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아직 결혼은 해 보지 않아서 그 느낌을 정확하게 설명하기 뭐하지만 확실히 그런 기분이 아닌가? 했다.
이제는 그녀가 유령이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오로지 함께 있다는 그 자체에 감사하고 행복할 뿐이었다.
서로가 사랑한다는 것에 모든 의미를 두고 싶었다. 깊은 키스를 나누는 지금 이 순간에도 신께 감사드렸다.
이런 여인을 내게 나타나게 해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고 속으로 수도 없이 외쳤다.
그때 레아가 내게 말했다.
“기드, 이제 진실을 말해야 할 것 같아.”
“진실이라니?”
“아마 지금까지 나에 대해 이상한 경험을 많이 했을 거야.”
“그, 그렇긴 하지……. 그런데?”
“그 이유는 내가 시간 여행자라서 그래. 나 원래 고향은 베가드 행성이고, 타임머신을 타고 지금의 네가 있는 이 과거 세계로 오며 시간 여행을 즐겼거든.”
“시간 여행?”
“그래서 너는 시간의 뒤틀림 현상을 겪게 되어 이제는 매우 혼란스러울 거야. 그건 정말 미안해. 나 때문에.”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시간이 없어. 또 타임머신이 작동하게 될 거고, 이번에는 다시는 이곳에 올 수가 없어.”
“올 수 없다니?”
“그래서 말인데, 나와 함께 타임머신 타고 우리 베가드 행성으로 가자.”
“베가드 행성?”
“도저히 너를 두고 나 혼자 갈 수가 없어. 기드. 나 너를 너무 사랑하거든.”
기드의 회상은 거기서 멈추었다.
【 살상 게임 】
은하 연합 본부가 위치한 센트리윰 건물의 중앙 의회실에는 의장과 그의 참모는 매우 은밀한 대화를 주고받는 중이었다.
“이보게, 아르곤.”
“네, 의장님.”
“이번 초시공 전사 테스트의 지원자 중 정말 기연을 얻을 만한 자가 있는가? 내 지난번에 듣기로는 미래 예측 기기에 그러한 자가 존재한다고 했는데.”
“그렇지 않아도 그 말씀을 전해 드리려고 이렇게 찾아뵌 것입니다.”
“어서 말해 보오.”
“아시다시피 이 광활한 안드로메다 성운에는 태곳적부터 전해져 오는 4대 기연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중 한 가지를 얻는 자는 훗날 초시공 전사로서 대우주에 근접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힘을 지닌다고 합니다.”
“대우주라…….”
“네, 그렇습니다. 대우주에 입성할 수 있는 그 권한이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기연을 이어받을 자가 이곳 은하계의 어느 차원, 과거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오호, 그거 말만 들어도 벌써 웅장해지는군. 그렇다면 4대 기연 중 하나인 ‘창조주들의 서식지’와 관련이 있는 것이오?”
“네, 그렇습니다. 안드로메다 성운의 이곳 좌표 3452에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바로 ‘창조주들의 서식지’입니다. 말 그대로 각각 행성의 창조주들이 유희로 만든 일종의 ‘게임’으로써 그것은 인간에게 안배를 두기 위한 은하 연합의 아주 중요하고 중요한 축복입니다.”
“게임이라. 과연 창조주들은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 만들었는지 궁금하군. 그리고 그 기연을 이어받을 자는 자네가 조금 전 말했듯이 일종의 선택받은 자만이 가능하다 그랬는가?”
“네. 그렇습니다, 의장님.”
“그럼 그자는 어디 있는가?”
“현재 베가드 행성에 있습니다. 그리고 살상 게임에 참여할 것입니다.”
“오! 그거 잘됐군. 그런데 창조주들의 서식지는 어떻게 들어가는 것이지?”
“그건 저도 모릅니다. 다만 그 선택받은 자는 언제 어느 때 갑자기 돌연 사라질 것입니다.”
“사라진다고?”
“네, 그리고 창조주들의 서식지에서 기연을 얻게 되면 다시 원래 그 장소로 돌아온다고 전해집니다.”
의장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윽고 다시 물었다.
“이런 사실은 오로지 나와 자네만이 아는 것이겠지.”
“네, 그렇습니다. 만일 기연과 기연을 받는 선택받은 자에 대한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대우주에서 수많은 전사가 몰려올 것입니다. 안드로메다 성운의 4대 기연들은 대우주의 입장에서도 엄청난 사건이라 할 수 있으니까요.”
의장은 잠시 차를 마시며 생각에 잠기다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대우주라……. 이곳 안드로메다 성운 같은 소우주에서 그곳에 가려고 안달이 난 다른 성운과 천체만 셀 수도 없이 많지. 그 정도로 대우주는 신비의 베일에 싸인 미지의 영역.”
“일단 조홀 은하 연합도 다른 천체와 마찬가지로 대우주로 가는 관문에 들어갈 기회가 생길 것이니 기뻐하셔도 됩니다.”
“흠, 그 열쇠가 바로 지금 베가드 행성에 있는 그자라…….”
“그자 이름이?”
“기드라 합니다.”
“기드……. 그러고 보니 우리로서는 정말 소중한 보물이 아닐 수 없군.”
“하지만 그가 기연을 얻을지라도 우선 초시공 전사 테스트를 받아야 하고, 그런 다음 안드로메다 성운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꽤 오랫동안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여기 안드로메다 성운이 아무리 소우주라지만 태양만 1조 개가 넘는 광활한 영역. 게다가 그 안에서 초시공 전사의 존재는 그저 미미한 세력에 불과할 뿐……. 과연 기드 외에 누가 이번 살상 게임에서 살아남을지 그 또한 궁금하군.”
“최후에는 800명 중에 아마 소수만이 남을 것입니다. 열 명이 될 수도 있고, 다섯 명이 될 수도 있고…….”
“또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네, 말씀하시죠.”
“우리 조홀 은하계에서 기드가 안드로메다 성운의 4대 기연 중 한 개를 얻는다면 나머지 세 개의 향방은 어떻게 되는가?”
“그것들은 다른 성운과 천체에서, 각각 선택받은 자들이 나머지 세 개의 기연을 얻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안드로메다는 총 네 개의 세력으로 나누어질 가능성이 크겠군. 내가 알기로는 우리 조홀 은하계와 마젤란, 켄타우리, 카로제스타 등등……. 결국 그들과의 경합이라.”
“하지만 기존의 초시공 전사들과 현재 치러지는 테스트 합격자들 역시 그 세력 다툼에 있어 변수로 떠오를 것이 확실합니다.”
“그건 그렇지. 어차피 안드로메다 성운은 초시공 전사들의 각축장이자 또한 그들을 넘보는 제2, 3의 세력이 가득하니까. 사실, 문제는 그들이지. 어둠의 세력들. 흠, 요즘 들어서 그들의 권능이 점점 강해지고 이제는 안드로메다의 패권을 쥐려고 혈안이 되어 있지.”
“그래서 초시공 전사들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나저나 현재 우리 조홀 은하계에서 그래도 제일 든든한 초시공 전사가 있다면 카이가 아닌가?”
“네, 그렇습니다. 카이, 그자야말로 불세출의 영웅이죠. 그리고 그 덕분에 안드로메다 성운에서 우리 조홀 은하계가 이 정도까지 버티는 것이지요.”
“그런데 내가 이야기 듣기로는 카이가 졸업한 시공 아카데미에서 이번 두 명이 지원했다고 하는데.”
“네, 그렇습니다. 이형도와 야록이 카이와 같은 아카데미 출신입니다.”
의장은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가서 바깥 창문을 바라보았다.
“어차피 4대 기연으로 인해 안드로메다 성운이 네 개로 분리될 테고, 그중 최후의 승리자가 결국 대우주로 진출하겠군. 그나저나 대우주는 과연 어떤 곳일까, 흠…….”
“더 하실 말씀 없으시다면…….”
“흠, 알겠소. 그럼 그만 물러가도록 하시오.”
* * *
그로부터 한 달 후, 드디어 살상 게임이 개최되어 생중계되기 시작되었다.
최초의 방송 촬영 중계는 살상 게임이 열리는 그 어느 숲에서 한 청년에게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었다. 그는 초시공 전사 테스트 지원자 중 도박 예상 순위 8위인 메카론이었다.
청년 메카론은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드디어 시작했군. 이게 바로 내가 그토록 원했던 바이지. 그동안 꾹꾹 눌러 왔던 내 광기의 권능이 드디어…….”
메카론은 검을 뽑아 앞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광기에 들린 듯 소리쳤다.
“누구든 걸리면 다 죽여 버릴 테다! 아주! 씨를 말려 버릴 거라고!”
이어 그는 숲을 향해 돌진해 들어갔는데, 그 위에는 드론 수십 대가 그를 촬영하며 생방송으로 베가드 행성 전역에 중계를 내보내고 있었다.
잠시 후 메카론은 숲에서 그 누군가를 만났다.
그때 들려오는 생방송 사회자의 중계 음성.
- 아, 네! 지금 서열 8위 메카론이 누군가와 마주쳤습니다. 자! 여러분 드디어 올해 살상 게임 그 첫 번째 대결이 펼쳐지는 순간입니다. 다들 기대해 주세요!
메카론과 숲길에서 만난 자는 우람한 덩치에 중년 나이의 대머리로서 삼지창을 들고 있었다.
- 여러분, 삼지창의 주인공은 현재 서열 398위 시공 전사 출신 ‘바쿠어스’라는 전사입니다. 그의 주 무기는 창 계열로서 조홀 은하계 켄타우리 성단에서 수많은 활약을 한 이력이 있습니다.
메카론은 검을 들로 다짜고짜 그에게 돌진해 들어갔다.
이에 대머리 바쿠어스 역시 창을 들고 그에 향했다.
순간.
창!
“컥!”
풀썩!
메카론의 검이 그의 삼지창을 갈라놓음과 동시에 그대로 머리부터 몸통까지 두 쪽으로 갈라놓았다.
- 메카론 승! 과연 서열 8위다운 놀라운 전투력이었습니다! 광기의 차원 통치자 메카론, 그의 첫 제물은 시공 전사로서 이 열기를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게 합니다.
메카론은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후후, 이제 시작일 뿐.”
그의 군장은 이미 상대방의 피를 뒤집어쓰고 붉게 물든 상태였다. 조금 전 승리는 당연한 듯 무덤덤한 표정으로 다시 새로운 사냥감을 찾으러 다른 길로 향했다. 물론 드론 카메라들은 그를 계속 추적 중이었고, 그 모든 것이 생방송으로 중계되었다.
잠시 후 메카론은 다른 상대와 만났다. 그는 금발의 여자로서 양손에 각각의 검들을 쥐고 있었다.
- 메카론의 다음 상대는 천공의 섬 ‘아제마’에서 온 쌍칼의 여신 ‘한나’입니다. 현재 예상 순위 239위로서 중간 실력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이번 살상 게임에 참가한 초시공 전사 테스트 지원자 중 만만하게 볼 전사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자! 이번 대결 각자가 도박 베팅한 자에게 많은 응원과 성원을 보내기 바랍니다.
메카론은 상대를 보자마자 탐색전도 필요 없다는 듯 그대로 달려들었다. 여전사 한나 역시 피하지 않고 그대로 그에게 달려갔다.
파파파팟!
검끼리 부딪치며 허공에 무수한 불빛을 터트렸다.
그리고.
삭!
“악!”
한나의 목이 몸통과 분리되어 그대로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 메카론 승! 아! 서열은 무시하지 못하나 봅니다. 이번에도 서열 8위 메카론이 서열 239위 한나의 목을 베어 버렸습니다. 과연 메카론의 광기는 어디까지 갈까요! 이번 중계는 메카론을 중심으로 계속 진행해 드리겠습니다.
메카론은 이번에도 먹잇감을 찾기 위해 계속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자신을 중계하는 저 드론의 카메라에 손을 들어 승리의 브이 자를 하는 여유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강가에 이르자 또 다른 참가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매우 곱상하게 생긴 자였는데, 메카론은 그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남자도 아니고 여자인 것 같은데…….”
그러자 그가 다소 짜증을 내며 말했다.
“나 남자거든!”
메카론이 피식 웃었다.
“후후,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다. 어차피 내 세 번째 제물일 뿐.”
- 여러분! 메카론의 세 번째 상대는 놀랍게도 서열 800위 기드라는 자입니다. 그러니까 800명의 참가자 중에 맨 하위랄까요! 아. 이번 대결은 보나 마나 메카론의 승이 분명할 듯합니다. 더구나 기드라는 전사에 대한 이력은 전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시간 여행자라는 정보가 나옵니다. 아마도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에서 온 전사가 아닌가 봅니다. 그렇다면 이 게임은 불 보듯 뻔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