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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를 잡는 방법 (4)화 (4/106)

4화

워낙 정신이 없기도 했고 생긴 것도 이런 유리 조각보단 구슬에 더 가까워 알아차리는 게 늦었다.

새삼스러운 눈으로 조각을 봤다. 이게 게이트의 정체라는 걸 알고 보니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더 있었다.

숲에서 지내던 초기에 하급 마물의 둥지를 잘못 건드린 적이 있었다.

보통 때라면 깊은 밤에나 숨죽여 움직였을 녀석들이 저보다 약하고 거대한 먹잇감을 보자 눈이 뒤집혀 쫓아왔다.

그게 문제의 시작이었다. 놈들이 다른 마물을 꾀고 그들은 다시 상위포식자를 불러들였다.

마치 거대한 미끼의 연쇄처럼 마물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숲 전체가 들썩였다. 마지막엔 엉덩이 무거운 초대형 마물들까지 거대한 흐름에 합류했다.

필사적으로 도망쳤지만 결국 한계가 왔다. 죽어가는 몸을 이끌고 거대한 나무의 뿌리 밑에 숨었다. 잘린 왼팔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의식이 흐려진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가깝게 다가온 죽음을 느꼈다.

그리고 하늘에서 무수한 유성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기묘하게 쾅쾅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기절했다가 깨니 파도처럼 밀려왔던 마물들이 다 사라지고 없었다. 그땐 그냥 알아서 흩어졌겠거니 했는데.

‘그때 떨어진 유성우가 이거였어!’

간만에 심장이 뛰었다.

이게 어디서 왔는지, 뭐로 이루어진 물질인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는 모른다. 다만 하나는 확실했다. 이걸 통해 중간계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영주님?”

“묻고 싶은 게 있다.”

“예. 말씀하십쇼.”

나는 그에게 돌에 대해 캐물었다. 기사는 당연한 걸 질문받은 사람처럼 의아해했지만, 곧 성실하게 답했다. 돌은 ‘게이트석’이라 불리는 물건이었다. 처음 나타난 건 120년 전, 세상에 게이트가 열린 시기와 일치했다.

“아, 바로 얼마 전엔 이 근방에 왕창 떨어지기도 했었죠. 제가 그때 데이트 중이었는데 아주 장관이었습니다.”

“이걸로 사… 마족도 넘어갈 수 있나?”

“기록에는 열 몇 개쯤 모아서 마법진을 발동시키면 가능하다고 하는데 시도한 놈은 없습니다.”

“왜?”

“저 너머에 뭐가 있을 줄 알고 넘어가요. 여기서 잘살고 있는데.”

“…….”

그건 맞지.

생각해보면 그렇다. 일방적 침공을 당하는 중간계와는 입장이 전혀 다른 것이다. 이들에게 게이트는 가끔 발견해서 장난칠 수 있는 차가운 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정말 시도한다고 해도 어렵다고 봐야죠. 고대 마법진이라 지금은 사장되기도 했고… 말이 열 몇 개지 작정하고 찾아도 발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지간히 작아야죠.”

오늘은 운이 좋았던 거라며 기사가 어깨를 으쓱였다.

“정 궁금하시면 서재를 찾아보세요. 전 전대 영주님이 왕족이었는데 게이트석에 관심이 많으셨거든요.”

“왕족이면 용마족 말인가?”

“예. 그것도 엄청나게 강한 분이셨죠.”

마계의 왕족은 전원 용마족이다. 전에 어디서 주워들어 그건 알고 있었다. 내가 의문인 건 그게 아니라 다른 부분이었다.

“왕족이 왜 이런 변방에?”

기사는 망설이고 고민하다 이내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이미 안 계신 분이라 하는 말이긴 합니다만….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눈을 느리게 깜박였다. 어쩐지 말하는 어조에 은은한 분노가 배여 있었다.

“어땠는데?”

“놀라지 마세요. 약자에게 상냥하고 연민이 넘치는 분이셨습니다.”

“…….”

“영지 내 살해 행위를 금하고 ‘봉사 활동’을 장려하더군요. 이름마저 낯설지 않습니까? 내용은 더 끔찍합니다!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할 수 있는지!”

“…….”

기사는 아주 끔찍했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는데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는 말도 덧붙였다.

봉사 활동 장려라. 누가 내게 봉사 활동을 권유하면 별생각 없겠지만, 마족 기준에선 고문에 가까운 끔찍한 행위였던 모양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다. 하지만 다른 의문이 남아 있었다.

“내가 죽인 전대 영주는 대체 어떻게 영주가 된 거지?”

전 전대가 왕족인데?

“그분이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다고 했잖습니까? 당연히 그 빈자리를 꿰찼죠.”

“아.”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더 묻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위험을 감수하고 질문하는 대신 얼음 조각을 조용히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다 몰아치는 정보에 잊고 있던 중요한 사실을 다시 상기했다.

‘잠깐, 그럼 내가 게이트를 삼켰다는 건데….’

나는 여기 있고 내장만 중간계에 떨어진 걸 상상했다.

“갑자기 배는 왜 만지십니까? 안색이 나쁜데 어디 안 좋으십….”

말을 하다 말고 뭘 생각했는지 그의 낯이 미묘해졌다.

“여, 영주님. 설마 해서 여쭙는데 혹시 임신-.”

콰득!

허리춤에 있던 작은 도끼가 기사의 머리 바로 옆 나무에 박혔다. 태연히 걸어가 도끼를 다시 갈무리했다.

“돌아간다.”

“예, 옙!”

기사는 어느 때보다 기합이 바짝 들어 쏜살같이 숲을 벗어났다.

나는 배를 툭툭 두드리곤 그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래. 뭐가 잘못됐을 거라면 진작 잘못됐겠지. 벌써 십 년 전 일이다. 찜찜함을 애써 털어내며 성으로 돌아왔다.

* * *

독초 평원.

마물의 숲.

그리고 마지막 한 면은 용암지대였다. 이곳을 말할 때 영지의 마족들은 ‘영원히 식지 않는’이라는 수식어를 꼭 붙였다. 가까이 가기만 해도 약한 것들은 온몸에 불이 붙어 죽어버리는 저주받은 땅.

확실히 먼 과거엔 이 지대에 먹힌 목숨이 한둘이 아니었을 테지만, 그것도 새로운 마왕이 집권하기 전의 이야기다. 북방의 빙룡이 마왕에 오르고 대략 2천 년. 그때부터 이 영지는 꽤 살기 좋은 땅이 됐다.

- 기나긴 마계 역사에도 다시없을 강대한 자.

- 하얀 얼음 심장을 가진 용마족.

- 마음만 먹으면 마계를 통째로 얼릴 수 있는 초월자.

굳이 들으려 하지 않아도 그에 대한 말은 이 변방의 땅까지 들려왔다. 그 말들이 아니더라도 마왕의 대단함을 체감하는 건 날씨로 충분했다. 마계는 생긴 것이나 색감은 그로테스크해도 계절은 중간계와 비슷했다. 사계가 뚜렷해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웠다.

그런데 크라투스의 등장 이후 여름엔 서늘하고 겨울엔 강대한 마수조차 빈번히 얼어 죽었다. 사계의 저울은 겨울로 치우쳤다.

용암지대가 빛을 발한 건 그때였다. 모든 걸 불사를 만큼 폭력적인 열기와 계절의 축을 옮길 만큼 강한 냉기가 서로 상충하며 온화한 기후를 만들었다.

내 전대 영주 때부턴 마계의 휴양지로 유명했고 중앙귀족들은 영지 내의 저택을 앞다투어 사들였다.

머릿속으로 날짜를 계산했다. 이제 곧 겨울이다. 중앙의 높으신 분들이 휴양을 위해 내려올 시기가 된 것이다.

‘마지막 전투가 끝나고 나면 일제히 오는 건가.’

딱히 대접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역시 신경이 쓰였다.

‘겨울은 영주성에 틀어박혀 보내야겠군.’

그런 결심이 무색하게 계절에 한발 앞선 불청객이 영지를 찾았다.

* * *

숨을 헐떡였다. 처음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한 후엔 차라리 계속 모른 채로 있던 것이 낫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눈앞에 선 사내를 봤다.

푸른빛이 은은하게 서린 긴 은발의 미남자였다. 그가 가볍게 손을 털었다. 그때마다 주변에서 얼음 조각이 부스러져 내렸다.

“와, 진짜 많이 컸잖아.”

“…….”

“넘어온 걸 알고 있긴 했지. 금방 뒈질 줄 알았더니 먼지나 다름없던 녀석이 살아남을 줄이야. 심지어 고작 몇 년 새 이런 힘을 비축하고 영주까지 된 건가. 대단한데?”

가벼운 어투에도 그를 가볍게 볼 순 없었다.

이곳은 전장이었다. 그리고 방금까지 내가 상대하던 적들은 머리가 얼음으로 변해 죽어버렸다. 그걸 위해 저자가 한 일이라곤 손가락을 두 번 튕긴 것뿐이었다.

“나는 크라투스 레기아투스. 마계를 다스리는 마왕이다.”

“……!”

“선택권을 주지. 나와 같이 갈 테냐, 아님 여기서 죽을 테냐.”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랫동안 잊고 있던 위기감이 덮쳐왔다. 편의점 사장님을 따라 카운터 밑에 숨었던 때나 마계에 처음 떨어져 마물들에게 쫓겼던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공포.

눈앞의 아름다운 남자가 죽음 그 자체처럼 보였다.

‘덤비면 죽는다.’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손끝이 떨리며 초조함이 심장을 좀 먹었다.

“이봐, 빨리 선택해.”

거기서 무슨 다른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나는 살고 싶었다.

그를 따라 마왕성으로 갔다. 가슴에는 종속의 계약이 새겨졌다. 새로운 환경과 생활에도 나는 쉽게 순응했다. 마계 구석의 작은 성에서 깡패짓이나 하던 인간 출신 영주치곤 출세하지 않았나. 그렇게 자위했다.

하지만 크라투스는 제정신이 아닌 마족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인 미친놈이었다.

“시종이랑 말하지 마. 기사들도 안 돼. 귀족들도 안 돼. 그럼 누구랑 말하냐고? 넌 나 말고는 말하면 안 돼.”

크라투스가 손가락을 튕겼다. 오늘 간식을 스콘으로 할 건지, 샌드위치로 할 건지 내게 묻던 시종의 머리가 콰직 얼어붙었다.

“왜. 내 말이 농담 같아?”

가만히 나를 바라보던 녀석이 상큼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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