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죽여서 백담 외곽의 야산에 묻자. 그럼 아무도 모를-
“자. 자. 갑시다! 제가 주인공인데 너무 늦게 들어가도 좀 그렇잖습니까. 이쪽입니다.”
사결이 왈칵 팔을 잡아끌었다. A급 헌터의 손을 F급 나부랭이가 뿌리치고 도주한다? 대륙이 들썩일 뉴스감이다.
‘지금보다 일이 더 복잡해지는 건 사양이야.’
이건 뭐 답도 없다. 스스로의 무력함을 절감하며 결국 전쟁포로처럼 질질 끌려갔다.
* * *
회식 장소는 고깃집이었다.
그것도 오래된 구택을 개조해 만든 외관에서부터 비싼 티가 잔뜩 나는 곳이었다. 흠칫한 인부들은 양복쟁이들이 들어가는 모습에 주춤거리면서도 뒤따라 들어갔다.
기다리고 있던 직원들이 능숙하게 그들을 안내했다. 사람들은 몇 개의 방에 나뉘어 들어갔는데 당연하게도 협회의 양복들과는 찢어졌다.
“여기 직원들 일 참 잘하네.”
인부들이 쑥덕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나와 사결이 박명석이 있는 방에 합석하며 깨끗하게 사라졌다.
정확히는 내가 먼저 박명석을 찾아왔고 당연히 직원들에게 갈 줄 알았던 사결이 끝까지 날 쫓아왔다. 문 앞에 서서 뒤를 돌아봤다. 넌 여기 올 게 아니라 양복들한테 가야 하지 않냐라는 뜻으로.
다른 인부들도 간절함을 담아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픽 웃은 사결은 나를 지나쳐 먼저 방 안으로 들어섰다.
“안녕하십니까. 저번에 한 번 뵀었죠.”
“어어… 예.”
사결이 인사를 돌리고 박명석을 포함한 인부들이 억지웃음을 지었다.
밥 사주는 사람 옆엔 앉는 거 아니랬는데. 아이 씨, 하필이면 같은 방이라니. 이거 맘껏 먹지도 못하고 눈치만 보다 가겠는데요? 차라리 쬐끔 먹고 집에 가는 척 우리끼리 2차 가는 게 낫겠습니다. 형님.
바쁜 눈짓 사이로 무언의 말들이 오갔을 때 사결이 대기하던 직원에게 말했다.
“메뉴판에 있는 거 다 주십시오.”
“예. 술은 어떻게 드릴까요?”
직원은 당황하지도 않고 되물었다. 사결이 인부들을 돌아봤다.
“술 뭐 좋아하십니까.”
“어…. 저, 저희야 뭐 소주죠.”
“아, 소주 좋죠. 저도 좋아합니다.”
그렇게 말한 사결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여기서만 파는 전통주가 있는데 그게 맛이 기가 막히거든요. 그것도 좀 드셔보시죠.”
그러곤 박명석이 뭐라 하기 전에 이름도 어려운 술을 몇 개 더 부르며 주문을 마쳤다. 그 후, 음식이 나오기까지 어색한 침묵이 흘러…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5년이라니 정말 오래 일하셨네요. 이 분야에선 베테랑이시겠어요.”
“아니 뭐, 베테랑까지야.”
“사무실에 편히 앉아서 펜대나 놀리는 것보단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뛰는 사람들이 더 대단하죠. 이거 빈말 아닙니다. 제 어머님도 후처리과에서 일하신 적이 있거든요.”
“그래? 어머니가?”
“네. 아주 대단하시고 제가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분이시죠.”
사결의 태도는 시종일관 공손했고 인부들이 좋아할 포인트를 끊임없이 자극했다. 거기에 술까지 들어가자 인부들의 낯가림과 불편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크으~ 술이 달다 달아.”
“이거 무슨 고긴데 이렇게 입에서 살살 녹냐.”
“먹어보면 모르나? 소고기잖아.”
“내가 먹던 소고기랑 다른데?”
“당연하지. 야, 가격표 봤냐?”
“내가 계산할 것도 아닌데 그걸 왜 봐?”
그 말에 벌써 불콰하게 취한 남자가 씩 웃으며 검고 두꺼운 재질의 메뉴판을 확 펼쳐 보였다.
왁자하게 떠들던 인부들 사이로 짧은 침묵이 흘렀다. 0의 개수를 반복해 세던 한 인부가 조용히 읊조렸다.
“…소를 금을 먹여 키웠나.”
“으하하! 그러네. 금 먹여 키우면 이 가격도 말이 되지!”
“아, 뭐해! 이런 기회 아니면 언제 이런 거 먹어본다고. 더 시켜 더!”
상대적으로 덜 취한 사람들은 어색하게 따라 웃으며 사내의 눈치를 봤다. 본래 체면과 자존심 때문에 호탕한 척해도 입매가 굳는다거나 뺨이 푸들거린다거나 하면서 티가 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결은 온화하게 웃었다.
“이건 제가 사비로 쏘는 거니까 협회가 아니라 저한테 고마워하시면 됩니다.”
여유와 부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나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경계를 완전히 풀지 않던 소심한 인부마저 ‘정말 괜찮은 건가?’ 싶은 표정이 됐다.
사결은 그 와중에 박명석에게 바짝 붙어 술을 따르고 있었다.
“제가 나이도 한참 어린데 말 놓으시죠. 형님.”
형님 소리에 박명석의 어깨가 슬쩍 올라갔다. 그 어깨는 사결이 ‘후처리 현장직’에 대한 존경을 되뇌자 한 번 더 상승했다.
“사실 저 협회 별로 안 좋아합니다. 월급 주니까 일하긴 하는데 협회는 애초에 현장에서 뛰는 헌터를 위해 창립된 기관 아닙니까.”
그는 능숙하게 박명석까지 녹여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살짝 벌어진 입을 얼른 다물었다. 이젠 저 새끼가 대체 뭘 위해 저러는 건지 궁금할 지경이다. 머릿속이 복잡해진 나와 달리 인부들은 연신 감탄했다.
“저 친구 진짜 마음에 드네.”
“그러게. 철수 또래에 저렇게 반듯한 놈은 별로 없는데.”
“거, 능력 좋은 친구가 인성까지 갖췄어.”
사방에서 사결에 대한 칭찬이 터졌다. 얹힌 것처럼 괜스레 속이 불편했다. 음료를 연거푸 비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내내 인부들과 즐겁게 떠들던 사결과 눈이 마주쳤다. 주는 술도 마다치 않고 전부 마셨음에도 그는 조금도 취한 기색이 없었다. 사냥감을 가늠하듯 냉정한 눈을 마주하자 정신이 확 들었다.
“철수 씨는 왜 음료수만 마십니까? 술 안 좋아하세요?”
술에 취한 인부들의 고개가 나를 향해 홱 돌았다. 뒷덜미가 쭈뼛 섰다. 그들은 더 이상 내 아군이 아니었다.
“그러게. 철수 넌 왜 안 마시냐.”
“아 거, 퇴원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애를!”
“검사 다 했고 아픈 곳도 없었잖아. 그냥 좀 놀란 것뿐이라며.”
“그건 그렇긴 한데.”
당황해서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술은… 마셔 본 적 없어서. 좀 그렇습니다.”
정적이 흘렀다. 그게 잘못된 대답이었다는 걸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농담이었다고 하기엔 타이밍이 늦었다. 흥분한 인부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술을 마셔본 적이 없다고? 그 나이 되도록?!”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아니, 호기심으로라도 입 정도는 대볼 법한데?”
“…….”
당황스러웠다. 그게 저렇게 흥분해서 달려들 소재인지 잘 모르겠다.
마계엔 ‘술’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다. 길 가다가 시비 나면 싸우고, 그냥 생긴 게 마음에 안 들어 죽이고, 당장 누가 다짜고짜 공격해도 ‘그렇구나. 네 새끼가 날 공격하는구나.’ 하며 반격하는 마계에서 심신을 흐트러뜨리는 기호식품은 존재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별로 궁금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더 권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얼마나 순진했던가. 나는 몰랐다.
“거, 재미없는 소리 하긴.”
“일단 마셔봐. 마셔보고 얘기해!”
“야. 먹여!”
주정뱅이들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당황한 채 인부들 등쌀에 밀려 그 사이로 파묻혔다. 틈새로 한 발자국 떨어져 상황을 관망하는 사내가 보였다. 입가에 매달린 웃음이 어딘가 진득했다.
‘당했다.’
“잠, 저는-”
“아 그럼 한 모금만, 한 모금만 해!”
“왜 이렇게 뻗대! 야 거기 잡아라!”
“……!”
* * *
사결은 회식이 무르익어가는 내내 여원을 주시했다.
점점 술에 취해가는 인부들에게 아무 말이나 던지면서도 눈만큼은 여원에게 가 있었다. 처음부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은 했다. 그는 그 자체로 견고한 성 같았다. 낯선 이에겐 일말의 틈조차 허용치 않는 그런 성.
이런 상대에겐 어쭙잖은 꼼수는 통하지 않고 들켰을 때의 리스크도 큰 법이다.
사결은 결심했다. 우선 클래식하게 가자고.
‘일단 환심을 사고 신뢰를 얻는 것부터.’
검은 속내나 날카로운 독니는 깨끗하게 숨겼다. 병실 문이 닳도록 드나들며 이것저것 사다 나르고 사람 좋은 모습만 내비쳤다. 돌이켜 봐도 문제가 될 만한 건 없었다.
그러나 사내는 그런 자신을 비웃듯 홀랑 사라졌다.
쩌적.
들고 있던 유리컵에 금이 갔다. 몰래 저를 보던 인부의 동공이 떨렸다. 사결은 모른 척하고 자리 밑으로 컵을 내렸다.
떠올리자 새삼 속이 뒤틀렸다. 그걸 감추기 위한 온화한 웃음과 함께 그는 다시금 여원에게 시선을 주었다.
“…….”
뭐야 저게.
뒤늦게 상황을 목도한 사결이 당황으로 굳었다.
잠깐 딴생각을 하는 사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 * *
“아이고, 이렇게 올리니까 인물이 훤하네.”
“전부터 치렁치렁한 게 영 거슬렸단 말이지. 이참에 가서 확 자르는 건 어때?”
“…….”
“뭐여, 왜 대답이 없어.”
“딱 봐도 취한 애한테 뭘 물어봐.”
“아 그래? 우리 철수가 취했구만!”
그렇게 말하는 사내도 취했다. 옆에 있던 인부가 잘됐다는 듯 낄낄거렸다.
“그럼 지금이 기회 아냐? 정신 못 차리고 있을 때 끌고 가서 잘라 달라고 하자고!”
“그거 좋은 생각인데!”
좋긴 뭐가 좋아.
사내는 앞머리를 까서 묶은, 일명 사과머리라고 불리는 머리를 한 채 꾸벅거리고 있었다. 누가 봐도 맛이 간 모습이다. 뺨까지 붉으니 진짜 사과가 따로 없었다. 사결은 기묘한 표정이 됐다.
이 자리를 만들며 자신이 원한 건 분위기였다. 박명석과 인부들의 도움을 받아 경계심을 조금 허무는 정도면 만족스러운 성과겠거니 했다.
‘그런데 마기에 내성이 있는 인간이 알코올에 내성이 없어? 그게 말이 되나?’
이 새끼 귀환자 아닌 거 아냐? 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