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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를 잡는 방법 (21)화 (21/106)

21화

사내는 그 후로 현장에 나오지 않았다.

박명석은 얼굴이 폈다. 인부들은 저들끼리 수군거렸지만, 또 금세 사그라들었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일을 끝내고 간의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는데 뒤늦게 낯섦을 느꼈다. 아침에 생각 없이 집어 입고 나온 게 사내가 사 준 옷이라는 걸 그제야 알아차린 것이다.

이것 말고도 포장도 뜯지 않은 옷과 신발들이 아직 많았다. 그것들은 쇼핑백에 담긴 채 어울리지 않는 단칸방 구석에 놓여 있다.

‘돌려주는 게 좋을까.’

하지만 만나는 것도 싫고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 전하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 한숨과 함께 탈의실을 나왔다.

“철수 수고했다! 내일 보자!”

꾸벅, 박명석과 인부들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 작업 현장을 벗어났다.

비도 오지 않았는데 내딛는 걸음이 질척하다. 요 며칠 은근히 속이 끓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초조가 불쾌한 기분으로 발전했다. 다 그자 때문이다. 폭풍처럼 자신을 휘젓고 사라진 사내.

‘잊겠지. 곧 잊겠지.’

그렇게 되뇌면서도 나는 그때의 카페를 다시 찾았다. 핑계는 대기 나름이었다. 케이크가 맛있어서, 음료가 취향이라서…. 진짜 이유는 나도 알지 못했다. 웃긴 일이다.

탁.

마시던 음료를 내려놓고 통유리 바깥으로 시선을 줬다. 도시의 심부에 가까운 번화가라 낮에도 사람이 많이 보였다. 높이 솟은 빌딩 머리에 전광판이 반짝였다. 각각 광고를 열성적으로 토해내던 판들이 일제히 검게 가라앉았다.

백담시 전도가 떠올랐다. 붉게 반짝이는 점들이 보였다.

“어? 여기서 꽤 가까운 게 하나 있네.”

“정말? 구경 갈까?”

“구경은 무슨. 다 통제돼서 마물 털 한 가닥도 안 보일 텐데.”

아직 어린 학생들이 조잘거리며 내 옆을 지나쳐 자리를 잡았다. 저 점이 박힌 곳에 오늘 게이트가 열린다. 시간은 각자 다르겠지만 대략 2시간 전부터 협회 직원들이 주변을 통제하고, 배정된 헌터가 자리를 잡을 것이다.

“…….”

그 사내도 헌터였다. 그것도 후처리과 과장 자리에 있기엔 아까울 만큼 강한 헌터다.

속성은 얼음으로 크라투스와 같았다. 공격 방식도 비슷했다. 그런데도 혐오감이 들지 않으니 신기한 일이었다.

‘서로 너무 달라서인가.’

크라투스의 체격은 호리호리했다. 얼굴은 감탄이 나올 만큼 섬세하다. 은색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머리칼이 허리까지 늘어졌다. 누구도 외견만 봐선 그가 그렇게 잔혹하고 악랄한 성정인 줄 모를 것이다.

본체는 나도 본 적이 없다. 마왕성에 걸려있던 초상화에는 하얗고 거대한 드래곤이 입에서 얼음 브레스를 뿜었다. 초상화가 드래곤이라니. 그야말로 판타지다. 하지만 역시 그것만으로는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그냥 그림을 본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여러 번 녀석의 본체가 궁금하다는 생각을 했다.

반면 사결, 그 사내는 가능하면 본체가 아니라 그림으로 마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크라투스와는 다른 의미로 강렬했다. 예측도 할 수 없고 저항도 할 수 없다. 휩쓸리지 않도록 중심을 붙드는 게 그토록 힘들 줄이야. 마계에선 숨 쉬듯 해왔던 모든 일이 그 앞에선 어려웠다.

‘다른 현장에 가는 걸까.’

미적지근하게 식어가는 머그컵을 붙든 손에 힘이 들어갔다. 오지 말랬다고 정말 오지 않을 줄은 몰랐다.

입맛이 썼지만 어쨌든 사내는 사라졌다. 바뀌는 건 없다. 모든 건 스펜타의 새끼가 만들어 낸 아주 작은 해프닝이었을 뿐.

통유리 너머로 시선을 옮겼다.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공간과 시간이 밀가루 반죽처럼 통째로 늘어지는 느낌.

중간계에 돌아온 이후 종종 있던 일이었다. 심장에 나침반이 들어앉은 것처럼 가슴이 자꾸 어딘가를 향했다. 그건 일종의 충동이었다.

작업하다 말고, 샤워하다 말고, 그냥 길을 걷다 말고. 어느 때라도 무언가 갑자기 내 턱을 잡아 고개를 돌렸다. 저 격벽을 뛰어넘어 어딘가로 가야 할 것 같은 충동이 일었다.

그곳은 아주 먼 곳에 있었지만 못 갈 곳은 아니었다.

이쪽이야.

여기야.

여기로 와.

충동은 내 전신을 잡아끌었다가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 그러면 느려졌던 세상이 본래 속도로 돌아갔다.

사람들은 수조 속 열대어처럼 흐느적거렸다. 위기의식이나 긴장감이라곤 없다. 태평하게 활보하는 이들을 보고 있자면 여기가 중간계라는 실감이 났다.

생활권에서 게이트가 열리고 거기선 사람을 잡아먹는 마수가 나왔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무감해졌다. 솔직히 부러웠다.

나도 언젠가 저들처럼 크라투스라는 이름에 무감해지는 날이 올까. 손을 들어 습관처럼 가슴팍을 짚었다. 질감이 다른 피부를 만질 때마다 되새긴다. 나는 목줄을 끊고 도망친 노예라는 걸.

저들과 달리 죽는 순간까지도 잊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 또한.

“손님, 괜찮으세요?”

“?”

난데없는 말에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바로 옆까지 온 카페 직원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어디 아파 보이셔서요.”

내가 그랬다고?

“괜, 찮습니다.”

“알겠습니다.”

직원은 미덥지 않다는 기색이었지만 순순히 돌아갔다. 그때 문이 열리고 새로운 손님이 들어왔다.

“…난 오늘 하루 통째로 데이트인 줄 알았다고!”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목소리의 주인은 전체적으로 화려한 느낌의 여성이었다. 얼굴의 반을 가리는 선글라스 때문인지 하얀 피부가 도드라졌다.

“미안해. 내 설명이 부족했어. 화 풀어. 응?”

연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그 뒤를 따랐다. 두꺼운 패션 마스크가 턱에 걸쳐져 있었다. 남자의 얼굴은 평범했다.

전체적인 모습도 여자에 비하면 어딘가 부족했다. 옷은 비싸 보이는데 알맹이가 그걸 따라가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사내가 떠올랐다. 비싼 코트가 그림처럼 잘 어울렸다. 분위기에서는 오히려 코트가 부족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에겐 위에 선 사람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다. 크라투스가 그랬고 건물에서 만난 가면의 남자가 그랬으며 어릴 적 아버지가 보던 영화에 나오던 주인공들이 그랬다.

어느 영화에서 조직의 보스가 시가를 물던 장면이 있었다. 그 자리에 시가는 그대로 두고 사내만 집어넣자 B급이던 영화가 명작으로 재탄생했다.

‘제정신이 아니군.’

오지 못하게 하면 뭐 하나. 이미 머릿속에 들어앉아 있는데.

인상이 꽤나 충격적이어서일까. 사내가 좀처럼 뇌리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연인은 큰 목소리로 옥신각신하며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아까 나를 지나쳐 안쪽에 자리를 잡은 학생들이 두 사람을 힐끔거렸다. 작은 목소리가 테이블 사이를 오갔다.

“저 사람. 헌터 아냐? B급 육체강화계인.”

“어디? 헉, 맞네. 맞아. 마스크 써도 알아보겠다.”

그야 마스크를 턱에 썼으니 당연하다.

“이름이 뭐더라.”

“몰라. 아무튼, 이 근처에 게이트 열린다더니 마물 잡으러 왔나 보다.”

“대박. 나 상급 헌터 처음 봐.”

B급은 엄밀히 말해 상급이 아니고 중급이지만,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흘려들었다. 자리에 앉아 몸을 늘어뜨린 여자가 볼멘소리로 툴툴댔다.

“놀 수 있는 날이 있긴 해?”

“네 남친이 너무 잘나서 그런 거니 네가 조금만 이해해 줘. 응?”

그렇게 말한 남자가 여자의 귀에 뭐라 속삭였다.

예민한 내 귀에도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다. 다만 여자의 표정이 풀린 걸 보니 굉장히 좋은 제안이라도 한 모양이다.

“…이번만이야.”

“응. 내가 진짜 잘할게.”

남자가 여자에게 찰싹 붙어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들었다. 신기하다. B급 헌터가 맥을 못 추는 상대가 일반인이라니. 아무 생각 없이 보다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마계에서 훔쳐보는 건 싸우자는 뜻이다. 중간계에서도 딱히 예의 있는 짓은 아닐 것이다.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게이트 오픈 시간이 임박했는지 전광판에서 광고가 멎었다. 대신 게이트의 자세한 위치와 경고 문구가 분할 화면으로 송출됐다.

여자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나온 건 그때였다.

“저기 창가에 앉은 사람. 분위기 대박이다.”

“응?”

남자의 시선까지. 총 두 개의 시선이 옆에서 느껴졌다.

“얼굴도 잘생겼을 것 같은데.”

“별로.”

약간 기분이 상한 어조였다. 하지만 눈치 없는 여자는 계속 나를 화제에 올렸다.

“아냐. 뒷모습에서도 느껴지는 아우라가 있다니까?”

“내기해 그럼. 딱 봐도 못생겨서 몸이나 키운 것 같은데.”

“아까 얼핏 봤는데 그런 거 아니었다니까?”

“아까? 아까 언제?!”

“왜 갑자기 소리를 질러? 여기 막 들어왔을 때 내 쪽을 보고 있던데.”

그야 목소리가 너무 컸으니까. 심드렁히 생각하는데 남자의 말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뭐?!”

대화가 진행될수록 두 사람의 말은 빨라지고 격해졌다. 나중엔 기어이 큰 소리가 났다.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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