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파팟.
퍽!
“욱!”
그 역시 그대로 무릎을 꿇고는 어깨를 부여잡았다.
“아무래도 누군가 고의적으로 우리를 노리는 것 같은데요.”
타타르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돌 방향이 날아오는 곳이 저 멀리 떨어진 숲이건만 어떻게 여기까지 직선 방향으로 날아와 자신들을 정확히, 여러 명을 맞힐 수 있단 말인가. 늑대 인간인 그들의 팔 힘으로도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결국 타타르는 중대한 결심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인간과의 전쟁을 부채질하기 위한 그 절호의 기회를 여기서 접기로 말이다.
하지만 엎친 데 덮친 격이랄까.
마침 동굴 안으로부터 여우 종족들이 밖이 소란스러웠는지 잠에서 깨어나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 한 것이 아닌가.
타타르는 순간적으로 나지막이 수하들에게 외쳤다.
“단검들 감춰!”
그가 말하기도 전에 이미 허리춤 작은 배낭에 감춘 상태였다.
그리고 여우 종족들은 이들에게 몰려들었다.
그중 나이 들어 보이는 한 여우 장로가 타타르를 알아보고는 물었다.
“아니, 타타르가 아닌가. 자네가 여긴 웬일인가.”
타타르는 당장 뭐라고 변명할 말을 잊은 채 잠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그 장로는 주변에 그 말고 무리들이 있는 것에 다소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혼자가 아니라 수하들도 같이 왔구먼. 그런데 대체 이곳에 무슨 볼일이 있어서.”
타타르가 말했다.
“보면 모르오! 순찰을 돌고 있지 않소이까.”
“그런데 왜 다들 거기서 앉거나 엎드리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여기는 그대들의 순찰 구역이 아닌데 굳이 이곳까지 온 이유가 뭔가? 아무래도 이상한데. 이 사실을 야록 님께서 아시는가!”
장로의 의심 섞인 눈초리에 타타르는 나름 즉흥적인 기지를 발휘하기로 했다.
그는 일부러 다급한 음성으로 외쳤다.
“큰일 났소!”
“큰일 나다니! 뭐가?”
“우연찮게 경계 구역을 살피러 갔다가 그곳에서 가린샤 님과 그 딸이 누군가에 죽어서 목이 베여 있는 시신을 발견했단 말이오!”
순간 장로와 다른 여우 종족들이 깜짝 놀란 표정을 이 지어 보였다.
타타르는 그들의 표정 변화와 더불어 더욱 실감 나게 아주 난리가 난 것처럼 말문을 계속 열었다.
“그 사실을 야록 님께 보고하기 위해서 지름길로 가다 보니 할 수 없이 이곳을 지나게 되었소. 하지만 쉬지 않고 뛰어오다 보니 숨이 너무 차서 잠시 쉬고 있던 상태에서 장로님이 나온 것이란 말입니다. 자, 이젠 됐소!”
타타르는 말이 끝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로는 너무도 심한 충격을 받았고 비틀거리기까지 했다.
“가린샤와 그 딸이 죽었다고……. 어, 어떻게 그런 일이… 아니, 누가!”
타타르가 말했다.
“인간들 짓이 분명한 것 같소.”
“인간들이라니! 제정신 가진 인간이라면 이곳 영토에 발조차 들여놓지 않을 텐데.”
“인간들 맞소. 뭔가 예리한 검에 베인 것으로 봐서 단검 같은 무기가 사용되었단 말이오. 우리 같은 야수 인간들은 그런 무기를 지니고 있지도 않잖소.”
장로는 손으로 이마를 짚더니만 다시 비틀거렸다.
“어떻게 인간들이 그런 짓을…….”
바로 그때였다.
도굴 옆 샛길로부터 온통 검은 털로 뒤덮인, 정체불명의 존재들이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타타르는 그들을 보자마자 하마터면 심장이 멎을 뻔했다.
“이봐, 타타르. 정녕 인간들이 경계 구역을 침범했단 말인가?”
“…….”
타타르는 그들의 위압감에 감히 숨조차 쉬지도 못할 판이었다.
[흑표범 종족]
그들에게 당화하는 모습을 보였다가는 이대로 끝장날 판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판사판 뭐라도 둘러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는 흑표범 대장 아르고에게 냅다 무릎을 꿇고 더욱더 급박한 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아르고 님! 정녕 큰일이 난 것 같습니다! 가린샤 님과 따님이…….”
순간 아르고의 굵직하고 쩌렁쩌렁한 음성이 그의 말을 끊었다.
“그건 나도 들어서 아는 얘기이고! 인간들이 그 둘을 해하였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는가를 묻고 싶군.”
대장 아르고, 그리고 그 뒤로 서 있는 스무 명의 흑표범 종족들이 그 살벌한 눈빛으로 타타르를 노려보니 그 자체만으로 심장이 바깥으로 튀어나올 만큼 가히 엄청난 기세에 눌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야말로 늑대 인간들이 이 안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종족들이었다.
야수의 세계에서도 서열이라 게 확연히 존재한다.
가장 낮은 계열이 여우와 같은 비전투 종족이라면 바로 그 위로 가장 개체 수가 많은 늑대 인간과 곰 종족들이었다.
그리고 흑표범과 여타 무시무시한 야수 종족들이 그 위에 군림하고 있으나 그 숫자 면에서 늑대 종족보다는 적다.
하지만 본능에 의한 전투력은 흑표범부터 사자에 이르기까지 일당백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이 세계에서의 강자로 우뚝 솟은 존재들이다.
물론 흑표범이 두려워하는 존재는 사자 종족이 있지만 그들끼리는 서로의 평화를 위해 좀처럼 다투는 일은 없었다.
물론 야록이라는 절대 강자가 제왕으로 있기에 그 아래의 서열 질서가 확고히 체계가 잡힌 상태였다.
하지만 일종의 병사 역할을 하는 늑대 종족과 야록과 그들의 시종과도 같이 심부름 역할을 하는 여우 종족 간에는 적지 않은 마찰이 있어 왔다.
여우 종족에는 야록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충성하는 시종장 레오가 있는데, 그는 자신이 제왕의 곁을 보살피는 중요한 직책이라 스스로 자부심을 가져왔다.
하지만 그게 지나쳤던가.
그것도 일종의 권력이라 이제까지 여우 종족을 무시했던 늑대 종족에게 복수심과도 같이 그 여분을 풀어내려 했다.
이에 늑대 종족에게 반감을 샀고, 결국 오늘날 그의 아내와 아들이 인간과의 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희생양이 되고 만 것이다.
흑표범 대장 아르고에 있어서도 시종장 레오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야록 님의 곁에 매일 붙어 사는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그 아래 종족들이 불호령을 받는가 하면, 어쩔 때는 운 좋게 넘어가는 형태가 마치 그의 손바닥 안에서 노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아내와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에 다소 놀랐지만 그리 애석한 일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그가 궁금한 것은 과연 이 일에 인간이 경계 구역을 침범하고 개입했는가?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타타르 역시 아르고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어떻게 할까요? 당장 야록 님에게 보고를…….”
이번에도 아르고가 그의 말을 끊었다.
“아냐.”
“아니라니요?”
“사건의 진상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시점에서 그대로 보고 했다가는 더욱 파장이 커질 뿐일세.”
“그럼 어떻게…….”
아르고는 자신들을 지켜보는 여우 종족들의 눈을 피해 타타르를 구석으로 데리고 갔고, 거기서 속삭이듯 말했다.
“타타르, 생각해 보게. 그 소식이 야록 님에게 알려지면 그 간신배 같은 레오 놈이 자기 아내와 아들이 죽었다는 충격 때문에 인간들과 전면전을 꾀하게끔 할 것은 자명한 얘기가 아닌가. 그렇게 된다면 여우 종족들은 더욱 기승을 부릴 테고……. 그래서 하는 말인데…….”
아르고는 그 누구도 듣지 못하게 아예 타타르의 귀에다 대고 뭐라 소곤거렸다.
잠시 후.
타타르는 방금 전 아르고에게 들은 내용에 매우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아니, 거대한 해머로 한 방 맞은 느낌이랄까.
놀랍게도…….
그는 레오의 아내와 아들을 그 자신이 죽이고 인간들에게 누명을 씌운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번 거사를 계속 진행하라는 것이다.
어차피 지금 동굴 앞에 있는 여우 종족들이 이번 사건을 안 이상 증인들을 살려 둘 이유도 없거니와 여우 장로와 그이 가족까지 제거하라는 명령.
바로 타타르가 원하고 원하던 바였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흑표범 대장인 아르고 역시 야록의 시종장인 레오와 함께 친위대인 사자 종족에게 엄청난 반감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항시 인간과의 평화 공존을 위해 절대 영토를 벗어나면 안 된다는, 그런 제압적이고 감옥 같은 이곳을 흑표범 종족들 역시 벗어나고 싶은 갈망은 늑대 종족과 같았다.
어쨌든 타타르는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함께할 동지가 흑표범에다가 그로부터 허락받은 하에 거사를 당당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르고가 눈짓을 주자 타타르는 수하들을 불러 모아 즉각 명령을 내렸다.
“단검을 사용해서 저 장로와 가족들을 제거해 버려!”
그 말에 수하들은 아르고의 눈치를 살폈지만 그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이내 눈치채고 여우 종족들을 해치기 시작했다.
홱홱
“크악!”
“컥!”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타타르가 다시 아르고에 다가와서 물었다.
“다음에는 어떻게 할까요?”
“이것 가지고는 충분치 못하네.”
“충분치 못하다니요?”
“자네 말대로 인간 놈들이 경계 구역을 침범했다면 내일 아침에 수하들과 함께 더 큰 분란을 일으켜야 하겠지.”
“분란이라면?”
“공격을 하란 말일세. 그래야만 야록 님과 사자 종족 친위대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가 있는 있겠지.”
어찌 본다면 타타르보다 아르고의 머리가 훨씬 잘 돌아갔고, 대담해 보였다.
“자네가 인간들과 전투를 벌이는 와중에 자연스레 그 소식이 야록 님에게 전해지겠지. 그리고 내가 할 일은 바로 전쟁을 부추기는 일일세.”
아르고는 그의 등까지 다독거려 주면서 다시 말문을 열었다.
“타타르, 명심하게나. 이후로부터 자네 종족과 우리 종족은 한 배를 탔음을 말일세. 알겠나?”
타타르는 아예 감명받은 듯 그에게 허리 굽혀 목례를 취하고 비장한 목소리로 다짐했다.
“잘 알겠습니다.”
그때였다.
“잘들 노는군.”
순간 그들은 그를 보자 저마다 깜짝 놀랐다.
“야록 님!”
야록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너희 반란이라도 일으킬 셈인가?”
“아, 아니 그게 아니고.”
“그게 아니면 뭐 해. 내가 다 들었는데.”
그때 야록이 손가락을 튕겼다.
탁!
그러자
“컥!”
“악!”
“아아악!”
그 앞에 서 있던 그의 수하들 모두가 저절로 팔이 분리되고 목이 잘려 나가며 그대로 즉사했다.
한 놈도 남기지 않고.
야록은 다소 씁쓸한 표정으로 현관문을 나섰다.
“흠, 불청객들이 또 있군.”
마침 그 앞에 정원 양쪽에서 각각 두 무리가 들이닥치는데.
한쪽은 발할라의 살수 전사들이었고, 다른 한쪽은 켈크 종족의 데몬이 이끄는 전사들이었다.
야록은 그들을 보자 인상을 찡그렸다.
“언제부터 이곳이 시장 한복판이 되어 버린 거야?”
그러고는 손가락을 다시 튕겼다.
탁!
그 순간.
“아악!”
“악!”
“컥컥!
순식간의 그 많던 불청객이 저절로 팔과 목이 분리되며 그야말로 떼죽음을 당했다.
야록은 잠시 한숨을 쉬더니 어느 한 방향을 향해 소리쳤다.
“이번에 너희 나와!”
그러자 수풀 안으로부터 플린시아와 공주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빌어먹을! 여기가 뭐 갑자기 모임 장소라도 됐나. 뭔 인간들이 이렇게 많아졌어.”
그러고는 다시 손가락을 튕기려고 했다.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외침.
“안 돼!”
놀랍게도 그는 학센이었다.
* * *
학센은 거대한 해머를 들고 야록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야록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손가락을 튕겼다.
탁!
순간.
홱!
강렬한 기세로 달려들던 학센이 그대로 공중에 몸이 떠서 반대 방향 절벽 쪽으로 날아갔다.
“아아아아.”
팍!
그 반탄력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학센은 절벽 중간 높이에 그대로 폭 박혀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