런 소란을 일으키고 다시 방문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요.”

사결이 향한 곳은 저번에 말했던 멀티플렉스였다. 그는 여원에게 영화를 권했다. 말이 권유지 이미 표도 끊어놨고 입장하는 것도 일사천리였다.

얼결에 영화관에 입장하고, 어영부영 자리에 앉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암전이었다. 

영화는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판타지물이었다. 어부의 자식으로 태어난 소년이 물에 빠져 죽을 뻔한 후 특별한 물고기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하며 진행되는 이야기다. 인간을 싫어하던 물고기도 소년에겐 점점 애착을 갖게 된다.

스토리 전개상 배경 대부분은 바닷가 내지 바닷속이었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영상미가 두드러지는 영화였지만 여원은 좀처럼 집중하지 못했다. 그는 아닌 척 옆자리에 앉은 사결을 훔쳐봤다.

그의 얼굴은 스크린의 푸른빛 때문에 창백해 보였다. 마치 가면과 같다. 항상 그린 듯 올라가 있는 입술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졌다. 지금도 그렇다.

가능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어떻게 알아차린 사결이 눈을 돌려 여원을 봤다. 그가 스윽, 상체를 여원 쪽으로 기울였다. 단단하고 넓은 어깨가 굳었다. 사결은 모른 척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뭔가 할 말이라도 있습니까.”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사결이 싱긋 웃었다.

“저는 있습니다.”

“…….”

“모르시는 것 같아서 말씀드리는데, 이거 데이트입니다.”

사결이 팔걸이에 걸쳐져 있던 여원의 손등에 제 손을 겹쳤다. 여원의 손가락이 흠칫 튀었다. 사결은 그걸 꾹 누르며 천천히 깍지를 꼈다. 피부로 당혹감이 전해졌지만 여원은 손을 뿌리쳐 빼진 않았다.

고개를 숙인 사결이 그런 여원의 손을 들어 손바닥에 입을 맞췄다. 이번에도 손이 흠칫 떨렸지만, 표정만은 여전히 담담했다.

사결은 저 담담함이 깨지는 걸 보고 싶었다. 호의와 애정에 약한 물고기는 이제 어지간해선 도망가지 못할 것이다. 그는 그물망을 살짝 조여 보기로 했다.

“좋아합니다.”

‘당신이 날 돌아봤으면 좋겠어요. 날 좋아해 줬으면 좋겠어요. 이런 생각과 열망이 나쁜 건 아니잖습니까.’

흰 줄 늑대 때의 고백이 지금의 고백 위로 겹쳐졌다. 여원은 무뚝뚝한 낯을 하고 등으론 식은땀을 흘렸다.

당신이 날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는 말과 나는 당신을 좋아한다는 말은 얼핏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전혀 달랐다.

“그냥, 그렇다는 겁니다.”

사결은 더 할 말 없다는 듯 스크린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다시 돌아보지 않고 영화에 집중했다. 덕분에 여원은 머릿속이 전쟁터였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사결은 얽은 손가락을 절대 풀지 않았다. 여원은 안절부절못했지만 결국 무리해서 빼진 않았다.

암전됐던 공간에 빛이 돌아왔다. 사결은 여전히 손을 잡은 채로 물었다.

“영화 어땠어요? 재밌었죠?”

모르겠다.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영화관에 자신과 이 남자뿐인 걸로 봐선 그저 그런 영화인 것 같은데.

“예.”

여원은 일단 긍정했다. 하지만 사결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어느 장면이 제일 재밌었는데요?”

“…….”

“하하, 그런 표정 할 거 없어요. 사실 나도 안 봤는걸.”

나른하게 웃은 사결이 아주 큰 비밀처럼 속삭였다.

“철수 씨 보기 바빠서 그럴 여력이 없었어요.”

여원은 순간 목이 마르다고 느꼈다. 아니, 그냥 몸 전체가 순식간에 메마른 것처럼 느껴졌다. 무언가를 갈구한다. 그게 뭔지는 정확히 모른다. 닳도록 본 사전에도 이런 건 나오지 않았다.

그가 사결에게 보이지 않게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작고 반질반질한 돌 같은 게 만져졌다. 그는 다시금 선택의 기로에 섰다. 마계에서 탈출할 때는 갈등 따위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했다.

사결은 고민에 빠진 여원을 응시했다. 자신을 앞에 두고 딴 생각이라니. 첫 만남 때도 그렇고 이 사내는 정말 여러 번 제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그런데도 싫지 않다. 그건 이 사내가 귀환자라서일까. 아니면 살짝 드러난 저 목덜미나 두툼한 가슴이 여전히 먹음직스럽기 때문일까.

사결이 피식 웃었다.

‘아무러면 어때.’

그런 건 전혀 중요치 않았다. 중요한 건 지금 야릇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는 거다.

사결이 불시에 몸을 움직였다. 커다란 덩치가 확 덮치듯 달려들자 시야가 완전히 가로막혔다. 휘청거리며 여원의 몸이 뒤로 기울었다. 의자에 파묻힌 등이 어정쩡하게 틀어졌다. 여원은 사내가 자신을 공격한다고 생각했다.

‘어째서? 설마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저를 방심시키기 위한 함정이었나?’

하지만 살기와 적의를 학습한 몸은 이번에도 잠잠했다. 공격이 아니다. 그럼 이러는 이유가 뭔가.

“싫으면 밀어내십시오. 바로 떨어질 테니.”

뭔 소린가 싶어 얼이 빠진 여원에게 사결이 입을 맞춰왔다.

“…?!”

놀람으로 잇새가 살짝 벌어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혀가 안쪽을 파고들었다. 불시의 삽입이었다. 여원은 완전히 뻣뻣하게 굳었다.

한편, 시도할 때까지만 해도 제가 가진 모든 테크닉을 발휘해 혼을 쏙 빼놓겠다 다짐했던 사결은 막상 상대의 입안에 들어가자 반쯤 혼이 나갔다.

사내의 입안은 상상 이상으로 뜨거웠다. 능력이 능력인 만큼 체온이 낮은 편인 그에겐 다소 자극적인 온도였다. 하지만 사결은 빼지 않았다. 

입 안쪽 내벽을 훑고 혀를 휘감았다. 제 주인을 따라 굳어진 살덩이가 욕정을 부추겼다. 

혀뿌리에 고인 숨에선 미약한 마기가 느껴졌다. 그것마저 좋았다. 먹으면 톡톡 튀게 만들어진 사탕 부스러기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수해에 고인 마기라면 치를 떠는 저인데도 귀환자인 사내가 흘리는 마기는 오히려 좋은 자극제가 됐다.

그걸 이상하다고 느낄 새도 없이 가늘게 뜬 눈에 바로 앞에 자리한 사내의 얼굴이 들어왔다. 항상 눈을 가리던 머리칼이 뒤로 넘어가 있다.

조각 같던 무표정은 이미 깨졌다. 세상이 멸망해도 담담할 것 같던 얼굴이 당혹으로 얼룩져 있었다. 그토록 까발려 보고 싶던 사내의 다른 모습이다. 미간에 생긴 주름과 흔들리는 동공이 미치도록 섹시했다.

‘이런, 시발.’

사결은 배고픈 짐승처럼 달려들었다.

이미지 관리를 잘해서 그렇지 그의 사생활은 꽤 지저분했다. 백담에 있는 지금은 귀환자를 손에 넣어야 한다는 일생의 대의 때문에 원치 않은 금욕 중이지만, 본래 그는 하루라도 몸을 풀지 않으면 잠자리가 영 개운치 못했다.

‘그래서다.’

이렇게 몸이 달은 건 전부 그 때문이다.

젖은 소리와 함께 입맞춤이 이어졌다. 단단한 몸이 바짝 굳었다. 중간중간 떨어질 때마다 상대는 거친 호흡을 했다. 입맞춤에 익숙하지 않다는 증거에 사결은 더욱 안달이나 달려들었다.

그러다 경직이 조금이나마 풀리고 머뭇거리던 손길이 자신의 목을 둘렀을 때, 사결은 허리를 들썩일 뻔했다. 약은 해본 적 없지만 비유할 게 마약밖에 없었다.

‘이건 뭐, 이제 막 성에 눈뜬 애송이도 아니고.’

잔뜩 흥분한 사결의 손이 여원의 상의 안쪽을 파고들었다. 얼음 속성 보유자답게 서늘한 손이 단단한 복근을 문질렀다. 성적인 어필이 줄줄 흘렀다. 여원은 그때까지도 움찔거리며 낮게 신음할 뿐 별다른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의 태도가 급변한 건 용기를 얻은 사결의 손이 가슴팍까지 쑥 올라왔을 때였다.

부릅뜬 두 쌍의 눈이 서로를 봤다.

‘잠깐, 이거 젖꼭지가….’

‘……!’

사결이 가슴을 주물렀다. 아무리 만져 봐도 돌기는 하나뿐이었다.

여원은 성적 의미가 가득한 손길보다 상흔에 손이 닿았다는 것에 더 놀랐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퍽!

그가 사결의 가슴팍을 밀치며 반쯤 구르듯 품을 벗어났다. 의자들 틈새를 다람쥐처럼 빠져나가 통로를 내달렸다.

사결은 혼자 남겨졌다. 다 잡은 먹잇감이 도망갔지만 사내는 태연했다. 비어버린 양손을 내려다봤다. 아직도 뭔가 움켜쥐고 있는 것처럼 손끝에 감각이 선연하다.

한쪽뿐인 젖꼭지의 임팩트가 너무 강해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되짚어보니 피부의 느낌이 달랐다. 크게 팬 상처가 다시 아문 것이다. 아마 그 상처를 입었을 때 젖꼭지가 떨어져 나간 것 같다.

“시발.”

사결이 진심을 가득 담아 중얼거렸다.

“너무 야하잖아….”

이걸 야하게 느끼는 자신이 이상한 건지, 젖꼭지가 한쪽뿐인데 손이 옷 안을 파헤치도록 내버려 둔 사내가 이상한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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