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특히 벼랑 끝에 몰린 이안 같은 경우에는 절박한 심정과 함께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일념이 통했는지 자각몽의 최초 단계인 딜드(Dild) 단계에 오르기까지 보름여밖에 걸리지 않았다.
딜드란 꿈을 꾸다가 우연히 자신이 꿈속에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없는 그로서는 바로 그다음 단계인 와일드(Wild) 기법을 익혀야만 했다.
와일드란 잠이 들지 않은 상태에서 명상 기법으로 꿈을 생성해 내고 그 안에서 자각몽을 꾸는 중급 단계를 말한다. 와일드는 반드시 딜드를 완전히 마스터한 뒤에야 수련이 가능하다.
특히 정신과 육체를 따로 띄워 놓는 이완 요법이 필요한데 보통 수련자들은 그것을 가장 어려워한다.
와일드를 위한 이완기에는 온몸의 힘을 빼고 편하게 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가벼워진다는 상상을 하는데 이는 맨정신에서 수면 유도를 하는 자가 수련법이다.
하지만 조심해야 할 것은 깊은 수면에 빠진다면 그대로 잠이 들어 낭패를 맛보는 수가 있고 그렇다고 의식이 너무 뚜렷하면 과도기에 들지 않을 수 있으니 그냥 깨어 있는 상태로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안은 현재 이 부분에서 가장 힘들어하는 중이다.
가뜩이나 마음이 급한 상태에서 꿈도 아닌 현실도 아닌 그 중간이라 말할 수 있는 그 세계에 도달한다는 것은 엄청난 집중력, 혹은 상당한 운이 필요할 수도 있었다.
피체의 말에 의하면 그 자신도 와일드 단계에 오르기까지 무려 2년이 걸렸다고 했다.
그러나 이안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수개월에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물론 그에게는 최고의 선생이자 드림워커인 피체가 있었다. 그녀가 꿈에 개입함으로써 그의 수련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었다.
“네가 와일드 단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그 어떤 두려움도 느껴서는 안 된다는 거야. 분명히 말하지만 지금 네가 수련하는 것은 마법이 아닌 일종의 초자연현상으로서 본인의 마음을 다스리는 법부터 확실히 배우고 그다음에 순리에 순응하는 법을 알아가야만 하거든.”
피체의 말에 이안은 갑갑한 심정이었다.
“몸은 확실히 이완이 되는데 그다음부터가 정말 어렵다고. 갑자기 삐 소리가 나며 눈앞에 이상한 문양들이 보이기 시작하며 결국에서 귀신같은 것들이 아른거리니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서 깨어 버린다고.”
그녀가 오히려 더 답답해하였다.
“그건 네 뇌가 만들어 낸 상상에 불과하다고 몇 번이나 말했니. 그때마다 속으로 외치라고. ‘난 꿈을 꾸고 있다. 난 꿈을 꾸고 있다. 하고 암시를 따라가며 상상력을 조절하라고. 그렇게 하면 귀신의 형체는 점점 사라져 가고 그다음에 이완 단계를 넘어 과도기에 오르게 되는 것이야.”
이안은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힘없이 대답했다.
“알았어.”
“말로만 대답하지 말고 집중해 봐.”
“그런데 요즘 들어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 틈만 나면 꿈에 집중하는 수련을 하다 보니 대체 내가 지금 현실에 있는 건지 꿈속에 있는 건지 분간이 가지 않아. 지금도 그래. 정신이 몽롱한 것이,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데 이거 현실이 맞지? 설마 네가 네 꿈속에 들어와서 지금 말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이안은 그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했다. 보름이란 그 짧은 시간 내에 딜드 단계에 올랐고 이제는 와일드 단계에 진입하려는 그에게 부작용이 찾아오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꿈과 현실을 구분하는 법은 생각보다 쉬워.”
“어떻게?”
“일단 내 말대로 해 볼래? 가운뎃손가락을 젖혀서 손목에 닿게 해 봐.”
서원은 그녀의 말대로 했다.
“어? 손가락이 손목에 닿네!”
“현실에서는 얼마 가지 못하고 통증이 느껴지지만, 꿈속에서는 엿가락처럼 휘어지면 손목에 닿아.”
그는 이번에도 놀란다.
“그렇다면 이것도 꿈이란 말이야! 나는 분명 현실인 줄 알았는데.”
그는 자기 머리카락을 움켜잡고야 말았다.
“도대체 내 실체는 어디 있는 거지. 정말 혼란스럽군. 이러다가 마왕에게 가기도 전에 내가 먼저 미쳐 버릴 것 같아.”
그런 그에게 피체는 그다지 위로해 줄 마음은 없었다.
“애초부터 쉽게 생각하고 시작했다면 지금이라도 포기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코를 막고 숨을 쉬어 봐. 물론 현실에서는 금방 숨이 막힐 테지만 꿈에서는 가능한 일이거든. 그다음에 네 손가락으로 다른 손바닥을 찔러 봐. 그게 통과가 된다면 그건 꿈이지. 그러니까 현실에서 가능하지 못한 일이 쉽게 이루어진다면 그건 꿈이 확실해.”
“아, 알았어.”
“알았으면 당장 꿈에서 깨어나서 다시 와일드 기법 수련을 시작해.”
그로부터 한 달 후.
드디어 이안은 성공했다. 드림워커의 와일드 기법은 정말로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흥미로웠다.
그 최종 기술이란 바로 남의 꿈속에 들어가 그의 꿈을 지배할 수 있다는 사실.
만일 그게 그러하다면 이안은 당장 마왕의 꿈속에 들어가 그를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아니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
이안은 흥분한 나머지 바로 마왕의 꿈속에 들어가려고 했다. 그때 피체가 화들짝 놀라 그를 말렸다.
“이안! 당장 그만 뒤!”
“그만두라니?
”너무 섣불리 행동하지 말라는 거야.“
”아니 나 이제 드림워커 성공했잖아.“
”그건 알겠는데. 그래도 돌다리는 두드려 보고 건너라는 말이 있잖아.“
”그거야 그렇지만 나 급하다고.“
”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는 말 몰라?“
“돌아가다니? 어디로?”
“마왕 이전에 네 현재 드림워커 기술을 시험 해 볼 수 있는 다른 사람.”
“다른 사람? 그게 누군데.”
“그건 나도 몰라. 네가 드림워커의 기술로 남의 꿈속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특정인이 아닌 랜덤으로 그 누구든 선택하고 시험을 해 봐야 한다는 거지.”
“랜덤으로?”
“그래.”
“그건 무작위성인데.”
“맞아. 그 누가 걸릴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그 대상이 현재 자기 드림워커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자라는 거지.”
“빠져나오지 못하다니? 설마 스스로 자기 꿈속에 갇혔다는 뜻이야.”
“그래.”
“그게 가능해?”
“가능하지. 드림워커 기술을 배우지 못하고 성급하게 꿈속에서 지내다 보면 그 안에 영원히 갇히게 될 확률이 높거든.”
“와 그 사람 무척 답답하겠다.”
“아니. 자기가 꿈에조차 갇힌 것을 인지하지도 못하니 아무것도 모르는 거지.”
“그런 자가 정말 있다고?”
“바로 네가 시험해 볼 사람이 그런 꿈속에 갇힌 자 중 하나이지.”
* * *
잠시 후
이안은 랜덤으로 남의 꿈속에 들어갔다.
그는 사방을 둘러보며 혀를 내둘렀다.
“와. 여기가 다른 사람의 꿈속이라고? 그런데 뭔가 별들이 무수히 빛나는 것이, 우주 느낌이 나는데.”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놀랍게도 거대한 물체가 지상에 꽂힌 채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 것이었다.
“와. 이거 뭐야!”
다시 살펴보니 거대한 검의 형상을 한 것, 같았고 그 검 끝으로부터 엄청나게 밝는 빛줄기가 저 우주로 마구 뻗치고 있었다. 마치 은하를 관통이라도 하는 듯. 이안은 그 거대한 검으로부터 정말이지 강대한 힘이 느껴졌고 자기도 모르게 더 가까이 가서 살펴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검 손잡이에 뭐라 쓰여 있었는데 읽어 보니.
[시공의 궤적]
“시공의 궤적이라니……?”
이안은 고개를 갸웃하다가 바로 옆에 누군가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헉! 누, 누구세요!”
하지만 그는 눈을 뜬 채 미동조차 하지 않고 그대로 서 있기만 할 뿐이었다.
그때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한 여인의 형상.
“이안. 여기서 뭐 해?”
그녀는 피체였다.
“아, 아니. 분명 남의 꿈속에 들어왔는데 여기 거대한 검하고 그 앞에 한 남자가 서 있어. 그나저나 너도 여기 꿈속에 들어온 거야?”
“그래. 네가 걱정이 되어서.”
“마침 잘 들어왔다. 지금 이 상황이 뭐냐?”
피체 역시 검과 사내를 살펴보더니 짐작이 가는 게 있었다.
“저기 서 있는 사내가 이 꿈의 주인공이야.”
“주인공? 그런데 왜 저렇게 멀뚱히 서 있지?”
“그건 일종의 허상군이라 불리는 증세이지.”
“허상군? 그게 뭔데.”
“자기 꿈에 사로잡혀 그야말로 현실과 꿈을 구별하지 못하고 그대로 갇혀 지내는 자의 모습.”
“그러니까 저자가 그렇다는 거야?”
“응. 안타까운 일이지. 그는 계속 자신이 만들어 낸 허상 속에 깨어나지를 못하고 있어.”
이안이 이번엔 바로 앞에 거대한 검을 가리키며 물었다.
“여기, 이 검은 뭐지? 그리고 손잡이에 시공의 궤적이라고 쓰여 있어.”
피체는 그것을 바라보며 무슨 이유인지 다소 놀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시공의 궤적이라고……? 설마… 아냐. 아닐 거야. 그건 드림워커에서도 절대 불가능한 최상의 기술 ‘니로베라’인데… 당연히 아니겠지.”
그 말에 이안이 되물었다.
“니로베라가 뭔데 그렇게 놀라는 거니?”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말해 줘도 모를 거야.”
“아니. 그걸 네가 왜 판단해! 일단 말해 보라고. 내가 알아서 이해할 테니까?”
피체는 잠시 얼굴이 창백해졌다가 겨우 말문을 열었다.
“보통의 경우 드림워커 기술은 그 당사자가 원할 때 먹히는 것이거든. 즉 지금의 우리처럼 드림워커 기술 중 ‘와일드’를 배우면 남의 꿈속에 개입할 수 있는 것 말이야. 그런데 ‘리노베라’ 기술은 오히려 외부의 그 어떤 절대적인 힘으로 인위적으로 꿈을 만들고 그 안에 다른 대상자를 집어넣어 갇히게 만드는 기술이지.”
“외부에서 절대적인 힘으로 꿈을 만들어 놓고 다른 사람을 가둔다고? 그게 무슨 소리냐?”
피체는 서 있는 사내를 다시 살펴보며 말했다.
“바로 이 사람이 선택당한 것 같아. 그리고 그는 그 꿈속에 갇혀 지금, 이 순간에도 허상을 경험하며 그게 현실이라 믿고 있어.”
이안은 어리둥절했다.
“그럼 어떡해야 해? 우리가 이 사람 구해 줘야 하지 않아?”
그러자 피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아.”
“왜?”
그녀가 거대한 검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것 때문에.”
“저 검 말이야.”
“응.”
“도대체 저 검이 뭔데?”
“우리가 감히 상상조차 못 할 거대한 에너지원. 바로 드림워커의 전설적인 기술인 ‘리노베라’를 실현 가능케 하는 에너지이지.”
“내가 보기에는 그냥 크고 거대한 검인데…….”
“멍청아. 그냥 거대한 검이 아니란 말이야. 손잡이에 시공의 궤적이라 쓰여 있잖아.”
“그런데 그게 뭐?”
“‘시공의 궤적’은 내가 전에 드림워커 기술을 배울 때, 아마 5년 차였지. 당시 스승님은 그 누구도 절대 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고대 문헌을 내 앞에 펼치셨어. 바로 그곳에 시공의 궤적에 관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지.”
이안은 궁금한 듯 그녀의 눈을 초롱초롱하게 바라보며 경청했다.
“이거 재미있어지는데. 그래 말해 봐. 그 시공의 궤적이 뭔지 말이야.”
하지만 그녀는 고민했다.
“스승님이 고대 문헌에 본 것을 남한테 절대 발설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러자 이안은 실망스러운 기색으로 말했다.
“아 놔! 우리가 고작 이런 사이였어?! 우리가 남이라니! 그거 정말 서운했다. 자! 그러지 말고 빨리 이야기해 봐.”
“그, 그래도 그건…….”
“야! 나 약속할게. 너랑 결혼할 거라고. 그럼 남이 아니지. 그러니 이야기 해봐.”
피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흠. 하여간 너란 애는 어쩜 그렇게 가볍니. 아무튼 좋아. 어차피 드림워커의 전설의 기술인 ‘리노레바’도 알아야 할 겸. 고대 문헌에 나오는 시공의 궤적이 바로 그 기술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에 네가 알아야 한다는 사실.”
“아! 놔 참 더럽게 뜸 들이네. 그냥 말해 보라고.”
그녀는 일단 심호흡을 한 다음에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