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이 허공이 뭐로 보이오? 물론 그저 빈 공간으로 생각이 들겠죠. 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질료들로 가득 차 있죠. 일종의 포스 같은 것들이라든가. 그 대문에 마법사들이 그걸 이용해 신비한 힘을 사용할 줄 아는 거죠.”
“…….”
“하지만 검사 역시 마찬가지로 이 질료들만 이용한다면 얼마든 강대한 위력을 펼칠 수 있지요. 바로 내가 신의 계시를 받은 발검의 묘미 제1장 정면 발검이란 기술은 그것을 토대로 인간의 잠재성을 깨우고 그 틀을 벗어나자는 의미가 있소. 즉, 대지의 힘을 빌린다면 얼마든지 체공 시간이 늘어나 고공 검술을 펼칠 수 있단 말이지요.”
카헤티 역시 비교적 자세한 설명에 어느 정도 이해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흠, 조금은 알 것 같군요.”
하지만 애석하게도 가르시아는 그의 성질을 자극하고 말았다.
“아니요! 그대는 내가 말한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소. 어차피 내가 계시받은 검술은 그 누구도 감히 이해하지도 못할뿐더러 흉내조차도 어려울 것이오.”
“후후, 만일 그대의 검술을 성공시키는 자가 있다면 어떡하겠소?”
가르시아는 단호하게 말했다.
“없을 거요.”
“무슨 근거로? 검술 자체가 난해한데 그걸 보고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있을 텐데요.”
가르시아는 다소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판단을 쉽게 하는 방법이 있소.”
“그게 뭐요?”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미스릴 금속을 베는 것.”
“미스릴 금속이라니요?”
“물론 그 금속은 일반 검사들의 보통 검과 검술로 절대 벨 수 없는 재질이요. 하지만 내 발검의 묘미 제1장 정면 발검을 이용하면 가능하지요. 나는 그것을 근거로 내 검술이 강한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소. 물론 굳이 내 검술이 아닌 다른 방법의 기술로 벨 수 있다면 그것도 상관없는 일이지만 아마 절대 불가능할 것이오.”
“장담하오?”
“장담하지.”
카헤티의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가 은근히 머금어졌다.
“만일 있다면?”
“없소. 적어도 이 도시 안에는.”
“그럼 내일 광장에서 시험을 하도록 합시다. 이 도시 안에는 나름 명망 있는 검사들이 손님으로 와 있는데 그들이라면 검술을 성공할 수도 있을 거요.”
“얼마든지 해 보라고 그러시오.”
“흠, 이거 흥미가 당기는데. 그대의 검술이든 다른 것이든 무조건 베기만 하면 된다는 그 말이오?”
“물론 내 검술을 사용하는 것이 성공 가능성이 크지요. 그걸 완벽하게 이해하는 자만이.”
카헤티는 갑자기 손으로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더니만 다소 진지하게 말했다.
“그 누구든 성공을 한다면 그대의 검술을 내 근위대에 적용할 생각이 드는데. 사실 나는 그대의 책을 나와 친분이 있는 여러 검사에게 보여 주었소. 물론 그들도 나름 관심이 많았고, 그 동작을 수련하느라 요즘 밤낮없이 노력한다 들었소. 어떤가요. 긴장되지 않소?”
그러자 가르시아는 피식 웃었다.
“후후, 없을 거요. 그러나 만일 성공하는 자가 있다면 내 그대가 원하는 그 어떤 소원이라도 들어주겠소.”
카헤티의 눈빛이 번뜩이는 순간이었다.
“소원을 들어준다고요?”
가르시아는 다시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렇소. 얼마든지.”
이에 카헤티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만 가르시아에게 말했다.
“소원이 생각났소.”
“뭐요?”
그러자 그는 말하기가 좀 그렇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직접 가르시아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뭔가를 속삭였다. 그 순간 가르시아는 큰 충격이라도 받은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테이블을 엎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뭐라고! 이 미친놈이! 그걸 말이라고!”
무슨 말이 오갔는지 모르지만 가르시아는 이성을 잃은 듯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건 안 돼! 절대로!”
하지만 카헤티는 냉정했다.
“이미 거래는 끝났소. 분명 그대가 직접 말하지 않았소. 어떤 소원이라도 들어준다고.”
한편 아스칼은 도대체 아버지가 왜 저렇게 화를 내나, 하고 궁금해하였다. 그리고 총독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뭔가 이상해 보였던가.
“아빠, 도대체 무슨 말을 들은 거예요!”
가르시아는 딸의 손을 꼭 잡더니만 괴로운 신음을 흘렸다.
“내가 미쳤나 보다. 아아, 이걸 어쩐다.”
본래 순박한 시골 출신의 아스칼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다. 그때 카헤티는 근위병들을 불렀다.
“일단 이분들을 숙소로 정중히 모셔라.”
그로부터 며칠 후. 도시 광장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분수대 바로 앞에 설치된 거대 금속 기둥, 그 앞에 공고문이 붙어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읽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 기둥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미스릴 금속이다. 이것을 여기에 세워 둔 이유는 베기 위함이다. 무기는 그 어떤 것을 사용해도 무방하고 검술 또한 각자의 역량에 의해 모든 발검을 사용해도 좋다.]
[만일 이 기둥에 손가락 두 마디 이상의 흠집을 내는 자는 총독부 산하 기관으로부터 10만 리라에 해당하는 금화를 내릴 것이고, 도전하는 자들은 신분이나 계급 그 어떤 차별을 두지 않을 것이다. 단기 참여 기간은 오늘 아침으로부터 해가 지는 저녁까지 단 하루이다. 도시의 모든 검사에게 알린다. 스스로 가장 용맹하고 강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도전하기 바란다.]
―총독부
사람들은 저마다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10만 리라라니? 정말 그게 사실인가?”
“총독부에서 정신 나갔나! 집이라도 몇 채는 살 법한 그런 어마어마한 돈을 걸다니 말일세.”
“하지만 미스릴 금속을 벤다는 자체가 10만 리라가 아니라 백만을 준다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지. 그것도 그저 흠집을 내는 정도가 아니라 손가락 두 마디 이상의 깊이라니.”
“요즘 총독부에서 할 일이 더럽게 없나 보지. 애초 시답잖은 공고를 내걸 때부터 이상했지.”
그때 누군가 검을 들고 미스릴 기둥으로 다가갔다.
“그래도 시도는 해 봄 직하지 않나. 밑져야 본전, 후후.”
사내가 검을 들어 기둥을 향해 강력하게 휘둘렀다.
깡!
경쾌한 음에 검이 퉁겨 뒤로 멀리 날아갔지만 사내는 기둥 먼저 살펴보았다.
“흠.”
흠집조차 없었고,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웃었다.
“하하하, 거 보라니까.”
“적어도 뭐라도 흠은 남겨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도 자네는 용병 출신이 아닌가.”
“늙으니 이제 기력도 없고 뭐 죽을 날만 기다려야겠지.”
그를 시작으로 검사 차림 복장의 건장한 사내들이 앞으로 나서 기둥을 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반나절이 지난 뒤, 아직도 줄을 길게 늘어서 있었지만 미스릴 금속에는 흠집 하나 나지 않은 상태였다.
해가 중천에 떠오를 즈음에 광장 오른편으로부터 은빛 군장의 정예 병사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들 역시 오늘의 공고를 보고 도전하기 위한 자들로서 지금까지의 그렇고 그런 검사들과는 그 위엄이나 기세부터 달라 보였다.
한편 이를 지켜보는 가르시아, 그는 내심 속으로 자신만만했지만 만에 하나라도 만일 미스릴 금속을 베는 자가 있다면 정말이지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었다. 바로 어제 총독 카헤티가 자신의 귓속에 대고 한 말이 떠오르기 때문이었다.
“만일 성공하는 자가 있다면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지요. 그럼 말해 보리다. 내 소원은 말이죠. 그러니까… 말하기가 그렇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대의 딸을 하룻밤만 빌려도 되겠소.”
순간 가르시아는 입술을 악 깨물었고, 손으로 바닥을 꽝 쳤다. 바로 옆에서 그것을 지켜보던 아스칼이 의아했다.
“아빠, 왜 그러세요?”
“아, 아니다…….”
“어디 편찮으신 것 같아요.”
가르시아는 애써 속으로 생각했다.
‘성공하는 놈은 없어. 없다고. 절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그때 아스칼은 말문을 열었다.
“아빠.”
“왜?”
“아까부터 저기 상단 의자에 앉아 있는 총독이 저를 자꾸 이상한 눈길로 바라보는데, 좀 거북스러워요.”
가르시아 역시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그만 울분이 터질 것만 같았다. 딱 봐도 그는 누군가 미스릴 금속을 베어 자신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는 노골적이고 음흉한 표정이랄까.
‘비, 빌어먹을. 내가 말실수를 해서…….’
바로 그때 들려오는 외침.
“와, 흠집이 났잖아.”
“정말?”
“과연 정예 근위병은 다르군.”
“뭐 흠집 정도 가지고 뭘 그래. 손가락 두 마디 깊이로 베려면 한 백 년을 쳐도 될까 말까 하겠네, 허허.”
“하기야.”
잠시 후 근위병들의 도전이 끝나고 이번엔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차림의 두툼한 군장 사내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바로 도시 안에 머물고 있는 정식 검사들로서 카헤티의 초청을 받고 이곳에 온 자들이다.
카헤티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직접 영접했다.
“어서들 오시오. 좀 늦었구려.”
“총독 각하, 지난번에 주신 그 발검의 묘미라는 책을 보고 발검 수련을 했는데 이거 쉽지는 않겠습니다.”
그러자 카헤티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저 도전하는 데 의미가 있는 거죠.”
그러자 한 검사가 물었다.
“그 책은 도대체 누가 쓴 겁니까?”
카헤티가 직접 손으로 광장의 한 사람을 가리켰으니, 그는 가르시아였다.
“바로 저분이오.”
그러자 검사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흠, 아마도 검술에 대단한 재능을 지닌 분 같소. 어찌 고공 검술이라는 기상천외한 것을 창안했는지 말이오.”
카헤티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감이오. 저분은 신의 계시를 받고 고공 검술을 창안했다고 그러오. 그런데 놀랍게도 고공에서 펼쳐지는 검술의 파괴력이 지상에서보다 수 배는 강하다고 하는데 나는 그대들을 통해 직접 그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려 합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도전에 임하여 보여 주기를 바라오.”
이에 검사들이 기둥 쪽으로 향했다.
“흠, 아직 발검 자세도 미숙하건만 될는지 모르겠군.”
“그러게 말일세. 고공 검술이라는 게 애초 가능할 것 같지 않았지만 그래도 느낌은 더 강해진 것 같은데.”
“일단 한번 해 보세나.”
그들은 각자 줄을 섰고, 오늘의 도전을 시작하기 위해 검을 뽑았다. 그중 첫 번째 검사는 가르시아의 책대로 발검의 자세의 역방향을 그대로 따라 해 점프했다. 순간 고공에서 내려오며 수직 일도를 휘둘렀는데, 파공음이 일었다.
파팟!
“…….”
이어 군중들은 그 결과 궁금해서 그곳으로 몰려들었고, 곧바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세상에, 베인 것 같은데.”
“정말인가?”
“정말일세. 자! 와서 확인해 보라고.”
“뭐야, 이번에도 흠집 정도 같은데.”
“아닐세. 그것보다는 조금 패였네.”
“패이다니? 흠집이 조금 큰 거지.”
“어쨌든 지금까지는 저 검사가 제일 낫군.”
뒤이어 다른 검사들이 도전했다. 그로부터 해가 서녘으로 뉘엿뉘엿 질 무렵 검사들이 도전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흠집의 깊이가 다소 차이가 나는 것 외에는 손가락 두 마디 깊이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이에 가장 긴장한 사람은 물론 가르시아였다. 비록 자신의 검술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원했지만 지금으로서는 절대 그 반대의 심정이었다. 만일 그 누군가 성공한다면 자기 딸이… 정말이지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그리고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기 시작하니 이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가.
‘됐어. 조금만 기다리면…….’
바로 그때 카헤티가 군중들에게 외쳤다.
“도전하실 다른 분들 없소?”
“…….”
“…….”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카헤티가 자신의 검을 집어 들고는 기둥으로 향하는 것이 아닌가. 이에 군중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