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를 잡는 방법 (23)화 (23/106)

23화

그는 기본적으로 막 나가는 인간이었지만 그게 생각이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철저히 상황과 조건을 따져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편이었다. 충동적인 행동처럼 보인다면 그렇게 설계되었을 뿐 전부 계산 하에 행한 일이다.

다시 말해 막 나가도 수습이 될 수준을 지켰고 인간으로서 넘지 말아야 할 선 또한 철저히 지켰다.

줄타기. 사결이 가장 잘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뭐란 말인가.

‘내가 귀환자가 급하긴 했나 보군.’

혀를 찬 그가 다시 호텔 안으로 들어가려 몸을 틀었을 때였다.

[야, 눈깔 관리 제대로 안 해? 왜 훔쳐보고 지랄이야.]

“……?”

도청기와 연결된 소형 이어폰에서 소란이 일었다. 단순한 소음이 아니다. 고성과 고함이다. 사결이 손가락으로 이어폰을 누르며 건너편 소리에 집중했다.

상황을 파악한 그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호텔 정문에서 갑자기 굳어버린 손님 때문에 무슨 일 있나 싶어 다가오던 가드들이 흠칫 뒤로 물러났다. 출입구 대리석 위에 넓게 깔린 촌스러운 레드카펫 위로 하얀 서리가 내려앉았다.

사결이 드론에 마나를 주입했다. 금형(金型)의 큐브가 주르륵 펼쳐지며 하얀 유선형의 몸체로 변했다. 그건 소형 전투기 같기도 했고 가오리와 새를 합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배판에 달린 손잡이를 쥐자 컨트롤러가 뇌파를 읽었다.

기이잉.

순식간에 예열을 마친 드론이 하늘로 쏘아졌다.

“뭐, 뭐야?!”

“미친. 방금 뭐였어?!”

경악한 사람들의 외침이 순식간에 멀어졌다. 지금 행동에 대한 여파는 떠오르지도 않았다. 당장 사결의 머릿속을 지배한 건 강렬한 의문이다. 내가 지금 카페에 가는 건가? 그것도 수해용 드론까지 써 가면서?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귀하디귀한 귀환자다. 쓸데없는 일에 휘말려서 다치기라도 하면 안 되니까.’

사결은 자신의 말에 오류가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귀환자라는 말은 많은 걸 함의하지만 대표 격은 정해져 있다.

악의와 살의로 가득한 세계에서 살아 돌아온 자. 마기에 침범당한 탓에 대부분 단명했지만 그게 약하다는 뜻은 절대 아니었다.

그런 자가 고작 이런 트러블에 다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자신은 왜 드론까지 써가며 날아가는가.

[[email protected]#$%!!]

도청기에선 소란이 계속되고 있었다. 일방적인 고성이다. 다른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사결이 이를 악물었다. 그는 사내의 태도가 이런 상황에서 어떤 악영향을 끼칠지 잘 알고 있었다.

‘젠장, 그냥 조용히만 있어라. 그러면 내가 가서 아주 개 박살을-’

사결의 생각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일순 장르가 바뀐 듯 담담한 목소리가 그의 귀를 파고들었다.

[죄송합니다.]

정체불명의 분노로 부글거리던 뇌리가 깨끗해졌다. 사결은 하마터면 30미터 상공에서 떨어질 뻔했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낮고 우직한 목소리가 이상하리만치 심장에 깊게 꽂혔다.

그의 목소리가 섹시하다고 했던 건 반 농담이었다. 분명 그랬었는데.

‘젠장, 섹시하잖아.’

뒷덜미가 찌릿한 것과 별개로 사결의 기분은 가파른 하강 곡선을 그렸다.

‘죄송하다니. 뭐가.’

저깟 쓰레기 같은 놈한테 뭐가 그렇게 죄송한데.

사결이 드론의 손잡이를 더욱 꽉 움켜쥐었다. 팔뚝의 심줄이 도드라졌다. 제 앞의 놈이 어떤 개소리를 지껄이며 짖어대도 사내는 시종일관 담담했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카페까진 순식간이었다. 수해의 상공을 다닐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짧은 거리다. 고작이라고 표현해야 마땅할 시간이 이렇게 길게 느껴질 줄이야.

헛웃음을 지은 사결이 드론을 큐브로 바꾸며 땅에 내려섰다. 출발할 때와 마찬가지로 주변의 시선이 한데 모였다. 그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큐브를 코트 주머니에 넣고 고글과 컨트롤러를 벗었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내부는 어수선했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카운터 알바생들, 울먹이는 여자, 난동을 부리는 B급, 구석에서 아닌 척 흥미진진하게 상황을 관망하는 학생들.

하지만 사결의 눈에 들어온 건 단 하나였다. 구타의 흔적이 남은 사내의 뺨이다. 사결은 그가 지금 느끼는 심경을 그대로 뱉었다.

“어이가 없네.”

귀해서.

너무 귀해서.

‘이 나도 어떻게든 어르고 달래서 온건히 손에 넣으려고 간만 보고 있었는데.’

“쳤어?”

감히?

사결이 웃었다. 근래 지은 것 중 가장 나른하고 살기 넘치는 미소였다.

* * *

내가 지금 놀란 건가?

자신의 상태를 점검한 여원이 멍청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 원인이 되는 남자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근처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건 알고 있었다. 여기 올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정말 올 거라곤 생각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게.

‘안 왔잖아.’

늘어져 있던 손이 꼼지락거렸다.

‘오지 말랬다고 진짜 안 왔으면서.’

나중엔 무슨 애 같은 생각을 한 거냐고 굳었지만 이 순간엔 몰랐다. 사결의 시선이 그런 여원의 뺨에 멎었다.

언제나 반달처럼 휘어 있던 눈매가 사납게 굳었다. 카페 온도가 삽시간에 내려갔다. 숨이 입김으로 바뀌었다. 한 모금 마시고 내버려 둔 음료가 서서히 얼어붙고 있었다.

“뭐, 뭐야 이거.”

당황한 사람들 사이에서 B급 헌터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백담은 B급의 숫자가 한 손에 꼽을 만큼 적다. 당연히 그들의 신상도 헌터와 일반인 모두에게 두루 알려져 있다.

C급도 마찬가지다. 대도시라면 잡지를 찾거나 협회에 검색을 해 보지 않는 이상 모르겠지만, 이곳처럼 좁은 업계에선 친분이 없어도 얼굴은 다 알았다.

‘본 적이 없다. 그렇다는 건 기껏해야 D급.’

D급 마력운용계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라는 생각은 했지만, 촌구석에서 쥐 떼 상대로 젠체해오던 고양이였다. 자신에게 불리한 가정은 모른 척하고 유리한 것만 보는 습관이 있던 B급은 이번에도 그렇게 했다.

가슴을 편 남자가 사결을 향해 적의를 드러냈다. 코웃음을 친 사결이 양손을 주머니에 꽂은 채 거침없이 다가왔다.

바로 앞에 서자 덩치 차가 두드러졌다. 키가 190에 가까운 사결이 남자를 내려다봤다.

‘무슨 위압감이…!’

진짜는 덩치보다 압박감이었다. 식은땀이 B급의 등을 푹 적셨다.

‘진짜 D급 맞아? 기세는 또 뭐가 이렇게 흉흉해!’

손을 뻗은 사결이 그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컥!”

“묻잖아. 네가 내 사과 쳤냐고.”

사과? 뭔 사과?

지켜보던 이들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발뒤꿈치가 뜬 B급도 마찬가지였다.

‘미친 새끼가 갑자기 뭔 사과를 찾아?!’

몸이 들린 B급이 반사적으로 사결의 팔을 움켜쥐었다.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상대는 마력운용계 D급이다. 육체강화계인 자신이 있는 힘껏 쥐면 팔이 그대로 으스러질지도 몰랐다.

마력운용계는 육체강화계보다 훨씬 희소했다. 마물을 상대할 때의 효율이나 저지력도 비교 불가다. 당연히 더 좋은 대접을 받았고 협회에서도 신경을 썼다. 그런데 같은 등급도 아니고 두 단계나 낮은 녀석을 다치게 만든다? 이건 징계로는 끝나지 않는다.

‘아, 몰라 씨발 알 게 뭐야. 애초에 먼저 손댄 건 이 새끼잖아.’

B급의 뇌리에 정당방위라는 말이 스쳤다. 결론을 내기 무섭게 그의 태세가 뒤바뀌었다. 아예 팔을 찢어버릴 생각으로 그가 힘을 줬다.

“큭켁!”

하지만 고통에 찬 신음을 뱉는 것도 B급이었다.

“아주 뒈지고 싶지. 응?”

목을 쥐는 힘이 강해졌다.

B급의 얼굴이 벌게졌다. 방금까진 그냥 좀 답답한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아니, 이대로 목이 짜부라져 죽을 것 같았다.

“뭐해. 계속 힘줘야지. 힘겨루기를 해 보려는 거 아니었나?”

“그, 큭, 그만 커흑!”

“왜 힘 안 줘? 그러다 진짜로 죽는다?”

사결이 빈정거렸지만, B급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가 손을 허우적거렸다. 갈고리처럼 말린 손가락이 사결의 팔을 긁었다. 누가 봐도 죽어가는 모양새다. 하지만 사결은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난 농담을 해도 ‘개소리’ 같은 말이나 들었는데. 넌 화를 내고서 죄송하다는 말을 들어? 하하, 진짜 죄송한 게 뭔지 알려줄까? 응?”

그는 이상한 곳에서 핀트가 나가 있었다. 여원의 눈이 짜게 식었지만, B급에 정신이 팔린 사결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장내에 있던 사람들은 숨을 죽인 채 멀찍이 떨어졌다. 헌터끼리의 시비에 끼어들 만큼 간이 큰 사람은 없었다. 단 한 사람 빼고.

“그만두십시오.”

여원의 부름에 사결이 픽 웃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