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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얻은 레어템, 현실에는 역대급-97화 (97/143)

97화

“후후. 공주마마… 죄송합니다. 이 이상 제국의 후계자가 되어 이 거대한 나라를 짊어지는 그 고통을 덜어 주려 하는데, 협조하기를 바랍니다.”

이에 여인은 말고삐를 꽉 잡고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이미 그녀는 포위당한 상태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랐다.

그녀가 외쳤다.

“원로원 의장의 사주를 받은 것이냐!”

“글쎄요? 이 제국을 그 전례가 없는 황태자가 아닌 공주가 계승을 이어받는 것이 진심으로 걱정되어 뜻을 함께하는 분들의 결심이라 사료됩니다. 저도 그들 중의 하나이고. 그러니 저를 원망하기보다는 황제 폐하께서 슬하에 장자가 없다는 사실을 원망하기를 바랍니다. 그럼 이쯤에서.”

그는 허리춤으로부터 검을 빼 들었고, 공주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목을 베려 하는데.

삭!

목이 떨어진 자는 공주가 아니라 자객이었다. 공주는 깜짝 놀라 살폈더니.

“안심하세요.”

“당신은 누구……?”

“플린시아라 합니다.”

【 야록 】

헬존에는 에스타란토 종족 외에 그들과 비등되는 또 하나의 강력한 종족이 있다. 그들은 바로 반인반수라 불리는 야수 인간이다.

[야수 인간.]

야수 인간들에 대한 그 기원설과 일화는 수도 없이 많다.

태초에 그들도 원래 인간이었지만 윤리의 여신 아르케논의 저주를 받아 헬존으로 추방당해 반은 짐승으로, 반은 인간으로 살아가게 되었다는 설이 오늘날 이곳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였다.

그 이후 에스타란토 종족과 끊임없는 전쟁을 통해 그들의 존재가 각인되었고, 오늘날 헬존에 널리 퍼진 몬스터들과는 달리 그들에게는 반인반수라는 말대로 인간성을 지님과 동시에 나머지 반은 야수의 본능을 지닌, 이중 감성을 지닌 존재들이다.

야수 인간의 종은 그 짐승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매우 흉포하고 야수의 본능에 의한 전투력이 상당하지만 가끔은 순한 짐승과 교합된 것처럼, 양순한 기질의 야수 인간들도 존재한다는 것이 최근에 밝혀진 사실이다.

그들은 주로 인간이 거주하는 지역과 멀리 떨어져 자신들만의 구역에서 방해받지 않고 사는 습성이 있지만 그 누군가의 침입을 받으면 짐승의 영역을 보호하려는 듯 목숨을 걸고 싸운다.

헬존에서 그들이 아는 야수 인간은 말 그대로 짐승의 종이 변종된 것이지만 지금으로부터 백 년 전, 그들이 다른 강력한 몬스터들과의 교류와 동침으로 새로운 종이 탄생하게 되었으니, 이른바 그들을 혼종 야수 종족이라 할 수 있다.

몬스터의 괴이하고 신기한 능력에 야수 종족의 본능 감각을 동시에 타고난 혼종 종족은 기존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괴물이 되었다.

오늘날 바로 이곳 붉은 바위 지대의 제왕 ‘야록’이 바로 혼종 야수 종족인 것이다.

그에 대해 알려진 바는 반은 몬스터 중 ‘알키온’이라 불리는 마족 수장과 반은 호랑이인 야수 종족 ‘에스더’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혼종이라는 것이다.

야록은 한때 헬존에 잠깐 출연해서 수많은 에스타란토 종족들을 도륙하여 피바다를 이룬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돌연 이곳 아크론 숲 위쪽 붉은 바위 지대에서 야수 인간들의 제왕이 되어 조용히 살아가고 있는 그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헬존에서는 이곳을 다른 성역과 마찬가지로 절대 금지 구역으로 선포했고, 절대 발길조차 들여놓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를 한 상태였다.

[야록은 신력을 지닌 영물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그에게 해되는 짓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불경이고, 대립 갖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다.]

헬존에서 내건 슬로건이 바로 그런 내용이었다.

이를 역으로 보자면 제국과 야수 종족 간에 저들끼리 은밀한 상호 불가침 조약을 맺은 느낌이 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체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플린시아는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조금 전 만난 공주의 말에 의하면 이곳은 야수 인간의 영역으로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되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그녀는 이제는 공주와 동행함으로써 매우 주의를 요할 때였다.

‘야수 인간의 영역을 넘지 않는 선이라면 이곳이 적당하겠군.’

높은 나무들이 마치 외부인을 경계하듯 방벽을 이루고 우뚝 솟아올랐고, 잎사귀 두툼하여 아래서 위쪽으로 잘 가려질 수 있어 보였다.

플린시아는 더 이상 생각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고 그대로 다람쥐처럼 나무를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나무 중간 부분쯤 큰 가지가 만들어 놓은 널찍한 공간이 있어 다행이었다.

그동안 추격당하느라 잠을 자지 못해 피곤했고, 여기서나마 잠깐 눈을 붙이려고 했다.

물론 오갈 데가 없는 공주 역시 그녀 덕분에 이곳에 올라와 안전하게 지낼 수가 있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공주의 말에 플린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지만 당신은 자객으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고 당장 그 누군가의 눈에 띄면 안 될 것 같아 데려왔습니다. 뭐, 저도 쫓기는 상황이라서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한편으로는 혹시나 아까 외길에서 만났던 켈크 전사들이 여기까지 추격해 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그들 역시 이곳이 절대 금지 구역이라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정신이 나갔거나 바보가 아니라면 절대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영역…….

그렇게 믿고 싶었다.

저녁의 노을빛이 나무 잎사귀들 사이로 은은하게 비추어 왔다. 그 따듯함에 플린시아는 간만에 긴장이 풀렸고, 눈이 절로 감겼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 보는 평온이었다.

마치 고향의 품에 안긴 것처럼 그녀는 어느 사이 잠든 아기처럼 쌔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기 고향을 그리워했고, 꿈에서 나마 접할 수 있었다.

수확의 성소(性巢)라 불리는 베른의 황금빛 밀밭은 추수를 앞두고 있었다.

거센 바람은 망망대해에 풍랑을 일으키듯 누런 깃털들을 한바탕 출렁이게 하더니만 저 끝까지 파도를 일으켰다.

어릴 적, 해마다 이때쯤…….

밀밭 사이 작은 도랑 길에, 나는 어머니 손에 이끌려 총총 걸어갔다.

내가 투정을 부리며 손을 뿌리치려 할 때마다 엄마는 겁을 주시곤 했다.

“플린시아, 자꾸 그러면 엄마 또 숨는다.”

그때마다 가슴이 철렁했고, 나는 두 손으로 꼭 잡고 놓치지 않으려 했다.

“오빠들이 자꾸 괴롭혀. 나더러 자꾸 계집애처럼 생겼다고 놀린단 말이야.”

엄마는 그런 내 얼굴을 쓰다듬으며 빙그레 웃으셨다.

“그건 네가 너무 예뻐서 놀리는 거란다.”

“정말?”

“암. 그렇고말고. 세상에서 우리 플린시아만큼 여자답고 귀여운 아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그런데 애들도 놀려.”

“당연히 그렇겠지. 널 보면 자꾸 질투가 나니까. 우리 딸은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를 바라. 알았지.”

엄마는 잔뜩 인상이 찡그려진 나를 품에 안자 주시곤 했다.

그 따뜻한 품.

그리웠다.

눈물이 나도록 그 온기가 절실했었다.

엄마…….

플린시아는 비몽사몽 눈을 뜨려고 했지만 그때 어딘가로부터 들려오는 소리에 눈을 떴다. 그리고 공주가 손짓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플린시아는 나무 아래쪽을 살펴보았다. 그러고는 다소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마치 여우에 속하는 짐승과 사람의 형상을 한 존재들, 그들은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는 듯 보였다.

게다가 바로 아래에서 뭔가 실랑이를 벌이는 야수 인간들은 엄마와 자식 간의 전형적인 대화 내용이었다.

“이 녀석아! 여긴 인간 세계와 가까운 경계 구역이라고. 그러다 야록 님에게 들키면 아주 난리 난단 말이야. 그러니까 당장 가자.”

“아유, 정말. 우린 왜 붉은 바위 지대에서만 살아야 하는 거야? 저는 바깥세상이 너무 궁금하다고요.”

“너 정말 혼날래. 당장 가자.”

엄마 야수는 털이 수북한 자식의 손목을 잡고는 강제로 끌어당겼다.

“말 들어.”

플린시아는 그들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에 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외부에 야수 인간들이란 오로지 무시무시하고 짐승보다도 사납다고 알려졌는데 저들에게도 인간과 같은 감정과 엄마의 애정이 느껴졌고, 아이의 철없음에 저절로 쓴웃음이 나오려 했다.

아마도 꼬마 야수 인간은 외부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컸나 보다.

어쨌든 플린시아는 저들의 평화로운 영역에 허락도 없이 들어온 이방인처럼 최대한 숨소리도 낮추었고, 가능한 한 이곳을 빨리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야수 모자(母子)가 서 있는 맞은편 수풀이 움직이더니만 또 다른 야수 인간들 열댓 명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 아닌가.

한데 그들의 모습은 저들 여우 인간처럼 생긴 모자와 는 전혀 달랐다.

일단 우람한 체격에 온통 검은 털로 뒤덮여 있었는데, 추측건대 직립보행을 하지 않았다면 영락없이 늑대를 보는 것과 같았다. 엄마 야수는 그들을 보자 왠지 별로 내키지 않는 반응을 보였다.

“타타르, 그대가 여긴 어쩐 일이죠.”

“그러는 가르샤 님은 웬일입니까.”

“당연히 저는 얘를 데리러 왔지요. 우리야 그렇지만 여긴 경계 구역이고, 그대 같은 전투 야수 종족은 절대 오지 말아야 할 곳인데 어떻게…….”

“나 역시 그대의 딸처럼 저 바깥세상이 궁금해서 한번 와 봤다오, 크크.”

검은 털 사이로 드러난 붉은 안광, 평소의 그답지 않게 그 눈빛이 매우 번뜩여 보였다.

게다가 다소 무례하기까지 한 웃음의 의미 역시 뭔가 불안했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라 여러 명이군요. 당장 돌아가세요!”

그러자 타타르라 불리는 늑대 인간이 호통을 치듯 말했다.

“누가 누굴 보러 돌아가라는 거지? 남편이 야록 님의 시종장이라고 고작 여우 종족이 우리 같은 진정한 야수 종족에게 그리 큰소리 쳐도 된다는 건가!”

“돌아가지 않으면 당장 야록 님에게 보고 할 테니 그리 아세요!”

“누구 맘대로!”

홱.

“아악!”

홱.

“욱.”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두 모자는 야수 인간이 꺼내 든 단검에 목이 잘려 그 자리에서 몸통이 분리되고 즉사한 것이다.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기회인가. 마침 인간들이 경계를 넘어 이 영역에 침입했으니 일단은 그들에게 누명을 씌어야지.”

조금 전 모자를 죽인 타타르는 단검을 그쪽으로 홱 던져 버렸다.

“명색이 내가 인간들이나 사용하는 무기를 쓰다니. 뭐, 이번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는 뒤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만 동료들에게 뭐라 외쳤다.

“전쟁의 명분을 만들려면 희생이 따르는 법이지. 자! 첫 시작은 내가 했으니 여우와 곰 종족 처리는 자네들이 하게나. 어른이고 애고 하나도 남김없이 씨를 말려 버려. 어차피 그들은 전투 야수들도 아니고 웬만큼 싸움에 능한 인간들이라면 얼마든지 해치울 수 있는 나약한 것들이니까 확실하게 누명을 씌울 수 있을 걸세.”

그들은 말이 끝나자마자 오던 길로 되돌아갔다.

한편 나무 위에서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은 플린시아와 공주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서 끔찍한 죽임을 당한 두 야수 모자, 그것도 모자라 저들은 어느 곳을 덮쳐 아예 도륙할 작정이었다.

그것도 인간과의 전쟁을 유발하기 위해서 말이다.

아마도 자신과 외길에서 만났던 켈크 전사들이 결국 경계를 넘은 것 같아 보였다.

플린시아는 갈등했다.

이곳은 야수 영역이다.

그 자신이 발을 들여놓아서도 안 되는 곳이고, 관여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인간과의 전쟁의 불씨를 만들어 엄청난 불길로 번지게 할 저 늑대 무리의 도륙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이것저것 따질 일이 아니었다.

플린시아는 재빨리 나무에서 내려와 저들이 사라진 곳으로 황급히 쫓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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