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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를 잡는 방법 (8)화 (8/106)

8화

죽은 마물에서 마정석을 적출하고 조각낸 사체를 트레일러에 실었다. 핏자국을 깨끗하게 지우고 부서진 잔해를 치웠다.

“용식이 너 또 장갑!”

마물의 잘린 꼬리를 줍던 용식이 한숨을 쉬었다.

“아, 진짜 괜찮다니까요.”

“야! 그러다 마소 중독에 걸리면 어쩔 건데! 너 평생 병신 되고 싶어?!”

박명석의 입에서 험한 소리가 나오자 용식이 그제야 움찔했다. 마소 중독. 조건 좋은 현장이 항상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이유였다.

100여 년 전, 인류의 반이 세상에서 사라진 건 마물의 공격보단 마소 중독 때문이었다. 일반인이 ‘마기’에 일정 시간 이상 노출되면 걸리는 병. 헌터조차 과하게 노출될 시 걸릴 수 있는 불치병이었다.

평상시엔 아무렇지도 않다. 주의해야 할 것도 없이 평범한 생활이 가능하다. 다만 마정석으로 만든 중화제를 주기적으로 복용해야 하고, 시기를 놓치면 발작과 함께 온몸에서 검보라색 피를 쏟으며 죽게 된다.

용식이 투덜거리면서도 다시 장갑을 제대로 꼈다. 인부들은 저런 녀석들은 한 번 된통 당한 후에야 정신을 차린다며 혀를 끌끌 찼다. 그들의 수다는 이내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그보다 철수는 진짜 텔레비전에라도 나가야 하는 거 아녀?”

“그러니까 말이야. 우리 딸램이 보는 오-디션인지 뭔지에 나오는 허여멀건 것들보다 몇 배는 잘생긴 것 같은데.”

“에이, 그 정도는 아니지.”

“…….”

철수는 난감하게 웃었다. 정확히 말해 본인은 웃는다고 웃었겠지만 남이 보기엔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그는 관심이 저에게 쏠리는 게 달갑지 않았다. 눈에 띄는 건 저 용식이라는 애송인데 왜 인부들은 자꾸 저를 논할까.

“방송은 어렵지. 게다가 철수는 말이….”

“어허, 이 사람.”

작업중이라 쓰인 표지판을 옮기던 인부가 팔꿈치로 옆 사람을 꾹 찔렀다. 뒤늦게 아차, 싶은 표정이 된 남자가 철수의 눈치를 봤다. 철수는 못 들은 척했다.

다행이라며 수군거리는 시선들이 떨어졌다. 피곤했다. 차라리 마물을 상대하는 게 훨씬 편할 것 같다.

말을 못 하는 건 아니었다. 단지 말수가 극히 적고 생각에서부터 말로 나오기까지가 오래 걸릴 뿐이다.

그런데 뭘 어떻게 오해했는지 언제부턴가 다들 그를 농인으로 알았다. 정정하기 귀찮아서 그냥 두었다. 과거 어떤 이들이 그의 이름을 오해했을 때 그냥 두었던 것처럼.

그때, 불쑥 거슬리는 목소리가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다들 고생 많습니다.”

그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현장에 있던 모든 이들의 미간이 팍 찌푸려졌다. 가장 먼저 표정을 회복한 건 맨 앞에서 그를 맞아야 하는 헌터 협회의 직원이었다. 그가 만면에 미소를 띤 채 젊은 남자를 맞았다.

“여긴 웬일이십니까.”

“웬일은요. 제가 후처리과 총 책임자 되는 사람인데, 가끔 현장도 돌아보고 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가끔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이 새끼야.

남자는 이런 곳에 올 사람이 아니었다. 협회 내의 깔끔한 사무실에서 아래 직원들을 손끝으로 부리며 서류나 보고 있어야 할 종자다.

그런 사람이 뻔질나게 현장에 나오는 이유를 인부들은 모르지 않았다.

직원의 시선이 힐긋 옆으로 흘렀다. 그 끝에는 마수의 발톱으로 구멍이 난 아스팔트를 묵묵하게 땜질하는 청년이 있었다. 같이 고개를 돌린 남자가 나른하게 웃었다.

“형은 언제 봐도 성실하게 일하고 계시네요.”

직원은 속으로 웩, 소리를 냈다.

남자, 주재영은 후처리과 과장 이전에 현 시의원의 막내아들이었다. 심지어 본인은 C급 헌터이기도 하다. 백담 한정이긴 하지만 제대로 된 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는 뜻이다.

사내는 그 수저로 남자를 후리고 다녔다.

남자가 남자 좋아한다. 그것만이라면 요즘 세상에 별 흠도 아니었다. 문제는 노는 취향이었다. 직원도 흘러가는 말로 들은 것뿐이지만, 그 내용은 얼굴이 잠깐 창백해졌을 만큼 아주 지저분했다. 후처리과 과장이라는 직책도 사고치고 좌천되다시피 맡은 거라고.

‘누군 평생의 목표로 삼는 자리를 좌천.’

직원은 잠깐 찾아온 현자 타임을 빠르게 치웠다. 수저처럼 생긴 폭탄이 땜질을 끝내고 허리를 펴는 청년에게로 향했다.

“형. 오늘도 나오셨네요.”

“…….”

싱글거리며 다가온 주재영을 향해 철수가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러곤 옮기던 잔해를 마저 옮겼다.

“도와줄게요.”

주재영이 손바닥을 펼쳤다. 철수의 품에서 흔들리던 잔해가 둥실, 허공으로 떠올랐다. 철수가 팔을 위로 뻗었다. 다시 잔해를 잡아 품에 단단히 넣은 그가 주재영을 가만히 보곤 아까보다 큰 보폭으로 멀어졌다.

주재영은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아랫도릴 세울 뻔했다. 얼굴부터 분위기까지 전부 제 취향이더니 이런 부분까지 지독하게 마음에 들었다. 그는 멀어지는 철수의 뒷모습을 지긋이 응시했다.

두꺼운 작업복 아래로도 꿈틀거리는 양질의 근육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벗겨보고 싶다. 사내의 맨살은 분명 공들여 깎은 조각상의 표면처럼 단단하고 매끄러울 것이다. 그 위에 채찍 자국을 새기면 어떨까.

눈을 가늘게 뜬 주재영이 본격적으로 상상하기 시작했다.

가죽으로 된 구속구가 사내의 전신을 조였다. 검은 채찍을 내리칠 때마다 땀에 젖은 근육이 약동했다. 넓고 단단한 어깨는 고통을 견디느라 잔뜩 경직됐다.

재갈 때문에 침을 흘리고 허벅지가 경련을 일으켜도 사내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어떻게 얼마나 내리친들 일말의 신음도 없이 형형한 눈을 하고서.

저를 아래서 위로 노려보는 상상 속의 시선이야말로 주재영이 지금 청년에게 공을 들이는 이유였다. 분명 어떤 마약보다 자극적일 것이다. 그가 입맛을 다셨다.

‘유두에는 링을 달아줘야지.’ 

잘 빠진 흑표범 같은 사람이다. 저급한 건 어울리지 않는다. 오늘 돌아가면 백금으로 주문 제작을 해 두자. 거기까지 생각한 주재영은 저 멀리 앞서간 철수에게 달려가 그의 등허리에 살짝 손을 댔다 뗐다.

“이만 가볼게요. 잠깐 짬 내서 나온 거라.”

역시 잡히는 감촉이 단단하다. 이러다 진짜 서버릴 것 같아서 주재영은 미련을 두지 않고 자리를 벗어났다.

철수는 눈을 내리깔았다. 눈에 띄는 건 바라지 않는다. 시끄러운 것도 싫다. 그런 의미에서 주재영은 참 난감한 존재였다. 어디 골목이라도 끌고 가서 죽여 버리면 좋겠는데, 그러면 그 후가 한없이 시끄러워질 사람이라 그도 여의치 않다.

역시 무시하는 게 최선이다. 철수는 다시 하던 일에 몰두했다.

한편, 이런 쪽으로는 아직 고지식한 면이 있는 박명석 외 인부들은 협회의 과장이라는 사람이 철수를 어지간히 마음에 들어 한 것 같다며 혹시 스카우트라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오해와 함께 작업을 마무리했다.

“하이고 끝났다.”

“다들 저녁 먹으러 갈 거지?”

인부들이 일제히 소주에 삼겹살을 먹자, 두루치기에 삼겹살을 먹자, 그냥 둘 다 먹자로 떠들어 댔다. 철수는 묵묵히 받은 장비를 반납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모두 규정대로였다.

“철수 너는 어쩔래?”

박명석이 예의상 물어봤다. 그는 이미 사내의 대답을 알고 있었다. 오전에 왔을 때처럼 구부정하게 허리와 고개를 꾸뻑 숙여 보인 철수가 등을 돌려 멀어졌다.

“거, 정 없기는.”

“아서라. 말도 못 하는데 시끄럽게 떠드는 자리에 오고 싶겠어?”

“그 말이 맞다. 그냥 냅둬. 성실하고 좋은 녀석이잖아.”

“암. 용식인지 용가린지보다 백배 낫지.”

그날 회식에 빠진 건 셋이었다. 아들이 저가 사 올 아이스크림만 기다린다는 인부와 여자 친구랑 밤에 만나기로 했다는 용식 그리고 누구도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철수였다.

그는 느린 걸음으로 집을 향했다. 횡단보도에선 손바닥 사이즈의 책을 꺼내 읽었다. 옆 사람이 희한한 것을 보듯 그를 힐끔거렸다. 요즘 세상에 종이책을 보는 것도 신기한데 심지어 사전이었다.

신호가 바뀌고 철수는 사전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방금 본 단어들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한참 멍하니 걷던 그는 문득 내일 현장을 확인해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분명 거리가 꽤 됐다. 확인해보자 아니나 다를까 도시의 반대편이다. 아침 일찍 차를 타야 늦지 않게 도착할 만큼 먼 곳이었다.

버스 번호를 확인하던 철수는 중간에 편의점에 들러 도시락 세 개를 턱턱 집었다. 전자레인지에 데워 따끈한 도시락을 든 그는 곧 구석진 골목에 접어들었다.

녹슨 대문을 열자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바로 보였다. 물이 고여 이끼를 품은 계단을 철벅거리며 내려갔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반지하의 단칸방. 이곳이 철수의 거처였다. 어린 시절 살던 곳과 같다. 변한 것이라곤 그나마 손바닥만 한 창문이라도 붙어 있다는 것과 아버지가 없다는 것뿐이다.

내부는 살풍경했다. 이불 세트와 베게 하나, 주워온 서랍장과 커피포트가 살림살이 전부였다.

바닥에 도시락을 내려둔 그가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기에서 찬물이 쏟아졌지만 개의치 않고 정수리부터 물을 맞았다. 투명한 물줄기가 잘 잡힌 근육 위로 흘러내렸다.

온몸이 흉기라는 말은 철수를 두고 쓰는 말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그를 처음 보면 군인 내지 조폭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그다음은 옷을 봤다. 분명 저 아래에 자상과 총상이 감춰져 있을 거란 확신에서다.

하지만 실제 철수의 몸은 전체적으로 매끈했다. 어릴 적에 하나쯤 생기는 팔다리의 오랜 흉터조차 그에게선 찾아볼 수 없었다.

상흔이라고 할 건 하나뿐이다. 다만 그 하나가 제법 컸다.

왼쪽 가슴 전반에 손바닥 두 개 분의 큰 넓이로 그곳만 질감이 달랐다. 거죽이 한차례 통째로 뜯겨 나갔다가 새 살로 채워진 흔적이다. 그래서 철수는 왼쪽 유두가 없었다.

비누칠하고 씻어낸 그가 수건으로 물기를 닦았다. 가슴팍의 흉터 위로 흐릿한 문양이 떠올랐다. 평소에도 보이긴 하지만 이렇게 몸에 열기가 오르면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담담한 시선이 거울 속의 가슴팍을 향했다. 상흔과 함께 남은 문양의 흔적이 보였다. 이건 그의 목에 아직 목줄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지금은 말 그대로 흔적뿐이라 목줄의 주인은 그가 살아 있다는 것도, 중간계에 있다는 것도 모른다. 하지만 마기를 운용하거나 또다시 탈피하여 가슴의 상흔이 사라지면 종속의 계약도 복구된다. 그럼 놈에게도 어떤 식으로든 알려질 것이다.

굳은 손끝이 흉터 위를 가로질렀다. 세게 긁어도 이제 겉면은 아프지 않다. 대신 그보다 깊은 곳이 시큰했다. 어둡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는 한참이나 벽을 응시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백일몽에서 깨어난 것처럼 뒤늦게 정신을 차린 철수는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묵묵히 욕실을 나섰다.

편의점 도시락이 식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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