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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얻은 레어템, 현실에는 역대급-129화 (129/143)

129화

그리고 그곳에 비추어진 것은 내 얼굴뿐만 아니었다. 파란 하늘까지 머금고 있지 않은가. 문뜩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먹구름이 잔뜩 낀 우중충한 날씨, 그런데 왜 검은 파란 하늘을 보여 주는 것일까.

바람결에 들려오는 은하검의 메시지.

[저는 항상 이곳에 머물며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함께했던 기억들은 당신만의 것이 아닌 우리 것이니까요.

힘들고 지칠 때 언제든 여기로 돌아와서 옛 추억들을 떠올려 봐요.

삶에 그 모든 상처가 치유될 테니까요.

그거 아시죠.

제 영혼은 항상 그대 곁을 맴돌며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세상 바깥으로 당당히 나아가 당신의 위대한 용기와 신념을 보여 주세요.]

기억을 떠올려 보니 그녀는 분명 내게 파란 하늘을 머금은 검에 대해 얘기해 준 것 같았다.

그때 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혹시 플린시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왜 자꾸 은하검을 통해 저토록 애절한 메시지를 전하는 걸까…….

아, 플린시아. 제발 아무 일이 없기를…….

그나저나 나는 이 세계에서 내 권능은 물론 아이템의 힘 또한 제한을 받기에 은하검 그 자체의 위력을 기대할 수가 없었다.

그저 순수 물리적인 무기의 힘과 시공의 궤적이란 검술을 통해 반드시 도전을 해야만 했다.

그렇기에 지금으로서는 아무런 힘도 쓸 수가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그때 제론이 멸검을 앞세워 내게로 돌진해 오기 시작했다. 나는 이번에는 검을 들어 그와 맞서기로 했다.

탁!

금속성의 검과 각질의 검의 부딪치는 소리는 둔탁했다. 그리고 손잡이로부터 느껴오는 강한 진동.

웅.

나는 불길한 예감에 재빨리 뒷걸음질을 쳤다. 제론은 이미 승부가 끝났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자신감이 당당했다. 자신의 멸검과 닿았으니 나의 소멸을 기다리는 승자의 모습과도 같았다.

실제로 내 검이 점차 검게 변하는 것이 아닌가. 검 끝으로부터 점점 아래로 흑색으로 변하더니만 부들부들 떨려 왔다. 이내 내가 쥔 손잡이에까지 번지더니만 나는 그 느낌이 너무도 따가워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하지만 다른 한 손을 더 거머쥠으로써 양손으로 단단히 움켜잡았다. 방금 전 파란 하늘빛을 머금었던 부분까지 칙칙한 색상으로 변했고, 이내 검은 포효라도 하듯 자기 스스로 비틀어 대었다.

나는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를 다루듯 어떡하든 검을 진정시키려 했다. 은하검의 원래 그 위력을 사용하지 못하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검이 으스러지면서 그 주체자 역시 소멸을 면치 못한다는 사실. 결국 이대로 끝나고 마는 것인지.

그리고 초시공 전사 테스트는 떨어지겠지…….

역시나.

검으로부터 부스러기 같은 것들이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검은색 가루는 지면에 닿기도 전에 바람에 흩날리어 사라졌다. 예상했던 대로 검부터 소멸의 단계에 접어들기 시작했던가.

나는 나마저 검게 변할까 봐 검을 놓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내 손은 손잡이를 더욱 세게 잡고야 말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마치 검이 내게 말하듯 그 뭔가 믿음을 주는 묘한 느낌이랄까.

[믿음]

항시 은하검을 내 분신처럼 끼고 살아왔던 그런 집착이 강했는지도 몰랐다. 가끔 바람결에 속삭이듯 내게 전해 주었던 플린시아의 속삭임들을 간직한 소중한 검.

설령 검이 소멸되고 그 화가 내게 미친다 할지라도 나는 이것에 대한 믿음을 저버릴 수가 없었다. 지금 이 급박한 순간에조차 말이다. 차라리 함께 죽으면 죽었지 절대 놓을 수 없었다.

그때였다. 강렬했던 진동음이 멈추었고, 또 다른 현상이 내 동공에 고스란히 담겨지기 시작했다.

‘뭐지?’

검게 변해 가던 검이 원래의 색상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것도 부분적으로 하늘빛을 담았던 색상이 전체적으로 서서히 푸른빛으로 화할 때 내 가슴속 깊이 뭔지 모를 감정이 솟구쳐 올랐다.

바닥에 떨어지는 가루들, 이제 보니 그것들은 검면을 뒤덮은 녹슨 가루로써 오히려 묵은 때를 벗기어 내어 새로운 검으로 탈바꿈시키는, 신기한 현상의 한 광경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잠시 후 흙빛이 사라지고 하늘빛의 번쩍이는 검이 내 손에 들려져 있었으니, 이는 직접 보고도 실감이 나지 않는 기이한 현상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을 그득 담은 하나의 기다란 막대 거울, 그 형상은 분명 검과 같았고, 전에 없었던 날카로운 날이 세워져 있었다. 순간 확신했다.

[은하검]

혹시 은하검의 또 다른 모습이 있었던가?

진한 감동, 아니 흥분이 밀려왔다.

이전에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감정.

이를 바라보던 제론 역시 깜짝 놀라는 반응이었다. 지금쯤 자신의 멸검에 닿아 소멸하고도 남을 시간이건만 오히려 새롭게 변한 검을 쥐고 자신을 노려보는 내 눈빛을 감당하기가 거북했던 것일까.

이를 바라보던 관중들의 반응도 예사롭지 않았다. 저마다 술렁거리는 분위기. 멸검에 닿고도 멀쩡한 내가 신기하게 보였던 모양이었다. 심지어 뭔 일인가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특히 상석에 착석한 적국의 집정관 다무렌과 페론 신관의 심사관 에스더 역시 몹시 놀란 모습이었다.

제론은 도저히 그럴 리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멸검을 앞세워 공격을 서둘렀다.

타다닥!

이얏!

탁!

그의 첫 번째 발검 동작이 한눈에 파악이 되었다. 이제는 검끼리 닿아도 아무렇지도 않은 확신에 내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제아무리 검술에 능한 자일지라도 신검의 위력이 소용없다면 나는 이 세상 그 누구와도 대적해 이길 자신이 있었다.

역시나 그의 동작은 느리게 보였고, 나는 그저 한 손으로 가볍게 받아쳤다. 단지 그랬을 뿐인데 제론은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수 미터나 물러나고 말았다.

비록 내가 쥐고 있는 무기가 현자의 검일지라도 아직은 이것의 사용법을 몰랐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저 소멸당하지 않는 것에 만족하고도 남았다. 내게는 진정한 살수 기술인 바람의 검흔이 있기에 말이다. 그저 검술로서 정정당당한 승부를 본다면 시합은 끝난 셈이었다.

나는 이미 상대의 발검 동작으로부터 어설픔을 파악했고, 나는 단 일검에 승부를 볼 수도 있었다. 나는 서서히 그에게 다가갔다. 하늘빛을 머금은 검을 지면으로 향하고 마치 먹잇감을 눈앞에 놓고 포식이라도 하는 맹수처럼 말이다.

하지만 상대가 검사이면서도 마법사라는 사실을 깜빡 잊었던가. 그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멸검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던가. 검 끝으로부터 검은 기류가 내게로 뻗어 나왔다. 그 찰나 검으로 막을까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이얏!”

타다닥.

그대로 돌진하며 상체를 비틀어 기류를 뒤로 흘려보냈고, 그대로 그가 쥔 멸검의 손목을 밟고 올라가 뒷목에 검 끝을 쑤셔 박았다. 시공의 궤적은 이처럼 순간 이동적인 보법도 포함되어 있었다.

단 일검이지만 검을 드는 그 순간부터 적에게 달려가 그 신체를 이용해 급소를 찌르는 동작은 거의 눈 깜박할 정도의 시간조차도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 목덜미를 관통당한 제론은 그대로 피를 토하고 바닥에 고꾸라졌다.

욱!

쿵!

* * *

화르르.

탁탁.

모닥불에 제나이더가 가을 잎새들을 듬뿍 안아 와 던져 놓으니 그 냄새가 가을의 정취를 더욱 무르익게 하는 것 같았다.

진영으로 돌아가기에 앞서 우리는 숲속에서 야영을 하고 있었고, 노릇노릇하게 익어 가는 꼬치 구이로부터 흘러내리는 기름기에 벌써부터 식욕이 당겨졌다. 녀석은 이번에도 내 검을 들고는 이리저리 살펴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제는 하늘빛이 사라졌네요.”

“…….”

“하지만 여기 문양과 글씨들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네요.”

녀석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고, 그저 넋 놓고 검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대장님, 이거 진짜 맞죠?”

“…….”

사실 아직도 나는 그게 현자의 검인지 확실하게 대답해 줄 수는 없었다. 그저 내가 손에 쥐고 있을 때만 하늘빛이 감도는 검이라는 사실 외에는 말이다.

“이거 주인을 알아보나 봐요. 내가 집어 들면 어김없이 칙칙한 색상으로 변하니 말이죠. 흠, 어쨌든 모조품이 아니라는 것은 맞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이게 은하검이라고 단언하기에도 그렇고…….”

“고기 타겠다.”

“지금 먹는 게 문제예요? 저는 명검에서도 신검이 아닌 인검일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희귀한 진품을 보는 있는 중이란 말입니다.”

바로 그때였다.

부스럭.

맞은편 수풀로부터 인기척이 들리더니만 누군가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재빨리 검을 잡고 경계 태세를 했다. 한데 어둠 속에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매우 아름다운 신관 차림의 여인이었다. 그는 대결 전에 잠시 보았던 페론 신전의 심사관 에스더였다.

“그대는?”

“죄송해요. 갑자기 나타나서…….”

화르르.

탁탁.

깊어 가는 가을밤, 나와 제나이더는 에스더란 여인이 열변을 토하며 말하는 내용을 듣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녀는 겉보기보다 매우 쾌활한 성격을 지닌 것 같았다.

“이형도 님, 이제 당신이 책임져야 해요. 페론 연대기를 편저하면서 그 주인공을 멸검 아르테스의 주인인 제론으로 정했었는데 그를 당신이 이겼으니까 당연히 저는 이곳까지 올 수밖에 없었답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세상은 이제 베이크론 시대로 접어들었거든요. 그래서 앞으로 명검들이 쏟아져 나올 테고, 그 어느 시대보다도 혼돈으로 치닫게 될 겁니다.”

[베이크론 시대]

그녀는 벌써 1시간여를 혼자서 떠들고 있었고, 베이크론 시대란 말만 열 번 이상은 더 언급한 것 같았다. 하지만 나와 제나이더는 그 말의 의미가 아직도 생소하게 들렸다. 급기야 제나이더가 그녀에게 물었다.

“도대체 베이크론이 뭐기에 우리 대장님을 귀찮게 하는 거죠?”

“…….”

그녀는 녀석의 말을 무시했고, 나와 내 검을 번갈아 보며 어린아이마냥 호기심 잔뜩 어린 눈빛으로 말했다.

“그건 무슨 검이죠? 어떻게 멸검과 닿아도 아무렇지도 않은지 궁금해요.”

에스더는 말하다 말고 품 안에서 작은 수정 구슬을 꺼내더니만 내 검을 향해 비추었다. 그러고는 뭔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리 확인하고 살펴보아도 신검의 개념은 아닌 것 같은데… 대체 정체가 뭔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어요?”

참으로 이상한 여인이었다. 무작정 나타나서는 졸라 대는 어린아이와도 같았던가. 자기 얘기만 늘어놓고 일방적인 질문만 던지니 말이다. 어쨌든 나로서도 그녀에게 확실한 답을 줄 입장은 아니었다.

“나도 모르는 바요.”

“정말 너무하는군요.”

“…….”

“저는 페론 신전으로부터 파견 나온 페론 연대기의 편저 책임자인 신관이란 말입니다. 세상에 명검을 지닌 그 모든 검사나 마법사들이 저를 못 만나서 안달인데 당신은 저를 귀찮게 보니 정말 무례하군요.”

적반하장이랄까. 자기가 혼자 말하고 혼자 성을 내니 말이다. 나는 그녀에 물었다.

“베이크론 시대가 다가온다는 의미가 뭔지 자세히 알려 줄 수 있겠소?”

“흠, 이제야 제 얘기에 관심을 가지시는군요. 베이크론 시대는 그야말로 명검 열전의 그 시작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지요.”

“명검 열전이라니요?”

“이제 곧 대륙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신검이 깨어난다고 할까요. 바로 베이크론을 원천으로 말이죠.”

이번에는 제나이더가 언성을 높였다.

“그러니까 베이크론이 뭐냐고요!”

“너, 어린애가 진짜 무례하구나. 보아하니 내가 너보다도 한참 누나뻘인데. 일단 한 대 맞고 시작하자.”

탁!

제나이더에게 꿀밤을 쥐어박는 여인,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절로 미소가 흘러나왔다. 이제 보니 상당히 괴짜가 아니던가. 그녀는 갑자기 사방을 두리번거리더니만 마치 누군가 들을까 봐 아주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베이크론은 페론 신전 고대 성어로써 ‘대악마의 힘’을 뜻해. 다른 말로는 ‘절대 권능’이라 말하지만 태곳적 이미 세상에 그 강대한 힘이 분산되어 대륙 곳곳에 심어졌다는 말이 있지. 그 힘들은 신검이란 매개체로 다시 부활한다는 전설이 있고… 아함……. 그런데 왜 이렇게 졸리지… 아함…….”

그때였다. 말하다 말고 갑자기 꾸벅꾸벅 조는 여인, 너무도 피곤했던가. 그대로 나무에 등을 기대어 잠이 들고 말았다. 제나이더는 그런 그녀를 보고는 혀를 내두르며 황당해했다.

“뭐 이런 여자가 다 있죠?”

나는 모포를 집어 들어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덮어 주었다.

“제나이더, 모닥불 꺼지지 않게 불 좀 살펴. 나도 잘 테니까.”

“그나저나 대장님, 이제 어쩔 거죠?”

“뭐를?”

“이 여자 말입니다.”

나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흠,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떠나지. 7군단 진영에서 우리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텐데…….”

“여자는 그냥 놔두고요? 페론 신전의 신관이라면 그녀 말대로 진짜 귀한 신분이거든요. 더군다나 에스더란 이름은 대륙에서 매우 유명한 심사관이자 명검 연구가입니다.”

“나와 상관없는 일. 우린 일찍 일어나서 갈 길을 가면 그만인 거야.”

“대장님, 은근히 매정하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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