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서 얻은 레어템, 현실에는 역대급-114화 (114/143)

114화

그로부터 이틀 후.

태어나서 처음이다. 이제 중년이 다 된 가르시아조차 베른에서 태어나고 자라나 그곳을 벗어나서 이 멀리까지 온 것이 말이다.

나름 어렸을 때부터 검술에 재질을 타고나 마을 검술 학당을 전전하며 배운 검술에 스스로 창안한 것까지 독학으로 수련해 왔다. 비록 베른 지방에서만 조금 알려진 정도지만 사실 그는 아직 우물 안에 개구리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딸을 데리고 세상 밖으로 나온 이유는 병으로 죽은 아내의 유언을 따라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 가르시아에게 이렇게 말했다. 딸과 함께 이곳을 벗어나서 당신의 꿈을 마음대로 펼칠 수 있는 대도시로 가라고.

사실 그녀는 머나먼 바르키아 대륙에 있는 아카스 제국의 귀족 출신이다. 젊었을 때 휴양지인 베른으로 왔을 때 가르시아와 사랑에 빠져 이곳에 자리 잡고 딸 아스칼을 낳았다. 하지만 몹쓸 병이 들고 임종이 임박하자 남편으로 하여금 자신의 친정을 찾아가게 하여 남편에게 도움이 되고자 했다.

가르시아 역시 아내를 땅에 묻고 매일 외로움에 술로 세월을 달래다 아스칼의 미래를 위해서 중대한 결심을 한 것이다. 아내 유언을 따르기로.

물론 그곳으로 가는 길을 멀고도 험난하다. 비록 그 자신이 검술을 창안할 정도로 발군의 실력자임은 분명하지만 세상은 넓고 강한 자들은 수두룩할 것이다.

그 역시 그것을 걱정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아내의 향취가 묻어 있는 베른을 떠나 당분간이라도 그토록 그리운 품을 떠나 보다 큰 안식처로 마음을 달래는 여행을 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르시아 그 자신의 순전한 의도는 아니었다. 그가 진정 이 세상으로부터 나온 이유는 바로 ‘궤적’의 완성품이 과연 실제로 통하는지 그 주인을 찾아다니기 위함이었다. 그것도 장장 51년간 그 모든 열정을 담아 연구를 거듭한 끝에 탄생하게 된 무한의 궤적.

딸 아스칼은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며 수도 없이 눈물을 훔치곤 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부터 그 충격이 너무 컸던가. 너무나 사랑했던 엄마의 죽음이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았고 이어 슬픔을 주체할 수 없어 깊은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그때부터 망상증세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갑자기 꿈속에서 계시받았다나.

원래 아버지는 검을 어느 정도 다룰 줄 아셨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스스로 과대망상이 걸려 검술을 계시받았다고 믿고 더 나아가 발검의 묘미라는 책까지 저술했으니 마을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받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세상 밖으로의 여행을 준비하셨다. 물론 머나먼 나라의 귀족 출신인 엄마의 유언도 있었지만 아버지의 망상이 날로 심각해지며 이제 바깥세상으로 자신의 검술을 널리 알리겠다는 포부를 가졌다. 그거야말로 신이 자신에게 내린 사명이라 하시면서.

물론 아빠의 발검의 묘미를 보면 기존의 틀을 완전히 바꾸어 보통의 상식적인 사고로 본다면 허구에 가깝지만 애석하게도 아빠는 그걸 몸소 실천하려 했다. 이에 아스칼은 어쩔 수 없이 아빠를 보호하려 따라나선 것이고. 이제는 엄마의 머나먼 나라의 외갓집이 목적지인 이상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가르시아는 다소 피곤해 보이는 딸을 살피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스칼, 괜찮니?”

“저는 괜찮은데 아빠는 어떠세요.”

가르시아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후후, 천하의 내가 어떠냐고. 자식, 아빠는 아직 힘이 차고도 넘친다.”

“아무래도 길을 잃은 것 같아요.”

“글쎄다, 지도에는 분명 아크론의 구릉지라 표시되어 있는데. 흠, 어디 보자.”

그는 밀림으로 둘러싸인 사방을 둘러보다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디서부터 길을 잘못 들었을까……. 별로 크지도 않는 지대인데. 그러고 보니 아까 들판의 그 안개 때문일 수도…….”

“그런데 구릉지가 왜 나무들로 꽉 들어찼어요?”

가르시아 역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안개가 불쑥 나타났다 사라지고 그 속을 뚫고 조금만 걸어왔는데 갑자기 숲이라니, 이거 뭔가 이상한데.”

가르시아는 딸부터 걱정이 들었고, 아스칼의 손을 꼭 잡고 반대편으로 향했다. 수풀을 헤치고 가 보니 조금 전 서 있던 같은 장소였다. 그의 안색이 일시에 창백해졌다.

“혹시 결계…….”

아스칼 역시 몹시 불안 기색이었다.

“결계라니요?”

“누군가 사술을 건 거 같아.”

바로 그때였다. 왼쪽 바위 위에 하나의 형체가 서서히 나타나더니만 이내 아주 새빨간 군장 차림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체불명의 인형은 누런 이를 드러내며 말문을 열었다.

“오호라, 이게 얼마 만인가! 둘씩이나 걸려들다니. 흐흐, 드디어 안주로 인간을 맛보는 겐가.”

한 손에는 검이, 다른 한 손에는 술병이 들려져 있었고 이내 몇 모금 꿀꺽 삼키기 시작했다. 30대 초반의 젊은 사내였고, 그는 취기가 잔뜩 오른 듯 입술 사이로 흘러내는 술을 소매로 닦고 자신의 결계에 걸려든 자들을 마치 먹잇감 보듯 살펴보며 말했다.

“나는 타란토이다. 지옥으로부터 강림한 혈전사이다, 흐흐.”

말하다 말고 자신의 착용한 빨강 군장을 가리키며 계속 말문을 이었다.

“바로 이 군장의 피 색깔이 그곳을 대표하고 있지. 세상 밖으로 나온 지 이제 한 달, 나름 속세에 적응하려고 했는데 여기는 음식이 마음에 안 들어. 이것저것 잡아먹었지만 별로였지……. 하지만 인간은 달랐다.”

그는 그저 겉으로 보기에는 인간인 것 같지만 마치 짐승의 것처럼 송곳이 두 개가 밖으로 튀어나왔으니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이한 존재였다.

뭔가 모르게 풍겨 나오는 엄청난 기도에 가르시아와 아스칼은 극도의 긴장한 채 서로의 손을 꽉 잡았다. 그때 가르시아는 아스칼을 안심시키고자 일부러 용기를 내어 검을 들고 그 사내 앞으로 나섰다.

“내가 누구냐 하면 그 유명한 ‘발검의 묘미’ 저술자 가르시아이다. 스물여덟 개의 검법을 계시받고 이제 막 세상에 첫발을 디디는 순간 마침 제물을 찾는 중이었지. 그런데 고맙게도 내 앞에 나타나 주니 이거야말로 내가 운이 좋은 겐가, 하하하.”

사내는 가르시아를 아래위로 천천히 훑어봤다.

“인제 보니 검사였군.”

“그렇다. 나는 베른의 최강자 가르시아라 한다. 네놈의 정체가 뭔지 모르지만 오늘 나를 만난 것을 재수 없게 여겨라.”

그러자 사내는 술 한 모금을 더 삼키더니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흠, 궁금하군. 요즘 인간들의 검술 유형이. 어떻게 변했을까. 어차피 이렇게 된바 너희의 검술을 한번 구경이나 해 보자.”

가르시아는 큰 소리로 외쳤다.

“구경이라니! 하하, 내가 검을 뽑는 순간 너는 이미 죽은 목숨이라는 것을 아는가.”

사내는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죽는다고? 왜?”

“그야 내 검술은 천지를 개벽할 정도로 무시무시하니까. 바로 신의 검술이니라.”

“신의 검술? 정말?”

가르시아는 크게 웃었다.

“하하하, 벌써부터 바지에 오줌을 지리는가! 자! 이리 오너라! 내가 네놈의 사지를 잘라 놓고 그 머리를 베어 전리품으로 취할 것이니라.”

“뭐, 호기는 좋긴 한데 일단 싸우기 전에 뭐 계시인가 뭔가 하는 그 검술을 보고 싶거든.”

사내는 갑자기 손으로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더니만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그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그럼 이렇게 하자. 나는 그동안 인간의 검술 형태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늘 궁금해 왔거든. 그래서 하는 말인데, 네가 먼저 시범을 보여 줘. 만일 내가 네 검술이 출중하다 여기면 그때는 살려 두기로 하지.”

가르시아의 눈빛이 번쩍였다.

“그건 무슨 의미지?”

“본론으로 들어가지. 내가 따라 할 정도로 시시한 검술이라면 너는 죽는다, 이거지. 사실 나는 인간 따위와 애써 힘을 쓰고 싶지 않거든.”

그 말에 가르시아는 다소 동요가 되었다. 만일 자신의 곁에 딸이 없다면 그냥 한번 맞붙고 싶을 정도로 오기가 가득하건만 지금은 극도로 조심해야만 했다. 자신이 어떻게 되기라도 한다면 아스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 검술을 따라 한다고?”

“새롭고 멋진 검술이라면 나 역시 배워 보려고. 아까 스물여덟 개의 검술을 계시받았다고 하는데 그중 단 한 개만 내 마음에 들어도 나는 살려 주겠다, 흐흐.”

“…….”

가르시아는 잠시 고민에 빠지더니 이내 검을 뽑아 중앙으로 나섰다.

“내 검술을 보면 두려워서 숨도 제대로 못 쉴걸, 하하.”

“그건 내가 판단할 문제고. 어서 해 봐.”

그때 아스칼이 아버지를 만류했다.

“아빠, 그냥 도망가요.”

그녀는 아버지의 실력을 알고 있는 상태. 상대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로 강대한 존재가 분명했다. 그냥 한눈에 봐도 아버지의 허풍이 먹힐 것 같지 않았으니 차라리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상책이라 여겼다. 그때 사내의 눈빛이 아스칼에게로 향했다.

“아빠라. 인제 보니 둘이 부녀 관계였군. 오호, 이거 점점 재밌어지는데. 흐흐.”

이에 가르시아가 그 앞에서 시범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잠시 후. 사내는 가르시아의 발검 기술을 보면서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가끔 고개를 갸웃거리곤 했는데, 나름 그 동작에 흥미를 느낀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제 막 그가 첫 번째 시범을 끝내자 마치 재밌는 구경거리라도 본 듯 말문을 열었다.

“검을 쥐는 법의 왼손과 오른손이 바뀌었으니 처음부터 파격적인 자세라. 뭐, 양손의 손가락은 새끼손가락과 약지, 중지의 순서로 힘을 주고 엄지와 검지로 가볍게 휘두르는 것까지는 기존의 방법과 비슷하지만 그에 따른 보폭이 넓은 게, 마치 기마 자세와 같고 자연체 동작에서 왼발이 먼저 나가는 것은 그 순서를 거꾸로 한 것 같은데.”

사내는 말하다 말고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다시 말했다.

“그런데 거기까지는 그렇다 쳐도 내가 놀란 건 바로 발검인데, 단순히 검을 뽑는 게 아니라 동시에 적을 베는 공격 기술이 아주 인상적이야. 그리고 조금 전 본 것은 정면 발검이라. 그런데 원래는 칼자루 끝이 적을 향하도록 검을 뽑게 된 것으로 아는데 그 자리에서 허공으로 점프하다니……. 도대체 그건 왜 하는 거지?”

그러자 가르시아가 말했다.

“제법 눈썰미는 있군. 그런데 과연 너 따위가 신의 검술을 이해나 할까. 그저 겉모습만 보고 마음대로 판단하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내가 점프해서 정면 발검을 한 의도는 고공 검술을 시전하기 위해서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순간 사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공 검술?”

“그렇다.”

“처음 정면 발검부터 공중에서 뭘 어쩌자는 건가.”

“일명 격검 발검이라고도 하지. 바로 치명타를 날리는.”

사내는 다소 실망한 듯 되물었다.

“그렇다면 효과는?”

그 질문에 가르시아는 당장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론적으로 나름 정립을 한 상태지만 그 자신의 검술 실력이 모자라 직접 시범을 보이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