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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얻은 레어템, 현실에는 역대급-113화 (113/143)

113화

사살 게임은 끝이 났다.

800명의 초시공 전사 테스트 참가자 중 총 생존자는 서른세 명.

나는 그중에 포함되었고, 곧바로 초시공 전사 테스트에 투입되었다.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어느 차원으로 이동되었는데…….

그저 그렇고 그런 평범한 차원이었다.

나는 초시공 전사 테스트를 위한 차원이라 뭔가 어마어마한 세계가 기다릴 줄 알았건만 그곳은 내 현재 능력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법한, 정말 약한 전투력을 지닌 자들이 있는 곳.

도대체 초시공 전사 테스트에 임하는 내게 은하 연합은 무엇을 원하는지 아직도 모른 채 일단 그 세계에 서서히 적응하는 중이었다.

도대체 그 임무가 무엇인지 스스로 찾아서 테스트에 임하라는 말만 들었을 뿐.

* * *

해양풍이 불어오는 남쪽 끝단 베른의 지방, 어느 숲속에서 중년인과 한 숙녀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른 발전을 보이는 것이 뭔 줄 알아? 그건 바로 도구이지. 오로지 인간만이 도구를 이용해 곡식을 재배하고 빻고 사냥하며 다른 동물로부터 자기방어를 해 왔지. 물론 그 도구는 점차 발전을 거듭하여 오늘날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무기로 자리매김했고 검이나 활, 도끼 같은 것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단다.”

중년인의 말에 소녀는 지루한 표정으로 하품했다.

“후. 아빠, 백 번째예요.”

“아스칼, 내가 널 그렇게 가르쳤냐? 아버지가 말하는데 토를 달다니. 나는 네 아버지이기 전에 베른 지방에서 배출한 발검 연구가 가르시아라고. 가르시아!”

아스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휴, 발검 연구가라고 그런 직업도 있나요? 그건 그냥 아빠가 만들어 낸 거잖아요. 세상에 기존의 발검의 틀을 완전히 바꾸는 자세가 어디 있다고 그래요. 칼자루에서 검을 뽑는 법은 근 천 년을 내려오면서 수많은 검사가 정립해 놓은 지침서가 수백, 수천인데 아빠가 갑자기 그걸 바꾸고 만든 책을 팔아 드시는 것 자체가 양심이 없는 거죠. 무조건 검을 쥘 때는 왼손 7할, 오른손 3할 정도로…….”

“시끄러! 내가 만든 건 달라! 다르다고!”

그러자 가르시아는 책자를 꺼내 들어 아스칼에게 당당히 보여 주었는데, 그 표지 제목은 이렇게 쓰여 있었다.

[시공의 궤적]

“참 제목도 거창하네요. 고작 검술인데.”

“뭐라고! 이건 그야말로 신들이나 할 법한 위대한 검술이라고!”

“또 흥분하시네요. 그럼 구체적으로 아버지가 직접 시범을 보여 주세요.”

“그건 못해.”

“왜요?”

“내가 검술에 서툴러 그렇지 주인을 만나면 그야말로 큰 빛을 보게 될 거다.”

“그런 황당한 말이 어디 있다고 그래요.”

“이놈의 자식이 계속해서 토를 다네. 버릇없게!”

“알았어요! 알았어. 그냥 계속하세요, 흠.”

가르시아는 다소 언짢은 듯 눈썹을 찌푸렸고, 다시 말문을 열었다.

“내가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아, 그렇지. 검에 대해서. 아무튼 오늘날 인간이 만들어 낸 가장 뛰어난 걸작품이 검이라는 사실!”

아스칼은 아버지의 지루한 설명에 다시 하품하고 말았다.

“암… 아빠, 배고파요.”

“이놈이 정말!”

“아무튼 일단 뭐 좀 먹어야겠어요.”

가르시아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시 무시하는군. 하나밖에 없는 딸이라 너무 유하게 길렀더니만, 쯧. 좋아, 이 애비가 다시 보여 주마. 발검의 묘미 그 첫 번째 비법! 모든 검법의 꽃은 발검이라 할 수 있고 나는 무려 스물여덟 개에 달하는 발검 기술을 계시받았으니 그것이야말로 현란함의 극치요, 완벽한 검무(劍舞)의 기적적인 동작을 연출한다!”

이에 아스칼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 기존의 체계와 완전 반대 방향으로 가는 엉터리 비법들. 계시인가 뭔가 하는 그 꿈 때문에 세상에 아빠가 책을 알리려는 그 위대한 사명감! 도대체 내가 왜 아빠를 따라와서. 나도 참, 미쳤지.”

가르시아는 곧이어 검을 들어 자신의 검법을 펼쳐 보이기 시작했다.

홱! 홱! 홱! 홱!

파파파팟.

창공 아래 검날이 햇볕에 반짝이며 그야말로 절묘한 검술의 향연이 연출되었다. 검법의 유려함이 허공을 가로질러 이내 스물여덟 개의 연속 발검 동작으로 이어졌으니, 부드러움과 세기가 교묘하게 합쳐진 그야말로 검술의 극치를 보여 주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도 자랑스러운지 딸을 보며 외쳤다.

“어떠냐! 이거야말로 내가 계시받은 발검의 묘미가 아니겠느냐.”

하지만 아스칼은 시큰둥했다.

“보기에만 화려한 것 같은데요.”

그러자 가르시아의 눈썹이 다시 확 치켜 올라갔다.

“그렇다면 파괴력을 보여 주마.”

이번엔 그가 바로 앞의 나무를 베어 버렸다. 순간 싹둑 잘리며 뒤로 넘어갔으니, 그의 기분은 최고조에 달했다.

“하하, 봤느냐.”

아스칼은 여전히 못마땅한 듯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아버지만큼은 해요.”

사실 아스칼은 검술에 해박한 지식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꾸준히 수련했던 검법들을 보며 자라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천적으로 몸이 약해서 그 자신이 직접 검술을 배우지는 못했다.

가르시아는 검무를 멈추었고 딸을 노려보았다.

“이놈, 나를 무시하는 거냐!”

“무시하는 게 아니라요. 솔직히 아버지는 지금까지 적수다운 적수를 만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 너무 자만하지 말라는 거예요.”

바로 그때였다. 숲속 공터 맞은편에서 이쪽으로 지나가는 한 젊은 청년, 그는 흑발을 어깨 아래까지 길게 내려트렸고 등 뒤에는 커다란 검을 차고 있었다.

가르시아는 그를 발견하고는 다소 경계의 눈빛을 했다. 인적이 드문 이런 오지에 검을 찬 사내가 등장했으니 일단은 살펴보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가르시아가 먼저 말문을 건넸다.

“여행 중인가 보오?”

그러자 청년은 짧게 대답했다.

“네.”

“차림새를 보아하니 이곳 지역 출신은 아닌 것 같은데.”

“네.”

“하기야 여행 중이니, 뭐.”

“…….”

가르시아는 다시 청년을 눈여겨봤다. 그는 말수가 없는 듯 묵묵히 있다가 갑자기 짐을 풀었다. 이에 가르시아는 다소 당황한 듯 물었다.

“뭐 하는 거요?”

청년이 말했다.

“쉬었다 가려고요.”

이에 가르시아는 내심 언짢은 기분으로 말했다.

“그냥 지나가시오.”

그러나 청년은 무슨 영문인가 싶었다.

“네?”

가르시아가 속내를 말했다.

“세상이 워낙 험하다 보니 이런 산중에서 처음 보는 불청객은 조심하게 마련이죠. 뭐, 피차 그건 지켜야 할 예의인 것 같은데 쉬려면 여기 말고 딴 데 가 보쇼.”

이에 아스칼은 아버지에게 뭐라 했다.

“아빠, 처음 보는 분에게 너무한 거 아니에요?”

“상대는 무기를 지녔고 아무런 정체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 조심해야 할 건 해야지.”

“그렇다고 무작정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하면 무례한 거 아닌가요?”

그러자 청년은 풀었던 짐을 다시 싸매고 허리춤에 찼다.

“알겠습니다.”

그는 발걸음을 옮겼고 숲 안쪽으로 향했다.

그로부터 반나절 후. 가르시아는 딸을 계속해서 타이르는 중이었다.

“네 녀석이 아무리 순진하다지만 그렇게까지 바보일 줄은 몰랐다. 그래 아까 그놈을 쫓아냈다고 아직 이 애비하고 말도 섞기 싫은 거냐?”

그제야 아스칼은 말문을 열었다.

“그건 아빠야말로 예의가 없는 거라고요.”

“그놈 인상이 별로 좋지 않았다니까.”

“아빠가 그 사람 속을 들어가 봤어요? 그걸 어떻게 알아요.”

“일단 표정부터 어두워.”

“그래도 그렇지요. 설령 그 사람이 나쁘다고 쳐요. 하지만 적어도 아빠는 베른 지방에서 이름난 검사잖아요. 뭐가 무서워서.”

가르시아가 불끈했다.

“이 애비가 무서워서 그랬다고! 아이고! 이 자식아! 딸 둔 애비 심정도 모른 다냐. 세상에는 만일이라는 게 있어. 말 그대로 만에 하나 그놈이 흑심을 품었다면 나야 상관없지만 네가 다칠 수도 있거든. 나 참, 이제 열일곱 살이 되었으면 철 좀 들어라.”

“…….”

“무엇보다도 그놈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어. 뭔가에 홀린 듯한 그건 나만큼 오랜 연륜의 검사만이 알아볼 수 있는 일종의 살기랄까. 손바닥의 굳은살을 보니 결코 검을 폼으로 들고 다니지는 않을 것 같고, 이런 척박하고 험한 산중 오지에 다니는 것을 보니 그 누군가에 쫓기는 놈이거나 그보다도 더 흉악한 짓을 저지르고 도망 다니는 범죄자일 수도 있지.”

“그사이에 참 많이도 살피셨네요.”

“아무튼 이유가 있든 없든 간에 기분 나쁜 놈이지.”

바로 그때 아스칼은 코를 킁킁거렸다.

“이게 무슨 냄새지?”

딸의 말에 가르시아 역시 주변을 살폈다. 그랬더니 오른쪽 수풀 안쪽으로부터 연기가 나는 것이 아닌가.

“아빠, 고기 타는 냄새 같아요.”

가르시아는 일단 검을 뽑아 수풀 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아스칼 역시 그의 뒤를 따랐고. 곧이어 수풀을 헤치고 보니 아까 그 청년이 모닥불을 피워 놓고 꼬치에 고기를 끼워 구워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서로들 간에 눈이 마주쳤다.

“…….”

“…….”

잠시 침묵이 흘렀다. 가르시아는 냅다 아스칼의 손목을 잡아채 그곳으로부터 빠져나왔다.

“아빠, 왜요? 그냥 식사 중인 것 같은데요.”

하지만 가르시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상해.”

“뭐가요?”

“우리가 여기 올 줄 알고 일부러 기다리고 있던 것 같다.”

“기다리다니요? 무슨 말씀이세요?”

“이런 산중에서 우연히 두 번을 마주친다는 것 자체부터가 뭔가 냄새가 나는 일이지.”

“나는 고기 냄새밖에 맡지 못하겠는데요. 그나저나 저 배고파요. 아빠 때문에 식사도 거르고, 참.”

“일단 자리를 뜨자. 최대한 저놈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말이다.”

가르시아는 딸과 함께 반대편 구릉지로 향했다. 그리고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건만 그의 잔소리는 끊이지 않고 있었다.

“먹어 보라는 소리조차 한마디도 하지 않는 싸가지 없는 놈.”

이에 아스칼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나쁜 놈이라 했잖아요? 그런데 그에게 뭘 바라시는 거예요.”

“그래도 사람이 그런 게 아니지. 눈앞에 빤히 다른 사람이 있는데 그 고기가 입으로 넘어가냐. 하기야 내가 열을 낼 이유는 없지.”

아스칼은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져 가는 아버지가 걱정되었다. 물론 딸과 함께 여행 중이니 그 자신을 위한 경계심이 지나치다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정말로 저 사람이 온전한 의도가 아닌 자라면 자신이 부모라도 무조건 피하고 봤을 것이다. 아버지가 뛰어난 검사인 줄은 그 누구보다도 그녀가 잘 알지만 검술을 못하는 딸에게 만에 하나 그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노심초사하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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