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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얻은 레어템, 현실에는 역대급-95화 (95/143)

95화

* * *

플린시아는 백 미터에 달하는 석굴을 지나 빛의 세상을 다시 만났지만 산 반대편으로 이어지는 그 초입 길에 그만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한쪽은 절벽이요, 다른 한쪽은 천 길 낭떠러지였다.

고작해야 사람 한두 명이 지날 수 있는 좁은 길, 만에 하나 정신을 놓고 발을 헛디딘 다면 그대로 저 보이지도 않은 골짜기에 시체로 누워 짐승의 먹잇감이 될 신세가 되고 말 것이다.

어쨌든 통로를 발견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위안을 삼아야 했다.

아주 조심스럽게 30여 분을 갔을까.

다행스럽게 그 길 폭이 조금은 넓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긴장해야만 했다. 왼쪽으로 눈길을 조금만 돌려도 까마득한 골짜기가 보이니 말이다.

그로부터 얼마쯤 갔을까.

그녀는 갑자기 발길을 멈추었다.

“…….”

뭔가 들려오는 웅성거리는 소리.

바로 저 앞 모퉁이 쪽에서 누군가 이쪽으로 오는 것 같았다.

미처 가서 확인하기도 전에 정체불명의 사내들이 먼저 그곳을 지나 플린시아가 있는 이쪽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들 역시 깜짝 놀란 표정으로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한 사내가 외쳤다.

“족장님! 여기 누가 있습니다.”

그의 외침에 모퉁이로부터 한 무리의 사내들이 모습을 더 드러냈다.

외길이기는 하지만 폭이 사람 두세 명은 디딜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들 역시 낭떠러지를 의식했는지 벽 쪽으로 바짝 붙어 있었다.

하지만 마치 사나운 맹수들과도 같이 눈매와 인상이 보통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도 다행스러운 것은 자신을 추격해 온 살수들과는 다른 복장이고,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큼직하고 단단한 체격에 머리 양옆을 바짝 밀은 채 윗머리를 꽁지처럼 묶은 것이 제국이 병사나 치안 대원이 아닌 변방의 어느 사납고 용맹한 부족을 보는 듯했다.

아니, 저마다 검 대신에 도끼와 철퇴를 들고 있었으니 확실했다.

그런데 왜 저들이 이 오지 산에 외길에서 갑자기 나타난 것일까.

플린시아는 내심 그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모퉁이 쪽으로 야만족들이 숫자가 더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맨 뒤에 모습을 드러낸 자. 다른 사내들보다 머리가 하나 더 컸고 덩치 또한 엄청났다. 그는 둥 뒤에 거대한 철퇴 두 개를 메고 있었다. 그리고 사내 중 하나가 그에게 보고하는 식으로 말했다.

“족장님, 저기 좀 보십시오. 웬 여자가…….”

그는 헬존 지하 세계 켈크 부족의 족장 데몬이었다.

에스타란토 종족의 토벌에 자기 종족이 침략받고 아내와 딸을 잃었기에 국경선을 넘어서 무려 17개의 관할 관청을 습격하여 피의 복수를 했다.

헬존 지하 세계에서 최강의 전투력을 자랑하는 켈크 부족, 선천적으로 타고난 큰 체격에 전통적으로 힘을 앞세운 도끼나 해머와 같은 무기로 괴력의 종족이라 알려졌다.

그리고 최근에는 부족장 데몬과 같은 걸출한 전사가 그들을 통합하고 이끌기 시작하면서 다른 부족들이 벌벌 떨 정도로 그 위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에스타란토 종족의 북벌 정책의 일환 중 하나는 장차 헬존 지하 세계를 통일하고 자국을 위협할 수 있는 그 싹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싹은 바로 데몬이었다.

애석하게도 그는 아내와 딸만 잃고 스스로는 구사일생 목숨을 건졌지만 현재 그의 눈빛에는 오로지 이 영토 안에 사는 그 어떤 인간이나 생물체는 전부 없애 버리고 싶은 복수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겨우 찾은 이곳 절벽 외길에서 계집애와 마주쳤다.

수하 중 하나가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데몬은 잠시 멈칫거렸지만 그 옆에 있던 숙부 볼드락이 언제나 먼저 말문을 열었다.

“없애 버려!”

중년 사내의 명령에 수하들이 도끼를 뽑으려 했다.

그러자 데몬이 외쳤다.

“잠깐!”

이에 숙부 볼드락이 다소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조카를 노려보았다.

“데몬, 설마 살려 두려는 건 아니겠지?”

그러자 거구의 데몬은 그 야성적인 눈매와 매부리코와는 대조적으로 약한 감성의 눈빛을 드러내며 숙부에게 조심스럽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숙부님,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제국의 죄 없는 시민들을 해칠 생각은 없습니다. 마침 저쪽에서 사람이 오는 것은 길이 있음이 확실하니 저 길로 산을 넘고 그냥 베른의 도시로 넘어가서 헤이른 강가에 뗏목을 타고 국경선을 넘는 것이 낫을 같습니다.”

그러나 숙부의 생각은 그의 탈출 계획보다도 바로 앞에 보이는 자에 대한 해결 문제였다.

“데몬, 저 여자를 살려 보냈다가는 지금도 혈안이 되어 우리를 추적하는 레아와 용사들마저 이 길을 알게 될 것이고, 결국 접전을 벌이게 되겠지.”

“…….”

데몬은 숙부의 말에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의 복수 대상은 오로지 군인들이었다.

자기 종족 중 희생자들이 대부분 민간인들, 그리고 아내와 딸이지만 데몬은 진정한 전사로서의 자존심은 끝까지 잃지 않으려 했다.

그는 수많은 관문을 공격하면서 오로지 제국 병사들과 전투를 벌였고, 민간인을 공격하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몰랐다.

숙부의 말대로 레아와 용사들이 이 길을 알고 끝까지 추격해 온다면 그거야말로 큰 걱정이었다.

쓸데없는 전투는 더 이상 치르고 싶지 않은 것이 그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결국 그가 생각한 것은 저 여자가 뒷길로 가지 못하게 포박하고 함께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숙부는 자기 생각을 무시하고는 수하들에게 다시 명령을 내렸다.

“뭐래! 당장 죽여 버리지 않고!”

데몬은 그 자신이 대장이면서도 숙부의 명령에 반기를 들을 수가 없는 입장이었다.

원래가 근력이 강한 종족이건만 데몬은 그들 중에서도 월등히 큰 키와 체력과 근력이 서너 배에 달하니 가히 일당백이 아니라 천까지도 상대할 수 있는 괴물이 탄생 한 것이다.

게다가 어린 시절부터 묵직한 성격에 전사의 기질을 이어받은 듯 공과 사의 구별 확실했고 정의롭지 못한 것에 화를 내며 평화로움에 안식을 취할 줄 아는 여유로운 어른으로 성장했다.

철퇴 하나의 무게만으로 일반 사람들 서너 명이 달려들어야 겨우 들지만 그는 그 한 개로도 부족하여 아예 두 개를 가지고 쌍철퇴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숙부인 볼드락은 마치 맹수를 훈련시키듯 그에게 혹독한 훈련을 강요했으며 오늘날에 있어서 스승이자 정신적이 지주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이미 숙부께서 명령하신 것은 되돌릴 수 없는 처지였다.

한편 플린시아는 안색이 굳어졌다.

저들의 말귀를 알아들었기에 말이다.

‘하필…….’

결국 이런 위험한 외길로부터 전사 한 명이 도끼를 앞세우며 무섭게 공격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미안하지만 죽어 줘야겠어!”

팔뚝이 플린시아의 허리통만 했다. 햇볕에 검게 그을린 피부와 불뚝불뚝 솟아난 힘줄로부터 저자의 완력이 얼마나 강할는지 그냥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위압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 뒤쪽에 줄지어 서 있는 동료들 역시 그 누구 하나 약하거나 작게 보이지 않았다.

한데 공격을 하려던 전사의 도끼가 오른쪽 절벽을 툭 건드렸다.

좁은 외길이라서 그의 무기 회전 반경에 제한을 받고는 휘두르기 전에 벽부터 쳤던 것이다.

그 때문에 전사는 중심을 잃고 하마터면 왼쪽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질 뻔했다.

“헉. 빌어먹을!”

그는 겨우 중심을 잡고는 벽으로 바짝 밀착했다.

그러고는 방금 전 오른손만으로 손잡이를 잡는 대신에 양손으로 다시 움켜잡고는 플린시아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죽이기도 전에 내가 먼저 죽을 뻔했군.”

그 때문에 그의 행동거지는 매우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대신 적당한 키에 왜소한 플린시아에게 있어서 이 협소한 장소가 유리할 수 있다.

게다가 그녀는 살수 부대에서조차 단검을 이용한 접전의 천재라 들을 정도라 그저 평지나 다름없어 보였다. 오히려 상대가 균형을 잃고 저 아래로 떨어질까 봐 걱정이 들 정도였으니.

플린시아는 그들이 이곳에 왜 나타났는지 모르지만 그들을 해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뒤로 돌아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베른 도시의 살수 전사들과 또다시 접전을 벌이는 것보다도 반드시 저 길을 지나가야만 했다.

결국 플린시아는 그들에게 외쳤다.

“그저 지나가게만 해 주시오! 그대들에 관한 얘기는 입을 다물 테니 말이오.”

이에 앞에 있던 전사가 다소 갈등 섞인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여자인 줄 알았더니 목소리나 말투는 남자 같은데…….”

그리고 뒤에서 중년인이 냅다 호통을 쳤다.

“뭐하나! 당장 없애지 않고!”

그러자 제일 큰 거구의 사내가 그에게 부탁했다.

“숙부님, 그냥 생포해서 끌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어림없는 소리! 데몬. 아무 죄 없는 우리 부족민들이 도륙을 당하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나? 그런 인정은 앞으로 부족민을 이끌어갈 지도자에게는 쓸데없는 사치품에 불과하네.”

그러고는 다시 앞에 있는 전사에게 명령했다.

“도크! 당장 처리해!”

결국 도크라 불리는 전사가 양손으로 잡은 도끼를 플린시아에게 휘둘렀다.

홱!

좁은 반경 내, 균형을 잃지 않으려는 그의 공격이 느린 것은 당연했다.

물론 플린시아는 상체를 비틀어 가볍게 피했다.

게다가 상대의 허점이 크게 보였고, 냅다 단검으로 그의 허벅지를 베려고 했지만 일단은 참기로 했다.

이곳에서 자칫 조그만 부상을 입힌다면 그대로 저 아래 협곡으로 추락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저들은 흥분을 하여 떼거리로 몰려들 것이고, 더 많은 희생자들이 생길 것이다.

참으로 묘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플린시아가 걱정하는 것은 자신의 생존이 아닌 저들의 생존이니 말이다.

하지만 한 번의 공격을 실패한 전사는 다시 도끼를 휘둘렀다. 아까보다 힘과 속도가 더 붙었지만 플린시아에게 그다지 위협적인 공격은 아니었다.

홱!

“빌어먹을! 또 피했잖아.”

전사는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뒤쪽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상관들과 동료들, 그중 하나가 뭐라 놀리기까지 했다.

“이봐, 도크! 자네 도끼는 민간인 하나 처치하지 못하니 아예 늙은 개 하나조차 때려잡는 데도 쩔쩔 맬 것 같은데. 후후.”

“이봐, 뒤로 물러나게. 내가 해 보지.”

순간 도크는 동료의 놀림에 화가 솟았다.

“닥쳐!”

그러고는 다시 도끼 손잡이를 잡고는 그대로 돌진 하며 세차게 휘둘렀다.

이에 플린시아는 미리 예상을 했고, 뒤로 두어 걸음을 물러서며 상체 비틂 동작으로 피했다.

그런데 상대는 흥분한 상태였던가.

도끼의 회전 반경의 폭이 자기로 모르게 크게 휘둘러져 처음처럼 벽을 퉁 때려 버린 것이다.

그 힘이 어찌나 강했는지 그는 균형을 잃고는 왼쪽으로 발돋움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데 그곳의 지반이 내려앉더니만 그대로 절벽 아래로 추락하고 만 것이다.

두둑!

“아아악!”

참으로 어이없는 사고가 아닐 수가 없었다.

플린시아는 공격할 의사가 전혀 없었건만 한 생명이 그대로 저승에 간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뒤쪽에서 이를 바라보던 동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방금 떨어진 도크가 등을 지고 싸웠기에 전면의 상황을 볼 수 없었고, 금발 여자의 공격으로 그가 추락한 것으로 오해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저 여자가 도크를!”

저들은 처음의 여유로운 눈빛들이 이제는 야수와도 같이 먹잇감을 잡아먹을 듯 변했고, 그다음의 전사가 도끼를 들고 플린시아에게 다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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