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하하, 씨발.”
[…….]
공략 포인트란 모든 미로의 끝이 막다른 길에 부딪힌 후 협회와 길드 수뇌부가 심사숙고 끝에 지정한 몇몇 지점이었다.
심부까지의 직선거리, 마기의 농도, 거점 통로로서의 효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했으며 ‘정 방법이 없으면 희생이 나오더라도 강제로 뚫어 없던 길을 만들어야 할 부분’이라는 뜻이었다.
신세영은 헤스티아 길드 소속 S급 마력운용계 헌터였다. 능력은 바람 조작. 그걸로 어떻게 해보려 한 모양인데, 그게 그렇게 쉬웠으면 자신이 여기서 이렇게 귀환자를 찾아 헤매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빠지직.
사결의 주변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가까이 있던 가전은 쩍 소리를 내며 망가져 버렸다.
“공적에 눈이 멀어 귀한 전력을 그따위로 낭비하다니.”
이현수는 무겁게 침묵했다. 그는 사결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래서 감히 수해에 관해선 헛소리를 하거나 농담을 하지 않았다. 피곤함에 절은 손이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알겠다. 가능한 한 빨리 돌아가지.”
[예. 비공정은 이미 보내 놨습니다. 아마 이틀 내로 도착할 겁니다.]
“그래.”
통화를 마친 사내가 소파에 길게 등을 기댔다.
“결국, 좋은 소식 하나에 나쁜 소식 하나인가.”
혀를 찼지만 그래도 기분이 썩 나쁘지 않다. 좋은 소식이 나쁜 소식을 누를 만큼 커서 그렇지.
사결은 물결치는 도시의 불빛을 응시했다. 저 어딘가에 자신의 귀환자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자 이 추레하고 가난한 도시마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그려낸 웃음이 아닌 진짜 웃음을 함빡 머금었다. 속에 든 것이 많은 맹수의 웃음이다.
지금부터 한동안 그리샤에 가 있어야 하지만 크게 걱정이 되진 않는다. 문자를 뚫어둬서 그런가? 낄낄 웃은 사결이 길게 기지개를 켜고 침실로 들어갔다.
잠들기 직전까지도 그의 머릿속은 탐스러운 먹잇감을 삼킬 생각으로 가득했다.
* * *
속이 내내 울렁거렸다.
먹은 것도 없이 연신 토기가 치밀었다. 결국 잠들지 못한 채 새벽을 맞이했다. 혼란으로 점철된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마계는 폭력과 투쟁의 세상이었다. 나는 그 세계의 법칙을 수용함으로써 살아남았다.
다시 돌아온 중간계는 평화로웠다.
어느 어두운 뒷골목에서 누군가 죽고 다쳐도 그게 마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중간계의 폭력은 폭력도 아니었다. 게이트와 마물이라는 공공의 적 때문에 전쟁도 없다.
보라색이 아닌 하늘, 무해한 가로수와 어깨를 나란히 한 인공적인 건물들은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하나, 오래지 않아 문제가 생겼다.
어떤 일에 부수적으로 일어나는 좋지 못한 일. 사전은 그걸 부작용이라고 했다.
중간계에 적응하며 부작용이 하나 생겼다. 크라투스의 밑에서 억눌러왔던 것들이 하나씩 풀리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강하게 억눌렀던 감정이 가장 먼저 되살아났다. 지독한 울분이다. 불을 닮은 감정은 눈엔 보이지 않는 균열을 상흔에 생겼다.
악몽을 꾸지 않는 밤에도 열이 올라 깼다. 숨을 헐떡이며 직감했다. 오래지 않아 나는 이 균열 때문에 무너져 내릴 거라고. 틈새를 메울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빙룡을 상대로 감히 복수를 꿈꾸진 못한다. 눈을 속이고 도망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렇다면 갈 곳 없는 분노와 복수는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다행히(이걸 다행이라고 해도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내겐 그럴 만한 대상이 있었다.
삼초승달 길드.
몰래 숨어 그런 일을 벌이는 것치곤 꽤 유명한 길드였다. 단말기의 검색만으로도 유의미한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이명환.
취임식 사진을 보는 순간 바로 알았다. 이 자였다. 가면을 쓰고 있었던 모든 일의 원흉.
그는 이씨 가문의 가주였다. 가주씩이나 되는 자가 그런 더러운 짓을 주도하고 직접 현장에 왔다는 건 의외였지만 이제 와선 별로 중요치 않고 관심도 없다.
과거 그리샤의 삼대 길드로 불렸던 초대형 길드의 수장, 길드 산하 연구소 소유, 길드는 이씨 가문을 중심으로 한 혈족 운영.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대규모 이레귤러 게이트의 발생으로 인해 길드는 괴멸.
이명환은…
‘…사망.’
날짜를 확인했다. 내가 마계에 보내지고 대략 몇 달 후의 일이다. 이씨 가문의 생존자는 고작 다섯. 때마침 밖으로 나와 있던 가주의 아들(7세)과 말동무였던 분가의 아이(7세). 그리고 그 둘의 호위로 붙은 경호원 셋(25)(32)(33) 뿐이다.
그리고 경호원 셋은 죽었다.
아들에 대해선 정보상이 다시 연락을 주길 기다리고 있다.
“…….”
연좌제를 물을 생각은 아니다. …정말 아닌가? 잘 모르겠다.
내 삶을 그림자처럼 따라붙은 공허가 음습하게 웃으며 나를 끌어안았다.
목표금액이 멀지 않았다. 돈이 모이면 그리샤의 위조 시민 ID를 얻어 비공정을 통한 밀항을 시도할 것이다.
내 손으로 죽일 수 없다면 그 시체라도 박살 내야 했다. 그래야 내 혼을 뿌리부터 붙들고 있는 저주가 조금이나마 흐려질 테니까.
* * *
아우터들과 마물이 어슬렁거리는 도시 밖의 폐허. 나를 단단히 안은 여인이 미친 듯이 앞으로 내달렸다.
‘괜찮아.’
시선을 알아차린 그녀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웃었다. 이마는 찢어져 피가 흘렀고 머리는 산발이었다. 반면 난 다친 곳도 찢긴 곳도 없다. 망가진 건 어머니뿐이다. 그 사실이 나를 견딜 수 없게 했다.
‘어머니.’
‘괜찮다니까.’
아니, 전혀 괜찮지 않았다. 추격자들이 턱 밑까지 쫓아와 있었다. 뒤에서 불과 얼음이 날아왔다. 어머니의 등 위로 무수한 얼음칼이 떠올랐다. 감히 대적할 엄두를 내지 못할 만큼 엄청난 마력을 가진 그녀였으나 상당수의 공격과 지구전은 강철 같던 그녀를 좀 먹었다.
그때, 어디선가 날아온 물채찍이 그녀의 팔 사이로 들어와 나를 낚아챘다.
‘아, 안돼!’
어머니가 비명처럼 나를 부르며 손을 뻗었다. 그러자 물채찍이 쨍 얼어붙었다. 허공에서 힘을 잃은 내 몸이 낙하했다. 그녀가 나를 향해 도약했다. 뒤에서 틈을 노리던 이들이 이때다 싶어 그녀에게 온갖 속성 공격을 퍼부었다.
불길이 팔을 스치고 허벅지가 꿰뚫린 그녀의 몸이 주춤한 사이 억센 사내의 팔이 나를 감싸 안았다.
‘이명환…!’
어머니가 불타는 눈으로 사내를 노려봤다. 나는 담담하게 그녀를 불렀다. 기어이 내 입으로 이 말을 해야 할 순간이 왔다.
‘날 포기해요.’
사내는 맨 처음 어머니에게 제안했다. 나를 넘기면 당신은 그냥 두겠다고.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원하는 만큼 평범한 삶을 살면 된다고.
어머니는 거부했고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날 포기하지 않으면 둘 다 이명환의 손에 떨어져 마지막엔 죽게 될 그런 최악의 상황.
‘내가 괜찮다고 했잖니. 그럼 괜찮은 거야.’
나는 속지 않았다.
그건 우리가 괜찮을 거란 뜻이 아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만큼은 괜찮게 만들겠다는 다짐이었고 맹세였다. 내가 말릴 새도 없이 부드럽게 웃은 그녀는 수렁에 제 몸을 들이밀었다.
‘잡아!’
우르르 몰려간 무수한 등이 내게서 그녀를 가렸다. 어린 내 눈엔 그게 꼭 거대하고 검은 벽처럼 보였다. 포박된 어머니가 이송될 때가 되어서야 사내는 나를 그녀의 근처까지 데려다주었다.
‘아가. 울지 마.’
시야가 흐려졌다가 맑아지길 반복했다. 눈에 맺히기 무섭게 흐른 눈물이 온통 뺨을 적셨다.
‘아무 일 없을 거야.’
그렇게 말하며 어머니는 웃었다. 그게 가당치도 않을 거짓말이라는 걸 그녀도 알고 나도 알았다.
그날부터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인질이었다.
“헉…!”
사결은 소스라쳐 잠에서 깼다. 불안에 젖은 눈이 방을 훑었다.
호텔이다. 과거에 잠겼던 기억이 빠르게 제 자리를 찾았다. 커다란 손바닥으로 연신 얼굴을 쓸어내렸다. 더는 작지 않은 몸뚱이를 실감하자 크게 흔들린 감정도 이내 제 자리를 찾았다.
“씨발!”
욕설을 뇌까린 그는 한동안 쳐다보지도 않던 양주를 깠다. 컵도 없이 그대로 병째 기울였다.
“후우.”
숨에서 알코올 향이 진하게 나자 술렁거리던 속이 조금 진정됐다. 몇 번 더 기울인 그가 땀에 젖은 몸을 소파에 던졌다. 길게 누워 창밖으로 일렁이는 야경의 물결을 보고 있자니 신기하게도 복잡하던 속이 점점 비워졌다.
자기 전에도 생각했듯 저 불빛 어딘가에 있을 자신의 귀환자 때문이다.
사결이 픽 웃었다.
‘미쳤나.’
좆같은 꿈 때문에 새삼 수해 심부에 대한 갈망이 도진 것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자꾸 머릿속에서 그가 기억하던 어머니의 모습과 사내의 모습이 겹쳤다 흩어지길 반복했다.
닮은 구석? 전혀 없다.
분위기? 정 반대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에게서 어머니와 비슷한 뭔가가 느껴졌다.
벌컥.
사결은 그냥 술이나 마시기로 했다. 독한 양주를 한 병 다 비우고 새 병을 깠다. 한을 품은 형형한 눈이 어둠에 묻힌 도시를 노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