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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를 잡는 방법 (11)화 (11/106)

11화

인부들조차 잠깐 멈칫할 만큼 잘생긴 미남자이기도 했다. 떡 벌어진 어깨에 걸쳐진 맞춤 코트가 그림처럼 잘 어울렸다.

그가 나를 향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더더욱 긴장됐다. 오랜 기간 전장에서 구른 직감이 속지 말라고 경고를 보냈다. 단정한 양복과 넥타이, 코트가 본모습을 감추기 위한 위장처럼 느껴졌다.

“개판이 뭡니까 개판이….”

“그럼 난장판이라고 하지. 아무튼, 게이트 오픈 현장인 것 같은데 헌터는 다 어디 가고 인부들만 있는 거지?”

사내는 일행이 있었다. 그 또한 건장한 체격에 얼굴도 준수했으나 수국과 같이 핀 안개꽃처럼 사내 옆에선 존재감이 죽었다.

주변을 둘러본 일행이 품에서 검은 천 같은 걸 꺼내 사내에게 건넸다. 마스크였다. 사내가 입술을 비틀어 웃었다.

“이제 와서?”

“설마 이렇게 대놓고 나설 줄은 몰랐으니까요. 이 방문이 비공식적 방문이라는 건 아직 뇌리에 남아 계십니까.”

“당연하지.”

사내가 픽 웃었다.

“뒷수습을 내가 할 건 아니니까.”

그는 마스크를 받지 않고 일행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생긋 웃은 일행이 입 모양만으로 욕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사내가 뒤를 돌아봤다.

“너 이 새끼, 방금 내 욕했지?”

“그럴 리가요.”

“한 것 같은데.”

“안 했습니다.”

일행은 무표정으로 잡아뗐다. 사내는 눈을 가늘게 떴지만, 더 추궁하지 않고 몸을 휙 돌렸다. 뒤에 남겨진 일행이 다시 입 모양만으로 중얼거렸다.

이번엔 똑똑히 읽었다. ‘저 귀신같은 새끼’였다. 그때 마스크를 도로 주머니에 넣은 남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가 부드럽고 친절한 인상으로 웃어 보였다. 약간 정신이 혼미해졌다.

‘대체 뭐 하는 놈들이지?’

이해가 되지 않아 무표정한 얼굴로 굳어 있자 남자가 생글거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진짜 인부들뿐이잖아. 헌터 놈들은 아예 돌아간 거야? 마물의 생사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누가 그런 종 같은 실수를 하겠어요. 헌터 인생 종 치고 싶은 게 아닌 이상.”

“종 같은?”

“좆같은 이라고 하면 품위가 없잖습니까.”

“미친놈.”

일행이 처음으로 정색했다.

“사장님한테만큼은 듣고 싶지 않습니다만.”

“저런, 죽은 사람이 제법 되네.”

깔끔하게 무시한 사내가 장내를 쭉 훑었다.

“촌 동네는 이게 문제야. 뭐든 다 거지 같잖아. 협회 시스템도 거지 같고 프레지덴셜 스위트도 거지 같고….”

“그 방이 거지 같으면 제집은 거지가 키우는 개집이게요.”

“…….”

“잠깐만. 왜 거기서 대답이 없는데.”

웃기지도 않을 소리를 주고받고 있지만, 사내의 일행 또한 만만치 않았다. 크라투스의 측근과 비교해도 그리 뒤지지 않을 강함이 느껴졌다.

저런 자들이 대체 여긴 무슨 볼일이지? 경계심 가득한 시선을 보내는 사이 마침내 사내와 다시 눈이 마주쳤다.

어디선가 균열이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그건 굉장히 이상한 기분이었다. 마구 흔든 스노우볼 안에 들어간 것 같기도 하고 땅을 두들기는 폭우 속에 내던져진 것 같기도 하며 무수한 유성우가 떨어지던 날에 보랏빛 하늘을 올려다보며 느꼈던 생의 실감(實感) 같기도 했다.

씩 웃으며 다가온 사내가 내 앞에 섰다. 팔을 뻗으면 닿을 거리였다. 나는 잔뜩 긴장한 채 몸을 굳혔다.

그는 말없이 나를 응시했다. 훑어보는 게 아닌 들여다보는 시선이다. 심장이 조여들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두꺼운 방호복 안에 감춰진 상흔과 그것에 대한 비밀마저 죄다 까발려진 기분이었다.

연신 흠칫거리는 나를 보며 사내가 나른하게 웃었다.

“어디 다친 곳은 없습니까?”

* * *

사망자 3명. 중상 1명. 경상 6명.

C급 마물이 날뛴 현장치곤 양호한 결과라고 매스컴은 입을 모았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경위에 대해선 지나가는 말처럼 한마디 언급하고 끝이었다.

언론과 협회의 결탁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권력이 고이기만 하는 이런 작은 도시에선 특히 더 그랬다.

모든 비난의 화살은 현장 확인을 소홀히 한 헌터들에게로 향했다. 그들은 앞으로 백담에선 헌터를 계속하기 힘들 것이다. 조만간 다른 도시로 이주 신청을 넣을 가능성이 컸다. 대도시라면 반려되겠지만 같은 급의 소도시라면 받아줄지도 모른다.

이것도 돌아온 후에야 알게 된 거지만 헌터의 대도시 집중 현상은 심각한 수준이다. 소도시는 언제나 헌터가 부족하다.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더 이상의 신경 쏟기를 그만두었다. 전혀 상관없는 남에게 줄 관심은 여기까지였다.

“철수가 무서운 얼굴인 건 알고 있었는데 그게 마물한테까지 통할 줄이야.”

“아, 자네가 그때 철수 표정이 어땠는지 제대로 못 봐서 그래. 난 정면에 있었는데 말이야. 남우세스러워서 말 못 했는데 살짝 지렸다니까.”

“…….”

한정된 공간에서 많은 사람이 떠드니 귀가 아팠다. 인부들이 저러는 건 마음이 불안해서다. 면식 있던 사람들이 눈앞에서 잔인하게 불타 죽었다. 평생에 한 번도 겪지 않을 일이었다.

하지만 협회는 금전적으로 합당한 보상을 한 것으로 그들의 의무를 다했다. 그 돈으로 카운슬링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이들 중 그런 식으로 돈을 쓸 사람은 없었다.

“철수 너도 가만있지 말고 뭐라 말 좀 해 봐.”

“그래. 우린 여태 네가 말도 못 하는 놈인 줄 알았다고.”

인부들은 스펜타의 죽음보다 다친 곳 없냐는 사람들의 물음에 더 안전을 실감했다.

굳어 있던 이들이 일제히 달려왔다. 그들은 박반장을 챙기고, 다친 사람을 돕고, 나를 둘러쌌다. 괜찮냐는 물음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아무리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여도 믿지 못한 그들이 내 몸을 더듬었다. 생각지도 못한 타인의 손길에 놀라 ‘멀쩡하다.’라고 한마디 한 게 화근이었다.

인부들은 스펜타가 나왔을 때보다 더 놀랐다. 말할 줄 알았냐, 알았으면 왜 여태 벙어리 행세를 했냐, 다시 말해 봐라 등등.

난감해하는 나를 구해준 건 스펜타를 죽인 사내였다.

“환자는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 죄송하지만 다들 이만 나가주시겠습니까.”

그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인부들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서로 눈치를 보더니 알겠다며 무리 지어 문으로 이동했다. 그의 눈짓을 받은 일행이 양 떼를 모는 보더콜리처럼 인부들을 데리고 나갔다.

탁, 상아색 문이 닫히고 정적이 내려앉았다. 방에는 그와 나, 단둘만이 남았다. 목덜미에 땀이 맺혔다. 차라리 정신없던 방금이 더 나았다.

“김철수 씨라고 했나요?”

사내가 말을 걸었다. 몸이 티 나게 움찔했다. 분명 봤을 텐데도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눈을 휘며 웃는다.

“그러고 보니 아직 제 소개도 하지 않았군요. 사결이라고 합니다.”

그는 여유를 갖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내가 입을 열길 기다리는 모양새였지만 나는 침묵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반응이 없자 다시 나긋나긋한 어조가 나를 찔러왔다.

“왜 그렇게 경계하시죠? 제가 뭔가 했습니까? 흠, 제 기억엔 목숨을 구해드린 기억밖에 없는데요.”

사내의 말이 다 맞다. 머릿속으로 수긍하면서 자문했다. 그러게. 왜일까.

“사람이 말을 하면 그 사람을 봐야죠. 그게 최소한의 예의 아닙니까.”

퍼뜩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마주쳤다. 가슴께가 빠듯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긴장감이 심장을 옥죄었다.

안 그래도 무감한 성격은 크라투스를 만난 이후 순도 높은 강철과 같아졌다. 눈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동요하지 말 것, 설령 흔들려도 겉으로 티 내지 않을 것. 그 둘은 내 생존 지표였고 좌우명이었다.

그런데 겨우 몇 시간 새 그에 반하는 일이 두 번이나 있었다. 첫 번째는 박명석의 앞을 막아선 것이었고 두 번째는 필요 이상으로 경직된 지금이다.

“말수가 정말 적으시군요.”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역시 껄끄럽다. 이유를 몰라서 더 그랬다. 대체 뭘까. 그의 무엇이 나를 고양이 앞에 선 쥐로 만드는 것일까.

“알겠어요. 강요하지 않을 테니까 고개 좀 들어봐요. 누가 보면 내가 괴롭힌 줄 알겠네.”

“…….”

“흠, 좋아요. 그럼 이건 어때요.”

사결이 나쁜 짓을 꾸미는 어린애처럼 웃었다.

“당신, 내가 나서지 않았어도 그깟 말 새끼쯤은 잡을 수 있었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헛숨을 들이켰다.

언제 다가온 건지 바로 앞에 사내의 얼굴이 있었다. 그가 물러나려는 내 어깨를 잡았다. 부드럽지만 도망을 허락지 않는 완고한 힘이었다. 씩 웃는 사내를 보는 내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오해십니다. 대답이 입안에서 맴도는 사이 사결이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닿은 곳은 옷과 작업복을 넣어둔 작은 캐비닛이다.

“저건 어디 쓰려고 챙긴 겁니까?”

입술을 깨물었다.

스펜타가 쓰러지고 아직 혼란과 공포가 남아 있을 때, 그래서 누구도 죽은 스펜타를 더는 신경 쓰지 않을 때 조용히 다가가 작업용 나이프로 가슴팍을 쑤셨다.

사결이 느긋하게 뒷말을 이었다.

“확인사살입니까? 하긴, 마물 중엔 가끔 뇌가 날아가고도 움직이는 것들이 있죠.”

거의 반사적으로 새끼의 마정석을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그 후 뒤늦게 정신을 차린 인부들이 기함하며 내게 달려왔고. 설마 그 모습을 본 것일까.

경계심이 미약한 적의로 바뀌려는 찰나, 그는 능숙하게 완급을 조절했다.

“그냥 궁금한 거지 추궁할 생각은 없습니다. 마정석 하나 빼돌린 게 뭐 대수라고. 등급을 속인 것도 나름의 사정이 있으시겠죠. 이런 세상 아닙니까. 다들 말 못 할 사연 하나쯤은 갖고 살아갑니다.”

“…등급은 속이지 않았습니다.”

머뭇거리며 말했다. 사내는 처음으로 내 대답을 끌어낸 것에 만족했는지 압박을 멈추고 한발 물러나 웃었다.

“목소리. 섹시하네요.”

“…….”

“그렇게 섹시해서 남한테 안 들려주나?”

미친놈이다.

표정을 굳히며 다시 긴장했다. 나를 가만히 들여다본 그가 하하, 웃었다.

“농담입니다. 그렇게 심각한 표정 하면 제가 무안해져요.”

더더욱 긴장하며 어깨를 움츠리자 사내의 눈이 가늘어졌다. 뭘 생각했는지 의자를 가지고 아예 침대 가로 다가왔다. 그러곤 상기된 목소리로 혼자 떠들기 시작했다. 간간이 눈웃음까지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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