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서 얻은 레어템, 현실에는 역대급-93화 (93/143)

93화

그러나 당장 급한 것은 발아래 나뭇가지를 잡아 반동으로 튀어 오른 전사 한 명이었다.

타다닥!

서슬이 시퍼런 단도가 플린시아의 오른쪽 뺨을 향해 사정없이 날아왔다.

홱!

그녀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 기둥 옆으로 상체를 비스듬히 틂과 동시에 독침부터 발사했다.

훅!

“악!”

오히려 공격하려던 전사의 뺨에 독침이 박혔다.

이를 맞은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급격하게 퍼져 가는 독에 괴로워하며 소리를 질렀다.

“도, 독침이! 빌어먹을!”

그는 손으로 그것을 뽑으려 했지만 이미 얼굴의 혈관이 불거지면서 호흡이 빨라졌다.

“허어억.”

순식간의 독이 퍼져 나감으로써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이어 밭은기침을 했다.

“콜록콜록!”

결국 그는 두 손으로 목을 부여잡다가 균형을 잃어 갔다.

상당히 높은 나무 위쪽의 공간은 무척이나 비좁았고, 전사는 추락하지 않으려 다른 한 손으로 가지를 잡았다.

하지만 이는 견디지 못해 뚝 부러져 버렸고, 전사는 그저 손닿는 대로 플린시아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네 이년!”

이 때문에 그녀도 휘청거렸다.

전사의 얼굴은 독 때문에 자색을 띠었고, 이미 눈자위가 풀린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플린시아의 바지를 더욱더 세게 움켜쥐고 있었으니, 함께 추락하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

플린시아는 그 급박한 상황에서도 상대에서 조소를 흘렸다.

“그냥 떨어져 죽는 게 나을 텐데.”

그때 딛고 있던 가지가 두 사람의 하중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졌다.

툭!

그 둘의 몸이 함께 아래로 향했다.

우두두!

잔가지들이 부러지며 완충 작용을 하는 듯싶더니만 어느 순간에 그 둘은 나무 중간 지점에서 대롱대롱 매달리게 되었다.

두둑.

플린시아는 이미 자기 몸에 넝쿨 줄기를 둘둘 말은 상태였기 때문에 멈추었다.

하지만 몸을 말았던 줄기의 팽팽한 충격이 심해 허리가 끊어질 정도의 고통이 느껴졌다.

“우욱!”

게다가 아직도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는 전사.

이미 그는 온몸에 중독이 심해 의식을 잃었지만 한 번 잡았던 손이 굳어지면서 그대로 플린시아에게 대롱대롱 매달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녀는 기둥 옆 굵은 가지를 두 손으로 잡고 겨우 그곳에 걸터앉았지만 문제는 그 아래 전사 두 명이 입에 단도를 물고 올라오기 시작한 상태라는 것이었다.

“빌어먹을! 또 해 보자 이거지, 이년아.”

그녀 역시 시간이 없었다.

단검으로 자기 바지 하단을 잘라 내어 전사를 떨어뜨렸고, 다시 나무 위로 몸을 날렸다.

그때였다.

파팟!

“악!”

아래쪽에서 던져진 단도가 하나가 그녀의 왼쪽 어깨에 박히는 순간이었다.

왼 팔뚝에 힘이 빠졌기에 오른손으로 넝쿨 줄기를 잡고 발로 기둥을 밀어 옆쪽 나무로 향했다.

원래 상태라면 쉽게 피할 수 있었을 그녀다.

하지만 아직 낫지 않은 부상 탓에 신체가 온전치 못해 대처가 쉽지 않다.

그래서 지금으로선 살아남을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생각해야만 하는 처지였다.

턱!

천만다행으로 다른 나무 위쪽으로 이동했지만 지상에 있던 전사들이 다시 이쪽으로 몰려왔다.

그의 허리춤에는 아직도 독침이 단단히 매여 있지만 이제는 적들이 그 사실을 알아차렸기에 이미 경계들을 취하는 상황이다.

“독침을 조심해!”

그녀는 일단 사방을 둘러보았다.

어떻게든 이 위기를 벗어날 궁리를 하기 위해서 주변 지형지물들을 살피고 또 살폈다.

그런데 마땅히 이렇다 할 대비책이 보이지 않았다.

몸이라도 정상적이었다면 얼마든지 맞상대하겠건만.

그때 밑에서 들려오는 외침.

그는 전사가 아닌 발할라였다.

“이런 머저리가 같은 놈들. 당장 올라가!”

그녀가 믿을 것은 단 하나, 바로 넝쿨 줄기였다.

적어도 한 번은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나무가 조금 전보다도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중간에는 늪지대가 있었기에 만일 성공한다면 일단 저들의 추적으로부터 한숨 돌릴 시간을 벌 게 분명했다.

다시 밑으로부터 들려오는 외침들.

“그년이 없어졌다.”

“뭐라고!”

그때였다.

플린시아는 상처를 입었던 자기 팔에 다시금 마비 증상이 오는 것을 느끼곤 얼굴을 찡그렸다.

“또 …욱.”

그리고 이내 눈을 감고 의식을 최대한 끌어모으며 의지로 손에 강하게 힘을 주었다.

그러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마비 증상이 가라앉았다는 것을 느끼며 손을 움직였다.

‘상황이 나에게 좋지 못해. 그렇다면 그 수밖에는 없지. 그나마 지금은 운이 따랐다고 해야 하나…….’

독침과 대롱을 허리춤에 매고 다시 단도를 잡아 가볍게 돌려 봤다.

그는 재빨리 나무를 타고 내려왔다.

속전속결이 필요했다.

그건 저 많은 적과 어떻게 상대하느냐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일단 자신의 생존부터 달린 문제였다.

그래도 그녀는 잠시 안정을 찾자마자 바로 움직였다.

“네놈들 차례다!”

바로 맞불 작전만이 지금으로서는 그녀의 유일한 선택이었다.

그때였다. 전사들은 상대가 무슨 이유인지 당당히 지상 아래로 모습을 드러내자 움찔했다.

플린시아는 독침을 발사하려 했지만 독침이 바닥 난 상태였다.

“아, 이런!”

대롱을 그대로 버리고 다시 나무 뒤로 숨었다.

비록 열세의 위기에 놓여 있지만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담담했다.

그때 뒤이어 올라오던 또 다른 지원 팀원들이 상황을 물어봤다.

“거기, 무슨 일이야.”

“빌어먹을. 무시무시한 년이 나타났다고.”

“도대체 누가?”

적의 숫자는 벌써 수십 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성과를 내지 못했다. 단 한 여자에게 막혀 오히려 손해를 입고 있다는 사실이 굴욕적이라 여기는 그들이었다.

뿌우우웅- !

플린시아는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적들과 대치하고 있던 와중 고동 소리가 들려왔고, 추가로 대규모의 적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가장 앞에는 한 노인이 있었다. 앞선 전사들과 달리 갑옷으로 명확히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는 사내였다. 그녀의 귀로 그들의 대화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늦어지고 있는 건가.”

“오셨소.”

발할라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러자 노인은 희미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적은 얼마나 되는가. 꽤 고전하는 것 같네만.”

“빌어먹을, 여자 한 년 때문에 이게 무슨 쪽인지. 제길.”

“어떤 여자인가?”

노인의 질문에 발할라는 알고 있는 바를 이야기해 주었다.

“헬존에 들어온 외부 세계 인간이라.”

“그렇소.”

노인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당한 자들만 열 명이 넘는다고?”

“네, 그렇소.”

“흠. 그럼 추격을 멈추게나.”

“멈추다니요?”

“외부 세계에서 헬존에 들어온 자들이 다 약한 것은 아닐세. 그들은 우리와는 달리 진정 살수나 전투 기술, 마법 등에 정통한 자일 경우도 있지. 하지만 우리 에스타란토 종족은 그저 헬존의 중력장만 믿고 자신만만한데 그런 오만함은 절대 가져서는 안 되네.”

발할라는 답답한 듯 손으로 가슴을 치며 말했다.

“그럼 도대체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만 합니까?”

“외부 세계에서 들어온 자를 전문으로 사냥하는 살수에게 이 일을 맡기면 쉽게 해결될 걸세.”

“살수요?”

“그렇다네. 내 이럴 줄 알고 진작 섭외해서 이리로 데려왔지.”

“그럼 그는 어디 있습니까?”

그때 수풀을 해치고 모습을 드러낸 자가 있었으니, 전사들과는 그 복장이 다른 살수였다. 그리고 여자였다.

“여, 여자잖아요.”

“왜, 여자는 살수 하면 안 된다면 법이라도 있나?”

그러자 그 여자가 말했다.

“원래 그런 법은 있어요. 다만 제가 그 법을 깨트렸을 뿐이죠.”

발할라는 그녀를 살피며 물었다.

“당신, 정말 살수 맞소? 복장을 보아하니 그저 단검 하나만 지니고 있는데.”

“인간 사냥하는데 이거면 되지 뭐가 필요한가요?”

“흠, 이름이 뭐요?”

“아린.”

“그나저나 이런 일을 한 경험은 있소?”

“그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제가 미덥지 못해 보인다는 뜻인가요?”

“아, 아니요. 그냥 궁금해서 물었소.”

그러자 그녀는 손가락 일곱 개를 펴 보였다. 발할라는 다소 의외의 눈빛으로 말했다.

“일곱 명이라…….”

“사냥 대상은 어디 있죠?”

발할라는 손으로 바로 앞 큰 나무 위를 가리켰다.

“저 위요.”

그러자 아린은 그쪽을 쳐다보며 묘한 미소를 짓는다.

“후후, 숨는 데는 나무가 적격이죠. 밑으로 올라오는 적을 쉽게 방어할 수 있고 나무가 많은 숲 지형이니 넝쿨만 이용하면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옮겨 다닐 수 있고. 나무 잎사귀가 무성하니 자기 몸을 가리는 위장이 쉽고. 게다가 상황을 보니 저자에게 당한 전사들이 한둘이 아닐 걸 보아서 그저 평범한 외부인이 아니라 나처럼 전문으로 살수 기술을 배운 자객 출신일 수도 있고. 그렇다면 머리를 써서 잡는 수밖에 없겠군요.”

발할라는 여전히 미심쩍은 눈길로 물었다.

“그런 방법이 있긴 있소?”

“있고말고요.”

“그게 뭐요?”

“화공(火攻).”

“화공이오?”

“여기, 관광객들이 오는 아주 중요한 휴양지는 아니겠죠?”

“그건 아니오.”

“그렇다면 숲 좀 태워도 상관없겠군요.”

그녀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들고 온 막대기에 횃불을 켰다.

화르르.

그런 그녀의 모습에 발할라와 전사들은 다소 놀란 듯 물었다.

“정말 불을 붙일 거요? 그러다 우리가 타 죽는 거 아니오?”

아린은 다시 웃으며 말했다.

“후후, 바람이 우리 등 뒤에서 불고 있으니 북서풍으로 화마의 영향을 없을 거예요.”

“그럼 시행하던지.”

“나무 위에 있는 사냥 대상은 이미 우리 이야기를 엿듣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을 겁니다.”

그녀는 말이 끝나자마자 숲속으로 재빨리 들어갔다.

한편 플린시아는 이 나무 저 나무로 옮겨 다니며 부상 때문에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다.

“욱!”

자신을 사냥하기 위해 전문 사냥꾼을 데려왔다는 사실에 그녀는 극도로 긴장한 상태였다.

그리고 이어 저 아래에 횃불을 들고 온 여자 살수.

“거기 있는 거, 다 알아! 그러니 도망갈 생각 말고 그냥 화염에 재가 되어 주겠니? 호호.”

그러고는 나무 밑동에 불을 붙였다.

순간 건조한 초겨울에 나무는 마른 장작처럼 순식간에 불에 타올랐다.

화르르.

플린시아가 이번에는 바람이 불어오는 그 방향으로 이동했다. 그런 모습에 아린의 눈빛이 가늘게 떨렸다.

“흠, 바람 방향으로 이동한다……. 그럼 함께 타 죽자는 건데, 제법 머리가 좋은데.”

아린은 횃불을 바닥에 던져 버리고 발로 꺼 버렸다.

“그럼 화공은 무용지물이고, 할 수 없이.”

그녀는 단검을 빼 들고 나무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정면 대결은 귀찮은데.”

이어 순식간에 플린시아가 있는 커다란 나뭇가지까지 올라왔다.

“너로군.”

플린시아 역시 그녀를 보더니 자신이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 애써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후후, 전문 살수라. 역시 뭔가 다르긴 다르군.”

“억지웃음……? 아파 보이는데. 내 말이 맞지?”

플린시아는 흠칫 놀랐지만 더욱 침착해지려 노력했다.

“너와 싸울 생각 없거든.”

순간 플린시아는 재빨리 나무 밑으로 뛰어내려 전속력으로 달렸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아린.

“분명 상처를 입은 게 틀림없어.”

그러고는 곧바로 뒤따라갔다. 하지만 그녀는 어느 방향으로 도망쳤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