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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를 잡는 방법 (13)화 (13/106)

13화

3장. 두 개의 한(恨)

생리현상을 참지 못해 잠깐 화장실에 갔던 이현수는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그것도 근 일주일을.

네가 하는 일이 뭐냐, 나 따라다니며 수발드는 거 아니냐, 고작 그것뿐인데 그까짓 게 그렇게 어렵냐, 이건 직무유기다, 월급 루팡이다, 내 돈을 그냥 먹고 네가 과연 무탈할 것 같으냐 등등.

사결은 싱글싱글 웃는 낯으로 이현수의 피를 말렸다.

“제발 그만 좀 하십시오.”

핼쑥해진 그가 사정했다. 사결은

“뭐, 얼마나 했다고 벌써 항복이야. 항복이.” 

라고 이죽거렸다. 이현수는 나오는 한숨을 안으로 삼켰다. 뱉으면 ‘어쭈, 한숨?’이라는 소리가 나올 게 뻔하다. 말을 말자.

“그래서 제가 해결했잖습니까. 며칠쨉니까 대체. 아니, 언제까지 갈구실 건데요?”

“글쎄. 김철수가 넘어올 때까지?”

이현수의 낯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미 다 해결하고 그 뒤로도 시키는 건 전부 하고 있는데도요?!”

생리현상에 대한 실수는 말 그대로 실수일 뿐, 이현수는 기본적으로 유능했다. 심지어 그리샤라는 거대한 뒷배도 있었다. 그는 순식간에 출입금지 사태를 해결했고 사결은 그때부터 뻔질나게 병실을 드나들었다.

핑계는 식사였다. 그는 매일 점심마다 저녁까지 먹을 식사를 쇼핑백에 바리바리 싸 들고 김철수를 찾았다.

“어.”

아무런 고민도 없이 대답하는 사결의 태도에 이현수가 뒷목을 잡았다. 사결은 낄낄거리면서도 차가운 눈으로 사색에 잠겼다.

사내에 대한 첫인상은 ‘만만치 않다.’였다. 꾀어내려면 말을 섞는 게 가장 손쉬운 방법인데 문제는 과묵하다. 표정은 또 어떤가. 감정을 쉽사리 드러내는 법이 없이 일관된 무표정이었다.

반감을 살 걸 각오하고 거리를 좁혀 보기도 했다. 그러나 별 효과는 없었다.

불청객이었던 주재영을 겉으론 타박했지만, 속으론 브라보를 외쳤다. 상황이 바뀌면 상대의 반응도 바뀔 수밖에 없다. 그때 어떤 식으로든 흔들어 파고들 틈을 만들려고 했으나 실패. 심지어 마지막엔 쫓겨났다.

병실 문 앞에 오도카니 서게 된 사결은 눈을 가늘게 휘며 웃었다.

‘씨발.’

이현수를 가루가 되도록 깐 것과 별개로 이때 사결은 이미 장기전을 각오했다.

“아 참, 전에 말했던 보고서는 어떻게 됐어.”

심호흡하며 혈압을 조절하던 이현수가 파일을 하나 찾아 건넸다.

“이게 다야?”

사결이 손에 들고 팔락팔락 흔드는 건 며칠간의 노고의 결정체였다. 제대로 된 인프라도 갖춰지지 않은 이 변방 도시에서 강판 위의 감자처럼 갈리며 모아온 주재영의 정보였다.

그게 저렇게 하찮게 다뤄지는 걸 보고 있자니 먹은 것도 없는 속이 쓰렸다.

“얇은 두께만큼이나 별거 없네. 뭐, 얼마나 대단해서 그렇게 뻐기나 했는데 고작 시의원 막내아들에 C급 헌터? 헌터 협회 후처리과 과장인지 뭔지는 없어도 될 정보 같은데?”

“백담에서 그 정도면 남부럽지 않을 스펙입니다.”

“현수야, 네가 아직 덜 까였구나.”

“죄송합니다. 습관입니다. 한 번만 봐 주십쇼.”

어지간히 타박 당한 이현수가 정색하고 말했다. 사결이 픽 웃었다.

“그래. 다음부턴 잘해라.”

드디어 원하던 말이 저 주둥아리로부터 나왔다. 이현수는 그제야 참았던 한숨을 내쉬었다.

“어쭈, 한숨?”

“…….”

가슴 안쪽 포켓에 항상 소중하게 품고 다니는 사표의 존재가 오늘따라 도드라졌다.

“화면이나 틀어 봐. 우리 귀염둥이 뭐 하나 보게.”

손에 모형 권총만 쥐여줘도 핏빛 배경이 보일 것 같은 사내였다. 그런 사람을 ‘귀염둥이’라고 부르다니. 이현수는 이상한 곳에서 귀환자에 대한 사결의 집념을 확인했다. 귀환자라고 믿으니 괴수도 애완조(愛玩鳥)로 보이는 건가.

그가 단말기를 조작했다. 곧 프레지덴셜 스위트의 집무실이 어두워지고 맞은편 벽에 스크린이 떠올랐다. 열두 개의 분할 화면이었다. 여섯 개는 환자와 간호사로 가득한 병원이었고, 나머지 여섯은 정적이 흐르는 1인실을 빈틈없이 비췄다.

“카메라에는 문제가 없는데 오디오엔 이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소리가 하나도 잡히지 않아요.”

“그럼 정상이네.”

“…….”

이현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화면 속의 사내를 봤다. 그렇게 말이 없는 사람은 처음 봤다. 그렇게 무기질적인 사람도 처음이었다. 사람보단 물건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다소 희한하고 괴이쩍을 뿐, 귀환자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귀환자라는 건 그렇게 쉽게 발견되는 게 아니었다. 도시국가의 체제가 안정되고 지금의 게이트 공략이 일반화된 후 게이트에 휘말려 마계에 떨어지는 일 자체가 드물고, 그 드문 경우로 마계에 떨어져도 적응할 확률 또한 극악이며 거기서 더 나아가 중간계로 귀환까지 해야 한다.

게이트가 열리고 120년. 세계를 탈탈 털어도 역사 속 귀환자가 몇 되지 않는 이유였다.

‘그냥 뭐 사연 있는 케이스겠지. A급이라고 보고한 것도 착오는 아닐 거야. A급임을 숨기고 F급인 척 하고 있는 거지.’

헌터라는 사실을 숨기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헌터 등급 자체를 속이는 경우는 제법 있었다. 이현수는 저 사내도 그런 타입이라고 생각했다. ID칩이 몸에 없었다는 게 가장 큰 증거다.

속사정은 모르지만 새 ID를 발급받고 새로운 등급으로 새 삶을 살아보려 한 게 틀림없다.

“자.”

사결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작고 투명한 지퍼백이 그의 검지와 엄지 사이에서 흔들렸다. 안에는 주인이 분명한 검은 머리카락 몇 개가 담겨 있었다.

“나는 맞다고 확신하고 넌 아니라고 확신하니 이참에 확실히 짚고 넘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이건 또 언제….”

“그거 갖고 먼저 그리샤로 돌아가라.”

“예?!”

“말했잖아. 확실히 짚고 넘어가자고. 영감탱이라면 분명 클라우드에 생체정보도 남겨놨을 테니 찾아서 대조해 봐. 만약 그중에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희박하고 불합리한 일이든 사내는 귀환자가 맞다. 이현수는 침묵했고 사결은 나른하게 웃었다.

“간 김에 내 업무도 대신 좀 처리하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십니까.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를 대형폭탄을 여기 두고 가라고요?”

이현수가 정색했다.

“난 도시의 미래를 위해 여기서 해야 할 일이 있어.”

사결이 당당하게 턱을 들었다.

“이게 제일 합리적인 방법이야. 무엇보다 이런 일엔 내가 적격이라는 걸 잘 알 텐데? 전문가가 따로 있나. 존나 잘하면 그게 전문가지.”

“…….”

맞는 말이긴 한데… 재수 없다.

바닥을 봤다가 천장을 봤다가 끝내 한숨을 푹 쉰 이현수가 말했다.

“안 터지겠다고 약속하세요.”

“내 어머니 이름을 걸고 최대한 노력할게.”

저렇게 나오면 답도 없다. 재차 한숨을 쉰 이현수가 사결에게서 머리카락을 받아 챙겼다. 사결이 단말기로 시간을 확인했다.

“슬슬 면회가 가능한 시간이군.”

그가 고양잇과 맹수처럼 길게 기지개를 켰다. 건장한 팔이 위로 쭉 뻗어 올라갔다. 등줄기가 휘고 가슴팍이 벌어졌다. 그 모습이 어쩐지 신나 보였다.

눈이 이상하다. 피로 때문인가? 루테인이라도 챙겨 먹어야 하나.

“여기 식당 있었지? 점심 좀 포장해 와. 2인… 아니, 3인분. 메뉴는 스테이크가 좋겠군.”

“호텔 부속 레스토랑에서 주문할 거면 그냥 포장해서 가져다 달라고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네가 다녀와.”

이현수는 ‘왜요?’라고 묻지 않았다. 대신 빌어먹을 월급쟁이 인생이라는 표정으로 주문을 넣었다.

* * *

이현수가 스테이크를 가지러 자리를 뜨자마자 사결은 단말기를 조작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기도 전에 상대가 연락을 받았다.

[네. xx호텔-]

“방금 스테이크 주문한 사람입니다. 추가 주문을 하고 싶은데요. 스테이크 10인분이요.”

[…예?]

“가능하면 음식이 나오는 데 오래 걸렸으면 좋겠군요. 한… 30분 정도? 제 말 이해하시겠습니까?”

그제야 건너편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30분이면 됩니까?]

역시 세상의 모든 더러운 일은 고급 호텔에서 일어나는 게 맞다. 입매만 비틀어 웃은 사결이 대답했다.

“30분 이상이면 더더욱 좋겠군요.”

[알겠습니다.]

통화가 끝났다. 깍지 낀 손을 무릎 위에 올린 사결이 고요 속에 눈을 감았다. 귀찮은 껌딱지가 사라지자 그제야 머리가 돌았다.

그리샤에선 내버려 둬도 혼자 일 잘하는 AI 비서 같은 느낌이지만 이렇게 도시 밖으로 나올 때는 이야기가 달랐다. 수행원으로 쓸 경우 이현수는 장단점이 명확했다.

데려오면 여러모로 편리하지만 동시에 눈에 불을 켜고 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사결이 치는 사고는 전부 자신의 추가업무라는 생각이 확고해서 그렇다.

‘뭐,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내가 그렇게 사고를 많이 쳤나?’

별로 짚이는 게 없는데?

잠깐 양심 없는 생각을 한 사결이 다시 집중했다.

자, 이제부터 어떻게 할까.

김철수가 귀환자라는 객관적 증거는 이현수가 알아보기로 했다. 그렇다면 자신은 김철수 본인에게서 알아내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게 맞았다. 문제는 그걸 시행할 방법이다.

‘함정을 팔까.’

준비과정이 번거롭지만, 경험에 따르면 가장 확실하고 편한 방법이었다. 깍지 낀 손가락이 살짝 풀리며 무릎 위를 톡톡 두드리기 시작했다.

‘감춘 힘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건 어떨까.’

목숨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 같은 거.

그러다 바로 직전에 그런 일이 있었던 걸 떠올렸다. 스펜타 새끼 사건. 사결이 입맛을 다셨다. 현장을 목도한 순간 생각하기에 앞서 몸이 움직이는 바람에 죽여버리긴 했는데, 되짚어볼수록 아까웠다. 그렇게 자연스러운 위기 상황은 잘 없으니까.

“…음?”

이상함을 느낀 사결이 눈을 떴다. 깍지를 풀고 손으로 턱을 문질렀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네?’

귀환자라는 걸 확인하려면 그냥 내버려 두는 게 낫다. 아무리 급작스럽게 맞닥뜨린 상황이라지만 그 정도 판단을 못 할 자신이 아니다.

그럼에도 자신은 충동적으로 얼음을 날렸다. 누군가를 구한다는, 굉장히 자신답지 않은 행동까지 하면서.

‘진짜 왜 그랬지?’

사결은 제법 오랫동안 고민했음에도 문제의 답을 내지 못했다. 외려 원인 모를 초조함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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