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일단 시공의 궤적에 대한 전설을 말해 줄게. 옛날, 아니 옛날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그 시간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태곳적 일화였어. 그게 어떻게 고대 문헌에 기록되었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일단 내용은 이래.”
“…….”
“두 개의 우주가 존재했고 각각의 창조주들이 있었지. 그 둘은 서로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되었는데 각자 우주를 통치하면서 자신들의 업적이 더 크다고 자랑했어. 그리고 그 두 명의 창조주들은 자신감에 차 있었고, 토론하며 절대 지지 않으려 했지. 자기가 더 우월하다고 말이야. 그렇게 사소한 경쟁심은 결국 싸움으로 번지게 되었지. 후후. 그러나 그런 긴 대결에도 그 누가 더 잘났는지 결판이 나지 않았고.”
“…….”
“그래서 그 둘은 하나의 게임을 하기로 했고 그 결과에 따라 한쪽이 승복하기로 의견을 모았어. 그렇게 시작된 게임은 바로 하나의 검을 만들고 그 검을 제삼자의 또 다른 우주 창조주에게 보내기로 했지. 바로 그 검에 각자 자신들의 능력을 담아내고 과연 그 위력 여하에 따라 제삼자의 창조주가 판단하게끔 말이야.”
그때 이안이 그녀의 말을 끊고 물었다.
“그냥 단순히 그 위력을 보고 판단한다고? 그건 너무 단순하잖아. 게임이라면서.”
그러자 피체가 그를 나무랐다.
“그건 아니지.”
“아니라고? 그럼 뭐야?”
“그러니까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보라고.”
“알았어, 계속해.”
“그래 네 말이 맞아 어디까지나 게임이니까 그렇게 단순하면 재미가 없지. 게임의 법칙은 이랬어. 두 명의 창조주의 능력이 실린 그 검은 제삼자의 다른 우주 창조주에게 보내지며 하나의 거대한 우주를 관통하는 과정을 겪는 거지.”
“과정? 검이 혼자서?”
“아니. 한 명의 대상이 그 검을 가지고 우주를 모험하며 그 위력을 직접 실험해 보는 거였어.”
이에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말이 되네. 그래야지만 비교를 할 수 있으니까.”
“맞아. 그 검 안에는 두 명의 창조주들의 권능이 담겨 있으니 두 개의 특색이 다른 검술이 들어 있었지. 그리고 그 검의 주인공은 정말 우주의 각 곳을 돌아다니며 활약했어. 각각의 검술을 사용하면서.”
“와. 그거 대단했겠군. 창조주들의 권능을 사용했으니. 그래서 어느 쪽이 우세했지.”
그러나 피체는 빙그레 웃었다.
“후후. 처음엔 막상막하였어. 그런데 문제가 복잡해지기 시작했지.”
“복잡해지다니?”
“검의 주인공은 두 개의 검술을 사용하면서 한쪽이 우세한 것을 감지했지. 하지만 역부족으로 패한 다른 창조주는 열이 받아 그 검에 자신의 또 다른 권능을 다시 부여한 거지. 그렇게 되면 그 창조주가 우세하고. 또 이에 패한 다른 창조주가 또 화가 나서 자신의 권능을 가세하며 역전이 되고 그런 상황이 계속 되풀이되며 게임이 좀처럼 끝나지 않는 거였어.”
이안 역시 그녀의 말을 듣다 피식 웃었다.
“서로 게임의 법칙을 깬 거네. 그 승부욕 때문에.”
“맞아. 그런데 여기서 웃지 못할 상황이 일어났지, 바로 두 명의 창조주들이 계속 혼신의 힘을 들여 끊임없이 권능을 추가하니 그 검의 위력은 그야말로 엄청나게 강해지는 거였어. 그렇게 검은 우주의 시공을 돌아다니며 하나의 궤적을 만들었지.”
“궤적? 그건 무슨 뜻이야.”
“검이 가는 곳은 그 어느 곳이든 초토화가 되어 버렸고 그 때문에 그 검의 행로를 뜻하는 일명 ‘시공의 궤적’이란 명칭이 붙은 거였어.”
이안은 다소 놀란 듯 말했다.
“아! 시공의 궤적이 그렇게 나온 이름이구나.”
“그리고 검의 최종 목적지는 아까도 말했듯이 제삼자의 우주 창조주에게 가는 건데. 결국 그 종착역에 도착했지. 그런데 제삼자의 창조주는 그 검을 직접 받아 보고 황당함을 느낀 거야. 도대체 자신에게 의뢰를 맡겼던 두 명의 창조주 중 누가 더 강한지 판단이 서지 않는 거였지. 이미 그 검 안에는 그들의 권능이 수없이 쌓여 넘치고 넘쳤기 때문이지. 다시 말해서 그 누구의 권능이 더 센지, 너무 강대해서 그 비교 대상도 없었고 그렇기에 해답도 미루는 상태였지.”
“그래도 한쪽이 우세하다는 판단은 해야지. 그들의 권능이 또 같을 수는 없잖아.”
“그래서 그 제삼자의 창조주는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결국 이런 방법을 찾아내게 되었지.”
“무슨 방법?”
“그 역시 자신의 권능을 검에 불어 넣어 직접 두 명의 의뢰 창조주들의 권능을 비교하며 그 해답을 발견하려고 했어.”
이안은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와! 그럼 뭐냐? 그 검 안에는 도합 세 명의 창조주들의 권능이 실린 셈이잖아.”
“그렇지. 세 명의 우주 창조주들……. 어때 후덜덜하지.”
“상상이 가지 않아. 그 검 안에 실린 검술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그래서 결정은 났어?”
“흠. 나긴 났지. 제삼자 창조주의 권능으로 두 명 중 한 명을 선택할 수 있었으니.”
“그거 다행이네.”
“바로 그 검술이 오늘날 ‘시공의 궤적’이 된 거지.”
이안은 잠시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궁금하네. 그 시공의 궤적이란 검술을 누가 얻었고 어떤 방법으로 배울지. 아니 그건 세상 그 어떤 존재도 그 검술을 익힐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는데. 세 명의 창조주의 권능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 말이야.”
피체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이안. 네 말이 맞아. 우주 천지에 그런 검의 권능을 받아 줄 만한 존재는 절대 없지. 하지만 세상에는 절대라는 용어가 어울리지 않을 만큼 항상 예외적인 방법이 나타나 그것을 해결하곤 하지.”
이안은 정말 궁금했다.
“그게 뭔데?”
“바로 꿈.”
“꿈?”
“그래 꿈을 통해서 그 권능을 얻는 방법이 존재했지.”
“혹시 그 꿈이 요즘 내가 배웠던 드림워커 기술이야?”
“흠. 이제야 너랑 말이 통하네.”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그야 물론 꿈이니까 가능한 거지.”
이안은 답답한 듯 그녀를 보챘다.
“조금 더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해 봐. 어떻게 꿈을 통해 그걸 익힐 수 있는지.”
피체는 다소 실망한 듯.
“조금 전까지는 이야기가 통하는 줄 알았는데. 너는 드림워커 기술을 배우고도 짐작이 가지 않니?”
“그런 무시하는 투로 말하지 말고 당장 설명해 봐!”
피체는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이안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잘 들어. 드림워커 기술이 얼마나 대단하고 멋진 건지. 우선 이 이야기부터 해 줄게. 인간이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이 내려준 최고의 선물이자 축복이라는 사실. 왜냐하면 생명체는 육체의 틀에 갇혀 항상 현실의 제약받아 힘겹게 사는데 꿈속에서는 그들이 무한한 상상력으로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이지.”
이안은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설마. 꿈을 통해 그 권능을 익힐 수 있다는 걸 지금 말하려는 거야? 아무리 그렇다지만 인간이 어떻게 창조주의 권능을……. 그건 내가 아무리 백번 양보한다고 쳐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야.”
“후후. 그렇지. 단순히 꿈을 꾼다는 것만으로, 그런 엄청난 권능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말도 안 되지. 하지만 꿈을 통해 고도로 숙련된 드림워커 기술자들에게는 가능한 일이야. 바로 우리처럼.”
이안은 어안이 벙벙한 채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가능하다고?”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궁금하지 않아?”
“궁금하다니?”
“드림워커 기술에 대해서 말이야. 그 기원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말이야.”
“물론 궁금하지.”
“그럼 계속 내 얘기 들어 봐. 세 명의 창조주들은 각자 자신의 권능이 담긴 그 검이 그대로 잊히는 것을 아쉬워했지. 우주에 존재하는 피조물 중에 그 누군가는 자신들의 능력을 이어받을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나기를 바랐던 거야.”
“…….”
“하지만 그들 역시 그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어. 그래서 그들은 그 문제에 대해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게 되었어. 과연 자신들의 권능을 어떻게 하면 인간이 물려받을 수 있나 하고. 그때 한 창조주가 묘안을 냈어. 바로 인간의 꿈을 이용하며 가능하다는 사실을 말했지. 그래서 내린 해결 방법은 꿈을 통한 고도의 숙련된 기술로 그게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한 거지.”
이안은 말을 듣다가 자신도 모르게 손뼉을 쳤다.
짝짝짝짝!
“와! 이거 소설보다 더 흥미로운 이야기인데!”
“그런데 말이야. 우리 같은 보통의 인간들에게는 아무리 드림워커 기술을 배운다고 할지라도 한계가 있어. 창조주의 권능은 그 자체적으로 최상의 존재 속에서 나온 검술이기에 말이지. 적어도 그걸 물려받을 수 있는 인간은 어느 정도는 물리적이나 정신적으로 상당한 고도의 경지에 이르러야 가능하지.”
“그런 인간이 존재할 리가 있나? 그 정도면 신인데?”
“하지만 우주는 광활하고도 드넓잖아. 그렇기에 수많은 인간 중에 거의 신의 경지에 이른 인간이 존재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아무튼 그런 인간이라면 꿈을 통해 그 ‘시공의 궤적’을 얻을 수 있지. 단 문제가 있어.”
“문제라니?”
“그런 궁극의 경지에 이른 인간은 한편으로 드림워커 기술을 배우지 못할 수 있다는 문제. 너도 알다시피 드림워커라는 것을 일반적으로 폭넓게 알려지기보다 그 어느 특정인만 관심을 가지는 분야이지. 그래서 꿈을 통해 그 권능을 얻는 과정에서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거야.”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그러자 피체는 그 앞에 서 있는 이형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이 사람처럼 이렇게 멍하니 있는 거지.”
이안 역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흠. 그건 그렇다치고 그럼 이 사람이 신의 경지에 이른 그 인간이겠네.”
“그렇다고 봐야지. 분명히 이 사람은 ‘시공의 궤적’을 얻으려고 아직도 꿈에서 헤매고 있으니까.”
“야! 오늘 너의 이야기 들으면서 정말 놀랄 일이 많네. 그나저나 또 궁금한 게 있는데 이 사람은 어떤 방법으로 꿈에서 시공의 궤적을 배울 수 있다는 거지.”
“거기에는 하나의 스토리가 이어지지. 마치 현실에서 겪는 것처럼 애초 계획된 삶을 살며 그 검술을 차곡차곡 배우게 되지. 하지만 그게 너무나 현실 같아서 그냥 현실로 인식하고 꿈에서 깨어나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고.”
“그럼 이 사람은 꿈의 그 스토리 과정에서 ‘시공의 궤적’을 익혔다는 말인가?”
“그건 나도 자세히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그렇다고 봐야지. 왜냐하면 그걸 익히지 못하면 꿈속에서조차 형체도 없이 소멸하는데 이 사람은 아직도 건재하잖아.”
이안은 다시 이형도를 바라보며 감탄했다.
“도대체 이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이기에 그 엄청난 권능을 익히도록 선택을 받은 거지?”
“글쎄다. 그건 나도 모르는 일이고 아무튼 안타까운 일이야. 아마도 이 사람 영원히 꿈속에서 깨어나지 못할 것 같아서 말이지.”
그때 이안의 눈빛이 번뜩였다.
“우리가 이 사람 깨어나게 해 주면 되잖아.”
그러자 피체는 화들짝 놀랐다.
“그건 안 돼!”
“왜 안된다는 거지?”
“아무튼 안 돼. 그럼 우리가 위험해져.”
“뭐가 위험하다는 거야?”
“우리가 배운 드림워커 기술이 사라진단 말이야.”
“사라진다고? 왜?”
“아까도 말했듯이 이 사람은 거의 신의 경지에 이른 인간이라 우리가 드림워커 기술을 사용하면 그 즉시 우리의 능력을 흡수해 버린다고. 물론 대신 깨어나게 되지만.”
그 말을 들은 이안은 잠시 생각하다가 피체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흠. 이 사람을 깨어나게 해 주는 것은 가능하다는 이야기이군. 그럼 그렇게 해 주자.”
“이안! 그럼 너 마왕에게 죽임을 당하잖아. 드림워커 기술을 사용할 수도 없고.”
그러자 이안은 피식 웃었다.
“후후. 죽지 않을 방법이 있어.”
“죽지 않을 방법?”
이안은 이형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사람 말이야. 어차피 우리가 깨어나게 해 주면 그 어마어마한 기술인 ‘시공의 궤적’을 자기 것으로 익히게 되잖아.”
“그래서?”
“뭐가 그래서야. 이 사람에게 우리 대신에 마왕을 처치해 달라고 하면 되잖아.”
그 말을 들은 피체는 깜짝 놀라며 외쳤다.
“아! 그런 방법이 있었네!”
“후후. 솔직히 나 마왕을 직접 상대하는 것도 두렵고 과연 내가 드림워커 기술을 성공할지도 미지수여서 무척 겁이 나. 그래서 차라리 내 기술을 이 사람에게 써먹고 대신 우리를 도와 달라고 하면 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