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나는 그대로 마을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엔 아무리 그래도 들키는 게 아닐까, 날 이상하게 여기는 마족이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싶어 몸을 사리며 들판에서 잠을 청했는데 지내다 보니 알게 됐다.
마족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관심 가지는 것 외엔 전부 무시했다. 무시하지 못할 만큼 기분이 나쁘면 공격부터 했다.
촤악!
숭덩 잘린 마족의 머리가 날아갔다. 마을에서 키우는 마물이 신나게 달려와 쓰러진 시신을 먹어치웠다. 죽은 마족은 뼛조각 하나 안 남기고 깨끗하게 사라졌다.
마물이 마을 내부를 어슬렁대길래 이 동네는 애완동물마저 살벌하다고 생각했는데.
‘시체처리용이었군.’
그렇게 심드렁히 생각한 순간, 나는 내가 마계에 완전히 적응했음을 깨달았다.
“오, 너 약해 보이는데 얼굴은 예쁘네. 오늘부터 내 노예 해라.”
그들은 막 나가는 기분파였으며.
“뭐, 싫어? 뒤질래?”
적자생존의 법칙을 아주 착실히 따랐다.
콰직!
덤벼드는 마족을 흠씬 두들겨 팼다. 바닥에 쭉 뻗었다 일어난 그가 납죽 엎드렸다.
“주인님으로 모시겠습니다.”
대답 없이 턱을 까닥였다. 나를 올려다보던 마족이 ‘혹시…’하는 기색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꺼질까요?”
고개를 끄덕이자 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가암사합니다!’ 늘어진 말이 나에게 닿지 못하고 중간에 툭 떨어졌다.
기함할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마을의 장을 이겼으니 이제 당신이 이 마을의 주인입니다!”
“…….”
마을에서 가장 강한 자를 쓰러뜨리면 그 마을의 장이 된다. 그렇게 권력을 차지해도 누구 하나 불만을 가지는 마족이 없다. 오히려 더욱 열성적인 지지를 받는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나는 마을 하나를 손에 넣고 그것으로 만족했다. 이제 겨우 한숨을 돌린 기분이었다. 나를 안내한 마족이 양손을 불끈 쥐었다.
“새로운 장이 탄생했으니 새로운 전투가 있겠군요!”
“…?”
…이 미친 전투민족 같은 놈들이 시즌마다 전쟁을 벌이는 줄 알았으면, 그냥 계속 숲에서 야인으로 살았을 것이다.
* * *
마족들에게 있어 전쟁은 일종의 스포츠 경기였다.
그것도 시즌제. 시작하는 날과 끝나는 날이 칼같이 정해져 있었다. 그 기간 내에 승패가 나지 않고 각 진영의 수장이 마지막까지 살아 있다면 영토를 더 많이 침범한 쪽의 승리로 쳤다.
그리고 나는 그런 전쟁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
“와아! 이겼다!”
“예니스 님! 예니스 님!”
마계에 떨어지고 10년.
나는 제법 이름을 날렸다. 문제는 어디서 전달이 잘못됐는지 어느 순간 모든 마족이 나를 ‘에이원 예니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서여원’이 저렇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정정하기 귀찮아서 그냥 두었다.
그동안 겪은 크고 작은 영토 전쟁은 셀 수도 없었다. 고작 숨만 쉬는데 전쟁이 세 번이 열렸다. 나는 그사이 마을의 장에서 도시의 장, 도시의 장에서 다시 하나의 성을 다스리는 성주가 됐다. 가진 거 쥐뿔도 없이 싸움만 잘하는데 어떻게 성주가 되나.
된다. 마계에선 당연한 일이었다.
처음엔 거절했다. 싸움을 잘할 뿐 영지를 다스리는 재주는 없다. 인구수를 한눈에 헤아릴 수 있는 작은 마을의 장이면 모를까, 본격적으로 성주를 하기에는 부담스러웠다.
그러자 전 성주의 기사단장이었다가 그의 목이 내 손에 잘린 후 이젠 내 기사단장이 된 마족이 이유를 물었다.
사실대로 말하자 고개를 갸우뚱거린 그가 한 무리의 마족들을 끌고 왔다. 척 봐도 약해 보이는 행정관들이었다.
“그건 이놈들이 할 겁니다.”
멸치 같은 마족들이 뻣뻣하게 굳어서 차례로 자기소개를 했다.
“윈슬럿입니다.”
“제논입니다.”
“툴라입니다.”
“…….”
말이 행정관이지 노예나 다름없는 이들이었다.
인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마족들 사이에선 최약체에 속했고 마계에서 약하다는 건 죽어 마땅할 이유였다. 다만 이들처럼 머리 쓰는 이들은 약해도 살아남는 경우가 많았다.
‘뭐, 살려서 부려먹는 편이 훨씬 나으니까.’
대체 무슨 반비례의 법칙인지 모르겠지만 마족들은 이상하게 강한 놈들일수록 무식한 놈들이 많았다. 그래서 애매하게 강한 놈들보단 이렇게 똑똑하게 약한 놈들이 외려 명줄은 더 길었다.
물론 이게 진짜 사는 건가 싶은 삶이긴 하지만 말이다. 매일 야근에 시달리고 그대로 밤을 새우는 경우도 흔했다.
심지어 일 처리가 제대로 안 되거나 일이 제때 안 끝나면 죽을 수도 있다. 일 좀 못한다고 사람을 죽이나?
죽인다. 마계는 그런 곳이었다.
그래서 아주 드물게 목숨을 걸고 탈주하는 행정관이 나오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오늘은 윈슬럿이 보이지 않는군.”
마침 윈슬럿이 보이지 않아서 그냥 그렇다고 한 것뿐이었다. 서류의 산에 파묻혀 있던 행정관들의 낯빛이 삽시간에 하얗게 질렸다.
“사, 살려주십시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일주일이 아니라 한 달 철야라도 하겠습니다!”
“…….”
대체 날 뭐로 보는 거냐는 말은 할 수 없었다.
나는 그냥 전쟁이나 하러 갔다. 도끼로 상반신만 늑대인 울프 트롤의 대가리를 찍었다. 손을 뻗어 우르르 달려오는 놈들의 바닥에 ‘공허’를 깔았다.
백담에 있을 땐 있는지도 몰랐던 속성이었는데 몇 번의 탈피를 거친 몸에 마나 대신 마기가 가득 들어차자 자연히 튀어나왔다. 공허에 발목이 낀 놈들이 엎어지며 전열이 흐트러졌다.
거기서 끝내지 않고 나는 손을 콱 움켜쥐었다. 그러자 소멸된 공허가 놈들의 발목을 함께 삼켰다.
“으아악! 아악!”
비명을 지르며 뒹구는 놈들의 머리에 다시 도끼를 꽂았다.
그렇게 묵묵히 전장을 가로지르다 보면 어느새 전투가 끝나있고, 그런 전투를 몇 번 끝내면 전쟁도 막바지였다.
내 이름을 연호하는 것도 이젠 무심하게 흘려들었다.
‘평화롭네.’
곧 날아들 새하얀 절망을 몰라서 할 수 있던 태평한 생각이었다.
* * *
영주라곤 해도 내가 다스리는 곳은 마계의 변방이었다. 영지는 새도 넘을 수 없는 높은 절벽을 등졌고 남은 삼면이 마주한 환경도 척박했다.
한 면은 독초로 가득한 평원이었다.
이것 자체는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계는 그보다 독한 마기로 가득한 곳. 실수로 발 들였다 죽는 건 아주 약한 개체뿐이다. 마족들은 이 독초로 독특한 차를 우려먹기도 했다.
문제는 그게 사실 풀인 척하는 기생형 마물이라는 점이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윈슬럿이 말하길, 동충하초 같은 것들이라고 했다.
차이점이라면 겨울에 곤충이 되고 여름에 풀이 되는 중간계 기생충과 달리 이 녀석은 자기 의지로 풀이 됐다 곤충이 됐다 할 수 있다는 것 정도?
크기는 엄지손톱만 하다. 지능은 매우 낮아 없다시피 하고 본능은 충만하다. 주로 짐승형 마물에 기생해 마기와 양분을 빨아먹고 그 마물이 죽으면 시체에서 다시 독초로 자라난다.
마셔본 적은 없지만 톡 쏘는 맛이 중독성 있다고 입맛을 다시는 기사단장을 보면 썩 나쁘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가끔 마력이 부족한 놈이 뭣도 모르고 마시는 경우도 있죠.”
마족이 독초차를 먹고도 멀쩡한 건 강한 마력에 기생충이 견디지 못하고 사멸해서다. 마력만 강하다면 마물을 먹어도 상관없다는 뜻이다.
반대로 마족이라도 빈약한 놈은 기생충이 몸을 장악한다. 칼부림을 벌이고 있는 저 새끼처럼.
“크아아악!”
“이, 이 새끼 막… 아악!”
피해자는 기사 견습생이었다. 증상을 본 기사단장이 혀를 차며 기생충이 맞다고 했다.
“기생형 마물은 이성을 누르고 본인의 욕망을 극대화시키거든요.”
그렇다는 건 저 무차별 학살이 저놈의 욕망이라는 건데. 과연 마족이라고 해야 할까, 역시 마족이라고 해야 할까.
“저 상태면 이미 늦었습니다. 이미 뇌까지 침투했어요. 차라리 지금 발견해서 다행입니다. 저대로 두면 나중엔 완전히 섞여서 오히려 겉보기엔 멀쩡해지거든요.”
“해결법은?”
“그냥 죽이면 됩니다.”
“그래.”
바로 달려가서 머리를 두 쪽으로 갈랐다. 병사들이 시신을 질질 끌고 사라졌다. 자중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성에 인접한 독초 평원의 가장자리를 불살랐다.
하지만 그 며칠 만에 다시 싹이 돋았고 일주일이 지나자 원상태로 돌아갔다. 마계의 풀답게 무서운 생명력이었다.
영지의 다른 한 면은 고대의 숲으로 통했다. 내가 처음 눈 뜬 곳도 이 숲이었다. 용암지대의 따뜻한 지열에 의지해 무성한 나무가 자라고 그만큼 많은 마물과 마수를 품은 곳. 그래서 마족들도 깊은 곳엔 함부로 들어가지 않았다.
나약했던 소년은 영주가 되어 그곳을 다시 찾았다. 처음 떨어졌던 곳을 한 번 가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무성한 숲은 거기가 거기 같았다. 결국 포기하고 돌아가려는데 뭔가 빛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
은은하게 빛나는 유리 조각이었다. 별생각 없이 집었다가 흠칫했다. 조각은 시리도록 차가웠다.
‘어디서 본 것도 같은….’
“오. 좋은 거 발견하셨네요.”
같이 온 기사가 불쑥 말했다. 어리둥절했지만 시종일관 무심한 표정 덕에 티가 나진 않았다.
“줄까.”
“정말요?”
대답 없이 정체 모를 조각을 내밀자 그가 굽신거리며 받아들었다. 그러곤 멀찍이서 풀을 뜯고 있는 사슴 무리를 향해 조각을 던졌다.
“…….”
기껏 줬더니 뭐 하는 거지. 시비 거는 건가? 저놈이 미치지 않은 이상 그럴 리가 없는데?
콰드득.
뭔가 뒤틀리는 소리가 귀를 잡아챘다. 돌아보니 방금까지 무리 지어 있던 사슴 형상의 마물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 자리엔 기사가 던진 조각이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다.
뒤통수가 오싹했다.
“엇, 영주님?”
바닥에서 조각을 다시 집어 들었다.
끼이이.
귀를 긁는 듯한 사슴형 마물의 비명이 희미하게 들렸다. 푸르게 회오리치는 구슬 내부로 발악하는 마물의 모습과 익숙한 도시의 정경이 잠깐 보였다 사라졌다.
“미친.”
자연히 깨달았다. 이게 게이트의 정체였다.
하지만 그 충격도 이어진 깨달음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나 이거 마계 넘어올 때 삼켰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