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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얻은 레어템, 현실에는 역대급-90화 (90/143)

90화

‘아…….’

나는 나도 모르게 무심코 중얼거렸다.

“요즘은 꿈도 꿔지지 않으니…….”

그게 희망이라면 희망인데…….

한참을 고민하다 감옥에서 그렇게 잠이 들었다.

* * *

세상에!

아무래도 여기는…….

꿈속이 아닌가.

내 앞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여인, 마계의 헤르시몬.

“흠, 깨어나셨군요. 이번에는 잠을 너무 오랫동안 주무셨어요.”

“헤르시몬!”

“뭘 그리 놀라세요.”

“그래, 여긴 꿈속이 확실하군. 확실해!”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제일 먼저 창문을 열고 그 바깥 풍경을 내다보았다.

그러고는 심호흡을 크게 하며 이곳의 공기를 듬뿍 들이마셨다.

“하아~ 하아~”

그때 헤르시몬이 내게 다가와 뒤에서 나를 가볍게 포옹했다.

“흠, 좋군요. 그나저나 이번에는 그 어떤 아이템을 찾으려고 하는지 궁금하군요.”

그 말에 나는 힘없이 고개를 털 꾸었다.

“후~ 아이템이라……. 이제 그것도 소용없는 일. 세상에 은하검보다 더 강력한 아이템이 있으려나……. 아… 물론 없겠지…….”

여기서도 희망은 없었다.

그때 헤르시몬이 내게 말했다.

“혹시 불사조에 대해 들어 봤나요?”

“불사조?”

“네, 하얀 불사조.”

“아니.”

“흠, 어쩌면 당신이 아이템 얻는 데 도움이 될까 해서.”

나는 눈빛이 번쩍였다.

“불사조에 관해 얘기해 봐.”

“아마 소용없을 거예요. 그건 꿈에서만 얻는 기연인데… 당신은 지금 여기도 꿈속이잖아요. 그래서 또 꿈을 꿀 수는 없을 테고.”

“…….”

헤르시몬은 내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다시 말문을 열었다.

“어디까지 전설이지요. 그리고 마계인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죠.”

“그건 왜지?”

“왜냐하면 마계인은 꿈을 꾸지 않거든요. 우리 종족의 가장 큰 장애죠. 그런데 당신 같은 인간은 정말 꿈을 꾸나요? 그렇다면 그 꿈은 정말 현실 같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현실보다 더 현실 같지. 그래서 그거에서 평생 깨어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달콤하지.”

“후후, 지금 나와 함께 있는 것처럼요?”

“그건 아니고. 다만 진짜 현실을 피하고 싶을 때 꿈은 그때 자기가 알아서 찾아온다고 할까.”

“그럼 당신 역시 아이템이 절실하니까 또 꿈을 꾸겠네요.”

“아니, 지금 이것도 꿈속인데…….”

“아니요! 하얀 불사조의 전설은 정말이지 정말 간절하고 절실할 때 그 꿈이 꾸어진대요. 그래서 기연을 준다나.”

“기연이라……. 지금 나만큼 절실한 자가 있을까…….”

나는 이내 체념의 표정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지금까지 꿈에서 얻은 아이템만 열 개는 넘는 것 같다. 그런데 매번 절실함에 또 아이템을 꿈꾸니……. 그건 너무 양심에 어긋나는 일이 아닐는지.

‘하얀 불사조, 과연 그것은 어떤 기연이고 어떤 아이템일까.’

궁금했다. 과연 은하검보다 더 강력한 그 무엇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 하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쳇, 기대도 하지 말자…….’

* * *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나는 몇날 며칠을 고민하느라 잠이 오지 않았다. 정말이지 그게 걱정이었다. 잠이 오지 않으면 꿈을 꿀 수 없건만.

그렇게 며칠이 더 흘렀다.

어느 날 나는 정원에서 꽃을 다듬고 있었는데 갑자기 피곤이 몰려왔다. 기지개를 펴고 문뜩 하늘을 올려다 보는데.

구름의 모양새가 이상했다.

마치 그 어떤 거대한 새 모양이랄까. 그리고 갑자기 지난번 헤르시몬에 내게 헸던 말이 생각이 났다.

“음. 저 새 모양은. 흡사 불사조 같은데……. 그것도 하얀 불사조…….”

그때 스르르 잠이 오기 시작했다. 이내 나는 정원에 쓰러져 잠이 들었고.

* * *

세상에, 여기는 분명 꿈속인데 또 꿈을 꾸다니. 그렇다면 이곳은 무슨 세계란 말인지.

눈을 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눈을 감아 본다.

이곳은 어디…….

나는 손끝을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발끝 역시 움직여 바닥을 살폈다.

다행히 바닥이 존재했다.

잠시 후 나는 이내 몸 상태를 살폈다. 그리고 이내 큰 부상이 없음을 알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질긴 이놈의 목숨…….”

하지만 사방은 칠흑 같은 어둠뿐. 떨어졌던 위도, 아래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사방을 손으로 더듬거렸다.

위에서 추락할 때 함께 떨어진 돌 부스러기들이 만져졌다.

나는 조금씩 그 자리에서 몸을 옮겨 한쪽으로 이동했다. 그러다 손으로 뭔가가 세워져 있음을 느꼈다.

벽이었다.

나는 벽으로 몸을 끌어당겨 벽에 기댄 채로 몸을 세웠다.

위쪽에서 추락한 높이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적어도 이곳은 위쪽 미로가 있는 지하 1층보다 깊은 2층, 혹은 3층 깊이의 또 다른 공간임이 분명했다.

어둠 속에서 벽을 따라 이동하며 출구가 있을지 가늠하기 시작했다.

일단 앞이 보이지 않으니 답답했고, 공기도 무척이나 탁해 자꾸만 기침이 나왔다.

먼지가 입과 콧속으로 들어갔는지 헛구역질까지 했다.

“쿨럭! 쿨럭! 빌어먹을! 컥!”

얼마나 걸었을까.

여전히 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공기 또한 점차 줄어드는지 숨 쉬는 게 상당히 불편했다.

이 정도라면 도굴당할 만한 얕은 깊이가 아닐 터.

“여기서 죽는다면 이만한 무덤도 보기 드물겠군.”

나가 자조하며 말했다. 그러나 두려움이 드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난 이제 죽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이미 죽을 위기를 여러 차례 겪었기에 무덤덤할 뿐이었다.

그러나 아직 포기하기엔 일렀다.

‘현실로…….’

가야만 했다.

그러던 내 발에 돌멩이 하나가 걸리며 앞으로 튕겨 나갔다.

탁!

퍽.

앞으로 쏘아져 나간 돌이 어딘가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몹시 둔탁한 소리였다.

“…….”

귀가 쫑긋했다.

돌이 뭔가의 위로 떨어진 게 분명해 보였다.

푹신한 무언가에 둘러싸인 듯한 것에.

나는 다시금 몸을 움직여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더듬거리며 뭔가를 찾으려고 했다.

곧이어 손에 닿는 무언가가 느껴졌는데, 그건 마치 막대기 같았다.

막대기의 위쪽을 만져 보니 천 조각 같은 부드러운 느낌, 게다가 익숙한 향.

아무래도 송진 냄새 같았는데, 그렇다면 이건…….

횃불이었다!

나는 재빨리 몸을 뉘며 부싯돌을 찾기 시작했다.

‘제발.’

탁! 탁!

그리고.

“됐다!”

단 두 번의 마찰로 불길이 화르르 일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횃불을 발견했다는 것은 말 그대로 한 줄기 광명이 비추는 것과 같았다.

이곳이 어딘지 일단 주위를 비추어 보기로 했다.

순간 내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야말로 눈이 뒤집힐 정도로 화려한 금빛 문양들.

그곳은 모든 것이 황금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방이었다.

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절로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이런 곳이 있다니…….”

나는 탄성을 뱉으며 천천히 벽을 따라 걸어가 방의 문양을 살피기 시작했다.

문양의 양식은 크게 기하학적 양식, 식물 문양, 동물 문양, 자연 문양 등으로 나누어진 것 같았다.

또한 이들의 구성법은 모두 좌우상칭(左右相稱)과 리듬이라는 기초적인 예술 법칙의 순리에 따라 이루어져 있었다.

기하학적인 삼각형과 사각형, 원형 등은 모두 선에서 시작되며 동물 문양들과 이상한 문자들이 주를 이루었다.

머리를 내밀어 돌출된 부위를 이빨로 깨물어 보았다.

‘금이다. 그것도 순금으로 이루어져 있어.’

하지만 지금 나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탈출구를 발견하는 일이었다.

“쓸데도 없는 금이 있어 봐야 뭔 소용!”

횃불을 이리저리 갖다 대며 벽을 둘러본 나는 이내 실망스러운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군.”

한참 동안 황금 방의 벽을 따라 걸으며 살폈지만 출구, 혹은 그것과 관련한 단서조차 찾을 수 없었다.

이즈음 되자 나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끝인가…….”

꿈속에서 또 꿈을 꾸다.

“도대체 그건 무슨 의미이지?”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후후, 그래도 온통 황금으로 이루어진 방에서 죽으니 황제답게 꿈에서 죽는 건가. 이건 이것대로 나쁘지 않겠군. 어차피 늙어서 뒈질 인생, 금에 파묻혀…….”

그렇게 말하며 횃불을 바닥에 놓고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내 시야로 빛이 찾아들었다.

‘뭐지……?’

잠시 의아한 마음이 들던 눈을 떴을 때 내 앞에는 기이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은 하얀빛에 감싸인 불사조였다.

‘하얀 불사조…….’

나는 불사조의 붉은 눈동자에 일렁이는 불길을 바라보며 가슴속에 북받쳐 오르는 묘한 감정에 사로잡혀야 했다.

그때 머릿속으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난 너의 왕이다. 어린 나의 자손이여, 네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바라는 것…….’

- 넌 이미 한 차례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이번 또한 너에겐 죽음이다.

‘아직 죽고 싶지 않다…….’

- 다시 묻겠다, 나의 어린 자손이여. 네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

그 말에 나는 한참 동안 말을 할 수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 넌 그럴 것이다. 내가 그랬듯이. 너 또한 하얀 불사조다, 나의 아들이여.

그렇게 말을 마친 불사조는 하얀 날개를 활짝 펼쳤다.

거대한 빛이 나를 덮쳤다.

“헉!”

꿈이었다.

위대한 하얀 불사조의 꿈…….

그때였다.

내 시야로 아까 미처 보지 못했던 거대한 문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금빛으로 둘러싸인 이 공간에서 그것은 유일하게 하얗게 빛났다.

순간 나는 눈을 반짝였다.

여러 문양 중 한가운데, 익숙한 문양.

‘저건…….’

나는 엉금엉금 기어서 그곳으로 다가갔다.

새의 모양, 활활 타오르는 꼬리를 달고 하늘로 오르는 모습, 그것은 다름 아닌 하얀 불사조였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불사조의 그림을 이런 곳에서 볼 줄이야.

전혀 상상 못했던 일이다.

홀로 하얀빛을 유지한 채 고고하게 빛나는 그것은 오랫동안 전장에서 바라보고 몸에 품고 있던 문양이었다.

설마 이곳에 저 상징이 그려져 있을 줄이야.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그 의미가 크게 와닿는 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에 그려진 하얀 불사조의 모습은 전장에서 바라보던 것보다 훨씬 더 견고하고 화려해 보였다.

꼭 불사조의 시초를 만나고 있는 듯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파파파팟!

화아아아아악!

사방의 황금 벽들이 환하게 빛을 발하기 시작했고, 나는 느닷없는 밝은 빛에 팔로 얼굴을 가렸다.

마치 마법진이 발동하는 듯한 진동과 더불어 빛은 더욱 밝아졌다.

웅―

파팟!

그리고 놀라운 일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황금 방이 모두 빛으로 감싸인 순간, 불사조의 문양이 날개를 펼치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제야 빛은 조금씩 사그라졌고, 나는 어느 정도 눈을 뜰 수 있는 정도가 되었을 때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다.

방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넓었고, 그 넓은 방에는 앞서 보지 못했던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내 맞은편에 해골 형상의 존재가 턱 하니 왕좌를 닮은 곳에 앉아 불사조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갑자기 나타난 그 존재에 대해 깜짝 놀랐지만 그것이 실체가 아니라 빛으로 만들어 낸 어느 시신의 환상임을 알아차렸다.

흡사 왕이라도 되는 듯한 저 위용.

저 환영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내가 진짜 죽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래! 어차피 갈 데까지 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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