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항복하듯 내보였던 손바닥이 내 손등을 덮었다. 살의와 살기에 반응하도록 훈련된 손은 이번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부담스럽다면 거리를 두겠습니다. 지금처럼 가끔 얼굴이나 보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는 정도면 충분해요.”
진실을 판별하는 것엔 둔하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내게 한 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할 필요가 없었다.
마계의 족속들도 가식이나 기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문제가 생기면 무력으로 해결하고, 문제가 아니어도 무력으로 해결했다. 어떤 의미론 내 아버지와 비슷했다.
나는 줄곧 나를 향한 폭력과 살의 속에서 살아왔다. 그것들은 누구보다 기민하게 알아차리고 반응할 자신이 있다. 하지만 그 외의 감정들엔 여러모로 서툴렀다.
“제가 싫은 건 아니죠?”
아니다. 그래서 더욱 곤란했다.
말을 섞으면 섞을수록 수렁에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중간계에선 누굴 함부로 믿어서도 안 되고 마음을 줘서도 안 된다고.
하지만 내가 뭐라고 이 사내가 거짓을 말할까. 나는 가진 것 하나 없는 F급이다. 막말로 벗겨 먹으려 해도 애당초 벗길만한 게 없다. 설마 정말로 내 옷을 벗길 셈이었던 건?
결국 생각은 정해진 한 점으로 모였다.
이 사내는 진심인 게 아닐까. 특이한 취향이라 정말로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닐까.
“……!”
가진 적이 없어서 상실의 느낌조차 모르던 감정이 눈을 뜨려 했다. 움푹 팬 자리에 자연히 물이 스미는 것처럼 본능적인 갈망이 튀어나왔다.
그만.
‘안 돼.’
입술을 꾹 깨물었다. 휘몰아치는 것들을 꾹꾹 눌러 가슴 한구석에 밀어 넣었다.
‘여기다.’
사내와의 관계는 정확히 여기까지였다. 이 이상 질질 끌어선 안 된다는 걸 절감했다.
“케이크 맛있었습니다.”
뭔가 직감한 사내의 눈썹이 위로 솟았다.
“다시는 찾아오지 말아 주십시오.”
의자를 뒤로 밀며 일어났다. 힐끗 본 사내는 무표정했다. 내가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가도 반응하지 않았다. 예상했던 무수한 반응 가운데 이런 것은 없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가슴이….’
거친 천을 뭉쳐 흉부를 가득 채운 기분이었다. 껄끄럽고 답답하고 숨이 막혔다.
‘이건 단순한 부채감이다. 어차피 그 일도 본인 입으로 개의치 말라지 않았나.’
이유는 모르겠지만 잘 된 거다. 잘 된 거야. 그렇게 되뇌었다. 되뇌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사내를 두고 카페를 나섰다. 뒤따르는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 * *
여원이 떠나고도 사결은 한동안 카페에 머물렀다. 겉보기엔 고요했지만, 창밖을 보는 눈이 뱀처럼 번들거리고 있었다.
해가 저물고 나서야 호텔로 돌아온 사결은 소파에 길게 누웠다.
‘생긴 대로 논다더니. 참 감이 좋아.’
천장을 보고 누운 그가 손을 깍지 꼈다.
‘너무 좋아서 짜증 날 정도였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멀쩡한 유리잔에 성에가 맺혔다. 여긴 프레지덴셜 스위트였다. 온도조절쯤은 자동으로 되는 곳이다.
하지만 한기를 내뿜는 S급 뱀 한 마리가 소파에 둥지를 튼 상태라면 어떤 보온장비가 와도 소용없을 것이다.
사결은 생각에 잠겼다. 백담에 온 이후… 아니, 그 사내를 만난 이후 머릿속이 무뚝뚝한 사내에 대한 것으로 가득 찼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취향이 아닌 곳이 없었다. 말수가 적고 순진한 구석이 있는 점, 무감하고 금욕적인 얼굴, 두툼한 가슴, 흰 피부, 남자치곤 붉은 편인 입술까지.
“…….”
심지어 붉은 건 입술만이 아니었다.
그가 손으로 입가를 매만졌다. 가려진 입매가 웃음을 참듯 꿈틀거렸다. 평소처럼 전혀 동요가 없었는데 귀만 점점 붉어졌지. 의외인 반응이었다.
‘정확히는 귀환자답지 않았지.’
마계에 대한 방대한 정보를 알고 있고 마기를 극복해낸 자. 수해 토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존재.
그건 어디까지나 귀환자의 가치에 대한 정의다. 귀환자가 되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그 말이 가지는 피폐한 무게가 보인다.
사결은 수해를 떠올렸다. 그곳은 실상 중간계에 뿌리내려 기생하는 마계의 일부나 다름없었다.
저보다 약한 걸 보면 일단 이빨부터 박고 보는 마물이 득시글거리는 곳. 상위 마수가 그런 마물을 잡아먹는 전형적인 약육강식의 세계.
S급 중엔 가끔 준마족이라고 해서 지능이 뛰어난 놈들이 있는데, 사람의 신체를 해체해 자기 영역을 장식하는 데 쓰기도 했다.
마기를 먹고 자란 식물은 때론 마물보다 지독한 독을 뿜었다. 뿌리를 몇 킬로미터까지 뻗어 군락을 만들기도 했고, 약한 마물을 잡아먹는 육식식물도 차고 넘쳤다.
그 모든 게 한데 뒤엉켜 존재하는 수해는 이미 하나의 거대한 마수였다. 토벌하겠답시고 제 뱃속으로 들어온 헌터들을 하나씩 삼키며 비대한 몸뚱이를 꿈틀거리는 괴물.
행성 전체에선 고작 한 점에 불과할 수해도 이 정도다. 그리고 귀환자는 행성 하나가 그런 놈들로만 가득한 세계에서 살아 돌아온 존재였다.
마기를 이겨내고 극악의 환경에서 살아남아 돌아온 자.
헌터라고 할 수도 없는 F급의 몸으로 마계에 떨어진 사람이 어떤 일을 겪으며 살아남았을지. 사결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 세계에서 사지 멀쩡히 돌아온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겉보기엔 별다를 것도 없다.
말수가 조금 적고 표정 변화가 극히 드물긴 하지만 그게 다다. 아니, 고작 그 정도라는 게 놀라웠다. 솔직히 미치광이 살인마나 소시오패스여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정체가 드러날 걸 감수하고 인부의 앞에 섰지.’
오히려 성향 자체는 ‘선’에 가깝게 느껴진다는 게 진짜 놀라운 점이다.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사결은 진심으로 여원이 궁금해졌다.
알고 싶었고,
‘파헤치고 싶다.’
단단하다 못해 견고한 내면의 형태를 확인하고 싶어졌다.
꾸욱, 아무렇게나 두었던 다른 손이 의자의 팔걸이를 움켜쥐었다. 대의를 위해 눌러둔 충동에 가까운 욕망이 재차 고개를 들었다.
‘열어젖혀. 까발려. 그 속살을 봐.’
‘파헤치고 싶잖아.’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마음의 목소리는 결국 자신의 목소리다. 그 말이 맞았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편이 좋다. 이유? 그런 것에 이유씩이나 필요한가?
사결은 느른하게 웃었다.
그는 언제나 막 나가는 걸 선호했다. 쉽고 편하니까. 하지만 이번은 예외였다.
‘아무래도 자의로 움직이는 편이 좋지.’
손에 넣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효율이 떨어지니까. 그가 원하는 건 그냥 귀환자가 아니라 ‘그를 위해 헌신할 강한 귀환자’였다.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은 사내가 자신에게 특별한 감정을 갖게 만드는 거다. 감정의 종류는 상관없다. 그게 충심이든, 사랑이든. 사결 입장에선 수작을 부리기 쉬운 게 후자였을 뿐이다.
나름대로 자신 있었다. 그는 외모가 가지는 힘을 알았다. 거기에 타고난 언변을 더하면 상대가 누구든 넘어오게 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분명 그랬는데.
깍지를 푼 사결이 손끝으로 소파를 툭툭 두드렸다. 동성에 대한 혐오를 가진 부류는 아니다. 같이 밤을 보냈다는 말에도 질리긴 했지만 같은 성별에 대한 거부감은 보이지 않았다. 문제는 사내의 성정과 경계심이었다.
커튼 같은 앞머리 틈새로 언뜻언뜻 드러나는 눈동자가 묵직한 바위와 같다. 자신이 말을 할 때마다 그건 흔들바위라도 된 것처럼 쉴 새 없이 흔들렸다.
사결은 생각했다. 어떻게 이런 것마저 귀엽나.
본인은 완벽한 무표정인 줄 안다는 것도 그렇다.
아니, 무표정이 맞긴 하다. 술에 취한 사내를 부축할 정도의 거리 혹은 음식이나 케이크를 두고 마주 앉을 수 있을 정도의 거리에서야 볼 수 있었다. 무표정 밑에서 꿈틀거리는 희미하고 세밀한 감정들을.
‘알아차린 사람이 지금껏 아무도 없었겠지.’
평범한 사람이라면 위압감 때문에 일단 피하고 봤을 것이다. 미리 조사한 서류에도 딱히 깊은 관계에 있는 사람은 없었다. 자신이 처음이다. 그 사실에 어쩐지 상기되는 기분으로 사결은 하나둘, 머릿속의 정보를 취합했다.
탁. 탁.
산재해 있던 퍼즐 조각이 맞는 곳을 찾아 들어갔다.
‘머리는 냉정했지만, 호의에 약한 몸이 그걸 따라가지 못하는 느낌이었지.’
진짜 표정을 보는 데 필요한 대가는 달달한 카페모카 한 잔이었다.
탁, 타닥.
갑주 안에 감춰진 짐승의 외형이 슬슬 손에 잡힐 듯했다.
‘이건 짐승이라기보단….’
“근육햄스터?”
사결은 미친 사람처럼 홀로 낄낄거리며 웃었다. 한참 만에 웃음을 그친 그가 특유의 나른한 미소를 베어 물었다.
“그래. 귀엽네.”
여태 방법을 몰랐을 뿐, 공략은 의외로 쉬울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