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잠깐, 오빠!”
남자는 성이 잔뜩 나서 이쪽으로 왔다. 남녀관계나 연애에 대해선 전혀 모르지만, 시비라면 마계에서 지겹도록 겪었다. 고개를 돌리자 남자가 버럭 역정을 냈다.
“야. 눈깔 관리 제대로 안 해? 왜 훔쳐보고 지랄이야.”
“…….”
나는 아련해졌다. 크라투스와 만나기 이전, 행복했던 마계 영주 시절의 향수가 일었다. 영주가 되기 전까진 이렇게 다짜고짜 시비를 걸어오는 놈들이 한 트럭이었다.
하지만 그때처럼 머리와 도끼날을 합체시켜 줄 순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뭐, 뭐 이 새끼야. 네가 그렇게 보면 어쩔 건데?”
내가 아무 말이 없자 남자의 얼굴이 더 험악해졌다.
“오빠 미쳤어? 헌터는 일반인 건드리면 안 되는 거 몰라?”
“넌 가만히 있어!”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너무 희미했다. 솔직히 어제 만난 스펜타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B급이라고 했지.’
게이트 한계가 C급인 백담이니 이렇게 약한 개체가 오만하게 구는 것도 이해는 갔다.
‘정말 살기 좋네. 중간계.’
이딴 놈이 이렇게 설치고 다니고. 멀찍이 앉은 학생들이 소곤거렸다.
“성질 더럽다더니. 그것도 진짜네.”
“조용히 해. 우리까지 괜히 시비 털릴라.”
다 들린다. 일반인이면 모를까 헌터의 청력은 비상하다. 아니나 다를까, 남자의 귀에도 들렸는지 그가 사나운 시선을 던졌다. 흠칫한 학생들이 테이블만 죽어라 내려다봤다.
더 이상의 소란은 사양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의 앞에 섰다. 남자가 저도 모르게 주춤하는 게 보였다. 한심함을 감추며 천천히 말했다.
“죄송합니다.”
“죄송? 죄소옹?”
드디어 건수를 잡았다는 듯 말을 늘이는 게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마계에선 그냥 머리를 부숴버리면 됐는데 여기선 그러질 못하니 답답하다.
마족의 습관을 버려야 한다는 건 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습관인지라 쉽게 되질 않았다. 지금도 터진 망개떡 같은 얼굴을 들이미는 남자의 관자놀이를 깨부수는 상상을 했다.
“죄송할 짓을 왜 해 씨발아.”
남자가 손으로 내 어깨를 툭툭 쳐 댔다.
“아, 오빠! 그만하라니까! 계속하면 나 화낼 거야!”
“화내면 뭐? 내든가 씨발.”
B급 헌터는 이제 내가 아닌 여자를 타깃으로 잡았다. 안 그래도 창백한 여자의 얼굴이 더욱 희게 질렸다.
“내, 내가 잘못했어. 응? 그러니까 진정하고….”
“진정 같은 소리 하네. x년이.”
짜악.
남자가 불시에 손을 날렸다. 카페 안이 이때까지와는 다른 의미로 차게 가라앉았다.
여자의 몸이 옆으로 휘청거리다 넘어지고 선글라스가 벗겨졌다. 눈에는 멍이 들어 있었다. 지금 생긴 건 아니었지만 누가 범인인지는 금방 유추가 됐다.
“헉.”
“흡.”
학생들이 있던 테이블에서 숨 들이켜는 소리가 났다. 잔뜩 흥분한 남자의 눈이 그쪽으로 팩 돌아갔다.
“뭘 봐, 애새끼들아! 구경났어?”
구경 난 건 맞지.
묵묵히 여자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저, 전 괜찮으니까 이거 놓으세요!”
눈에 두려움이 가득하다. 괜히 불똥 튀어서 더 맞을까 봐 무서워하는 게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남자가 구둣발로 내 정강이를 퍽퍽 쳤다. 이런 몸이 아니었으면 꽤 아팠을 것이다.
“하. 이야, 아주 흑기사 나셨네. 응? 아주 상황 파악이 안 되지? 눈치라곤 없어?”
“예.”
전혀 예상치 못한 답에 잠깐 남자의 말문이 막혔다.
“없습니다. 눈치.”
아직도 말하는 건 어색하다. 그래도 예전을 생각하면 매끄럽다 못해 비단결이다.
이것도 사내 때문이었다. 매일 뭔가 사 나른 사내는 그 핑계로 병실에 머무르며 쉴 새 없이 떠들었다. 거기에 딱히 맞출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대화라는 행위의 특성상 어쩔 수 없이 대답해야 하는 순간이 존재했다.
사내는 그 순간들을 섬세하게 설계했다.
그는 타고난 어부였다. 자신이 던진 통발에 내가 들어가기만을 기다렸다가 능숙하게 건져 올렸다. 나는 펄떡거리며 그가 원하는 말을 더듬는 것 외엔 수가 없었다.
놀랍게도.
그게 싫지 않았다.
“…….”
문제가 없다는 건 착각이었다. 너무 커서 보이지 않았을 뿐.
싫지 않다.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기이하게 일그러진 정적이 끝났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남자가 주먹을 날렸다.
“이거 미친 새끼 아냐!”
퍽.
얼굴이 옆으로 돌아갔다. 원체 단단한 몸이라 크게 아프지도 않다. 잔뜩 화가 나서 씩씩거리지만 의외로 겁쟁이인지 때리는 힘을 적당히 조절해서 더 그렇다. 이건 딱 일반인 남자를 쓰러뜨릴 정도의 힘이었고 나는 일반인이 아니었다.
멀쩡히 서서 고개를 바로 하자 남자가 흠칫했다. 서늘한 눈으로 그를 봤다. 마계에 떨어지면 늑대 마물조차 이기지 못하고 뜯겨 죽을 놈이다. 이런 놈에게 내가 맞고 참아야 할 이유가 있나?
‘죽일까.’
의지는 살기가 되어 새어 나왔다. 남자의 눈이 서서히 크게 뜨이며 얼굴에 경악이 번졌다. 안으로 오므린 손끝이 움찔했다.
죽이는 건 아주 쉽다. 이대로 손을 뻗어 목을 쥐어 꺾어버리면 그만이다. 이딴 나약한 개체는 그대로 절명하겠지.
‘안 돼.’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손을 늘어뜨리고 아래를 봤다. 중간계는 마계와 달라서 누군가를 해치는 건 중죄다. 구속되거나 눈에 띄는 일은 피해야 한다. 나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살기를 거두고 고개를 숙이자 남자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벙쪄있던 얼굴이 포악하게 일그러졌다. 이전과는 다른 진짜 분노였다.
“너 이 새-”
“어이가 없네.”
싸늘한 말이 남자의 말을 잘랐다. 한 일주일 어울렸다고 벌써 목소리가 익숙하다. 눈을 살짝 크게 떴다. 똑똑히 듣고도 설마 했다. 그만큼 그의 등장은 극적이었다.
검은 마스크를 쓴 채 문가에 삐딱하게 선 그가 이쪽을 봤다. 나와 대화할 땐 여유와 나른함으로 차 있던 사내가 지금은 서릿발 같다. 그의 시선이 내 뺨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게 참 이상하게도,
“쳤어?”
내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 * *
사결은 도청을 하고 있었다.
도청기가 든 곳은 그가 여원에게 사다 준 옷이었다.
정확히는 옷 안 주머니의 안감을 찢어 달고 다시 봉합했다. 운동화엔 GPS를 심었다. 밑창을 손가락 한 마디 만큼 옆으로 판 후 캡슐형 GPS를 넣고 다시 마감했다. 둘 다 어지간해선 걸릴 일이 없을 것이다.
묘하게 상식이 부족하던 사내를 생각하면 더더욱 발견하는 일은 없겠지. 그렇게 생각한 사결은 픽 웃으며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쪼로록]
빨대로 음료를 마시는 소리가 도청기를 타고 호텔 방을 가득 메웠다. 마음에 든 게 분명했다.
나오려는 웃음을 참았다. 산 만한 덩치에 위협적인 분위기의 사내가 이렇게까지 귀여울 일인가 싶다. 사결은 눈을 감고 손으로 턱을 괴었다. 누가 보면 클래식이라도 감상하는 줄 알 것이다.
도청기는 병원에도 설치했었지만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들리는 건 백색소음뿐. 온종일 듣고 있어도 들리는 말은 몇 마디 없다. 그것도 업무용으로 나누는 ‘예, 아니요’ 가 전부다.
자신과 단둘이 있을 때 한 말이 그것보단 많을 것이다.
‘그건 나쁘지 않군.’
사결의 입술이 휙 말려 올라갔을 때였다.
[손님, 괜찮으세요?]
괜찮냐고 묻는 아르바이트생의 말이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도청기와의 거리가 그만큼 가깝다는 뜻이다. 눈을 뜬 사결의 눈썹이 꿈틀했다.
‘뭐, 저렇게 상냥해. 흑심이 있는 거 아냐?’라는 생각과 함께.
‘괜찮으냐고 묻다니. 어디 좋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바로 뒤를 이었다.
소파에 묻혀 있던 몸에 힘이 들어갔다. 그가 서서히 상반신을 일으켜 세웠다.
‘무기물 같은 인상의 녀석이 척 봐도 어디 아파 보인다는 건 그만큼 상태가 안 좋다는 뜻인데.’
뒤에 괜찮다는 사내의 대답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사결이 겪은 사내는 죽어가면서도 담담하게 ‘괜찮습니다.’라고 할 사람이었다. 이유 모를 초조함이 신경을 갉아 먹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비상용으로 들고 온 슈트 케이스를 뒤지고 있었다. 거기서 압축된 큐브 형태의 드론을 챙겼다. 고글을 끼고 이어 커프처럼 생긴 컨트롤러도 장착했다. 익숙한 실리콘이 귀와 관자놀이에 착 달라붙었다.
호텔 밖으로 나온 사결은 입구에 선 후에야 자신의 추태를 자각했다.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
입구 장식으로 세워진 매끈한 은색 조형물에 그의 모습이 비쳤다. 허둥거리며 옷만 대충 걸치고 뛰어나왔다. 심지어 손에는 드론까지 챙겨서.
“하…?”
사결이 헛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우두커니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