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F급?”
호텔에서 새로 보고를 받은 사결은 어이가 없었다. 이현수가 변명했다.
“제가 받아 본 보고서에는 분명 A급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네가 본 보고서가 내가 본 보고서니까 그건 알아. 내가 궁금한 건 F급이라는 놈이 A급으로 변한 과정이야.”
“중간에 착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알아보라고 지시는 해 두었는데….”
“어쨌든 F급이라는 거군.”
말에 날이 섰다. 이현수로서도 답답할 노릇이었다. 이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측정기기는 이제 보편화 되어 산부인과에서도 대부분 구비하고 있을 정도다. 정밀도가 떨어진다곤 해도 E와 F를 오가는 정도지, A와 F를 헷갈리진 않는다.
그리고 F급이라는 건 죽었다가 깨어나도 그들이 찾는 ‘귀환자’는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쓸데없이 시간만 버렸군.”
벽면에 달린 패널의 온도가 25도에서 삽시간에 18도로 떨어졌다. 고장이 아니었다. 이현수는 뺨에 닿는 찬 공기에 숨을 죽였다.
‘그러게 확실해지면 오든지 하시라니까.’
…라고 할 수는 없었다. 깐죽거리는 것도 상황을 봐 가며 해야 하는 법이다. 사결이 손끝으로 팔걸이를 툭툭 두드렸다. 생각에 잠길 때면 나오는 버릇이었다.
“귀환은 보류다.”
“예?”
“여기까지 온 게 억울해서라도 얼굴은 한 번 봐야 할 것 같아.”
“…그냥 돌아가는 비공정이나 타러 가시죠?”
지금도 이현수의 단말기엔 길드장님 언제 오시냐는 울음소리가 분 단위로 날아들었다.
그는 초조하게 회유를 시도했다. 그에 사결이 나른하게 웃었다. 봄날 햇살 같은 웃음과 반대로 패널이 표시하는 온도가 5도 근처까지 내려갔다.
이젠 숨을 쉬면 하얀 입김이 새어 나왔다.
“차 대기시켜.”
사결이 저렇게 완고하게 나오면 그로서는 수가 없었다. 체념한 그가 단말기를 조작했다. 기사에게 연락하자 호텔 앞으로 차를 가져오겠다는 공손한 대답이 되돌아왔다.
“5분 뒤에 온답니다.”
사결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손을 까닥였다. 눈치 하나로 이번 여정에 강제 징ㅂ…선택된 이현수는 수트 케이스를 열어 서류철을 꺼내 건넸다.
다리를 꼰 사결이 어제 봤던 보고서를 다시 들여다봤다. 내용을 확인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사결은 상단의 사진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저렇게까지 볼 건 없지 않나?
저 사진이라면 이현수도 봤다. 그때 그가 느낀 감상은 심플했다.
‘용병 같군.’
범죄를 저질러 헌터 전용 감옥에 들어갔다가 다시 사회로 나온 헌터들은 여러모로 제약을 받는다. 받아주는 길드는 질이 나쁘거나 말도 안 되는 계약서를 제시하는 곳뿐이다. 개인적으로 협회에 일을 받으려고 하면 대기 번호가 밀려 최소 석 달은 걸린다.
돈이 궁하지 않다면 상관없지만, 감옥까지 다녀온 이들은 대부분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런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용병’이 됐다.
급하게 마정석이 필요한 부호를 위해 수해에 들어가거나 새로이 도시가 건설되는 현장으로 파견되는 등 헌터조차 목숨이 열 개라도 부족할 일들을 주로 수행했다.
이현수도 그런 용병에게 일을 맡긴 적이 있었다. 직접 만난 용병은 예상한 것보다 훨씬 거칠었다. 말투나 태도가 아니라 드러난 분위기가 그랬다.
그는 한쪽 귀와 눈이 없었다. 손가락은 전부 멀쩡했지만 손목과 팔목은 흉터로 가득했다. 전투복에 가려진 안쪽도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진 않을 것이다.
이현수가 받은 거친 느낌은 그런 상처들이 쌓여 만들어진 것이었다.
협회 시스템의 비호를 받지 못하는 용병들에게 있어 전투는 목숨을 건 도박이었다. 덤벼오는 마물이 자신보다 강한지, 약한지, 대등한지는 이빨을 막아 봐야 알 수 있었다.
그에 비해 정해진 주기마다 열리는 게이트를 한 등급 내지 두 등급 낮춰 안전하게 상대하는 도시 내의 헌터들은 풀이나 뜯어 먹는 초식동물이다.
맹수를 상대하기 위해 괴물이 된 자들. 철수라는 사내에게선 그런 용병의 느낌이 났다. 그것도 수해를 수십 번은 왕복했을 노회한 용병의 냄새가 풍겼다.
그런 부분은 확실히 미심쩍었다. 평범한 F급이 가질 인상은 아니었으니까.
물론 세상엔 허세라는 말이 존재하고 무수한 사기꾼들이 돌아다니지만 글쎄.
“뭘 멍 때리고 있어.”
사결의 구박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외투를 챙겨 현관에 서 있었다. 이현수는 답지 않게 허둥거리며 사결을 뒤따랐다.
* * *
외곽으로 가는 버스는 한 시간에 한 대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조금 이르게 도착하는 버스를 탔다.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몸을 웅크렸다. 눈은 감지 않았다. 버스의 움직임을 따라 새벽에 잠긴 청회색 거리가 옆으로 흘러내려 갔다. 정비된 도로와 불 꺼진 간판을 봐도 가끔 실감이 나지 않을 때가 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하얀 머리칼의 빙룡이 보였다. 놈은 제 기분이 틀어지면 나를 샹들리에처럼 매달아 놓고 그 밑에서 만찬을 즐겼다. 놈이 느긋하게 미식을 즐기고 떠나면 나는 다음날이 되어서야 땅에 내려올 수 있었다.
넘어진 시종을 부축해줘서, 기사와 대련을 해서, 도서관의 책을 주고받으며 서관지기와 손끝이 스쳐서.
기준은 항상 달랐고 모호했다. 그가 잘못이라고 하면 잘못이었다.
내 성격은 무심했다. 남이 보기엔 좀 심한 수준이다. 본래 타고난 것과 주변 환경이 더해져 만들어진 합작품이다. 그런 성격으로도 빙룡을 견디긴 힘들었다.
잔혹(殘酷)의 화신.
겨우 말 몇 마디 나눴을 뿐인 기사의 팔다리가 날아갔다. 그것도 조금씩. 관절마다 토막이 난 기사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다 어깨와 엉덩이 아래 사지가 전부 없어질 즈음엔 체념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더 보지 못하고 도끼를 들어 기사의 목을 날렸다. 크라투스는 화를 냈다. 얼음으로 만든 칼날이 내 어깨와 허벅지를 관통했다.
‘어딜 감히 나서. 죽고 싶어?’
아니. 살고 싶다.
그래서 종속의 계약까지 심장에 새겨가며 당신을 따라오지 않았나. 그런 의미를 담아 물끄러미 올려다보자 폭풍 속의 파도처럼 사납게 날뛰던 그가 잠잠해졌다. 갑자기 기분이 풀린 이유를 나는 몰랐다. 그저 드디어 끝났구나, 안도하며 앞으로 무너져 내렸다.
일어나면 다친 몸은 깨끗하게 치료가 되어 있었다. 크라투스는 내 몸에 작은 흉터라도 생기는 꼴을 못 봐서 항상 ‘회복’이나 ‘재생’이 새겨진 마정석을 준비해뒀다.
내게 상처를 내는 건 크라투스가 유일하다는 게 역설적이었다.
그는 내 모든 것을 통제하려 들었다. 나는 안 그래도 삭막한 내면을 전부 비우고 목소리까지 내어주고서야 간신히 그의 곁을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한계는 찾아 왔다.
나는 크라투스의 눈을 피해 종속의 계약을 해지할 방법을 찾아 헤맸다. 크라투스가 있을 땐 집무실의 서재를 뒤지고, 그가 바쁘거나 자리를 비우면 도서관에 틀어박혔다. 누구도 만나지 않고 책더미로 가득한 공간에 파묻혀 있으니 크라투스는 만족했다.
반면 나는 점점 초조해졌다. 종속의 계약 자체가 드문 것은 아니라 찾기 어렵진 않았다.
하나, 오래된 서적을 아무리 뒤져 봐도 해지할 방법은 단 하나였다. 크라투스의 죽음. 그 외에는 전부 임시방편에 가까운 눈속임이다.
애먼 시간만 흐르고 진전은 없었다. 습관적인 체념을 하려던 때, 사람들이 말하는 운명적인 순간처럼 그 책을 발견했다.
사실 시도하면서도 성공할 줄은 몰랐다.
거대하고 단단한 젤리를 뚫고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의식의 마지막이었다. 나는 백담의 지저분한 골목에서 눈을 떴다. 빛도 눈길도 닿지 않는 자리에 태아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온몸을 때렸다. 비틀거리며 일어나 걸레짝이 된 옷을 전부 찢었다. 알몸이 되어 벽을 짚고 걸었다.
가슴이 불에 덴 것처럼 화끈거렸다. 골목과 골목 사이를 비추는 길거리의 빛만 보고 나아가자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나는 그 순간, 됐다고 생각했다.
정신을 잃고 깨어나니 병원이었다. 한 번 잘렸다 돋아난 팔에는 당연히 ID칩이 없었다. 양복을 입고 찾아온 사람들이 몇 가지 질문을 했다. 나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라는 말로 일관했다.
그들은 더 묻지 않고 내게 측정기를 들이밀었다. 얼굴을 굳혔다. 불시에 벌어진 일이라 대처가 늦었다.
삑.
“어, 어라?!”
“왜, 무슨 일… 헉!”
아니나 다를까 놀란 두 사람이 수군거렸다. 얼핏 ‘A급’이라는 말이 들렸다. 그래도 반사적으로 마기를 갈무리했는지 ‘측정 불가’까지 뜨진 않았다. 이걸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당황해하는 내게 양복이 다시 기계를 들이밀었다.
“다, 다시 한번 측정할게요!”
다행이었다. 몸에 번져 있던 마기를 한데 모아 꼭꼭 숨겼다. 저 기기가 아무리 대단해도 찾지 못할 깊은 곳에 밀어 넣었다.
삑.
“음?”
“어라.”
“…….”
“저기, 죄송한데 다시 한번만….”
그 후로 다섯 번의 측정이 있었다. 하지만 몇 번을 해도 기기는 쥐꼬리만 한 힘밖에 감지하지 못했다. 양복이 머쓱하게 말했다.
“기기 오류였나 봐요.”
먼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나는 다시 F급 헌터가 됐다.
덜컹.
버스가 크게 흔들렸다. 땅이 아스팔트에서 금이 간 시멘트로 바뀌었다. 눈을 깜박이자 빼곡하게 늘어서 있던 건물들이 사라지고 어느새 연녹색 수림이 가득했다.
[이번 정류장은 예령 납골당입니다. 다음 정류장은…]
빨간 벨을 누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류장에 내리자 머리 위로 화려한 깃을 가진 새가 날아갔다. 이런 데서 살 외관이 아니었다. 누군가 기르던 새를 놓친 것이다. 산 저편으로 멀어지는 날짐승의 뒤꽁무니를 한참 응시하다 나는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