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2장. 귀환자
구름 사이로 거대한 비공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을 유영해 온 거대한 배는 느긋한 고래처럼 헤엄쳐 도시로 접근했다.
사람들의 놀란 눈길이 하얀 몸체에 닿았다. 변방 소도시인 백담에서 비공정의 출현은 매우 드문 이벤트였다.
곧 푸른빛에 둘러싸인 하늘배가 격벽의 에너지 돔과 부딪쳤다. 작은 스파크가 몇 번 일더니 곧 푸딩에 삼켜지는 숟가락처럼 비공정이 돔 안으로 쑥 들어갔다.
[승인번호 110367. 그리샤 시티. 크레딧 길드.]
그리샤는 서대륙의 패자로 불리는 도시국가였다.
땅은 격벽의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었고 도시 내부에서 열리는 S급 게이트만 스무 개가 넘었다.
그런 그리샤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한 길드가 바로 크레딧 길드였다. 도시 내에서 가장 많은 S급 헌터를 보유한 길드이기도 했다. 헌터의 발언력이 그 어느 시대보다 강한 시대였다. 크레딧 길드야말로 서대륙의 진정한 주인이라 말하는 자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 크레딧의 길드장인 사결이 큰 충격을 받은 사람처럼 말했다.
“자주 오는 건 아니지만 올 때마다 놀랍네. 어떻게 시가지에서 격벽이 보일 수 있지?”
“저희 길드 건물에선 수해가 보이잖습니까.”
“그거랑 이게 같아?”
“다를 건 뭡니까.”
멈칫한 사내가 눈을 휘며 웃었다. 이현수가 재빨리 태세를 전환했다.
“도시 내에 열리는 게이트의 최대치가 C급인 소도시잖습니까.”
“설마 호텔까지 별로인 건 아니겠지. 왜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일들은 전부 5성 호텔에서 일어난다는 말도 있잖아.”
그가 심각하게 말했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척박한 도시의 미래를 걱정한다고 오해할 만큼 그림이 되는 장면이었다.
사결은 커다란 덩치의 미남자였다. 얼굴이 워낙 멀끔한 데다 깔끔한 양복으로 싸매놔서 그렇지 몸만 보면 마수가 따로 없었다.
길드원들이 엘리베이터 좁다고 운동 좀 작작 하시라고 말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내 스케줄은 자네들이 더 잘 알지 않나? 헬스장 같은 건 안 나가는데?’
‘대신 맨손으로 마수를 때려잡잖습니까!’
‘그러면서 몰래 격투기 기술 시험해보는 걸 누가 모를 줄 압니까?!’
‘마력운용계면 제발 좀 마력운용계답게 구세요!’
비율로 따지면 전체 헌터 중 육체강화계가 9, 마력운용계가 1이었고 화력은 마력운용계가 압도적이었다. 때문에 헌터의 전투는 일반적으로 마력운용계가 주축을 맡고 육체강화계가 그를 근접 호위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사결은 얼음 속성의 S급 마력운용계였다.
등급이 올라갈수록 안 그래도 적던 마력운용계는 절멸 수준으로 적어진다. S급이라면 고급 인력인 헌터 중에서도 최고급 인력이다. 이런 스펙은 그리샤를 통틀어도 셋밖에 없다.
그런 인간이 쓰라는 속성은 안 쓰고 호위도 없이 맨몸으로 마물을 찢고 다니니 길드의 수뇌부들은 길드 연합 회의에라도 가면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포털 사이트에 대문짝만한 기사로 ‘크레딧 길드장, 또 마물을 맨손으로 찢어.’ 같은 게 뜨면 뒷목을 잡는 게 일상이 된 것도 오래다.
“후져도 어쩔 수 없죠. 애초에 여기 오겠다고 한 건 사장님이십니다만.”
비서 겸 감시인으로 따라온 이현수가 딱 잘라 말했다. 사실 앞에선 천하의 사결도 잠깐 말문이 막혔다. 재차 혀를 찬 그가 유리 너머로 백담을 내려다봤다. 그리샤의 왕인 그가 이유 없이 이런 변방에 왕림한 건 아니었다.
사결이 눈을 휘며 미소 지었다. 어딘가 묘한 나른함을 풍기는 뱀 같은 웃음이었다.
“그야 여기에 내 귀환자가 있으니까.”
“…….”
이현수가 몰래 한숨지었다.
* * *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그리샤의 외곽에서 세계 역사에 아로새겨질 대참사가 벌어졌다.
게이트 오버플로우.
천 개에 달하는 게이트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리고 거대한 마물의 해일이 주변을 집어삼켰다.
그리샤는 그때도 이미 대도시였지만 지금보단 인력과 장비가 많이 부족했다. 더군다나 그날은 두 개의 S급과 여섯 개의 A급 게이트가 도심지에 열릴 예정이었다. 당연히 대처가 늦을 수밖에 없었다.
대규모 게이트 발생으로 인한 통신장애도 사태를 악화시키는 데 한몫했다. 헌터들은 외곽에 어떤 재앙이 강림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알았다면 도심의 S급과 A급을 무시하고서라도 현장으로 달려갔으리라.
사태를 파악했을 땐 모든 것이 늦은 후였다. 그리샤의 헌터들은 도시의 반절을 빼앗긴 후에야 간신히 경계선을 재구축할 수 있었다.
지지부진한 회의가 일어났다. 그 와중에도 최전선의 헌터들은 죽어갔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자 도시 수뇌부는 결국 침식된 부분을 포기하고 도려냈다. 대신 경계선의 방어를 강화하며 도시의 재건에 힘썼다.
곧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운 경계. 사납게 날뛰는 마물들 앞에서 희망이라곤 없이 걸레짝이 되어 몰락해가던 그리샤.
그런 그리샤를 20년에 걸쳐 다시 부흥시킨 것이 바로 이 사내였다. 이현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사결을 봤다.
‘이렇게 보면 그냥 재수 없는 재벌가 도련님인데.’
삼초승달의 유일한 후계였으니 틀린 말은 아니지만…
“현수야.”
“예.”
“내가 남자 좋아하긴 하는데 넌 아니다. 괜히 상처받지 말고 지금이라도 마음 접어라?”
이현수가 정색했다.
“개소리하지 마십쇼.”
“아니야?”
“차라리 헤스티아 길드장이랑 사귀겠습니다!”
이번엔 사결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이게 미쳤나…. 지금 나보다 그 불돼지가 낫다는 거냐?”
“네가 먼저 이상한 소리를 했잖습니까.”
“말투 바로잡아라. 아니, 그보다 아니면 왜 그따위 그윽한 눈으로 보는데. 사람 헷갈리게.”
“…….”
이현수는 항상 소중히 품고 다니는 사표를 떠올리며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아무튼, 닫지 못한 게이트에선 마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마기가 고인 땅에는 기괴하고 무성한 수목이 자랐다. 수목은 웨이브 이후 마물이 살아갈 좋은 터전이 되어 줬다.
마의 수해(樹海)
사람들이 저주받은 숲이라 부르는 마물의 온상지, 마기로 가득 찬 죽음의 땅, 검은 미로가 펼쳐진 거대한 신의 정원.
그 가장 깊은 곳에 사내가 원하는 게 있다. 하지만 장소가 장소인 만큼 초대형 길드를 가지고도 마물의 숲을 공략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렇다면 기존의 방식이나 헌터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불가침의 영역을 어떻게 침범할 것인가. 그는 이미 답을 알았다.
사결은 바로 행동에 나섰다. 길드 구석에 처박아 둔 삼초승달의 자료를 뒤졌다. 그 안에서 이명환의 기밀 프로젝트를 찾아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드물게 정색한 이현수가 몇 번이나 괜찮으시겠냐고 물었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아시지 않습니까. 이 프로젝트는….’
‘안다.’
‘…….’
‘오히려 그래서야.’
사결이 이현수의 모든 걸 아는 것처럼 이현수도 사결의 대부분을 알았다. 그는 저 ‘그래서’에 담긴 뜻을 이해했다. 속성은 얼음이지만 그의 눈에 비친 사결은 불이었다. 이명환이 남긴 건 뼛조각 하나까지 전부 살라 먹으려 하는 불길.
결국 더 반대하지 못한 이현수가 프로젝트 내용을 홀로그램으로 띄웠다. 빽빽하게 떠오른 푸른 창에 둘러싸인 사결이 냉정한 눈으로 활자를 훑었다. 읽을수록 기가 찼다.
귀환자.
그것은 마계에 넘어갔다 살아 돌아온 자를 뜻했다.
그게 얼마나 허무맹랑한 일인지는 역사가 증명한다. 과거 게이트 너머에 대한 탐색과 원정에서 단 한 명의 헌터도 살아 돌아오지 못한 이후, 그와 관련된 모든 시도는 금지되었다. 학자들은 인간이 차원의 압력을 견디지 못한다고 주장했고 그게 정설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최초의 귀환자가 나타났다.
마계에 체류한 건 대략 48시간. 회복에만 4개월이 걸린 그는 휠체어를 타고 나타난 기자회견장에서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게이트를 넘어간 이들의 죽음에 대해서만 명확하게 밝혔다.
마기에 대한 거부반응.
‘거긴 농축된 마기로 가득한 차원이었습니다.’
그럼 당신은 어떻게 살아 돌아왔느냐는 질문에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답했다.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정보에 혈안이 된 길드와 연구원들의 무수한 러브콜에도 침묵한 귀환자는 몇 년 살지 못하고 죽었다. 스스로 뱉은 말처럼 마기에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한 게 원인이었다.
그 후 짧으면 십 년, 길면 수십 년 주기로 귀환자가 등장했으나 몇 년 못 가 죽거나 홀연히 모습을 감췄다. 개중엔 아주 드물게 적극적인 자도 있었다.
그는 몸을 회복하자마자 도시의 연구에 협력했다. 마계에서의 경험을 담은 저서를 집필하고 마소 중독을 파고들어 중화제 개발에 기여했다.
그로 인해 불가해의 영역이던 마기에 일부나마 대응할 수 있게 됐다. 게이트 주기를 미리 탐색하는 장비와 마기에도 견디는 디바이스가 그렇게 탄생했다.
‘그런 귀환자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려는 프로젝트.’
그게 바로 프로젝트 스노우 화이트였다.
동화 같은 이름이지만 실상은 기괴함 그 자체다. 일단 수백 명씩 보내놓으면 적어도 몇 명은 돌아오지 않겠냐는 발상부터가 제정신이 아니다.
‘막무가내에도 정도가 있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사결은 프로젝트 보고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때문에 생존율은 0.02% 미만이지만, 이 극한의 확률을 뚫고 생존에 성공한다면 마기에 대한 일차적 내성을 갖게 된다.
가설(1): 체류 기간이 길어지면 2차, 3차 적응으로 보다 강한 내성을 얻을 가능성…
프로젝트 진행 도시는 하람, 이노스, 백담…」
사결은 프로젝트가 진행됐던 소도시에 사람을 심었다.
그리고 사흘 전 백담에서 보고가 날아왔다. 어지간한 일엔 무감해져 버린 심장이 오랜만에 뛰었다.
“진짜인지 아닌지 아직 확실치 않습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반추하면 헛걸음일 가능성이 높죠.”
“현수야.”
“예.”
“네가 요즘 사는 게 편했나 보구나.”
“…죄송합니다.”
이현수는 습관성 백기를 들었다.
“이름은?”
“김철수입니다.”
사결이 손을 까닥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