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이현수가 서류를 몇 장 넘겨 사결에게 건넸다. 종이를 훑은 그가 헛웃음을 지었다.
“네 입이 잘못된 줄 알았는데 진짜 이름이 김철수네.”
사결이 혀를 찼다. 죽어도 자기 귀가 잘못됐다는 생각은 안 하는 게 이 사내다웠다. 이현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순순히 대답했다.
“네. 발견 당시 기억이 온전치 못한 데다 과거 이력을 조회할 ID칩도 없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담당자가 임의로 붙인 이름이라고.”
“칩 적출 흔적은.”
“없습니다.”
“그럼 상당히 정교한 시술을 받았거나 아님 포션을 썼거나….”
“ID칩도 심지 못할 만큼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났을 수도 있죠.”
“여기가 아무리 시골이라지만, ID칩도 못 심을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사정은 개인마다 다른 거니까요.”
사결은 흠, 하곤 인쇄된 사진을 들여다봤다.
어디 하나 모난 곳 없이 잘난 얼굴이다. 다만 워낙 무표정이라 화난 것처럼 보이는 게 유일한 흠이었다.
사결의 한쪽 눈썹이 위로 올라가고 입매는 감탄을 담아 휘어졌다. 이현수가 익히 아는 반응이다. 잠깐 저 인간 설마, 아니 아무리 그래도 설마.
“뭐야 그 시선은.”
너무 대놓고 경멸했나?
찔끔한 이현수가 모른 척을 시도했다. 사결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그가 서류철로 이현수의 옆구리를 꾹꾹 찔렀다.
“너는 어? 사장님이 좋은 일을 해보려고 하면 옆에서 잘됐으면 좋겠다고 응원을 해도 모자랄 판국에. 어?”
“거… 양심도 참….”
“하하, 우리 현수. 내가 나쁜 일 하는 거 보고 싶나 봐?”
“사장님 파이팅입니다! 그리샤의 빛! 우리의 희망!”
사결이 거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면 잘해라.”
“…….”
이현수가 오늘도 생불이 되어 가는 사이, 사결은 다시금 사진 속 무표정한 사내를 관찰했다.
고작 사진인데도 분위기가 범상치 않다. 밍밍하고 인공적인 인화지 냄새가 나야 할 사진에서 피비린내가 났다. 아스팔트 위에 덩그러니 놓인 검붉은 식칼처럼 섬뜩한 사연이 느껴졌다.
피부를 찌르는 직감에 사결은 흐뭇하게 웃었다.
“이번에야말로 맞게 찾아온 것 같군.”
비공정이 백담시 헌터 협회의 옥상과 연결된 독에 정박했다. 마력으로 비공정을 고정하고 문과 통로를 연결했다. 사결은 어서 내리고 싶어 들썩거렸다. 그걸 본 이현수가 지나가는 말처럼 툭 던졌다.
“하람에 갔을 때도 그 말 하셨잖아요.”
“…….”
“전전번 이노스에서도 똑같이 말씀하셨고요.”
사결의 직감은 S급 능력자답게 꽤 잘 들어맞는 편이었다. 다만 예외가 있었으니 바로 귀환자 탐색이다. 길드원들이 그 정도면 예언가로 전업하시라 혀를 내두르는 감이 귀환자 한정으론 좀체 맞질 않았다.
“이번은 달라.”
느낌이 왔다. 말초신경에 전류가 흐르는 막대기가 꽂힌 것처럼 짜릿한 직감.
“그 말도 하람부터….”
“맞고 닥칠래, 그냥 닥칠래.”
“그냥 닥치겠습니다.”
이현수는 즉답했다. 사원에 대한 존중 같은 말을 꺼냈다간 본전도 못 찾는다.
자신의 비서 겸 감시인을 고깝게 보던 사결이 휙 몸을 돌렸다. 하선용 통로의 연결이 완료되었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그가 큰 보폭으로 비공정의 복도를 가로질렀다. 하선 준비를 위해 부산하게 움직이던 사람들이 재빨리 복도에 붙어 섰다.
그들은 고개 숙여 인사했지만, 감히 말을 붙이진 못했다. 사결이 지나가는 곳마다 존경과 선망의 시선이 따라붙었다. 식은 눈으로 그 모습을 보던 이현수가 한숨을 푹 쉬었다.
“…동준이 사표를 냈습니다.”
도저히 사결에게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아 미룰 수 있는 데까지 미뤘던 보고였다. 잔뜩 긴장한 그가 상사의 기분을 살폈다.
박동준은 크레딧 소속의 A급 헌터였다. 확실히 고등급이나 그리샤에선 드문 것도 아니었다. 다만 속성이 특별했다.
마력운용계 정화 속성.
온갖 것들을 깨끗하게 만드는 속성이다. 여기엔 마기도 포함됐다. 수해 토벌이 한창인 그리샤에선 누구보다 유용한 능력이었으나 그것도 마기의 미로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문제는 한 달 전에 발생했다. 그의 정화를 두른 채 공략 포인트에 진입했던 헌터가 전부 사망한 것이다. 동준은 큰 충격을 받았다.
“여태 쌓인 게 폭발한 느낌이었습니다. 설득한다고 들을 분위기는 아니더군요.”
“결국 그렇게 됐나.”
이현수의 예상과 달리 사결은 무덤덤했다.
그가 여태 들고 있던 서류철을 이현수의 가슴팍에 던졌다. …그냥 무던한 척 한 것뿐이었나 보다.
이현수는 A급의 반사 신경으로 흩어지는 종이를 깔끔하게 잡아챘다. 혼잣말로 투덜거리는 그를 향해 사결이 나른하게 웃었다.
“그래서, 내 카나리아는 지금 어디에 있지?”
* * *
“철수야! 여기다 여기!”
안전모를 쓴 중년의 남자가 손을 크게 휘둘렀다.
그의 이름은 박명석이었다. 키가 작고 팔다리가 두꺼워 동료 인부들 사이에선 ‘박드워프’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런 말을 생전 처음 들은 중년인이 그게 뭐냐고 묻자 유명한 고전 판타지의 주인공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 후로 남자는 ‘드워프 반장님’이라고 부르면 ‘오냐’하고 대답했다.
“아. 여기라니까!”
박명석에게 불린 사람은 키가 크고 몸이 탄탄한 사내였다. 전신에 잔근육이 붙어 있었고 가슴팍도 두꺼웠다. 흔히 등빨이 있다고 표현할 건장한 몸이다.
도시락 심부름을 왔다가 사내를 목도한 박명석의 딸은 ‘뭔가 알몸에 모피를 둘러줘야 할 것 같다’며 침을 흘렸다. 박명석은 솥뚜껑 같은 손으로 그런 딸의 등을 후려쳤다.
철수는 얼굴 자체도 그리 못나지 않았다. 무뚝뚝한 표정 때문에 생김새보단 무서움이 먼저 보여서 그렇지, 요모조모 뜯어보면 눈썹이 짙고 이목구비도 뚜렷한 게 꽤 잘생긴 축에 속했다.
“앞머리 좀 잘라라. 그렇게 치렁하게 늘어뜨리니까 앞이 안 보이는 거 아냐.”
겨우 합류한 청년을 앞에 두고 남자가 한소리 했다. 안 그래도 작은 키를 가진 그가 철수 앞에 서자 진짜 난쟁이가 따로 없었다. 인부들은 웃음을 참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하지만 그것도 철수가 허리를 구부정하게 구기며 고개를 꾸뻑 숙이자 소용없어졌다.
난쟁이 똥자루와 멍청한 거인이 만들어내는 한 편의 코미디에 인부들이 자지러졌다.
“으하하하!”
“아학학학!”
“반장님 잠깐만, 그대로 잠깐만!”
사진까지 찍느라 단말기에서 찰칵거리는 소리가 났다. 얼굴이 벌게진 반장이 이번엔 주먹 쥔 손을 위협적으로 흔들었다.
“다 죽고 싶어?!”
인부들은 그만두긴커녕 더 큰 소리로 웃어댔다.
“작업 시작 안 합니까?”
협회 직원이라는 양복쟁이가 안경을 추어올렸다. 소란하던 웃음소리가 그제야 뚝 그쳤다. 인부들이 어깨를 으쓱이곤 익숙하게 장비를 챙겼다.
그들이 있는 곳은 D급 게이트가 열린 현장이었다. 정확히는 헌터들이 마물을 사냥하고 난 후 그 뒷정리를 해야 하는 자리다.
F급 헌터.
이 일에 지원할 수 있는 최저자격이었다. 다른 일용직에 비해 일은 쉽고 받는 페이는 몇 배나 된다.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F급으로서는 군침이 흐를 만큼 좋은 조건이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 일도 그만한 리스크를 동반한다. 현장은 항상 인력 부족에 시달렸다.
여기 온 사람들은 다들 사연 있는 이들이었다. 물론 개중에는 뭣 모르고 넘치는 패기에 용돈이나 벌어 보려는 젊은이들도 있긴 하다. 박명석은 바로 그렇게 들어온 신입을 유심히 관찰했다. 아니나 다를까 눈에 거슬리는 것이 보였다.
“용식이 너 또 장갑 대충 꼈지.”
작업반이 끼는 장갑은 총 두 개였다. 안쪽에 끼는 얇은 것과 바깥에 끼는 두꺼운 것. 용식이 낀 건 얇은 것 하나뿐이었다. 그가 볼멘소리로 대꾸했다.
“두꺼운 것까지 끼면 자꾸 흘러내리고 잘 잡히지도 않아요. 기껏 껍데기 옮기는 건데 이것만 껴도-”
“절대 안 돼. 규정대로 안 할 거면 돌아가.”
박드워프 이전 박명석의 별명은 규정요정이었다. 이 요정은 누가 규정만 어기면 뾰로롱 나타나 지팡이로 두들겨 잡았다.
저걸 잡어 말어. 살벌한 얼굴로 들썩거리는 요정을 목도한 용식이 흠칫했다.
“에이….”
결국 그는 투덜거리면서도 제대로 장갑을 꼈다. 박명석은 뭐라 한마디 더 하려다 관뒀다. 여자 친구 선물 살 돈에 보태 쓴다고 며칠 아르바이트하러 온 놈이었다. 앞으로 이틀이나 볼까 한 놈에게 쓸데없는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진 않았다.
박명석은 대신 근래 퍽 마음에 든 청년에게로 관심을 돌렸다.
“철수. 너도 안전모 써야지.”
그가 노란 안전모를 휙 던졌다. 철수가 한 손으로 탁 낚아채더니 또 꾸벅 고개를 숙였다. 박명석은 흐뭇하게 웃었다.
보면 볼수록 듬직하고 사내다웠다. 저런 녀석들이 또 속 깊고 생각도 의젓한 법이다. 눈매가 좀 사나운 게 흠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좋은 점도 있다.
어지간한 여자들은 무서워서 다가가지도 못할 테니까. 딸이랑 나이 차이만 덜 났어도 한번 말이나 꺼내 봤겠는데. 명석은 입맛을 다셨다. 그는 다른 의미로 철수에게 반해 있었다.
“장갑은 그렇다고 치는데, 솔직히 안전모는 왜 쓰라는지 참.”
“맞아요. 완전 쓸데없어.”
주변에 저런 놈팽이 같은 놈들뿐이라 더 그런지도 몰랐다. 박명석이 안전모를 탁탁 두드리며 눈을 부리부리하게 떴다.
“어허. 부서진 건물 파편이나 간판이 머리에 떨어질 수도 있어!”
“그런 게 떨어지면 안전모를 써도 죽는 거 아닙니까?”
“…….”
순간 그건 그렇지, 라고 생각해버린 박명석이 것 보라는 표정의 신입을 발견하고 뒤늦게 정신 차렸다.
“규정이 그런데 어쩔 거야! 잔말 말고 쓰라면 써. 그리고 철수 봐. 불평을 해, 잡답을 해? 묵묵하니 제 할 일만 하잖아. 남자라면 저렇게 우직해야지!”
한 인부가 손을 들었다. 박반장이 턱짓으로 발언을 허했다.
“가끔 멍 때리던데요.”
“사실 가끔이 아니던데….”
그들이 일제히 한쪽을 힐금거렸다. 기계처럼 움직이던 철수가 멍을 때리고 있었다. 중세시대 갑주 같은 마물의 껍질을 든 채 보는 곳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다. 저런 걸 들고 멍을 때리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쟤는 멍 때려도 너희 하는 거에 두 배는 하잖아!”
실력주의로 나오자 할 말이 없어진 인부들이 야유했다.
우우. 편애다.
우우. 사윗감으로 보는 거 다 안다.
“아 시끄럽고 일이나 해!”
결국 흩어진 인부들은 낄낄거리면서도 맡은 일을 척척 해냈다. 숙달된 전문가의 향기가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