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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얻은 레어템, 현실에는 역대급-138화 (138/143)

138화

말의 울음소리와 함께 저쪽 절벽 모퉁이로부터 마차 한 대가 보였다.

히히힝.

“자네들이 제거해야 할 대상들입니다. 경비병은 열 명이지만 그대들 능력이라면 충분히 제압 할 수가 있을 거야. 후속 병력은 없을 테니 마차가 이곳을 지나갈 때 시작하게나.”

생각할수록 납득하기 어려운 임무였다. 특별기관 소속 병사로 활약한 경험은 없지만 이건 사전의 치밀한 작전도 없이 그야말로 산적이 약탈을 하듯 막무가내로 공격해서 제압하라니 말이다. 더군다나 그들 중 누가 첫 번째로 공격하고 후속 처리를 해야 할지? 게다가 상식적으로 후방 지원병이 남아서 뒤처리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하는 룰도 없으니 그야말로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마차가 오고 있어요!”

“일단 내가 나서서 호위무사들을 처리하겠소.”

그는 론이었다. 이번엔 게리스트가 말문을 열었다.

“혹시라도 후방 지원군이 있을지 모르니 그 뒤쪽으로 내가 가겠소.”

그렇다면 내 임무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마차 안에 타고 있을 인사를 암살하는 것.

파팟!

앞서 오던 호위무사들 열 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론은 단 한 번의 도약으로 열 개의 표창을 던졌고 그것들은 적병의 급소 부위에 정확히 박혔던 것이다. 이번에 내 차례였다. 마차 지붕위로 뛰어 내리자마자 일단 반으로 갈랐다. 중요 인사가 타고 있다면 그 옆에서 반드시 상당한 전투력의 호위무사가 대기 하리라는 것은 당연 한 일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일단 안쪽의 시야를 확보 하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목재로 이루어진 마차가 두 쪽이 나면서 안쪽이 드러났다. 헌데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닌가. 나는 당황하여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안내자가 다급히 절벽 중간 에 나 있는 돌부리들을 딛고 재빨리 능선 위로 올라갔다.

“멍청한 놈들! 하하하.”

조소 어린 그의 웃음이 나와 나머지 두 명의 동료들은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 비좁은 협곡 능선에 수백 명의 궁수들이 어느새 나타나 그들을 향해 활 조준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순간 괴척이 외쳤다.

“함정이다!”

나 역시 그 사실을 알고 빠져나갈 길이 없나 하고 주변을 살폈지만 이미 독안 든 쥐나 마찬가지였다. 이번 임무라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의심스러웠지만 이미 때늦은 후회를 하기에는 늦었다. 그때 넓은 투망이 이들을 향해 던져졌고 순식간에 옴짝달싹 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나와 동료들의 검술실력이 제 아무리 강한 들 치밀하게 준비된 덫으로부터 빠져나가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 같았다. 안내자는 능선의 병사들 틈 사이로 그 모습을 드러낸 황금빛 군장 사내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장군. 장군이 이끄는 적국에서 가장 강한 검사들 세 명을 데려왔습니다. 후후.”

“수고했소. 차베스 장군.”

나는 그 말에 깜짝 놀랐다. 그는 아군 진영에서 제법 용맹성을 갖춘 장수로서 그 이름을 모르는 자가 없었다. 그런데 그가 적과 내통하여 함정을 만들었다니! 더군다나 차베스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자의 얼굴도 알아볼 수가 있었다. 그는 제국의 대군을 이끌고 있는 아르곤이었다. 수군에서 양복이 지휘관이라면 그는 육로를 통해 침략한 적국의 원흉이었던 것이다.

“일단 저들을 사로잡았으니 마음대로 하시죠.”

아르곤은 자신의 긴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차베스의 손을 잡아 주었다.

“고맙소. 그대와 클레이 장군에게도 내 안부를 전해 주구려.”

클레이란 말에 나와 두 명의 동료는 더욱 기가 막혀 했다. 제국 황궁 검술 기관의 수장을 맡고 있었고 자신들에게 이번 임무를 부여한 그 역시 적과 내통을 했단 말인가. 론이 분노하여 신음을 토해 냈다.

“클레이! 이 처 죽일 늙은이가!”

눈앞이 캄캄했다. 그 동안 충성을 다해 모셔 왔던 제7단장 장군의 안위가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군 진영에 클레이와 차베스 같은 역적 놈들의 다음 표적이 그 분이 될 것이라 하니 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말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탄을 했다.

“아! 클레이! 참! 이 죽일 놈들!”

순간 화살이 빗발치듯 쏟아져 내렸다. 우리는 미처 피할 틈도 없이 여기 저기 화살에 박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대로 죽고 마는 것인가. 점차 정신이 희미해져 갔다.

* * *

갑자기 장면이 바뀌었다.

한 청년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통곡에 가까운 절규를 했다.

“왜 나지. 왜 나냐고! 빌어먹을! 흑.”

두 손으로 머리칼을 움켜쥐고 외쳤다.

“신이시여! 너무 가혹한 거 아닙니까!”

너무 소리를 질러 목에서 피가 다 나올 지경이었다. 다 큰 사내놈이 엉엉 울어 눈이 퉁퉁 붓기까지 했다.

매일 술에 취해서 새벽녘에나 들어 올 수 있었던 저택, 오늘 만큼은 자가용도 없이 걸어서 대문부터 정원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버드나무들이 길게 드리워진 아름드리 잎사귀들을 깔아 드리워 앞길을 마중 하는 듯 했다. 이서원은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두고서 처음으로 자신의 저택을 더듬어 가며 마지막 추억을 간직하고 싶었다. 얼마쯤 갔을까. 정원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내 집이 이렇게 컸었나?”

그때 다람쥐 두 마리가 그 앞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주둥이로 서로의 얼굴을 더듬어 주는 것이 분명 부부 같아 보였다. 서원은 그 모습에 다시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결혼도 못해보고 죽어야 한다니.”

둔덕하나 넘어서니 그제야 웅장한 대리석 저택이 5층의 위엄을 뽐내며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3년 전 그의 나이 열일곱에 뜻하지 않은 부모님의 사고사로 일찍이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은지라 지금의 저택뿐만 아니라 상당한 토지를 보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게 그의 인생에 있어서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어 버렸으니……. 부는 넘쳐흘렀지만 공허함의 메아리는 그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들었고 급기야 매일 술과 여자들만 탐하는 바람둥이 생활에 흠뻑 취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잘생긴 외모까지 가미하니 그야말로 제국의 상류층에서의 그의 위상은 가히 최고의 전성기 시절을 만끽하는 중이었다. 그렇기에 너무도 억울한 일이었다.

계단을 오르고 현관 앞에 도착했다. 그는 정원과 저택을 다시 한 번 천천히 둘러보고 하늘을 향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과 이별이라…….”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실내로 들어섰다. 바다 같이 넓은 로비, 그 중앙에 한 여인이 자신을 맞이했다.

“웬일이야. 오늘은 술에 떡이 되지 않았네.”

“피체!”

대저택의 집사인 피체, 원래 그녀는 가영과 소꿉놀이 때부터 친구였는데 성인이 된 후에 다시 만나 서원의 가정교사 자격으로 이 집안에 처음 들어왔다. 지난 수년 동안 친구로서 충고를 마다하지 않았고 집사로서 살림을 잘 꾸려왔던 고맙고 귀여운 친구. 이안은 그녀에게 다가가 가벼운 포옹을 해주었다.

“돌아와 줘서 고마워! 그때는 정말 미안했어. 모든 게 내 실수야.”

지난주 그는 그녀와 월급 문제로 심하게 다투었고 해고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술이 만취된 상태라서 실언이 나간 것이고 한두 번 겪는 일도 아니었건만 가영은 화를 참지 못하고 일주일간 나갔다 다시 들어 온 것이다. 서원은 당장 자신에게 닥친 운명을 걱정하기 보다는 그녀를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에 기뻐했다.

“언제 왔지?”

“오늘 아침.”

“별일 없었지.”

“별일 많았는데.”

“무슨 일?”

“네 친척들이 찾아 왔었어.”

“왜?”

“그거야 네가 더 잘 알 텐데. 두억시니에 제물로 바쳐질 신세라면 당연히 죽은 목숨이겠고 그렇다면 그 남은 재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누구겠어?”

서원은 깜짝 놀랐다.

“그렇다면 넌 내게 닥친 일을 이미 알고 있었던 거야?”

피체는 아직도 쌀쌀맞은 태도로 그를 대했다.

“안됐군.”

그제야 이안은 위안이라도 받고 싶었는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었다.

“사람 인생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다 했는데. 설마하니 내가… 스무 살의 나이로 요절을 하게 될 줄이야.”

“넌 아직 스무 살이 아냐. 열아홉 살이지. 생일이 지나지 않았거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 당장 죽게 생겼는데. 아무튼 너라도 내 옆에 있어줘서 위로가 되는 군.”

“고마워 할 필요 없어. 내가 돌아 온 건 밀린 월급 받기 위해서지 너 때문은 아니야. 그런데 네 사정이 그러하니 그냥 얼굴이나 한번 보고 작별 인사하려고 왔어.”

무덤덤하게 말하는 그녀, 서원은 다소 실망스런 표정을 지어보였다.

“넌 내가 이 지경인데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구나.”

그녀는 들은 척 만 척 편지 하나를 그에게 던져주며 말했다.

“이거 이장으로부터 온 등기우편인데 아마도 마왕 카시아스에게 제물로 받쳐질 날짜하고 여타 일정이 적혀있을 거야. 참고해. 그나저나 요즘 세상에도 그런 미개한 의식이 벌어지다니. 흠. 이안은 그만 화를 참지 못했다.

“빌어먹을! 총독 놈! 언제는 제비뽑기로 공정하게 희생양을 가리기로 해놓고 이제 와서 제일 젊은 사람만이 마왕 카시아스에게 가야 한다는 등 말 바꾸어 생사람 잡고 말이야. 그리고 사람 죽으러 가는데 이딴 식으로 일정이 담긴 편지까지 보내! 내가 어디 놀러가는 것도 아니고.”

“대신 네 묘지는 베른에 있는 선산에 묻힐 것이고 가문을 위한 희생을 하는데 뭘 그리 억울해 하고 그래.”

이게 다 조상 잘못 둔 죄 때문이지. 왜 클레이이신 아버지께서 마왕 카시아스에게 무슨 잘못을 저질러서 후대까지 이런 천벌을 받아야 하느냔 말이야.”

“조상 탓 그만 해. 어차피 네 몸 하나 바치면 다른 일가들은 다음 의식이 돌아오기 전까지 십년간은 발 뻗고 잘 텐데 말이야.”

“그래 나는 일찍이 요절할 팔자가 분명해. 아주 재수 없는 놈이라고.”

그녀는 긍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래. 하지만 할 수 없지. 운명인걸. 그건 그렇고 작별 인사는 이쯤에서 끝내지. 난 지금부터 짐을 싸야 하니까.”

“피체… 그렇게 서두를 것 까지는.”

“집안에 값비싼 골동품들이 꽤 많이 있기에 내 밀린 월급 대신으로 하나 정도 가져갈까 했는데 네 친척들이 벌써 다 찜을 해놨더라. 그래서 내 짐만 갔고 가기로 했어. 그 동안 네 집사로서 개인적으로 경제적 이득이 되면 되었지 손해 본 건 없었거든.”

이안은 그녀가 사무적으로 말하는 것이 너무나 서러웠다.

“피체! 어쩜 그렇게 냉정할 수가 있지!”

“네가 그렇게 만든 걸 왜 나한테 물어?”

“난 반년 후에 마왕 카시아스에게 죽으러 가는 몸이라고. 지금 내게는 따듯한 위로 한마디가 중요하단 말이야.”

애석하게도 피체의 퉁명스러움은 변하지 않았다.

“나 바빠! 오늘 중으로 짐 다 싸야 하거든.”

한마디 남기고 위층으로 올라가는 그녀. 이안은 눈물이 다시 나려했다.

이안은 마왕에게 산 제물로 바쳐지는 것 보다 죽음을 택하기로 결심한다. 로비 한복판에 줄과 의자를 들고 걸어 나왔다. 그리고는 줄을 천장, 봉에 매달고 매듭을 짓는 것을 보니 아마도 자살하려는 것 같았다. 그때 슬며시 나타난 피체, 그녀는 그런 이안의 행동을 조심스럽게 살펴보더니만 다소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래도 남모르게 죽기는 싫었나 보지? 은밀한 방안이 아니라 이 번잡한 로비를 택한 걸 보니. 그런데 이걸 어떡하나! 가정부들은 네가 장난한다 생각하는 것 같은데 말려 줄 사람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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