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센 제국의 황제 이시스프가 공포한 자유무역 칙령에 의해 대도시 리본에게 많은 특권이 부여되었다. 그 즉시 리본에는 자치가 이루어져 그들의 본거지가 되었는데 이 지역은 센 제국에서도 해상세력의 중심이 되었다.
하지만 원래 식민지 영토로서 예전부터 제국의 중앙 정부에게 대한 저항의 거점이 되는 그 중심지이기도 했다. 리본의 현 도시민이 700,000명을 넘어 센 제국에서 두 번째에 해당하는 거대한 도시가 되었다.
한데 리본의 출신의 도시 총독이 암살되면서 그들의 저항은 곧 봉기가 되었고 자체적으로 군사를 일으켜 황제 이시스프에 맞서기에 이르렀다.
총독은 예전부터 식민지였던 이 영토의 독립을 주장했던 가문의 장남으로서 처음에는 센 제국의 등용문을 통해 정식으로 취임해 왔지만, 점차 그 속내를 드러내며 리본이 자치지역으로 되자 기다렸다는 듯 정부에 반기를 들어 왔다.
그런데 그가 원인 모르게 암살이 되었으니 리본의 시민들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갔던 것이다. 그리고 리본의 검술 영웅 아스페니란 자가 무장봉기를 일으켜 도시 전체를 함락시키고 정부군을 몰아내면서부터 그 지루한 공성전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공성전(攻城戰)은 성이라는 전략적 요충지에 기대는 적을 공격하는 것을 말한다. 황제의 군대는 기본적으로 적 리본 도시의 보급을 차단하는 것부터 했고 그 후 방어선에 파상공세를 가하여 약한 부분을 부수고 돌입했다.
보급의 차단만으로도 수비 측이 항복하는 것을 기대했으며 이후 성벽을 부술 수 있는 공성포가 도입되면서 포격 거리까지 공성포를 끌고 가면 리본 측이 항복을 제안하는 형태가 되어 가급적이면 서로의 피해를 줄이는 방법을 모색했다.
하지만 리본은 해상 도시였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거대한 구릉지 위에 철옹성을 쌓아놓고 바다 쪽으로부터 수많은 범선들에게 보급을 받을 수 있었으니 절대로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항구를 세 개나 가지고 있었기에 그저 지상군의 포위만으로 보급을 차단시킬 수 없었다.
장장 7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도 황제 군이 리본 도시를 공략하지 못한 것이 바로 그 주된 원인이기도 했다.
현재 제1군단과 2군단이 리본 도시 앞에 진을 치고는 반드시 함락을 이루어내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1군단장 페로는 지상의 포위망을 완성함과 동시에 항구를 위협할 수 있는 방파제 위의 공성 탑을 건설했고, 동시에 해군을 모집하여 바다 쪽에서의 포위진형을 만들었다.
최종적으로 바다 쪽 방어선의 약점을 해군으로 돌파하고 그 돌파구를 통해 수송선에 탑승한 보병이 돌입시킴으로써 변화를 꾀했지만 리본 도시 뒤에는 바다 건너 헤트벅트 제국의 군함들이 진을 치며 이들 전쟁에 개입했기에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원래 리본 대도시는 지금으로부터 백 년 전 헤트벅트 제국의 영토였지만 센 제국이 그것을 차지함으로써 오랫동안 적국으로 호시탐탐 그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리본 대도시가 센 제국에게 항거를 하니 이때다 싶어 해상 군함의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이 전쟁은 사실상 센 제국과 헤트벅트 제국의 힘겨루기 전쟁일 수 있었다. 원래 자국의 영토였던 것을 되찾기 위한 국가와 해상 무역으로 엄청난 부를 이룬 식민지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나라와의 결사적 전투랄까.
7년 동안의 전쟁에서 황제 군의 공병부대는 길이 12km의 참호를 파서 요새 30개소, 보루 48개소에 이르는 포위선을 구축해 도시를 고립시켰다. 포위 요새들은 작년에 전부 완성되어 병사 30,000명이 배치되었다.
적어도 지상에서의 전투태세는 그렇게 갖추었지만 문제는 해상이었다. 황제군은 병사들 10,000명을 동원해 길이 3km의 긴 방파제를 건설해 도시와 해상과의 교통을 끊었다.
물론 헤트벅트 제국의 보급선 방지하는 목적인 이 해협 봉쇄 작전마저 번번이 실패했다. 이 건조물은 급하게 세워진지라 악천후에 의해 파괴되었다.
새롭게 방파제가 건설되었지만 헤트벅트 제국의 군함들이 어김없이 몰려와 그 작업을 방해했다. 세 제국의 황제 군의 유일한 희망은 저들의 해군력을 막기 위해 동등한 조건, 아니 그 이상의 군함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하지만 주로 지상전에 강한 그들로서 오랫동안 해상전의 명장이 이끄는 아이언 함대에는 맥을 추지 못했던 것이다.
이대로 진행이 된다면 리본 대도시는 적에게 영원히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팽배했고 결국 황제는 저 멀리 헤몰트 평원을 차지하고 이제 막 귀환하려는 제7군단의 합류를 명령하게 된다.
7년 동안 전쟁에서 양측이 얻은 것은 희생뿐만 아니라 불굴의 투지와 탁월한 지휘 능력, 그리고 수많은 검사들의 출현과 함께 일종의 영웅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지상과 해상과의 대규모 전투가 오가면서 해전의 명장 아이언의 이름이 널리 알려졌고 리본의 봉기자인 아스페니의 검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물론 아군 측에도 뛰어난 검사들이 많았고 현재에도 활약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황제의 부름을 받은 제7군단은 지상군뿐만 아니라 해상지원에도 힘을 쓸 것이다. 사실 군단장 클레이는 사상 최대의 공성전에 자신의 군단이 개입하는 것에 대해 걱정 반 기대가 반이었다.
리본 도시를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철옹성과 끊임없이 지원을 받고 있는 해상 쪽, 그 어느 곳 하나 제대로 막지 못한다면 그 자신의 합류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같을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최근의 정보를 들어 보니 이제는 황제 군의 지상군마저 밀린다는 어처구니없는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유인즉 예로부터 수많은 영웅을 배출해 왔던 헤트벅트 제국으로부터 상상을 초월한 실력파 검사들이 리본으로 몰려들기 시작했고 그들이 선봉으로 성문을 열고 나올 때 그 위압은 가히 천군의 기세였다고 했다.
추측건대 그들은 하나 같이 신검의 소유자들로서 대륙을 건너 이곳에 왔음이 분명했다. 다시 말해서 이곳은 그야말로 대규모 전쟁뿐만 아니라 세상에 자신의 실력을 뽐내고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일종의 영웅각축전이기도 했다.
나는 7군단이 리본 대도시의 공성전에 합류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만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대장님. 이번 전쟁은 빠지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샤칸의 말이 맞습니다. 대장님은 이미 바트라 제국에서 멸검 아르테스를 제압했기에 아마도 군단장님께 말씀드리면 특별 휴가 처리로 해주 실 겁니다.”
“…….”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힘없이 말했다.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소.”
* * *
센 제국의 수도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선술집부터 들렀다. 원래 술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후로부터는 친숙해지려 했다. 아직 날이 저물지도 않은 초저녁에도 불구하고 실내에는 손님들로 가득했다.
여기저기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들, 대부분 리본 공성전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중앙 넓은 테이블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붉은빛 흉갑, 흑색 보호대들, 테이블에 올려진 하얀 깃털이 달린 투구를 보니 그들은 전장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백인대장들이었다.
대부분 중년인들, 숱한 전투를 걸쳐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아마도 수백 번의 전투에서 살아남아 오늘날 백 명의 전사들을 이끄는 수장이 된 용맹한 장교들이었다.
그들 역시 나처럼 특별 휴가를 받아 도시에서 여흥을 즐기는 것 같았다. 나는 일부러 그들 옆에 작은 테이블에 앉기로 했다. 아무래도 그들로부터 현재 진행되고 있는 리본 공성전에 대한 얘기를 가장 정확하게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센 제국의 제1군단 수석 검사 제라드의 목이 적 리본 성곽의 걸렸을 때 울지 않은 병사들이 없었다네.”
“리본의 사령관 아스페니의 검술은 그저 허명이 아닌 것이 그대로 증명된 셈이지.”
“황제는 그 충격으로 부랴부랴 황궁검사대를 파견하기까지 했고.”
“정말 대단한 전쟁이군. 황궁의 검술 서를 모두 통달한 황궁 검사대를 파견했다는 것은 결국 올해 안으로 공성전을 끝내자는 의미가 아닌가.”
“그렇지만 속단할 수는 없네. 헤트벅트 제국으로부터 파견 나온 신검의 소유자들이 버티고 있는데 아무리 황궁검사대일지라도 그들을 절대 만만히 보면 안 되지. 자네들 리본 성곽 제17전선에서 벌어진 대결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죽음의 신검을 사용하는 적국 검사와 아군 제2군단의 환각의 신검인 메피스와 일전 말일세.”
“환각의 신검이라면 쌍검이 아닌가. 마력을 담고 있어 일정한 분노의 수치에 오르면 절로 합체가 되는 놀라운 신기를 가진 검이지.”
“그런 검의 소유지인 메피스가 단 이 검에 허리통이 분리가 되어 즉사했다네.”
리본 공성전의 성고가 길이는 무려 22km나 되었다. 규모가 워낙 방대하여 각 소속 군단에 속한 백인대장들은 그런 소식을 다른 동료들에게나마 전해 들을 수가 있었다.
“놀랍게도 죽음의 신검의 재질은 나무라네. 그것도 작은 묘목을 뽑아 가지를 친 듯 원래의 관목 형상을 유지하는데 정보에 의하면 영혼을 흡수하는 신기가 있다지. 환각의 신검이 여지없이 무너진 것을 보면 죽음의 신검의 위력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것인데.”
그들 중 누군가 건배를 재창했고 그들은 단숨에 술잔을 비웠다. 그리고 이번에는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렸다.
“그나저나 제7군단이 합류를 했다고 하는데 황제도 급하긴 급했나 보군. 후후.”
“그래 봐야 적의 해상 군을 이끄는 아이언이 버티는 한 지상군에서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소용없는 일이지.”
“그런데 말이야.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제7군단에 괴물 전사가 하나 등장했다지.”
“괴물이라니?”
“그저 일개 돌격중대 수장이라는 자인데. 글쎄 말일세. 그가 베른의 신검과 멸검을 제압했다지. 그것도 신검이 아닌 그저 평범한 검으로 말일세.”
“농담 말게나. 허허.”
“자네와 같이 눈과 귀가 어두우면 말이 통하지 않는 법. 흠. 어쨌든 술이나 더 드세나. 내일이면 귀환을 해야 할 판에 전장 얘기는 그만하고 여자 얘기나 함세.”
저들이 하는 얘기를 듣다 보니 나는 벌써 술 석 잔을 비우게 되었다. 내가 무엇보다도 놀란 것은 황궁 검사관이 이 전쟁에 합류를 했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검술 비전이란 비전을 모두 모아 놓은 황궁 서고에 통달한 자들, 그들은 지난 수백 년 동안 베일에 싸였던 존재들이었다. 해마다 열리는 검술 시합에서 최종 우승을 하는 자들만이 들어가는 최고의 검사관…….
나는 두 잔을 더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년 동안 떠나 있던 내 집으로 향하기 위해서였다.
뾰족하고 기이한 모습의 봉우리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솟아 있는 거대한 산은 북반구다운 풍경을 담아내고 있었다. 커다란 산들의 비탈에는 하얀 벽을 가진 저택들이 따스한 햇살 속에 파묻혀 있었다.
멀리 바라보는 그 밝은 집들이 산봉우리에서 아래까지 점점이 흩어져 있어 마치 짙은 초록색에 여기저기 눈밭이 공존하는 것 같았다.
술기운에 바라보는 고향의 모습은 몽롱함이 더해져 마치 동화 속의 세상을 접하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