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천천히 걸었음에도 집합 시간보다 40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게이트 현장임을 뜻하는 붉은 라인을 넘어 들어가니 현장은 아직 사냥이 한창이었다.
불꽃의 갈기를 가진 말 형태의 마물이 사납게 날뛰었다. 마계에서 부르던 이름은 스펜타. 헌터 협회의 분류번호로는 C-13이다. 도시 내 게이트 한도가 C급인 백담에선 제일 위험한 부류에 속하는 마물이었다.
그럼에도 헌터들은 긴장한 기색조차 없었다. 장난을 치는 건 아니지만 여유롭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하나씩 스펜타를 죽여 나갔다.
곧 마지막 놈이 쓰러졌다.
쿵.
거대한 몸체가 옆으로 누우며 타오르던 불꽃이 사그라들었다. 모든 마물이 죽었다. 게이트는 여전히 검붉은 색으로 불길하게 일렁거리고 있지만 아마 한 시간 내로 소멸할 것이다.
일렁이는 게이트의 표면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저것의 본체는 사실 아주 작은 얼음 구슬이다. 바닥에 뿌리를 박은 채 마력이 차오를 때마다 주변을 다니던 마물을 한 움큼씩 삼켜 이쪽 세계에 뱉어내는 정체불명의 기물.
기사가 던졌던 것과 내가 박힌 구슬을 뽑아낸 것처럼 뭔가 이상이 생기면 주기가 소멸되고 어딘가에서 다시금 신생 게이트가 열리는 구조일 거다.
“수고하셨습니다!”
“네. 다들 고생했어요.”
임시로 팀장과 팀원이 됐던 헌터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고 각자 차량에 올랐다. 대기하고 있던 매니저들이 일제히 달려왔다. 그들은 각자 자신이 맡는 헌터에게 이온 음료와 수건을 건네고 차 문을 열어줬다. 대접이 아주 극진하다.
“뭐, 볼 게 있다고 저런 걸 보고 있어.”
20분 일찍 도착한 박명석이 옆에 와 섰다.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자 그가 내 등허리를 팡팡 때렸다. 어깨를 두드릴 셈이었던 것 같지만 그의 신장으로는 등이 한계였다.
“가자. 애들 오기 전에 커피라도 한 잔 때리자고.”
“…….”
박명석은 커피를 세 잔이나 마셨다. 과자도 여섯 개나 까먹었다. 협회에서 제공되는 간식 부스는 탈탈 털어줘야 제맛이라며 너도 먹으라고 한 움큼 쥐여줬다.
칼로리는 보충할 수 있을 때 해 두는 게 좋다. 고개를 꾸벅 숙이곤 순순히 과자를 받아먹었다. 작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주의할 점이 안내됐다. 별다를 건 없었다. 마물에 따라 해체할 부위가 달라지니 그 부분만 유념해서 들으면 됐다.
오늘은 발굽과 이빨이었다.
‘스펜타는 갈기가 중요한데.’
하지만 갈기를 얻으려면 반드시 생포해야 한다.
불꽃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갈기는 놈들의 생명을 대변했다. 육체의 절정기엔 저물녘 밀밭처럼 황금빛으로 넘실거리지만 죽어가는 놈들은 제초제 뿌려진 풀밭처럼 빈약하다.
그러다 완전히 숨이 멎으면 갈기도 같이 사라졌다.
“자, 이제 우리 차례다. 얼른 하고 집에 가자.”
우르르 일어나는 인부들을 따라 일어났다. 하등 쓸데없는 생각은 옆으로 치웠다.
“아 참, 오늘 지급되는 일당은 1.5배다. 저놈이 그래도 백담에선 제일 위험한 놈 중에 하나 아니냐.”
“오오!”
박명석은 노련한 사람이었다. 그는 어느 시점에 어떤 말을 꺼내야 작업 효율이 높아지는지 알고 있었다.
일당 인상은 인부들의 사기충천에 차고 넘쳤다. 혼자서 손가락을 꼽아가며 생각에 잠겼던 앳된 청년 하나가 박명석에게 쪼르르 다가왔다. 단기 아르바이트로 온 용식이었다.
“저 그럼 오늘까지만 해도 됩니까?”
계산해보니 얼추 원하던 금액에 도달한 듯한 모양이다. 박명석은 흔쾌히 그러라 했다. 용식은 그 어느 때보다 열성적으로 삽질을 했다. 일은 순탄했다. 일당은 올랐지만 일의 난이도는 평소와 다를 바 없었으니까.
인부들은 수다를 떨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분주히 움직였다. 내가 이상을 눈치챈 건 작업 시작 후 10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
어떤 기척을 느끼고 시선을 주었다. 그곳엔 죽어 널브러진 스펜타의 사체뿐이었다. 잘못 느꼈나 했지만 아니었다. 나는 기감을 집중했다.
“……!”
옮기던 걸 전부 그 자리에 내렸다.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 박명석의 어깨를 턱 짚었다.
“어이씨, 깜짝이야. 간 떨어질 뻔 했… 철수잖아. 왜, 무슨 일이야?”
다급하게 사체를 가리켰다.
“뭔데? 그냥 시체….”
박명석이 말을 멈추고 눈을 크게 떴다. 역시 폼으로 반장을 하는 건 아니었다. 무슨 일인지 뒤늦게 알아차린 그의 안색이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다들 현장에서 나가! 나가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짧은 다리를 놀려 현장을 가로질렀다. 그가 향한 곳은 헌터 협회의 파견 직원이 있는 곳이었다. 버릇인 듯 안경을 추어올리던 직원이 큰 소리에 놀라 박명석을 돌아봤다.
일은 두 사람이 고성에 가깝게 말을 나누는 사이 벌어졌다. 현장을 등지고 있던 박명석 보다 정면을 보고 있던 협회 직원의 발견이 빨랐다. 깐깐한 표정으로 대꾸하던 그는 마찬가지로 경악한 표정이 되어 단말기를 두드렸다.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직원의 몸이 몇 번이나 헛손질했다.
인부들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재빨리 몸을 피했다. 오랫동안 일을 같이해 온 그들은 알았다. 박명석이 이유 없이 저럴 사람이 아니라는 걸. 하지만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왔던 단기 아르바이트생들은 상황파악을 못 하고 어리둥절했다.
대표적으로 용식이 그랬다.
꿈틀.
그의 옆에 누워있던 스펜타의 몸통이 들썩였다. 용식이 기겁하며 뒤로 넘어졌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뜬 채 간헐적으로 들썩이는 마물을 응시했다. 스펜타의 불꽃은 곧 생명의 불꽃이다. 그게 꺼진 이상 저건 죽었다는 뜻이다. 게다가 게이트도 제대로 닫히지 않았나.
‘그럼 저 꿈틀거림은 대체….’
그렇게 생각한 순간, 마물의 배가 팍 터졌다. 푸른 불꽃이 솟구치며 작은 체구의 스펜타가 튀어나왔다.
새끼였다.
“으아악!”
용식이 비명을 지르며 허우적거렸다. 안 그래도 근처에 있던 놈이 소리까지 지르니 갓 태어난 스펜타의 시선은 자연히 용식에게로 쏠렸다.
마물이 입에서 불을 뿜었다. 용식은 순식간에 산화했다.
크르르아!
첫 사냥에 성공한 스펜타가 포효했다.
푸른색이던 불꽃이 점점 붉은색으로 자리를 잡아 갔다. 살짝 비틀거리던 걸음도 똑바르게 섰다. 강자가 강자를 잡아먹는 세상의 생물은 경이로울 만큼 빠르게 적응했다. 자신이 포식자임을 인지한 스펜타가 본격적으로 날뛰기 시작했다.
“으아악!”
“아아악!”
인부들이 불 만난 메뚜기 떼처럼 사방으로 뛰었다. 스펜타가 입을 쩍 벌렸다. 말보단 늑대에 가까운 치열이 인부들을 유린했다. 전투 인원이 떠난 현장이다. 마물의 폭주를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를 제외하면.
마기는 쓸 수 없지만 강화된 육신은 그대로다. 덜 자란 C급 한 마리쯤은 무기 없이도 대갈통을 부술 수 있었다.
‘부술 수 있는데.’
“…….”
시선을 사선으로 올렸다. 감시 카메라가 보였다. 게이트가 열리는 장소라면 예외 없이 설치되는 물건이다. 렌즈 너머에는 협회의 모니터링 룸이 있다.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용식을 죽이고 사람 둘을 먹어치운 스펜타의 눈이 옆을 향했다. 박명석과 협회 직원 쪽. 시선의 의미는 명확했다.
“박 반장님!”
누군가 비명처럼 박명석을 불렀다.
그는 넋이 나간 협회 직원을 질질 끌고 오는 중이었다. 부름을 들은 박명석은 자신을 향해 머리를 튼 스펜타를 보고 부축하던 직원과 함께 주저앉았다.
털썩, 무릎 꿇은 박명석의 낯이 절망으로 일그러졌다.
나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말이 선택이지 움직이지 않을 자신이 뻔히 보였다. 이제 겨우 한 달이나 봤을 중년의 남자와 크라투스의 곁에서 겪었던 지독한 삶이 차례로 뇌리를 스쳤다.
박명석이 웃은 건 그때였다.
“허, 하하하.”
망연한 그 웃음에 사지를 잃고 죽어가던 기사의 웃음이 겹쳤다.
의지를 배반한 다리가 멋대로 뛰어나갔다. 촤아악, 길게 끌린 발이 늦지 않게 올바른 자리에 멈춰 섰다. 박명석을 등지고 스펜타를 마주했다. 달려오는 마물의 붉은 눈을 노려봤다. 전장에서 달려오던 적들을 볼 때와 같은 살기를 보냈다.
[죽인다.]
[더 오면 아주 갈기갈기 찢어 죽이겠다.]
이래도 멈추지 않고 계속 덤빈다면 어쩔 수 없다. 충동의 대가를 치를 뿐. 단숨에 골통을 부술 생각으로 주먹을 쥐었다.
하지만 예민한 본능을 가진 스펜타는 예상보다 격한 반응을 보였다. 발이 꼬인 놈이 바닥을 굴렀다. 푸르르. 푸르르. 투레질하며 일어난 녀석이 제 분을 못 이겨 앞발로 바닥을 내리찍었다.
쾅, 시멘트가 과자처럼 부스러졌다. 씩씩거린 스펜타 새끼는 경계하며 내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약해 보인다는 눈의 판단과 덤비면 죽는다는 본능 사이에서 놈이 갈팡질팡했다.
퍼걱!
대치는 오래가지 않았다. 어디선가 날아온 하얀 수정이 놈의 머리에 박혔다. 사람을 셋이나 죽인 마물이 맥없이 옆으로 쓰러졌다. 즉사였다. 자세히 본 수정은 수정이 아니라 시리도록 투명한 얼음이었다.
“개판이군.”
그렇게 말하며 걸어온 건 훤칠한 장신에 단단한 몸을 가진 사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