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 * *
도끼질의 달인은 아니더라도 이젠 꽤 능숙했다. 쇠기둥에 표시된 십자 표시는 총 500개. 같은 곳이 아닌 각각의 표시를 차례대로 타격하면 경험치가 3분 1가량 더 오른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오늘은 한 달째로서 이제는 그 타격 정확성이 거의 90퍼센트의 확률을 더 해 가고 있으니 신나는 일이었다. 그는 홀로그램 수치를 보기로 했다.
띠링!
[현재 경험치는 0.125입니다.]
[공격력- 7
방어- 2
민첩성- 2
지능- 2
생명력- 7]
옵션마다 분명한 수치 향상이 있었다. 비록 기대했던 것만큼은 아니지만 생명력 7만으로도 도끼질 수백 번 하는 데 별로 힘들지 않다는 것에 위안으로 삼기로 했다.
“이 게임은 레벨 1 올리기도 엄청나게 힘든 것 같은데. 0.125라… 10분의 1 수준이군.”
그렇다면 계속하는 수밖에.
푹! 푹! 푹! 푹.
찍고! 찍고! 또 찍고 계속 찍었다. 개기일식 비슷한 것 덕분에 쇠기둥의 타격점을 찾았지만 이 또한 결코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되었다.
“그래, 창조주들이 만든 게임이니 절대 쉬울 리가 없겠지.”
다음 명제를 제시하고 스스로 그 답을 풀어 보려고 했다.
‘내가 깨닫지 못한 것이 더 있을 수도. 아니, 분명 있어.’
그는 도끼를 옆에다 내려놓고는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그게 뭘까?”
그의 머릿속은 더욱 능률적인, 아니 획기적인 뭔가가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기드는 무심코 쇠기둥들을 세어 봤다.
“하나, 둘, 셋…….”
정확히 열두 개였다. 각각의 거리 간격은 대략 2미터 정도. 쇠기둥의 형태와 모습은 똑같았다.
“12개라……. 그런데 왜 12개지? 그것도 같은 간격으로 정사각형이라. 훈련할 때 옆 사람 방해하지 말라고 저렇게 한 건가.”
기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잠시 후 생각에 잠겼고, 순간 그의 눈빛이 반짝였다.
“흠, 내가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을까. 어쩌면 다른 용도일 수도…….”
기드는 두 번째 기둥에 외투를 씌어 그 안을 살펴보기로 했다. 첫 번째 기둥은 500개의 빛점들로 가득했기에 이번 것 역시 촘촘한 반딧불을 예상했었다. 하지만 의외로 어두웠다. 아니, 최상단 부에 빛점 하나가 있었고, 바닥과 가까운 하단부에 나머지가 있었다. 그렇다면 덜렁 두 개.
“왜 두 개밖에 안 되지.”
일단 단검을 꺼내어 그곳에 십자 표시해 두었다. 외투를 벗기고 기둥의 표시를 살펴보았다. 기둥의 높이가 3미터 정도, 위아래에 있는 빛점들의 거리는 2미터 정도였다. 그는 도끼를 들어 밑 점부터 타격했고, 이어 높이 치켜들어 겨우 상단부의 조준점을 맞출 수 있었다.
탁! 탁!
하지만 소리가 둔탁했다. 뭔가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히 조준점을 맞추고 정확히 타격했지만 왜 그런 소리가 나는 건지. 그래서 이번에는 위 점을 찍었고, 그다음에 밑 점을 타격했다.
탁! 탁!
역시 이상했다.
“뭐가 잘못된 거지?”
두 번째 기둥에서의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지만 그건 또 다른 난관이었다. 하지만 이환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가만있어 보자. 위아래 두 개의 점들 사이에 미세한 선이 이어져 있네.”
기드는 뭔가 깨달은 듯 상단부의 빛점을 발뒤꿈치 들어 겨우 맞춘 다음에 그대로 도끼날을 기둥에 댄 채 끌어내려 밑 점을 찍었다.
푹! 스윽! 푹.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아하.”
다시 한번 시도했다.
탁! 찍! 탁!
이번엔 둔탁한 음. 흥분에 들떠 도끼질을 빨리했기에 정확성을 맞추지 못한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상단 점이 너무 높았다. 그냥 내리찍기에는 불가능했고, 폴짝 뛰어야만 겨우 그 점을 맞추고 밑 점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그래서인가, 결코 쉬운 동작이 아니었다. 물론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훈련에 훈련뿐.
탁! 찍! 탁!
“젠장!”
폴짝!
탁! 찍! 탁!
“아, 놔.”
그로부터 1시간 후.
푹! 스윽, 푹!
시간이 약이랄까. 이번엔 그래도 열 번에 한 번은 성공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건 그 어떤 동작을 연마하기 위한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검으로 따지면 일종의 수직일검이라. 제자리에서 도약하고 허공에서 머리부터 하체까지 두 조각내어 버리는 파괴적인 기술!’
기드는 그런 개념으로 더욱 훈련에 매진했다. 옷이 땀에 푹 젖을 정도로 단순 동작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푹! 스윽! 푹!
신기하게도 체력이 뒷받침해 주었고, 그 강도 역시 강해지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서 상단부 십자 표시에서 기둥을 대고, 끌어내리는 힘이 점차 세어 기둥에 깊은 골이 파였다. 마치 홈은 불어난 계곡물에 그 깊이가 파지다 못해 허물어지는 것처럼 점점 그 틈을 벌려 갔다.
그로부터 보름 후, 현재 수치가 어떻게 되는지. 물론 홀로그램을 띄워 봤다.
띠링!
[현재 경험치는 0.525입니다.]
[공격력- 14
방어- 5
민첩성- 5
지능- 5
생명력- 12]
경험치가 0.525라면 거의 0.5레벨인 것이다. 게다가 공격력을 비롯해 모든 수치가 제법 올라 있었다. 이환은 체력적으로뿐만 아니라 제자리 도약에서 무려 사람 키만 한 높이까지 뛰어오를 수 있다는 것에 무척 기뻐했다.
폴짝! 폴짝!
도약 동작은 정말 재미있었다. 무거운 도끼를 들고 높이 오를 수 있다는 것은 중력을 거스른 풍선이 된 기분이었다.
“아싸!”
이제 그의 목표는 세 번째 기둥이었다. 빛점들을 찾아내고 표시하는 식은 죽 먹기. 십자 표시대로 동작을 연구하는 일이 좀 까다롭지만 그거야 그의 검신 능력이라면 얼마든지 도전해 볼 만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번 것은 좀 애매했다. 두 번째와 마찬가지로 빛점 두 개가 상단부와 하단부에 있었지만 상반된 위치에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기둥에 파인 미세한 홈은 직선이 아닌 기둥에 회오리 감듯 몇 번을 감아 오며 아래 표시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그렇다면 일단 도끼날을 위에서 찍고 그대로 기둥을 기준으로 몸체까지 같이 몇 번을 돌아 아래까지 점을 잇는다는 것인데, 언뜻 생각해 보니 회오리 동작을 요구하는 것 같았다.
“진짜 돌아 버리겠네.”
* * *
기드는 세 번째 기둥의 빛점을 따라 일명 회오리 검술 비슷한 것을 숙달한 뒤에 네 번째 이후의 기둥으로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총 열두 개의 쇠기둥, 나머지에 나타나는 빛점들로부터 뭔가 훨씬 강한 검술들을 수련하리라 기대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세 개의 기둥을 빼고는 모두 빛점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검술의 동작이 아닌 다른 의미의 상징적 표시를 나타내는 것인데, 그 의미를 도저히 파악할 수 없었으니 이만저만 답답한 게 아니었다.
기드는 제자리에 털썩 앉아 도끼를 어루만지다 문득 홀로그램 수치를 허공에다 띄워 봤다.
띠링!
[현재 경험치는 0.925입니다.]
[공격력- 20
방어- 10
민첩성- 10
지능- 10
생명력- 20]
“정말 너무하는군. 이건 처음부터 너무 암울한 게 희망이 없어. 전혀 없다고.”
하늘을 바라보며 투덜거린다 해도 누가 들어 주기나 할까. 그때 이환은 문뜩 쇠기둥들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왜 기둥들의 숫자가 열두 개이지.”
거기에 그 어떤 의미라도 있는 것인지. 그는 무심코 단도를 꺼내 땅 위에다 하나의 도형을 그렸다.
그건 정팔면체의 홀론 도형이었다. 그리고 그의 눈빛이 반짝였고, 손으로 뭔가를 세기 시작했다.
“가만있어 보자. 선들의 숫자가…….”
총 열두 개였다.
“홀론의 선들이 열두 개이고 눈앞에 보이는 쇠기둥들의 숫자도 열두 개라. 우연의 일치치고는 조금 냄새가 나는데.”
기드는 벌떡 일어났고 쇠기둥들을 향해 다가갔다.
“뭔가 있어. 분명! 연관이 있을 거야.”
나름 직관력 하나는 타고났다고 자부하고 있는 그인지라 일단은 뭐라도 해 봐야 했다.
팍! 팍!
갑자기 쇠기둥이 박혀 있는 그 밑바닥을 파기 시작했다.
“일단 기둥들을 다 뽑아 버리자.”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흘렀을까.
“열두 개의 쇠기둥들이 흙바닥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기드는 그것들을 바라며 손으로 턱을 만지작거리며 고심했다.
“그다음에는 뭘 하지?”
그때였다. 뭔가 들려오는 진동음.
웅.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오른쪽 끝에 있는 두 개의 쇠기둥이 서로 공명을 일으키며 괴이한 음을 내는 것이었다.
이게 무슨 현상인가 싶어 다시 살펴보았다. 처음에는 그 이유를 알기가 어려웠지만 다소 시간이 흘러간 뒤에야 한 가지 사실을 알아낼 수가 있었다. 그건 기둥의 빛점, 즉 십자 표시가 난 위치와 다른 기둥의 표시가 서로를 마주 보며 내는 현상이었다.
기드는 그때부터 손놀림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맞아! 열두 개의 기둥의 십자 표시를 서로 마주 보게 한다면!”
잠시 후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기둥의 배치에 신경을 썼다. 일단 기둥들의 십자 표시가 안쪽으로 가도록 했고, 서로 마주 보게 했으니.
우웅! 우웅!
진동음이 더더욱 커지자 기드는 흥분했다.
“뭔가 있어! 있다고.”
음향의 폭이 더 커지도록 다시 배치를 정교하게 해 보기로 했다. 그때였다. 고막이 터질 정도로 날카로운 고음이 들려왔고, 그는 두 손으로 귀를 막아 버렸다.
이어지는 놀라운 광경. 기둥들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제멋대로 일어서더니만 그 어떤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했다.
척! 척! 척! 척!
거대한 거인이 도형 놀이를 하는 것처럼 열두 개의 기둥은 정팔면체의 입체적인 도형으로 변했다.
그건 바로 홀론이었다. 기드는 그만 입을 헤 벌리며 웃음을 흘렸다.
“하하.”
어쩌면 저거야말로 창조주들이 심어 놓은 비밀 코드일 수도……. 기드는 너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하하하, 뭔가 해낸 거 같은데. 하하.”
잠시 후 기드는 홀론의 모형에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사실 이제부터가 문제였다. 뭘 어떡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손으로 기둥을 만져 보았다. 부드럽고 따듯한 느낌. 금속의 질감보다는 플라스틱에 가까웠다. 재질 자체가 바뀌어 버린 것일까. 그때 또 한 번의 진동음이 울렸다.
웅.
기드는 겁이 난 나머지 뒷걸음질을 쳤다. 그런데 각 이어진 기둥 선 사이의 면들에서 하늘빛 투명막이 빛을 발하며 아름다운 색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파팟.
마치 홀론의 도형에 빛으로 된 투명 벽지가 입혀진 느낌이었다.
“와우.”
조금 전까지 두려움이 일었지만 이내 경이로운 표정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기드는 점점 푸르스름하게 변하는 막에 손을 슬쩍 대어 보았다. 설마 전기 같은 그 뭔가에 감전되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되었지만 여기까지 와서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손을 대자마자 무언가 안으로 끌어당기는 힘에 쭉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스윽.
“헉!”
순식간에 입체 도형 안에 갇히고만 기드, 이어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아이쿠.”
신체는 도형 정중앙 지점에 멈추었다. 이 안에는 중력을 거스르는 그 어떤 에너지가 존재했음이 분명했다. 마치 우주선 조종사가 무중력 상태에서 붕 뜬 그런 모습이었다.
다만 위아래 구별은 있었는지 허공 중간 지점에 그대로 서 있었는데, 밑에 바닥이 없는 상태였기에 기분이 참으로 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