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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얻은 레어템, 현실에는 역대급-134화 (134/143)

134화

하지만 도지의 생각은 그들과는 다소 다른 듯했다.

“다들 본지를 벗어나는 얘기는 그만하지, 우린 공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전투도 감행하니 엄연히 이것 역시 공성전의 일부라고. 다만 적이 너무 강하니 샤칸이 이런 일을 당한 것이고…….”

나는 그들의 얘기를 가만히 듣다가 결국 도지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보기로 했다. 잠시 후 그의 얘기를 들은 나는 마음이 무거워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지의 설명은 나 또한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리본 공성전의 7년 동안 전쟁에서 황제군의 공병부대는 길이 참호를 파서 요새 30개소, 보루 48개소에 이르는 포위선을 구축해 도시를 고립시켜 왔던 것.

포위 요새들은 작년에 전부 완성되어 병사 수만 명이 배치되었다. 적어도 지상에서의 전투태세는 그렇게 갖추었지만 문제는 해상.

긴 방파제를 건설해 도시와 해상과의 교통을 끊는 전략. 하지만 헤트벅트 제국의 함대 사령관 아이언의 보급선 방지 목적인 이 해협 봉쇄 작전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그와 같은 건조물은 급하게 세워진지라 악천후에 의해 파괴되곤 했고 새롭게 방파제가 건설되었지만 헤트벅트 제국의 군함들이 어김없이 몰려와 그 작업을 방해했다.

센 제국의 황제 군의 유일한 희망은 저들의 해군력을 막기 위해 동등한 조건, 아니 그 이상의 군함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지만 주로 지상전에 강한 아군으로서는 오랫동안 해상전의 명장이 이끄는 아이언 함대에는 맥을 추지 못했던 것.

결국 아군에서는 해상과는 다소 동떨어진 리본 성곽의 가장 취약한 왼편 고지대에 공성 탑을 건설하여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

그 임무는 제7군단이 맡게 되었는데 주로 평원 전투에 강한 돌격부대원들의 공성전을 치르게 하는 대신에 바로 그 건설을 맡았던 것이다.

내가 없는 동안 샤칸과 도지의 지휘 아래 삼천의 병력들은 공병대원들의 도움을 받아 공성 탑을 건설하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그걸 제지하기 위해 리본으로부터 기습한 적의 공격으로 상당수가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공격받은 횟수가 총 다섯 번, 삼천여 명의 돌격부대원들 중 절반이 전사(戰死)했고 어제 전투에서는 샤칸마저 이런 꼴을 당했던 것이다.

사실 공성 탑 현장은 리본 성곽과 다소 떨어져 있었고 돌격부대원들의 전투력 정도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지만 적들은 고작해야 수백여 명의 소수 정예 병력만으로도 아군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했다.

물론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헤트벅트 제국의 신검의 소유자가 이끄는 특수 부대이기 때문이었다. 도지가 내게 말했다.

“만일 우리 부대원들이 대장님에게 소드48절기를 익히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쯤 모두 다 몰살당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적국의 신검 소유자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다지만 바로 우리를 기습한 적의 특수 부대 지휘관은 아군의 신검 소유자를 제압한 아주 강력한 전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일명 죽음의 신검을 휘두르는 자인데 그와 그의 소수 정예 병력이 나타났다 하면 저항이 무의미할 정도로 무조건 공사하다 말고 퇴각해야만 했습니다.”

‘죽음의 신검이라…….’

들어 본 적이 있었다. 기억을 떠올려 보니 지난번 특별 휴가 때 선술집에 들렸고 나는 백인대장들이 했던 대화가 생각이 났다.

‘그렇지만 속단할 수는 없네. 헤트벅트 제국으로부터 파견 나온 신검의 소유자들이 버티고 있는데 아무리 황궁 검사대일지라도 그들을 절대 만만히 보면 안 되지. 자네들 리본 성곽 제17전선에서 벌어진 대결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죽음의 신검을 사용하는 적국 검사와 아군 제2군단의 환각의 신검인 메피스와 일전 말일세.’

‘환각의 신검이라면 쌍검이 아닌가. 마력을 담고 있어 일정한 분노의 수치에 오르면 절로 합체가 되는 놀라운 신기를 가진 검이지.’

‘그런 검의 소유자인 메피스가 단 이 검에 허리통이 분리가 되어 즉사했다네.’

‘놀랍게도 죽음의 신검의 재질은 나무라네. 그것도 작은 묘목을 뽑아 가지를 친 듯 원래의 관목 형상을 유지하는데 정보에 의하면 영혼을 흡수하는 신기가 있다지. 환각의 신검이 여지없이 무너진 것을 보면 죽음의 신검의 위력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것인데.’

다시 들려오는 도지의 음성.

“죽음의 신검의 소유자는 갈비아스라 합니다. 그의 신검이 터무니없이 강한 것도 강한 것이지만 그가 직접 이끄는 소수 정예 병사들 역시 헤트벅트로 제국으로부터 파견 나온 자들인데 제가 입수한 정보로는 주로 적국의 후방지역에 침투하여 암살이나 교란작전을 일삼는 특수 전사 출신들이라 합니다.”

“…….”

나는 그제야 내 부대원들이 왜 속수무책 당했는지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적은 고작해야 수백 명이지만 가히 일당백의 전사들과 그들을 이끄는 죽음의 신검 소유자인 갈비아스라는 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무엇보다도 샤칸의 심각한 부상과 그동안 희생되어 간 내 부대원들 때문에 가슴이 몹시 아팠다. 그런 감정은 곧이어 분노로 이어졌고 눈빛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공성 탑 공사 진척은 어디까지 되었소?”

“3분의 2 정도입니다.”

“건설 현장에 병력을 투입할 준비를 하시오. 그리고 돌격 부대원들 중 전투력이 뛰어난 자들 삼백여 명을 지금 당장 대령케 해요. 내가 그들을 이끌고 현장을 방어할 테니 그대는 공성 탑 건설에만 신경을 쓰시오.”

도지와 제퍼, 제나이더는 내가 그리 나올 줄 예견했는지 저마다 눈빛이 번뜩했다. 시무룩했던 제나이더 녀석의 활기찬 음성이 들려왔다.

“대장님이 돌아오셨으니까 이제 다 죽었다! 씨.”

그때 내 뒤에서 가만히 얘기만을 듣고 있던 루첸트, 그녀가 내게 다가오더니만 조용히 속삭였다.

“이형도 님. 저도 이번 임무에 포함시켜 주시면 안 될까요?”

“…….”

내 눈을 바라보는 그녀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은 정말 허락을 원하는 것 같았다.

“저 역시 헤트벅트 제국에 대해 별로 좋지 않은 감정이 있거든요.”

나는 출전 직전에 군단장의 부름을 받았다.

“자네 말일세. 이번 출전은 하지 않았으면 하는데…….”

“…….”

“이제 막 휴가에서 복귀하자마자 전투부터 서두르다니… 공성 탑 건설이야 조금 뒤로 미뤄도 괜찮네.”

그의 갑작스런 통보에 나는 의아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동안 희생된 제 부대원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출전을 해야 합니다. 상대는 신검의 소유자와 특수 전사들입니다. 7군단에서 제가 나서지 않는다면 공성 탑의 진행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자네 부하들이 많이 희생당한 것에는 이 못난 지휘관의 책임도 크다네.”

군단장 클레이는 말하다 말고 뒷짐을 진 채 왔다 갔다 했다. 그리고는 혹시라도 막사 밖에 누가 있나 하고 확인까지 하니 뭔가 은밀한 말을 전하려는 것 같았다.

“이형도. 자네가 이미 신검 소유자들 두 명을 제압한 사실은 알겠지만 이번 상대는 급수가 다르다네.”

“알고 있습니다. 죽음의 신검 갈비아스라 자에 대한…….”

그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흠. 사실을 말하자면 자네는 이제부터 굳이 위험이나 도박을 걸지 말아야 할 것이네. 특히 목숨을 담보로 말이지.”

“무슨 뜻인지요?”

“다른 임무가 주어졌기 때문일세.”

“다른 임무라니요?”

“공성전을 치르는 아군의 모든 군단에서는 최고의 전투력을 지닌 세 명을 선출했는데 그들에게 비밀 임무를 부여했다네. 그들 셋 중 하나가 자네이고…….”

비밀 임무라니? 나는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당장의 출전은 반드시 허락받고 싶었다. 샤칸을 저렇게 만든 자들, 또한 내 돌격대원들 절반을 희생시킨 자들에 대한 복수심 타올랐기 때문이다.

군단장 역시 그런 나의 심정을 잘 알고 있다는 얼굴이었다.

“자네 심정 잘 아네. 지휘관으로서 자네의 출전을 금지시킬 수 있겠지만 그 마음은 돌리지 못하겠지. 그렇다면 이렇게 함 세나. 반드시 살아 돌아온다고 나와 약속해 주게.”

“…….”

나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비밀 임무라는 것에 대한 궁금증보다는 당장 손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출전을 하고 싶었기에 말이다. 군단장은 하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출전을 허락하는 대신에 절대 적에게 자네 얼굴을 알리면 안 되네.”

“얼굴을 알리지 말라니요?”

“자네를 비롯한 나머지 두 명 역시 철저한 보안 속에서 비밀 임무를 기다리는 중일세. 자네 역시 그렇게 해야만 하는데 할 수 없지.”

그는 미리 준비해 놓은 투구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이걸 쓰고 출전하게나. 코와 뺨 부분을 가려 주기 때문에 적들이 자네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걸세.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지 반드시 살아 돌아온다는 것. 명심하게! 그다음에 자네에게 주어진 임무에 대해서 얘기를 자세히 나눔세나.”

* * *

저 멀리 눈앞에 보이는 은빛 무리들은 살기 가득한 눈빛에 핏빛으로 얼룩진 무기와 함께 폭풍의 기세를 잔뜩 뿜어내고 있었다. 바닷물이 괴여 있는 곳, 하늘을 머금고 있지만 은어 떼가 수면 위로 요동을 치듯 거칠게 몰려오는 은빛 갑주의 기마대들.

내 뒤에는 삼백 명의 돌격대원들이 대기했고 옆에는 루첸트가 있었다. 그때 그녀가 갑자기 목에 힘을 주어 말했다.

“이형도 님. 당장 병력을 뒤로 물리세요!”

갑작스런 외침에 나는 의아했다.

“물리다니요?”

“저들을 상대하는 데 굳이 병사들까지 나설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

상큼한 미소, 두 보조개가 쏙 들어간 귀여운 여인의 입으로부터 대담한 제의가 뱉어질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저와 함께 단둘이서 은어 떼 한번 잡아 보실래요?”

은어 떼…….

설마 내 속마음이라도 읽었던가. 그녀는 마치 소풍이라도 나온 소녀처럼 검을 어깨에 둘러매고는 낭랑한 음성으로 다시 말했다.

“제가 반을 맡고 이형도 님이 반을 맡으세요. 물론 당신이 악마 크라크츠를 소환해서 그의 힘을 빌리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보는데요.”

“…….”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녀는 밧줄을 꺼내 자신의 손목과 검의 손잡이에 연결하여 묶기 시작했다. 그건 지난번 악마 크라크츠와 싸울 때 사용했던 비검술이 분명해 보였다.

비검술은 검을 던지거나 자유롭게 다루더라도 검에 상당한 공력이나 의념을 불어넣지 못한다면 정확도나 파괴력이 현저하게 떨어질 수 있는 법.

흐르는 물처럼 인간의 팔로는 도저히 구현할 수 없는 경로로 검이 날아온다는 것. 즉, 상대의 예측을 뛰어넘는 변칙적인 공격이 가능해지는데 주체자는 방어를 신경 쓰지 않고, 공격일변도의 싸움이 가능해진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

무엇보다 그녀의 검이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애초 밧줄을 묶게끔 손잡이 끝에 고리가 달려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나는 내 생각을 확실히 말하기로 했다.

“루첸트. 나는 악마 크라크츠를 소환하지 않을 것이오.”

“소환하지 않는다니요?”

“내 힘으로 싸울 것이오.”

그녀는 마치 천진난만한 아이마냥 깜짝 놀란 반응을 보였다.

“어머! 정말요?!”

“병력을 뒤로 물리기로 한 것은 동의하오. 어차피 경갑 차림의 보병들이 온통 금속으로 무장한 기마대를 상대한다는 것은 힘에 부칠 것이오. 문제는 그대가 굳이 이 전쟁에 나설 필요가 없건만…….”

그녀는 싱그러운 미소로 내 말을 끊었다.

“후후. 저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

“…….”

“그런데 이형도 님 악마의 도움 없이도 자신 있어요? 검술의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꽤나 벅찰 텐데요. 게다가 저들 중에는 신검 소유자가 하나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나 역시 내가 알아서 할 일이오.”

“그러시다면 각자 운에 맡기죠 뭐. 제가 왼편을 맡을 테니 오른편을 맡으세요. 그리고 신검 소유자가 나타나면 제게 넘기시던지요.”

“내가 맡을 것이오.”

“좋으실 대로! 그럼 가죠!”

그녀가 먼저 앞장섰다.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은빛 무리들을 향해 그녀는 돌진해 들어갔고 줄과 연결된 검을 빙빙 돌리기 시작했다.

나 또한 뒤질세라, 전방으로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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