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특별 사면이요?”
“학장이 현 시국의 난관을 헤쳐 나갈 자는 오로지 너밖에 없다고 결국 의회를 설득시키고 만 거지. 그리고 내가 강력하게 항의했지. 이번에 나와 너랑 함께 플린시아가 행방불명이 된 곳으로 파견 명령을 허락해 달라고.”
나는 힘없이 물었다.
“그래서요?”
“명령이 떨어졌어.”
순간.
“정말이요?”
“음, 그래. 그런데 우리가 파견할 곳이 말이야……. 거기 장난 아니다.”
“장난이 아니라니요.”
“일단 나와 함께 가면서 대책을 마련하자.”
* * *
선생이 학생들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옛날에 별을 먹는 항아리가 있었어요. 항아리는 밤하늘을 누비며 별을 먹기 시작했지요. 어느새 하늘의 별들은 자취를 감추고 어둠만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도 항아리는 먹을 것을 찾아다녔습니다. 사실 그 항아리는 창조주에게 반역을 꾀한 에스타란토 종족을 가두어 놓은 감옥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권능 또한 창조주에 버금갔고, 곧이어 복수를 꾀하기 위해 창조주가 창조한 세계들을 먹기 시작한 것입니다.”
순간 그 대목에서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를 쳤다.
와! 와!
짝! 짝! 짝! 짝!
“항아리는 오늘날에도 이곳저곳을 누비며 허기진 배를 달래고 있는데, 결국 창조주는 고심하던 차에 전 우주에 공표를 했습니다. 항아리 속의 잔당들을 처치하면 큰 상을 주겠다고요.”
거기에선 야유가 들려왔다.
우! 우!
“창조주 바보!”
“그 이후로부터 항아리는 별들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먹기 시작했습니다. 한데 항아리의 본래 주인인 에스타란토 종족은 적대적으로 들어온 사람들에게 일단 유화 정책을 베풀어 함께 거주하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어차피 항아리 안은 중력장의 저주 때문에 그 원래 힘이 수백만 분의 1로 축소되니 그들에게 감히 대항할 능력조차 되지 않았던 거죠. 그래도 끝까지 거칠게 나온다면 수백, 수천 배로 갚아 주었고요.”
와와!
“멋져 부러!”
* * *
〈같은 시각, 또 다른 우주〉
“이제 어떡하실 겁니까?”
부관은 불안한 시선으로 물었고, 지존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죽여 버려야지.”
“상대는 천계의 수장입니다.”
“그전에 내 누이를 잔인하게 죽인 종족의 우두머리지.”
“군주시여, 그는 그 사건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잖습니까.”
“수하들을 잘못 둔 죄, 값을 치러야지.”
“설마 여기를 멸절이라도 시킬 생각이십니까?”
“악의 근원은 뿌리를 뽑아야 하는 법.”
“이곳은 차원 연합국입니다. 아무리 원한이 깊을지라도 그 정도가 있는 법이지, 군주님에게 죽임을 당한 천공 전사들이 이미 죗값을 치렀고 이곳 시민들은 아무런 죄가 없으니 이쯤에 그만하시는 것이.”
하지만 지존은 헤란타의 붉은 검을 뽑아 들어 지면에 강하게 쑤셔 박았다. 순간 진동이 울리고 대지가 쭉쭉 갈라졌다. 이에 천계의 수장이 삼지창을 앞세워 공격해 들어왔는데, 그는 맨손으로 그의 무기를 잡아 부러트리고 이어 두 손아귀에 힘을 주어 그의 얼굴을 잡아챘다.
“아악!”
수장은 그대로 압사당해 머리통이 터져 즉사했다. 그와 동시에 천공의 섬 페타레는 거대한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대지가 갈라지면서 성과 병사들을 삼켜 버리기 시작했다.
지옥의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던가.
절대 지존의 대살육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시간이 갈수록 페타레는 전멸에 이르게 되었다. 부관조차 말릴 틈이 없었다. 함부로 나섰다가는 그 역시 그에게 죽임을 당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군주는 검을 거두어 어깨에 멨고, 부관에게 말했다.
“헬존 포탈 열어.”
순간 부관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거기는 왜입니까?”
“누이를 함정에 빠트린 새끼가 그리로 숨어 들어갔지.”
부관은 얼굴이 창백해진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리 군주이실지라도 거긴 안 됩니다. 창조주의 권능마저 미치지 않은 절대 공간에, 그 무엇이든지 모든 것들을 빨아들이는 항아리에 무작정 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자 그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나는 여러 차원을 거느리고 있는 절대 지존이니라.”
“제발. 그곳만은. 헬존입니다.”
순간 그는 붉은 검을 그의 목에 겨누어 위협했다.
“열어!”
“군주님!”
“내게는 이 헤란타의 붉은 검이 있도다. 세상 그 누구도 두렵지 않아! 아니, 전 우주가 두렵지 않다고! 하하하.”
이에 부관은 두려움에 덜덜 떨면서 마지못해 허공에 푸른 게이트를 만들었다.
“대신 저는 가지 않으면 안 될까요?”
“마음대로. 나는 그곳을 평정하러 가겠다.”
군주는 짧게 한마디 던지고 그 자신만이 그 포털 안으로 들어갔다.
파팟.
* * *
〈같은 시각 헬존, 북반구 소속 레알 학원 상공 위.〉
하늘에 구멍 하나가 생겼고, 그 안으로부터 누군가 쑥 나오더니만 그 밑으로 떨어졌다. 그는 학원 지붕을 뚫고 교실 바닥에 추락해서 머리가 터져 즉사했다. 선생은 수업을 하다 말고 중얼거렸다.
“포탈이 높은 데서 열릴 줄 몰랐지. 그러니까 떨어져 죽지, 쯧쯧.”
그는 금세 환한 표정으로 수업을 듣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여러분은 운이 좋아서 현재 생생한 학습 체험을 하는 중입니다.”
그러고는 스틱으로 시체를 툭툭 건드리며 다시 말했다.
“이렇듯 아직도 외부에서는 우리를 공격하려 애를 씁니다. 자! 이런 마당에 우리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저 창조주의 침략에 대비해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아이들이 일제히 외쳤다.
“대비해야 합니다!”
선생은 아이들의 열렬한 반응에 흡족한 표정으로 계속 설명했다.
“그러다가 항아리 안에는 별들과 사람들이 넘쳐 났고, 나름 큰 나라가 세워졌지요.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점차 시간이 흐르고 인구가 천문학적으로 불어나게 되면서 항아리의 시조 격인 에스타란토 종족은 그 수가 줄어들고 손님 격으로 들어온 자들이 주인 행세를 하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한 아이가 물었다.
“결국 에스타란토 종족은 어떻게 되었어요?”
선생은 다소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들은 이미 아주 옛날에 완전 종적을 감추었고, 지금은 전설로만 전해져 오지요. 하지만 언제든 우리를 지켜 줄 수호신으로 항상 곁에 있다고 느껴 보기 바라요. 어쨌든 항아리 속은 우주 각 지역의 절대자들이 한 번쯤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도전하기 위한 절대 영역이자 ‘헬존’이라는 명칭으로 점점 유명해졌답니다.”
그때 들려오는 수업 종소리.
땡! 땡!
“오늘 국사 수업은 여기까지입니다. 다들 수고했어요. 그럼… 아차! 한 가지 더! 이곳은 그 어떤 우주 존재들에게 있어서 ‘블랙홀’이라 불리기도 했답니다. 아주 독특하고 유물론적인 기술을 지닌 그들의 이주로 인하여 우리나라가 이렇듯 복잡 다양하게 과학 문명으로 변하게 된 것이고. 에, 또, 그리고…….”
순간 아이들은 여기저기서 아우성을 쳤다.
“그만요!”
“수업 끝났잖아요!”
“점심시간이다!”
“밥 먹으러 가자.”
그때 아이 중 한 소년이 교실 앞으로 나오더니만 말했다.
“애들아, 지금 밥이 중요한 게 아냐.”
선생이 소년을 보더니만 빙그레 웃었다.
“아테온, 여기 왜 나온 거니?”
그러자 아테온은 선생의 얼굴을 바라보더니만 매우 슬픈 눈망울로 말했다.
“슬퍼서요.”
“슬프다니?”
“지금 다가올 시국이 이런데 애들은 오로지 밥 생각밖에 못하잖아요.”
“시국이라니, 그건 무슨 말이지?”
그러자 아테온은 교실 바닥에 있는, 온통 붉은 군장으로 도배한 시신을 살피더니만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선생님은 이 시신을 보시고도 아무런 느낌이 없나요?”
“느낌?”
순간 여기저기에서 아이들의 불평 소리가 들려왔다.
“저 자식! 이번엔 무슨 속셈이지.”
“선생님, 이번에도 쟤 말에 속으시면 안 돼요.”
아이들은 수업이 끝나고 하필 점심시간에 이어진 녀석의 시간 지연에 성질이 나기 시작했다.
“들을 것도 없어요.”
“아, 배고파 죽겠는데.”
아테온은 그들의 그런 압박에 전혀 기죽지 않고 오히려 뻔뻔한 얼굴로 타이르듯 말했다.
“너희 그러면 안 돼. 앞으로 닥쳐올 현안 문제에 대해 우리가 힘을 모아 함께 대처하고 노력해야지.”
“개소리!”
“이번엔 무슨 수작 부리려고!”
하지만 선생은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고 아테온의 말을 더 들어 보기로 했다.
“그래, 하고 싶은 얘기가 뭐니?”
아테온은 무척 감동 어린 눈길로 두 손을 모아 선생에게 감사의 말을 드렸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그래도 저를 알아주시는 분은 선생님 밖에 없어요.”
“서론은 그쯤하고 어서 말해 보렴.”
아테온은 다소 가슴이 먹먹하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듯 손으로 심장을 누르고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헬존에 외부인이 들어올 때 이렇듯 1미터 두께의 아스릴 금속판으로 3중이나 된 학교 지붕을 뚫고 여기까지 추락한 게 언제부터 당연한 걸로 여겼나요? 보통은 포탈이 열리는 상공의 시점에서 소멸되어야 정상 아닌가요?”
“…….”
선생은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쓸데없는 말 하면 대충 혼내서 쫓아 버리려 했는데 막상 듣고 보니 녀석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흠, 그러고 보니 뭐. 그것도 그렇군.”
아테온이 계속 말했다.
“최근에 일어나는 일련의 현상에 대해 정부 당국은 아무런 조치나 대응책을 내놓지 않는 것 같은데, 저는 그런 무관심에 심히 가슴이 아파 옵니다.”
선생은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만 이내 대수롭지 않은 일인 듯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후후, 네 말이 틀린 건 아닌데 헬존의 상공은 곳곳에 따라 그 중력장이 불규칙하게 작용되기에 일정한 법칙은 없단다. 물론 최근에 이런 현상이 자주 발생되기는 하지만 그다지 걱정할 건 없어 보이는데.”
그러자 아테온은 주머니에서 금속 기기를 꺼내 들어 시신에 가까이 대고 측정을 해 보았다. 순간 뜨는 홀로그램 글씨.
〈우주 좌표 2038947566474883〉
“선생님도 처음 보는 긴 좌표가 맞지요? 이전에는 기록에 없던.”
그러자 선생은 이내 호탕하게 웃고 말았다.
“하하하. 애들 장난감 같은 기기로 측정 한 것을 믿으라고! 학교에는 그보다도 훨씬 성능이 좋은 기기가 있단다.”
이에 아테온은 시무룩하게 말했다.
“그럼 학교 기기로 확인이라도 해 보시지요.”
이때 들려오는 아이들의 불만 터진 아우성. 그들은 참을 만큼 참았다는 듯 마구 소리쳤다.
“그만 끝내요!”
“더 들을 것도 없어요.”
“하여간 저 자식 때문에 정말 쓸데없이.”
그제야 선생은 아이들에게 말했다.
“자, 즐거운 점심 식사들 해요.”
한데 정작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아테온이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교실 문 쪽에서 들려오는 한 아이의 외침.
“문이 잠겼어요!”
“뭐라고!”
“빌어먹을! 설마 그 자식이 잠근 거 아냐!”
동시에 아이들은 허탈한 표정들의 반응을 보였다.
“또 속았군.”
“아테온 그 새끼가 식당 먼저 가려고 처음부터 술수를 쓴 게 틀림없어.”
“빌어먹을, 그냥 문 부숴. 배고파 뒈지겠다.”
같은 시각. 식당 안에는 식판을 들고 밥을 타려는 학생들로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줄 맨 앞에는 금발의 귀여운 소년이 보였는데, 바로 아테온이었다. 그는 식사 배급이 이루어지자 기다렸다는 듯 식판을 내밀었다. 밥을 퍼 주는 아주머니의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