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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를 잡는 방법 (2)화 (2/106)

2화

협회에서 나왔다는 두 명의 남자가 나를 데려갔다.

그들은 책상 하나와 의자 둘뿐인 삭막한 방에 나를 집어넣었다.

나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냥 그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 뒀다. 양복을 입은 남자는 내 손목에 정체불명의 기계를 댔다. 작은 화면에 신상 명세가 떴다.

[서여원. 8세. F급.]

가만히 고개를 들어 사내를 보자 그가 방금 기계를 댔던 내 손목 안쪽을 톡톡 두드리며 여기 ID칩이 심겨 있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그렇구나, 하고 다시 시선을 내렸다.

“안 놀라네? 헌터라는 걸 알았을 가정환경이 아니던데.”

이미 알고 있었다고 굳이 부연하지 않았다. 나를 관찰하던 남자가 ‘뭐, 상관없지’라고 중얼거리고는 저들끼리 말을 나눴다.

“검사결과는?”

“일단 F급이고 조건에 얼추 맞아. 혈액형이 다르긴 한데.”

“사소한 거네.”

“그쪽에선 중요하다고 했어.”

“알 게 뭐야. 등급만 맞으면 됐지. 저번에도 다른 혈액형인 놈을 섞어 보냈는데 아무 말 없었잖아.”

“하긴.”

의미를 알 수 없는 대화가 끝나고 그들이 일제히 나를 돌아봤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오싹함을 느꼈다. 주춤거리며 몸을 뒤로 물렸다. 끼익, 의자가 바닥에 끌리며 소리가 났다.

그 순간, 두 남자가 나를 향해 거칠게 달려들었다. 나는 뒤늦은 저항을 시도했다.

“가만히 있어. 너만 다쳐.”

불에 그슬린 나방의 날갯짓처럼 부질없었다.

남자는 너무나 쉽게 나를 제압했다. 그사이 다른 사내가 품에서 작은 은빛 케이스를 꺼내 열었다. 안에 담긴 건 수상한 주사기였다.

이를 악문 나를 향해 사내가 여상하게 말했다.

“괜찮아. 금방 끝나.”

거짓말은 아니었다. 바늘 끝이 내 팔뚝을 파고들고 오래지 않아 시야가 일그러졌다.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아주 좁은 방이었다. 직사각형의 공간에 있는 거라곤 세면대와 변기, 침대뿐이었다.

‘뭐야…?’

고개를 들자 희미하게 불이 들어온 전구가 보였다. 내부가 어둑하게나마 보이는 건 저 전구 덕인 것 같았다.

“어이, 불 꺼!”

철문 밖에서 울리는 큰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직후, 불이 꺼졌다. 온통 어둠이었다. 손으로 더듬어 움켜쥔 얇은 이불 밑으로 숨어들었다. 떨림이 가시지 않았다.

나는 앞날에 대한 두려움에 몸을 웅크렸다.

* * *

철문에는 두 개의 구멍이 있었다. 네모난 곳에선 끼니마다 밥이 들어왔고,

“어이, 빨랑빨랑 내밀어.”

동그란 구멍은 팔을 내미는 용도였다. 창백한 피부에 주삿바늘이 꽂혔다. 내용물은 몰랐다. 다만 맞고 나면 며칠은 몸을 가누기 힘들 만큼 앓았다.

나만 그런 건 아닌지 주변에서 희미한 신음과 비명이 들렸다. 소리는 오래지 않아 잠잠해졌다. 날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리 짧은 시간이 아니라는 것만 짐작할 뿐.

철문이 다시 열린 건 여섯 번째 주사를 맞은 후였다.

“나와.”

복면의 사내가 재촉했다. 주춤거리고 두리번거리며 문을 나섰다.

방 밖은 엄청나게 넓은 공간이었다. 지하에 어떻게 이런 시설이 있을까 싶을 만큼 거대하고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공간의 중심에 총기로 무장하고 복면을 쓴 이들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마른침을 삼키며 힘겹게 나아가는데 뒤에서 소란이 일었다.

뒤를 돌아보자 몇몇 사람들이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며 반쯤 끌려 나오는 게 보였다. 하나같이 초췌한 몰골이었다.

나는 그제야 내가 갇혀 있던 곳이 무수한 문 중 하나라는 걸 알게 됐다. 벌집처럼 빽빽하게 늘어선 철문에 질린 것도 잠시, 열린 문들이 눈에 들어왔다.

여섯 개뿐이었다. 대부분의 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다. 저 너머가 어떨지 생각하자 갑자기 썩은 내가 나는 것 같았다.

불쑥 떠오른 생각을 외면하듯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복면의 사내들이 재촉하듯 나를 보고 있었다. 이를 악물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목표 지점에 가까이 다가섰을 때쯤 뒤늦게 이상함을 알아차렸다.

“으븝! 읍!”

사내들의 발밑엔 붉은 원과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고 오망성(五芒星) 모퉁이마다 꽁꽁 묶인 사람들이 발버둥을 쳤다.

‘이게 뭐야?’

게이트가 열리고 거기서 마물이 기어 나오는 세상에서도 이런 건 판타지였다.

“여섯 명이라. 준수하네.”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복면 대신 검은 가면을 쓴 사내가 마법진 건너편에 서 있었다.

그가 손짓으로 신호를 보내자 무기를 든 괴한들이 사람들의 등을 거칠게 찔렀다. 강제로 떠밀린 이들이 모두 진 위로 올라서자 가면의 사내가 말했다.

“지금부터 한 가지만 생각해라.”

들떠 있던 목소리가 깊이 가라앉았다.

“살아남는 것.”

우리를 향해 번들거리는 눈에선 형용할 수 없는 광기까지 느껴졌다. 

“반드시 살아남아서 그리샤의 삼초승달을 찾아와라.”

그 말과 함께 진이 빛을 내기 시작했다. 동시에 오망성에 묶여 있던 다섯의 복면인들이 몸을 뒤틀며 괴로워했다.

심상찮은 분위기에 사람들이 기겁했다. 괴한들은 익숙한 듯 총구를 들이밀며 이탈을 막았다.

주변의 소란에도 나는 가면의 사내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재킷 안쪽에 손을 넣은 그가 뭔가 끄집어내 진 가운데에 던졌다. 작은 천 주머니였다.

잘그락.

주머니 안에서 조약돌 같은 것들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여전히 패닉 상태인 사람들은 주머니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퍼억!

격하게 꿈틀거린 복면인의 머리가 터졌다.

퍽! 퍼벅!

두 번째와 세 번째도 같은 방식으로 죽었다. 마침내 사람들이 총구를 무시하고 메뚜기 떼처럼 밖으로 향했다.

괴한들은 이 상황이 익숙한 듯 능숙하게 저지했다. 사정없이 걷어차는 발길질에 탈출을 감행한 사람들이 짚단처럼 쓰러졌다.

나는 난장판 속에서도 홀로 고요했다. 가면의 사내가 흥미롭다는 시선을 보냈다. 그를 잠깐 마주 보다 진의 중앙으로 고개를 돌렸다. 덩그러니 놓여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주머니가 보였다.

왜 그랬을까.

돌이켜 봐도 이유는 알 수 없다. 나는 몸을 던져 주머니를 움켜쥐었다. 갑자기 움직인 탓일까. 근처에 서 있던 복면인이 당황을 숨기지 못했다. 진 안쪽으로 다가갈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

그런 동요도 가면의 남자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단숨에 여유가 사라졌다. 가면을 뚫고 드러난 경악이 내가 지금 옳은 일을 하고 있다 말했다.

손에 잡히는 감촉은 딱딱했고 작았으며 약간 둥글었다. 일그러진 유리구슬 같은 느낌이었다. 헐거워진 입구에서 쏟아진 하얀 것들을 한 움큼 손에 쥐었다.

원래는 남자를 향해 던지려고 했다. 하지만 그게 의미가 있나? 다시 이쪽으로 던지면 그만이잖아.

고민은 짧았다. 나는 구슬을 입에 털어 넣고 그대로 삼켜버렸다.

“이런 미친…!”

히죽 웃었다. 미친 짓을 한 보람이 있었다.

그 순간 갑자기 시야가 하얗게 변했다. 그게 차게 얼어붙기 시작한 속 때문인지 아니면 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 때문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한기와 함께 나는 그대로 고꾸라져 의식을 잃었다.

.

.

눈을 뜨자 보라색 하늘이 보였다.

붉은 땅에는 오색의 독초가 가득했고 흉측하게 생긴 괴물들이 사방을 어슬렁거렸다. 꿈에서 덜 깼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크기가 다른 세 개의 초승달이 비웃듯 나를 내려다봤다.

마계였다.

* * *

마계에서의 모든 순간은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다.

숨만 쉬어도 농도 짙은 마기가 스며들어와 폐를 쑤셨다. 나약한 인간의 몸은 순식간에 망가졌다. 장기가 뒤틀리고 쉴 새 없이 피를 토했다.

같이 떨어졌던 사람들 반절이 하루 만에 죽었다. 나머지가 다시 하루 간격으로 죽어 나갔다. 나는 사흘 만에 혼자가 됐고 점점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존재로 변했다.

마기는 인간인 내 몸을 망가뜨림과 동시에 그 정순한 힘으로 무너진 신체를 복원시켰다. 다시 만들어진 몸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강인하고 단단했다.

일종의 탈피였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 수반됐다. 손톱이 박힌 손바닥에서 피가 흐르고 입술의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가, 변화가 끝나면 다시 수복됐다.

마물에게 뜯긴 왼손이 다시 생겼고 식인 식물에게 녹아버린 오른손 또한 다시 생겨났다. 새로 돋아난 손은 흉 하나 없이 깨끗했다. 손가락으로 손목 부근을 쓸어봤다. 여기 박혀 있었을 ID칩은 이제 없을 것이다.

물에 비친 내 눈은 점점 형형해지고 독해졌다.

마기를 잔뜩 품은 물을 달게 마시게 되었을 때, 나는 마침내 작은 쥐 마물을 사냥해 잡아먹었다.

날고기를 먹는데 거부감이 없었다. 잇새로 씹히는 쓰디쓴 내장이 달게 느껴졌다.

석류를 먹고 저승에 속하게 된 신을 떠올렸다. 불한당에게 납치를 당하고도 굽히지 않던 기개나 우아함은 없다.

나는 기꺼이 타락하여 마계의 주민이 됐다.

몸을 움직이고 무언가 먹을수록 내 육신은 스펀지와 같이 마기를 흡수했다. 그러다 어느 임계점에 도달하면 익숙한 변화가 찾아왔다. 몸이 뒤틀리고 내장이 찢기다 어느 순간 괜찮아졌다. 그럼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강해진 자신이 있다.

몸을 옥죄던 마기가 어느 순간부터 느껴지지 않았다. 물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물고기처럼 갑갑하던 기분도 가셨다.

내 사냥감도 그에 따라 바뀌었다. 쥐에서 늑대로, 흉포한 마수로, 마지막은 키가 5m가 넘는 거대한 골렘이었다.

쓰러진 마법 인형의 가슴에서 주먹만 한 핵을 빼 쥐고 마계의 마을을 방문했다. 혹 인간인 걸 들킬까 긴장하고 망설였는데, 걱정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의심하는 자는 없었다. 인간화가 가능한 준 마족이 많다 보니 나 정도는 색다른 돌연변이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핵을 돈으로 바꾼 후 가장 먼저 옷을 샀다. 걸레가 된 천 쪼가리를 벗고 평범한 옷에 후드를 뒤집어쓰자 외관상으로는 쉬이 구별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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