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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를 잡는 방법 (18)화 (18/106)

18화

“철수야!”

벼락같은 부름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득달같이 달려온 박명석이 내 등을 때렸다.

“아니, 왜 멀쩡한 껍데기를 폐기물에 놓는 거야?”

눈을 끔벅이며 내 앞에 놓인 상황을 봤다. 정확히 그의 말대로다. 협회로 옮겨 가공해야 하는 마물의 갑주를 폐기물 차에 싣고 있었다.

내가 고개를 꾸벅 숙이자 박명석이 더 나무라지 못하고 조심하라며 다시 등을 툭툭 두드리곤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어지간한 헌터보다 몇 배는 예민한 귀에 들렸다.

“저 녀석이 왜 안 하던 짓을 하지.”

모든 작업을 통틀어 처음이나 다름없는 실수였다. 박명석이 의아해하는 것도 이해는 갔다. 다른 인부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어째 오늘 철수 녀석, 멍- 한 것이 마음이 딴 데 가 있는데?”

“그냥 술이 덜 깬 거 아녀?”

“아 그러네.”

“맞네. 맞아. 저거 술 덜 깼네.”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맨정신이다. 이보다 더 멀쩡할 수 없을 만큼 멀쩡했다.

그 말인즉 기억이 끊겼을 때를 제외한 모든 일을 선명하게 기억한다는 뜻이다. 사내의 양 손목을 움켜쥔 채 침대에 내리누르는 나와 그런 나를 황당하게 올려다보는 사내.

꿍!

쇠기둥에 이마를 박았다. 놀란 인부들이 일제히 돌아봤다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혀를 쯧쯧 찼다.

“저거 분명 뭔 일 있었구만.”

“…근데 철수, 새로 온 과장이랑 같이 나가지 않았어?”

“과장 옷에 토했나?”

그딴 일이었으면 이렇게 괴롭지 않았을 거다.

‘미쳤구나. 서여원.’

차고 단단한 기둥에 머리를 박은 채 자책을 반복했다. 어쩌자고 정신을 놨을까. 아니, 놓으려고 놓은 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어느 순간 머릿속이 검게 변했다. 나는 술의 무서움을 뒤늦게 깨달았다.

“…….”

반성의 시간을 끝내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가능한 머리를 비우고 기계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그럴수록 사내의 존재가 뇌리에 두드러졌다.

‘한 번 만나보죠.’

오늘 아침. 당황해서 아무 말 못 하는 내게 사내가 제안했다.

‘합의된 관계였으니 기억이 안 난다고 죄책감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전혀 모르겠다는 반응은 약간 섭섭하고 충격적이지만… 괜찮아요. 전 정말로 철수 씨랑 잘해보고 싶거든요.’

나는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채 반쯤 도망치듯 호텔을 나왔다. 어떻게 집으로 왔는지도 모르겠다. 계속 멍하게 있다 일하러 나가야 한다는 걸 기억하고 관성에 이끌리듯 움직이다 보니 지금이다.

“다들 밥 먹고 하자고.”

어느새 점심시간이었다. 평소처럼 편의점 도시락으로 때우려는데 묵직한 세단이 현장에 들어섰다. 뭐 놓고 간 헌터가 있나? 가만히 지켜보는데 그 세단이 바로 내 앞에 와 섰다.

운전석 차창이 내려갔다.

“안녕, 자기?”

“…….”

아주 작은 목소리였지만 이곳에 일반인은 없다. 보통사람보다 기감이 발달한 인부들의 귀가 움찔거렸다. 대부분은 듣고도 모른 척했으나 예외도 있었다.

“저, 저, 저 새끼 설마…!”

박명석이었다. 얼굴이 벌게진 그가 손에 들고 있던 작업용 전기톱을 콱 움켜쥐었다. 기겁한 인부들이 얼른 톱을 뺏고 그의 양팔을 잡더니 질질 끌고 갔다.

“놔! 이거 안 놔?! 저 새끼가 우리 순진한 철수를…!”

뒷말은 듣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등지고 있었지만, 뒤의 상황이 바로 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내 표정을 본 사결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뭐, 반쯤은 맞네요.”

잡아먹힌 건 네가 아니라 나라는 뜻이다. 눈을 한 번 꾹 감았다 떴다. 조용히 차체를 돌아 보조석에 탔다. 세단이 미끄러지듯 출발했다.

창밖을 보는 척 차창에 비친 사내를 훔쳐봤다. 매끈한 얼굴이다. 어쩐지 기분이 좋아 보이기도 했다. 헝클어진 의문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위기에 처한 하급 헌터 한 분을 봤는데, 이게 웬걸. 너무 잘생긴 거야. 그래서 한눈에 반해버렸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만큼 순진하진 않다. 하물며 거대 길드의 길드장이 이런 촌구석 협회에 과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왔다? 꿍꿍이가 있다는 데 전 재산을 걸 수 있었다.

“그냥 대놓고 봐도 되는데.”

그가 옆모습만으로 웃었다. 장난기를 담고 휘어진 눈매에서 어쩐지 여태 보던 웃음과 조금 다른 결이 느껴졌다. 조금 더… 투명해 보였다.

내 생각에 내가 흠칫 놀랐다. 아예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아버렸다. 열린 귀로 낮은 웃음소리가 잠깐 들리다 사라졌다.

“긴장하지 마요. 정말로 그냥 밥이나 먹자는 거니까.”

개소리 마라. 음흉한 새끼야.

나는 더욱 긴장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의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사결은 말한 대로 정말 밥만 먹었다. 식사를 하는 동안 간간이 말을 걸긴 했으나 몸 상태나 일의 강도를 묻는 정도였고, 대부분 시간은 온전히 식사에 집중했다. 그는 점심시간이 끝날 즈음 나를 다시 현장에 데려다주고 사라졌다.

모르겠다. 안 그래도 어렵던 사내를 더더욱 이해할 수 없어졌다.

그는 점심때마다 찾아왔고 여전히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입맛에 맞는지 확인하거나 부족하면 더 시켜도 된다는 권유 정도가 다였다.

다만 가끔 집중하지 않으면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은밀한 시선이 느껴졌다. 탐색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단순히 관찰하는 것 같기도 하다가 간혹 이해할 수 없는 열망이 섞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뭔가 부수고픈 기분에 사로잡혀 홀로 손을 움켜쥐었다.

‘내게 왜 이러는 걸까. 뭘 원하는 걸까.’

내 몸 위를 돌아다니던 사내의 시선이 내 가슴팍에서 멎었다.

‘혹시 뭔가 본 건가.’

그러다 눈이 마주쳤다. 물병에 손을 뻗던 그가 나른하게 웃었다.

“드디어 내 잘생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나 봐요?”

“…개소리를.”

말이 척수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흠칫 놀랐다. 앞을 보자 마찬가지로 놀란 표정의 사내가 보였다. 내가 진짜 생각을 입으로 뱉었구나. 시발.

“하하하!”

사결이 큰 소리로 웃었다. 순식간에 당혹감이 가시고 그 자리에 떨떠름함이 차올랐다. 그래 웃기냐. 실컷 웃어라.

여태 몸을 옥죄던 긴장이 사라졌다. 대신 약간의 분노가 치밀었다. 묵묵히 삼계탕을 퍼먹었다.

그래 신경 쓰지 말자. 뭘 하든 관심 끄는 거야.

‘대신 나중에 저 대가리를 반드시 쪼개버린다.’

그렇게 생각하며 물을 마시려는데.

‘비었잖아.’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물병은 여전히 허파가 튀어나오도록 웃고 있는 미친놈의 손에 들려 있었다.

“아, 미안해요.”

입가에 매달린 웃음에서 얼마 전 차에서 봤던 그 투명함이 보였다.

목이 탔다. 방금까지 느껴지던 갈증과는 다른 종류다. 무릎 위에 있던 손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여기요.”

겨우 웃음을 그친 사결은 물을 따라 내 앞으로 밀어주고 자기도 따라 마셨다. 오르내리는 목젖이 어쩐지 눈에 박혔다.

“네. 제가 밥 먹다 말고 개소리를 했습니다. 그렇게 있지 말고 어서 드세요. 이러다 점심시간 끝나겠어요.”

왜 욕을 들었는데 기분이 좋아 보이는 걸까.

‘역시 정상은 아냐.’

깊게 얽히지 말자.

속으로 다시금 되뇌었지만, 사실은 알고 있었다. 눈앞의 이 사내는 풍랑이라는 걸. 준비된 자든 그렇지 않은 자든 제 안으로 끌어들여 흔드는 거대한 풍랑.

“철수 씨.”

컵을 내려놓고 앞을 봤다. 가라앉은 검은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내 속내가 그렇게 궁금해요?”

나는 무언으로 긍정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어요. 제가 체면이고 뭐고 없이 들이대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철수 씨는 정말 완벽하게 내 타입이거든. 세상에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을 만큼.”

마족들은 의외로 거짓말을 잘 하지 않는다. 그런 놈들과 다년간 얽혔던 경험이 외쳤다. 저 새끼 저거 진심으로 하는 말이라고.

앞머리에 가려진 눈에 지진이 일었다. 컵을 쥔 손이 달달 떨렸다. 반쯤 차 있던 물이 넘쳐 손목을 적셨다.

“안 믿었구나.”

사결이 생글생글 웃었다.

“나랑 한번 만나보자고 했던 거 기억나요?”

당연히 기억한다. 나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가 예고 없이 움직였다. 긴 팔이 상을 가로지르고 길고 마디진 손가락이 내 손목을 감쌌다. 마치 그날 예기치 못했던 어느 아침에 내 손목을 감았던 것처럼.

“난 포기한 게 아니에요. 기다리는 거지.”

반응도 못 하고 굳어진 내 손목 안쪽을 사결이 슬쩍 문질렀다.

“계속 기다리고 있어요.”

* * *

소문은 금방 퍼졌다.

오늘도 어김없이 등장한 세단에 점심을 먹으러 가던 인부들이 수군거렸다.

“전에 그놈이나 저놈이나 다 똑같이 속 시커먼 놈이었구만.”

“…그래도 그놈 밀어내고 자리 차지했으면 저 녀석이 여러모로 더 낫다는 뜻 아녀?”

“커험, 험.”

한 인부가 헛기침하며 눈치를 줬다. 그가 슬쩍 가리킨 곳엔 곧 터질 것처럼 붉은 얼굴을 한 박명석이 있었다.

“어흠, 거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고.”

박명석은 더는 날뛰지 않았지만, 여전히 인부들이 끌고 가야 마지못해 걸음을 옮겼다.

차에서 내린 사결은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오늘은 점심을 포장해왔나 했는데 아니었다. 다섯 개가 넘는 쇼핑백은 옷으로 가득했고 그중 몇 개는 신발이었다. 청바지와 티를 꺼낸 사결이 활짝 웃었다.

“놀러 갑시다. 일단 이거 입으시고 나머진 가져가세요.”

따져야 할 게 한둘이 아니었으나 우선 당장 문제가 되는 것부터 물었다.

“…오후 일이 남았습니다만.”

“확실해요?”

“예?”

되묻기 무섭게 양복을 입은 협회의 현장 직원이 멀리서부터 헐레벌떡 뛰어왔다.

“잠깐! 잠깐만요! 다들 거기 멈춰보세요! 공지사항이 있습니다!”

누가 봐도 윗선에서 방금 전달받아 급하게 달려온 모양새다. 헉헉거리며 전달한 사항은 오후 작업이 취소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다른 후처리 팀에서 맡게 됐다고. 말없이 사결을 보자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봤죠?”

권력의 횡포라면 아주 잘 봤다. 나는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사내의 말을 흘려들었다.

“전에 말했던 케이크도 오늘 먹으러 갈 거거든요.”

움찔.

흘려들으려고 했는데 몸이 먼저 반응했다. 내가 환상을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대상. 그게 바로 케이크였다. 어릴 적 그런 게 있다는 것만 들어보고 먹거나 가져보진 못 했던.

“생일.”

“네?”

“혹시 생일입니까?”

“…제 생일은 아직 날짜가 좀 남았습니다만.”

사내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표정만으로 물었다. 근데 생일은 왜?

“생일 아닌데 먹는 겁니까.”

쇼핑백과 함께 나를 떠밀던 사내의 손이 멈칫 떨어져 나갔다. 나도 덩달아 멈췄다. 이유를 알 수 없어 눈만 끔벅이자 사내가 감탄하듯 중얼거렸다.

“당신 진짜 귀엽네.”

“…….”

왜 또 x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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