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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얻은 레어템, 현실에는 역대급-136화 (136/143)

136화

나는 침묵을 지켰다. 그의 힘을 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대답이 없는 거야! 도와준다는데. 당장 나를 꺼내주란 말이다.]

“…….”

[이상한 인간이군. 대답이 없다는 것은 죽는 순간까지 내 힘을 빌리지 않겠다는 것인가? 빌어먹을. 이제 보니 멍청한 녀석 아닌가.]

나는 그의 말소리마저 희미하게 들릴 정도로 이미 반쯤 녹초가 된 상태였다. 오히려 자신의 죽음에 대한 생각보다도 인간으로서 지닌 그 잠재력 발산에 신경을 쓰고 있었으니 아직 나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나 보다.

태초 인간에게 강력한 정신 능력이 부여되었음에도 그것들이 퇴화되어 오늘날 인간 스스로가 깨닫지 못할 뿐 만일 본인의 강력한 의지로 자각을 한다면 그 결과는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되는 것이다.

‘시공의 궤적’이란 그런 모태로 완성된 인간의 완벽한 정신추구이자 신체와의 합일을 위해 만들어진 최상의 검술.

죽음의 도검 소유자인 그의 눈빛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야. 이미 혼이 빨려 죽었어야 하는 놈이 아직도 눈을 껌뻑이고 있다니?”

그는 내가 여전히 버티고 있음에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기야 그가 어찌 알까. 도검이 뿜어내는 신력 현상 이전에 인간에게는 더욱 오묘한 원초적 힘이 잔존한다는 것을 말이다.

정신력은 그 누구나 가지고 있다. 다만 그 힘이 미약하여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가 대부분이고 정신상태가 강해진 사람들은 그 힘이 강해진 것이라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정신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외부로부터 그 여파를 받아야만 하고 그 대응으로 반응을 하는 것인데 다소 충격적인 요법과 그 강도에 따라 보다 좋은 효과를 얻을 수가 있다.

내가 신검 앞으로 감히 나설 수 있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지닌 괴력과 바로 그런 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피상적인 이론일 뿐, 만일 상대의 신력이 나의 모든 것을 능가할 때 그대로 소멸될 수도 있는 문제였다. 그러나 아직 나는 내 자신이 아직도 살아 있다는 사실에 내 희망은 점점 부풀어 올랐다.

더군다나 내가 지닌 은하검. 다행히 그것을 부여잡은 상태였고 오른 손목 정도는 움직일 수 있었다. 그 순간 그 속으로부터 크라우츠의 급박한 외침이 들려왔다,

[미친 인간아! 당장 나를 소환하라니까!]

나는 그에게 소리쳤다.

“조용히 있어!”

[…….]

삭!

일단 두 발목을 칭칭 감았던 줄기 두 개를 잘라 버렸다. 그다음에는 왼쪽 팔의 것을 베었다. 외부의 충격적인 여파에 온몸으로 반응하는 법, 시공의 궤적은 내게 기술을 가르쳐 주었다.

인간 고유의 정신력은 역경을 극복하는 원초적인 힘이 있다는 사실, 거기에다 내가 지닌 은하검의 능력을 믿고 결단력마저 추가시킨다면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 있는 법이다.

몸이 어느 정도 자유로워지자 내 공격 본능이 여지없이 발휘되었다. 그 본능에 몸을 맡기고 그대로 달려가 무식하게 휘둘렀다. 그런데 놈은 이미 뒤로 멀찌감치 물러서 있었다. 나를 괴물 보듯 했으니 이번엔 그의 눈빛으로부터 두려움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뭐, 뭐야?”

놈은 또다시 죽음의 도검을 들어 올리고는 나에게 조준했다. 다시 한번 뻗쳐 나오는 가지 줄기들과 촘촘히 박힌 촉수들이 나를 위협했다.

나는 그대로 돌진해 들어갔다. 줄기가 그의 몸을 감싸든 감든 상관하지 않고 말이다. 그리고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푸른 하늘에 번쩍이는 무기가 시원스레 큰 원호를 그렸다.

“컥!”

그때 루첸트는 품 안으로부터 뭔가를 꺼냈다. 그것은 청동으로 만들어진 작은 거울 같았다. 어디서 본 듯한 느낌.

“그건 뭐지.”

“거울이에요. 신력을 빨아들이는 능력이 있죠.”

“신력이라고?”

전투가 끝난 상황이건만 죽음의 신검 살짝 비추더니만 이내 품 안으로 다시 집어넣었다.

잠시 후. 꽉 움켜쥔 적장의 수급(首級), 두 눈을 뜬 채 혓바닥과 함께 길게 내려온 적장의 머리칼이 미풍에 살랑였다. 죽음의 도검이라 불렸던 그의 죽음에 양 진영에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적 성곽의 병사들은 당혹함을 감추지 못했고 아군 진영은 놀람과 감탄으로 당당히 걸어오는 나를 맞아 주었다. 뒤를 따라오는 루첸트, 그녀는 어느새 비검의 밧줄을 풀어 어깨에 둘러맸고 산들거리는 버들강아지를 입에 물고 여유로움을 드러냈다.

곧이어 함성의 소리가 들려왔으니 그들은 공성 탑에 투입된 돌격 대원들이었다. 그동안 희생되어 간 동료들, 그리고 수하의 복수에 대한 통쾌함에 서로 얼싸안고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 도지와 제퍼, 그리고 제나이더가 제일 먼저 나에게 다가왔다.

“대장님!”

다소 감성이 풍부한 도지의 눈가로부터 눈물이 글썽이려 했다. 키가 크고 비쩍 마른 몰골의 제퍼 역시 긴장감이 풀어졌는지 환한 미소로 반겨 주었지만 내 손에 들려진 적의 수급에 인상을 찡그렸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 달리 반응하는 녀석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대성이었다.

“아싸! 그 목이 도검 주인들의 두 번째가 되는 셈이겠군요. 이리 주시죠. 헤헤.”

십대 후반에 불과한 녀석은 대담하게도 내 손으로부터 적장의 목을 낚아챘다. 그것을 들어 올리더니 돌격대원들을 향해 외쳤다.

“대장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 전리품을 가져 왔습니다! 하하. 다들 힘껏 외쳐 보시죠! 만세!”

와와!!

녀석은 나와 함께 전투를 치른 월하에 대해 그냥 지나갈 리가 없었다.

“그나저나 저 사람은 누구죠?”

갑옷 차림에 사내처럼 머리를 올려 묶은 그녀의 정체가 여자라는 사실을 아는 병사들은 없었다. 하지만 예상대로 녀석의 눈치는 무척이나 빨랐다.

“왠지… 도지 형님보다도 더 여성스런 외모를 지닌 것 같은데……. 얼핏 보면 여자분 같기도 한데……. 후후.”

호기심 가득한 녀석에게 먼저 말을 건넨 사람은 루첸트, 그녀 자신이었다.

“이형도 님 당신이 말한 녀석이 얘였나요? 정말 말씀대로 말이 많군요.”

제나이더는 두 눈동자가 토끼처럼 동그라졌다.

“엉?! 나를 아세요?”

병사들 중 현재 전장에 투입된 병사들을 뺀 나머지 절반이 지켜봤던 이 대결에 있어서 가장 마음을 졸인 사람은 성기 장군 같았다. 평소 차분한 성격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저만치 앞에서 허둥거리며 내 앞으로 다가와 손을 잡아 주었다.

“이형도! 자네 정말 대단했어!”

내 뒤에는 처음 보는 얼굴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장군. 이 자가 이형도입니까?”

“하하. 어떤가요? 잘 보았소? 내가 장담했지요. 분명 이길 것이라고.”

“흠. 대단한 부하를 두셨군요.”

진영으로 돌아오자마자 제일 먼저 샤칸이 치료받고 있는 막사부터 들렸다. 붕대로 칭칭 감겨진 전신 여기저기 붉은 핏물이 눌어붙어 있었다. 놀랍게도 혼수상태에 있던 그가 의식을 차린 채 나를 반겨 주는 것이 아닌가.

“대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아. 일어나지 마요.”

“괘, 괜찮습니다. 다행히 부상 부위들이 급소를 비껴갔기에…….”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제나이더가 달여 준 약을 먹고 상처 부위에 약초를 바르니 거짓말처럼 회복이 빨라지고 있습니다.”

언제나 예상을 깨트리는 녀석, 이번에도 그의 이름이 거론되었고 나는 자연스레 고개를 돌렸다.

“…….”

“왜 그런 눈으로 보십니까? 헤헤. 형님을 위해 뭐 조금 손 좀 봤지요.”

녀석은 갑자기 그에게 다가가더니만 장난을 걸기 시작했다.

“여기 이 부위가 제일 아프죠.”

“악! 당장 저리 가지 못해!”

“살갗이 찢어진 부위는 이렇게 눌러 줘야 피가 잘 통한다니까요! 후후.”

“억! 이 죽일 놈이!”

“여긴 됐고. 이번엔 허벅지를 살펴볼까. 붕대를 갈 때가 된 것 같은데.”

“욱. 당장 꺼져.”

“형님. 생긴 것 답지 않게 엄살이 심하시네요.”

진영의 숲속 안쪽에는 조그만 담수호가 있다. 나는 그곳에서 루첸트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내게 할 말이 있다고요?”

“예.”

“…….”

사실 이번 대결에서 내가 승리를 거둔 것보다도 더 관심을 받는 대상이 있었으니 바로 은빛기마대를 무지막지한 비검술로 핏빛으로 물들게 한 루첸트였다.

나는 전력을 다해 싸워 겨우 버틸 수 있었건만 그녀는 마치 곤충채집이라도 나온 듯 그저 가벼운 손놀림으로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 낸 신비의 여인이었다.

나는 여전히 그녀의 존재와 전투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죽음의 신검 주인과 같은 존재와 대적하는 것만 봐도 이승의 범주로 생각지 못할 경지에 이르렀다고 추측만 할 뿐이었다.

“이형도 님 검술이 궁금해서 보자고 한 거예요. 보통 신력은 또 다른 신력으로 대응하는 것이 암흑세계에서는 하나의 법칙처럼 통용된다지만 아까는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광경을 목격하고는 고개가 갸웃거려지더라고요.”

그녀의 질문에 나는 내 검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무기가 나를 보호해 준 것 같소.”

그녀의 눈길 역시 검으로 쏠렸다.

“하지만 아까는 신력에 의지하지 않고 정신력으로 버틴 것 같은데요.”

뭐라 대답을 하기가 그랬다. 아직은 그녀에 대해서 잘 몰랐으니 깊은 얘기를 할 필요가 없다 느껴졌다. 그런 내 태도에 그녀는 빙그레 미소로 대해 주었다.

“후후. 질문이 부담되시면 말하지 않으셔도 돼요. 은하검이 그 주인을 선택할 때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는 법이지요. 그런데 한 가지 진짜 궁금한 게 있는데요. 도대체 어떻게 그 무기를 얻게 되셨나요…….”

나는 문득 호수가 저편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난번 그대가 말하기를 암흑세계에 대해 이 세계에 발설하는 것은 금기라 했는데 그 이유라도 알고 싶군요.”

“…….”

그 말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월하, 그녀는 수면 위에 손가락을 대어 동그라미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는 다소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이형도 님과 조금 더 친해졌을 때 한번 생각해 보죠.”

* * *

장군은 막사 문 앞을 지키고 있는 경비병들까지 멀리 물러나게 하였다. 도대체 그에게 그 어떤 중대한 얘기를 하려는 것인지… 수많은 병력들이 움직이는 대규모 공성전에 있어서 임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또한 나 말고 군단 전체에서 두 명이 그 수행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는 말이 기억이 났다.

드디어 성기 장군은 나지막한 음성으로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대략 한 시간이 흘렀다. 임무에 대한 설명을 이제 막 끝낸 장군의 입술이 더 떨리는 듯했다. 나 역시 그런 중대한 임무에 대해 긴장감이 치솟는 중이었다.

“일단 본영으로 갈 준비를 하게나. 그리 시간이 많은 게 아니니까.”

“저 말고 다른 대기자들 두 명에 대한 신상정보를 알 수 있을까요?”

“나도 자세히는 모른다네.”

전체 군단들 중 본영에 해당하는 본진으로 향했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투구로 얼굴을 가려야만 했다. 본영 안에 특별기관이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은 성기 장군을 통해 처음 전해 들었다.

진영으로부터 누군가 마중 나왔고 그의 안내를 받으며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일반 경비병 차림새라 볼 수 없는 두툼한 군장 차림의 병사들이 무려 백여 명에 가까웠고 한 대형 막사를 기점으로 그 주위에 철통같은 보안을 서고 있었다.

그곳에는 그 어떤 깃발도 없었다. 그저 흑색으로 둘러 친 목재 방벽 안에 대형 막사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내 병사조차 입구에서 멈추었고 그 혼자 들어가라 했다.

실내로 들어가 보니 그 모든 차림이 범상치 않은 자들 두 명이 보였다. 그들 모두 투구를 쓰고 있었으면 중앙 탁자를 두고 마주 보며 앉아 있었다. 뭔가 초조해 보이는 느낌이랄까. 그 둘은 고개를 숙이고 깍지를 쥔 상태에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직감적으로 저들 역시 나와 같은 임무를 부여받은 자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의자는 총 네 개였다. 잠시 후 내가 착석함으로써 빈자리는 하나만 남게 되었다. 나를 포함한 세 명의 대기자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로부터 얼마 후 입구로 들어서는 자가 있었다.

“다들 모였군.”

백발이 성성한 노인, 그 차림새는 전장과 어울리지 않은 고위 관료 복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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