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너 또 일등으로 줄 섰구나.”
아테온은 허리를 숙여 냅다 인사부터 했다.
“큭, 많이 주세요.”
“그럼, 너는 항상 곱빼기로 먹으니까. 닭 다리도 두 개 주마.”
녀석은 감격에 겨운 듯 눈빛을 반짝였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아주머니는 빙그레 웃으셨다.
“호호, 먹는 거에 목숨이라도 건 모양이지. 매번 눈물을 글썽일 것까지는 없잖니.”
아테온은 식판을 들고 테이블을 골라 앉아서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잠시 후 식사 시간이 끝나갈 무렵, 갑자기 누군가 그의 테이블 맞은편에 앉았다.
“아테온.”
누군가 보니 선생님이 아니던가.
“선생님.”
“식사는 다 했니?”
“네.”
선생은 다소 진지한 표정으로 아테온의 얼굴을 바라보더니만 이윽고 말문을 여셨다.
“너 아까 그 측정 기기, 네 거 맞니?”
“네.”
“흠, 솔직히 말해 봐라. 그거 네 거 아니지?”
그제야 아테온은 다소 힘이 빠진 대답을 했다.
“네.”
“누구 거니?”
“아버지 거요.”
“역시 그랬구나. 어쨌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아까 네가 측정했던 그 우주 좌표 말이다. 혹시나 해서 학교 장비 가지고 다시 측정한 결과 일치하는 숫자가 나왔더구나.”
선생은 학교 장비로 직접 아테온의 앞에 보여 주었다.
〈우주 좌표 2038947566474883〉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는데 직접 조사해 보니 정말 존재하는 좌표가 아니겠니. 물론 우리가 아는 조홀 우주라서 너무 놀라 부랴부랴 정부 당국에 이 일을 보고하고 오는 길이란다.”
아테온 역시 다소 놀란 듯 물었다.
“그럼 거기가 어떤 곳이죠?”
그러자 선생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그런 일이 없어야 할 테지만 만일 이 좌표가 정말이라면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구나. 아마도 창조주가 또 다른 우주를 열어 놓고 헬존을 공격하려는 모양이다.”
그 말에 아테온은 심장이 철렁했다.
“무슨 뜻이죠?”
“더욱 강력한 적들이 몰려온다는 얘기지. 더 무서운 건 지금까지 우리가 대항해 왔던 그런 우주와는 게임도 안 될 정도로 엄청난 크기의 대우주 존재들이 몰려올 가능성이…….”
“대우주요?”
순간 선생은 말하다 말고 손으로 입을 막았다.
“내가 너한테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 거지.”
선생은 갑자기 아테온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일단 우리가 나눴던 대화는 비밀로 지켜 주길 바란다. 아직 일어난 일이 아니니까 정부 당국에서 그 어떤 조치가 내려지기 전까지 다른 애들을 불안하게 해서는 안 되거든.”
이에 아테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약속할게요.”
식당 문을 나서는 아테온, 언제부터 기다렸는지 같은 반 급우들이 매우 화가 난 표정으로 그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그중 키가 가장 큰 한 아이가 주먹을 쥐어 위협하며 말했다.
“너 이 새끼, 오늘은 버릇을 단단히 고쳐 주겠다.”
이에 아테온은 그런 그에게 아주 다정스레 말했다.
“친구야, 그러면 안 돼. 선생님이 늘 말씀하셨잖니. 친구끼리는 사이좋게 지내라고. 더군다나 미하엘, 넌 반장으로서 오히려 나같이 내성적인 성격으로 같이 어울리지도 못하고 늘 소외되는 학생을 더 챙겨 줘야 하는 거 아니니.”
그러자 반장 미하엘은 어이없다는 듯 침을 확 뱉었다.
“퉤! 또 뭐라는 거야! 이 재수 없는 새끼가! 그리고 네가 내성적이라고? 지나가는 개가 웃겠다.”
아테온은 고개를 갸웃했다.
“개도 웃을 줄 아니?”
“아무튼 넌 오늘 제삿날이다. 아주 죽었어. 어떡하든 자기만 위해서 우리를 팔아먹고 혼자만 살려는 놈.”
아테온은 그 말을 듣는 순간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는 듯 넋 나간 표정으로 말했다.
“설마 정말 날 그렇게 본 거야. 미하엘, 정말 가슴이 아프다. 그렇다면 다른 애들에게 물어보자. 내가 그런 놈인지.”
그는 이윽고 자신을 둘러싼 아이들에게 항변이라도 하듯이 절실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희는 내가 나 혼자만 살겠다고 온갖 잔머리 굴리며 그런 비열한 짓에 아예 만성이라도 되는 듯 너무도 자연스럽게 사고나 치는 그런 인간 말종 놈으로 보이니?”
아이들이 동시에 대답했다.
“응!”
“…….”
아테온은 갑자기 비틀거리더니만 거의 다 죽는 목소리로 말했다.
“갑자기 어지러워. 얘, 얘들아. 나 아파. 머리가 터져 죽을 것 같아. 나 좀 잡아 줘.”
그는 진짜 아프기라도 한 듯 다리가 휘청거렸고, 아이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나 좀 양호실에… 데려가…줘…….”
그러자 아이들의 눈빛에 동요가 일어났다.
“진짜 아픈가 봐.”
“얼굴이 시뻘건데.”
하지만 미하엘은 그조차 믿지 않았다.
“저 새끼! 빠져나가려고 수작 부리는 게 분명해.”
그러고는 냅다 그의 멱살을 잡아채어 주먹으로 때리려 했다. 순간 아테온의 입가로부터 흘러내리는 핏물, 그런 모습에 아이들이 소리쳤다.
“반장! 피를 흘리잖아.”
“진짜 아픈 맞나 봐!”
하지만 미하엘은 씩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순진한 놈들, 아직도 이놈의 수법을 모르냐? 이놈은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그 어떤 수단과 방법도 동원하는, 아주 영악한 놈이라고. 그러니까 지금도 자기가 스스로 볼 안쪽 살을 깨물어 일부러 피를 흘려 우리에게 보이는 거라고.”
“설마! 그런 짓까지 하면서.”
“못 믿겠다면 내가 보여 줄까?”
그 즉시 미하엘은 아테온의 입을 억지로 벌리게 해서 안에 상처를 아이들에게 보여 줬다.
“봐! 자기가 씹은 거 맞지. 이놈이 원래 이렇게 사악하다고! 우리 머리로는 절대 당하지 못하는, 아주 비열한 놈이지. 물론 이런 종자는 말로 해서 안 되고 무조건 패야겠지.”
아테온은 그 방법조차 먹히지 않게 되자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팍!
“악!”
미하엘 손가락을 깨문 것이다.
“이런 개새끼가!”
그 틈을 이용해 식당 담벼락에 올라 날쌘 다람쥐처럼 지붕 위로 올라가 버린 아테온.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그를 쫓아갔지만 그처럼 높은 곳에는 다들 올라갈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어쨌든 아직도 포위당한 건 마찬가지였던가.
“오늘은 절대 그냥 넘어가면 안 돼.”
마하엘의 말에 다른 아이들도 눈빛이 거칠었다.
“맞아, 그동안 우리가 당한 거 생각하면 진짜 죽도록 패 줘야지 직성이 풀릴 것 같아.”
“그런데 저놈을 어떻게 잡지.”
그 말에 미하엘은 갑자기 땅바닥에 있는 돌멩이를 하나 집어 들며 눈빛을 번뜩였다.
“맞춰서 떨어트려야지.”
아이들이 깜짝 놀랐다.
“반장, 그러다 다치기라도 한다면?”
“그게 목적인데.”
“그래도 그렇지, 좀 심한데…….”
“저놈이 전학 온 이후 우리가 당했던 건 심하지 않고?”
그는 말을 끝내자마자 돌멩이를 아테온에게 던졌다.
홱!
한데 아테온은 지붕 위에서 개구리마냥 팔짝 뛰더니만 돌을 피했고, 멋지게 안착함과 동시에 오히려 이들에게 도발했다.
“피했지롱, 큭!”
이에 반장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열이 받아 각자 돌멩이를 집어 집중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홱! 홱! 홱! 홱!
피하는 데 천부적 소질이 있었던가. 아테온은 빠르고 절묘한 동작으로 그 돌멩이들을 모두 쓸모없게 만들었다. 게다가 혓바닥까지 내밀었으니.
“메룽! 큭!”
“저 새끼가 정말!”
“사람 가지고 노네.”
“계속 던져. 맞을 때까지!”
바로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고함.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바로 학장이었다. 그는 한 손에 검을 쥐고 있었고, 무서운 눈빛으로 아이들을 나무랐다.
“그러다 다치면 어쩌려고요!”
아이들은 저마다 깜짝 놀라 돌팔매질을 멈추었다. 이에 지붕에 아테온이 폴짝 뛰어내리더니만 학장에게 다가와서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냥 장난한 걸요, 큭. 제가 던져 보라고 했어요.”
그래도 자기한테 험하게 굴었던 아이들을 두둔했다. 하지만 반장 미하엘은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그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말했다.
“각오해. 언제가 아주 죽여 버릴 테니까.”
그때 학장이 아이들에게 외쳤다.
“자! 오늘은 연병장 검술 훈련을 할 테니 여러분 모두 장비를 착용하고 무기를 가지고 이곳으로 집합하도록 하세요!”
아이들은 무기 창고로 향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연병장 앞 건물 현관 앞에서 한 젊은 교관이 외쳤다.
“학장님, 잠깐 안으로 들어오겠어요?”
“지금 수업 중인 거 안 보여!”
“중요한 일이라서 손님들이 오셨거든요.”
“손님이라니?”
“입학 상담을 원하는 학부형과 아들이요.”
“자네가 알아서 처리하게나. 난 여기 학생들에게 무기 창고 견학시켜야 하니까.”
“그런데 조금 문제가 있어서요. 아무래도 학장님이 보시고 판단을 하셔야 할 것 같아요.”
학장은 인상을 팍 찡그렸고, 괜한 화풀이를 교관에게 했다.
“레온, 자네는 언제까지 아플 거야! 고작 사타구니가 가렵다고 계속 교무실에 처박혀 행정 업무나 볼 거야. 도대체 신으로 태어나고도 그런 잡병이 걸리면 어쩌라고.”
그러자 레온은 손으로 머리를 긁적거리며 변명했다.
“아무리 신이라지만 여기 특이점에서는 그저 평범한 존재에 불과합니까.”
“고얀! 뚫린 입이라고 말은 잘해. 저번에 겨드랑이 탈모증이 걸리더니만 이번엔 가운데. 쯧쯧, 병에 걸려도 꼭 지저분한 것만 걸리니 이거 원, 더러워서.”
“저기, 일단 학장실로 가주시겠습니까? 손님들이 온 지가 꽤 됐거든요.”
소파에 앉아 있던 두 모자(母子)는 학장이 들어왔는데도 불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조차 하지 않고 빤히 쳐다보았다. 이에 학장이 헛기침하며 다소 불쾌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험! 음.”
한데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는 모자. 이에 교관이 그들에게 말했다.
“이분이 학장이십니다.”
그러자 그 아들로 보이는 소년이 일어나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하지만 엄마는 아직도 의자에 앉아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이에 소년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자기 머리에 빙빙 돌리며 학장에게 말했다.
“어머니가 좀……. 정상이 아니라서.”
그제야 학장은 자리에 앉았고, 교관을 향해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래,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야.”
“저희 아카데미에 입학을 원합니다. 그런데 입학생의 자격이 조금… 그러니까 순수 혈통이 아닌 에스타란토 종족과 다른 종족의 혼혈입니다.”
“혼혈이라고?”
“아버지는 에스타란토 종족이고, 그 아들은 반반 섞인… 흠, 중요한 건 입학생이 어머니의 능력을 물려받아 여기 특이점 지대의 중력장을 견딜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순수 혈통은 아닐지라도 능력은 되니 여기 아카데미에 입학 자격은 주어지는데, 그래도 학장님의 의견을 여쭤보려고 이렇게 모시게 된 것입니다.”
단번에 대답이 나왔다.
“혼혈은 안 돼!”
교관은 당연히 학장이 그런 반응을 보일 줄 알고는 귀에다 대고 속삭이려 했는데, 학장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가까이 오지 마. 자네는 아직도 본인 스스로 입 냄새가 심하다는 거 모르나! 에잇, 고얀! 1미터 떨어져서 얘기해!”
“은밀한 내용이라서.”
“시끄럽고, 말해 봐.”
“사정이 딱합니다.”
“뭔 사정?”
“저 두 모자는 갈 곳이 없어서 마지막으로 여기에 온 것이라서.”
“그게 입학하고 뭔 상관이야! 그리고 우리 에스타란토 종족은 원래 다른 종족과 결혼을 하지 않는 게 원칙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