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필로스라고요. 후후, 내 부관하고 이름이 똑같군요. 아무튼 반갑소. 그나저나 지금 당장 궁금한 점이 있는데 물어봐도 괜찮소?”
“네, 질문하시죠.”
“음… 그러니까… 그게 뭐냐? 혹시 고기 있습니까?”
그 질문에 필로스는 다소 당황한 듯했다.
“고, 고기라니요?”
“고기 말입니다.”
“아, 네. 배가 고프시군요. 식사는 곧 이동할 호텔에서 하시면 됩니다.”
그러자 야록은 다소 답답한 듯 말했다.
“그게 아니라, 나는 반드시 고기를 먹어야 합니다.”
“네, 호텔 식사에서 고기가 나올 겁니다.”
“아니, 그런 고기 말고요.”
“무슨 뜻인지.”
“생고기 말입니다.”
필로스는 다소 의아한 듯 물었다.
“생고기라면… 굽거나 요리하지 않은 그런 생고기를 말씀하는 것인지요.”
야록은 이제야 말이 통한다는 표정으로 좋아했다.
“하하, 이왕이면 방금 사냥한 짐승을 껍질째 벗겨 그 따스한 김이 무럭무럭 나오고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그 육질이 먹고 싶습니다.”
“…네? 그, 그건 그러니까, 그게 그런 생고기는…….”
“반드시 부탁합니다. 정말 허기가 지는군요.”
필로스는 당황했다.
“그, 그런 게 호텔이 있을지……? 그것도 살아 있는 짐승이라고요?”
나는 내심 웃음이 나왔다. 반인반수인 야록의 식성은 거의 야생동물과 같았으니. 이쯤에서 화제를 돌려야만 할 것 같았고.
“필로스 님, 일단 저희를 이렇게 친절하게 맞아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희는 사실 초시공 전사에 대한 정보를 거의 얻지 못한 채 이곳에 곧바로 왔기에 궁금한 것들이 많습니다. 일단 초시공 전사 테스트에 앞서 그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때 필로스는 허리춤에 작은 기기를 꺼내 그것을 들여다보며 설명했다.
“네, 그럼 지금 이후의 일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두 분은 바로 도착할 아이아스 호텔에서 1년 동안 머물며 각종 행사에 참석함으로써 일정은 시작될 것입니다.”
순간 나는 의아했다.
“1년이라고요?”
“네, 1년 맞습니다.”
“그럼 초시공 전사 테스트를 받기 전 1년 동안 뭘 하는 겁니까?”
“조금 전 말씀드렸듯이 각종 이벤트와 행사, 홍보, 그리고 각종 수많은 매체의 인터뷰와 방송 활동을 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그 말에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데 필로스는 한술 더 떠서 말했다.
“그리고 베가드 행성의 공식 도박 협회의 배당률을 위한 등록도 하셔야 합니다.”
“도박 협회의 배당률이라니요?”
“현재 베가드 행성의 그 모든 시민은 초시공 전사 테스트를 받으러 온 800명의 지원자에 관한 관심이 최고 고조에 달해 있습니다. 그리고 두 분 괜찮다면 지금 바로 등록해서 자신의 도박 순위와 배당률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럼 바로 시행하죠.”
필로스는 기기를 조작하자 바로 허공에 홀로그램 글씨가 떠올랐다.
내용은 이러했다.
성명 : 야록
출신 : 헬존
태생 : 조홀 은하계 창조주의 장남.
도박 베팅 예상 순위 : 10위
성명 : 이형도
출신 : 플레이아데스 성운 조홀 시공 전사 아카데미
태생 : 알려진 바 없음.
도박 예상 순위 : 777위
순간 필로스는 매우 놀라워했다.
“오호! 야록 님의 예상 순위가 10위라니. 오! 정말 대단하군요.”
반면 나는 그 반대로 성질이 나려 했다.
“777위, 젠장! 끝에서 세 번째로군.”
그러자 필로스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후후, 예상 순위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바뀔 수 있다니요?”
“이제 각종의 방송 매체와의 출연과 행사에서 그 이미지가 얼마든지 바뀔 수 있기 때문이죠. 즉, 대중들에게 인기도 면에서 상승세로 돌아가면 말이죠.”
“대중이라니요? 이거 뭐, 어디 TV 쇼 예능 프로그램이라도 하는 것인가?”
그때 야록이 내게 말했다.
“형도야, 너무 순위에 신경 쓰지 마라. 뭐 그래도 내가 3위라니, 사람 제대로 볼 줄은 아네. 크크.”
그건 약 올리는 듯한 말투.
“빌어먹을!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해야지. 네가 사람이냐? 반인반수의 야수이지!”
“너 화났구나.”
“내가 언제 화났다고 그래!”
“크크, 화난 게 분명해.”
* * *
우리는 호텔에 도착했고, 각각 객실 하나를 배정받았다. 나는 짐을 풀고 객실 안의 이것저것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과연 은하 연합 본부가 있는 이곳 초고도 과학 문명의 베가드 행성이 얼마나 대단한지 궁금해서 말이다.
제일 먼저 들어오는 것은 창밖의 풍경이었다. 이곳은 무려 1,040층의 상당한 고층 빌딩이었기에 도시 풍경이 한꺼번에 눈에 다 들어왔다.
“음, 과연. 아, 정말 대단하군.”
나는 그 전경에 감탄해 마지않았다.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기에 말이다.
일단 고층 빌딩 숲에 이루어진 그 자연 전경이 너무나 대단하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했다.
원래 이런 대부분 1,000층이 넘는 초고층의 빌딩 숲이라면 삭막한 건물들로 다 들어찼어야 하지만 그것과는 정반대의 광경이었다.
이를테면 이런 상층 높이에 펼쳐진 숲이라든가. 거대한 산들과 강조차 흐르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그리고 나는 저 어마어마한 자연경관이 천공에 떠 있는 섬이라는 사실 이제 발견하게 이르렀다. 즉, 중력을 거스르는 과학 기술이라.
물론 저런 천공의 섬은 옛날 고전 영화 ‘아바타’에서 봤다. 하지만 이런 거대한 첨단 도시에서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그로 인해 전해져 오는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와, 정말. 말이 나오지 않는군.”
그뿐만 아니었다. 초고층과 어우러진 자연경관이 있다면 그 허공에 가득 찬 소형 전함, 비행접시만 수천, 수만 대가 있었으니 아마도 이곳의 교통수단이 분명했다.
심지어는 사람들도 하늘을 비행하고 있었으며 등에는 그 어떤 장치도 달리지 않았다. 아마도 반중력의 그 어떤 물질이나 에너지원을 사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이 들었다.
뭐, 그야 어쨌든 중요한 것은 내가 드디어 초시공 전사 테스트를 받기 위해 은하 연합 본부가 있는 이곳 베가드 행성에 입성했다는 것이다. 그것만으로 나는 더할 나위 없이 뿌듯했다.
* * *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사실 초시공 전사 테스트를 받기 위한 지원자에 속하는 것조차 그야말로 엄청나고 대단한 영광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이곳에 도착한 지 일주일 만에 TV를 보고 나서 느낀 점이다.
여기는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베가드 행성의 이곳 대도시의 인구만 무려 17억 명. 그들의 관심사는 이번 제327차 초시공 전사 테스트를 치르는 사전 기간이었다.
총 800명의 지원자는 이미 우리가 여기에 도착하기도 전에 그 신상이 일일이 공개되어 벌써 인기 순위가 매겨지며 매일 수백 개의 방송사에서 저마다 그 이력을 공개하고 이름, 출신에 관해서, 토론회, 행사 등등 한마디로 그 뜨거운 열기는 장난이 아니었다.
심지어 지원자들의 실제 활동, 아니 실제 전투를 치르는 장면들을 실은 동영상이 어디서 어떻게 입수했는지 미리 TV 방송에 나와 그들의 활약상이 엄청난 시청률을 끌어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지원자 중 한 명인 나조차 그 TV를 온종일 틀어 놓고 다른 지원자들의 전투 활약 방송을 보는 데 빠져 버렸다.
나는 그래도 시공 전사로서 나름 내 영역에서 꽤 큰 활약을 펼쳤고 나름 유명하다고 생각되었는데 여기서는 전혀 관심도 받지 못할뿐더러 내가 과연 초시공 전사 테스트를 받으러 온 지원자인지 헷갈릴 정도로 그저 평범한 일과를 보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방송을 타 유명세를 얻고 있는 지원자는 800명 중에 도박 예상 순위 최소 10위 안에 드는 전사들이다.
그들은 아예 여기에 오기도 전에 이미 은하 연합에서 인정한, 그야말로 영웅 중의 최고의 영웅들이랄까.
나는 그들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방송에서 활약상을 볼 때 그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능력을 지녔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들 모두 다 나처럼 시공 전사 출신이 아닌 다른 천체에서 온 아주 특별한 존재였다. 물론 나와 함께 온 야록 역시 시공 전사 출신은 아니지만 그 역시 도박 예상 순위 10안에 들었는지 벌써 엄청난 명성을 얻고 있었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똑!
“누구세요.”
“나 야록이다.”
순간 나는 짜증이 났다.
“왜 왔어! 한창 바쁠 텐데.”
“문이나 열어 줘.”
“싫은데. 여기 도착하자마자 일주일 동안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던 놈이 무슨 일로 왔냐?”
“그동안 방송국들에서 녹화, 화보 촬영, 인터뷰, 정말 엄청 바빴다.”
“화보라고? 쳇, 네가 무슨 슈퍼 모델이라도 되냐! 화보는 개뿔.”
“아! 그 자식, 문이나 열고 얘기하자.”
그제야 나는 마지못해 문을 열어 주었다.
그런데…….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너 그거 뭐냐?”
“뭐가?”
“복장이 왜 그래?”
“이게 어때서?”
“아니……. 뭐, 상체가 다 드러나는 러닝셔츠에 금목걸이, 팔찌, 귀걸이가 주렁주렁…….”
야록은 다소 쑥스러운 듯 말했다.
“방송 촬영하다 와서…….”
나는 잠시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짓다가.
“일단 들어와라.”
잠시 후.
우리는 탁자에서 포도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살맛 나냐?”
내가 묻자 야록은 인상을 찡그렸다.
“뭐냐? 그 비아냥거리는 말투는?”
“네가 그렇게 놀잖아.”
“놀다니? 나는 그냥 여기서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이지. 오히려 네가 부러워하는 거 아니냐?”
순간 나는 성질을 냈다.
“부럽다고! 내가 부럽다고! 그까짓 방송에 출연하고 여기서 인기를 얻었다고! 그걸 네가 부러워한다고!”
그러자 야록은 나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크크, 부러워하는 게 맞네.”
“뭐라고!”
“흠, 하기야 그럴 만도 하지. 사실 여기 사람들이 네 진정한 전투 능력을 알아본다면 오히려 나보다 훨씬 인기를 끌었을 텐데. 쯧쯧.”
“쯧쯧? 설마… 지금 나 동정하는 거냐?”
“아, 아니 그런 건 절대 아니고. 그냥. 네가 안쓰러워 보여서.”
“이런 빌어먹을 놈이! 누가 염장 지르려고 일주일 만에 왔냐? 아니면 자랑질하려고!”
그러자 야록의 표정이 갑자기 진지해졌다.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너와 얘기 좀 하고 싶어서.”
“무슨 얘기! 가서 방송에 찍지 그래!”
“형도야, 그만하고 진짜 대화 좀 나누자. 사실 나 너와 진지하게 상의할 게 있거든.”
나는 그가 정말 진지하게 나오자 이내 자세를 고쳐 잡고 물었다.
“무슨 얘기가 하고 싶어서.”
그러자 야록은 한숨을 내쉬며 말문을 열었다.
“후~ 이거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니?”
“우리는 분명 초시공 전사 테스트를 받으러 온 지원자인데 말이야. 이 베가드 행성은 그 이전에 다른 것을 준비 중인 것 같아.”
“준비? 그게 뭔데.”
“게임.”
“게임이라니?”
“살상 게임.”
“살상…….”
그러자 야록은 갑자기 욕을 뱉었다.
“썅, 초시공 전사 테스트 지원자 800명 모두가 참여하는, 일종의 테스트 이전의 이벤트라고 이곳 현지 관계자들이 일을 꾸미고 있어. 그게 바로 정부와 방송국들과 모종의 비밀 협약을 맺고 게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게 아마 생방송으로 나가면서 실제 전투를 치르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야.”
“그건 뭔 소리야! 게임이라니! 우리는 엄연한 초시공 전사 테스트 지원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