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아레스 님, 저자를 살펴보니 그다지 공력이 센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그냥 제 손으로 간단하게 처리하겠습니다.”
“그렇게 경거망동할 상황이 아니란 말일세.”
“하하, 군신 아레스 님께서 어째 그런 말씀 하십니까! 당장 제가 저놈의 목을 베서 증명해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바젤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생머리 청년을 향해 그대로 날아오며 동시에 검을 조준했다.
“원한은 원한을 낳고 또 원한을 낳는 법.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하지만 그것도 여기서 끝이다!”
파파파팟!
바젤의 검이 청년의 정수리를 향했다. 그 순간.
챙! 챙! 챙! 챙!
청년의 검이 바젤의 소드 4절기를 모두 가볍게 막아냈다.
“제법인데, 크크. 하기야 그 정도는 해야 나와 급수가 맞지. 아니! 급수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지!”
마왕은 갑자기 검을 버리고 맨손으로 그를 대했다.
“크크크, 나는 마왕이다! 인간 따위가 사용하는 검을 지닌다는 것은 치욕! 자! 마왕의 권능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보여 주겠다!”
바젤은 두 손을 모아 순식간에 붉은 기류를 형성했다.
슈슈슈슈!
“열기가 느껴지지 않는가! 지옥에서 직접 공수해 온 아주 신선한 화염의 진수! 자! 이걸 어떻게 받아 내는지 보겠다.”
화르르.
화염 줄기가 생머리 청년에게 발사되었고.
“헛!”
청년은 그대로 도약해서 그 화염을 피했다. 그러나 화염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다시 돌아와 청년에게 향했다.
슈슈슈슈!
“앗!”
청년이 이번에도 도약한다. 하지만 바젤에게는 생각이 있었던가. 화염은 갑자기 두 개로 나누어져 하나는 청년의 위쪽, 다른 하나는 몸통 쪽으로 동시에 공격을 했다.
“이건 어떻게 막을 건가! 크크.”
그때 청년은 화염을 피할 수 없게 되자 그대로 바젤에게 돌진하여 정면 승부를 보는 듯했다.
타다다닥!
“이얏!”
청년의 검이 그대로 바젤은 가슴을 찌르려는 순간.
척!
바젤이 두 손가락으로 검 끝을 가볍게 집어서 멈추게 한 것이었다.
“헉!”
청년이 당황했다. 그런 그의 반응에 바젤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내 분명 권능을 보여 주겠다고 했건만! 어디서 인간 나부랭이의 검술로 나를 감히 찌르려 하는가! 크크, 보아하니 검신이란 칭호를 들을 만큼 궁극의 경지에 오른 것 같은데,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계에서나 통할 법이고.”
바젤이 두 손가락에 힘을 주었던가.
툭!
검이 두 동강이 나 버렸고 바닥에 떨어졌다.
챙그랑!
바젤은 원래 말 많은 족속이 틀림없었다.
“크크, 인간이 말하는 궁극의 경지는 이 신계에서는 고작해야 회초리로 이파리 하나 따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 하지만 네놈이 내 수하들을 죽인 것은, 인정한다. 그 정도의 실력이라면 아마도 나마저 충분히 대적할 것이라 자신만만했겠지. 그러나!”
순간 바젤이 이번에는 한 손으로 청년의 목을 잡고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리게 했다.
“자! 어떤가? 나를 직접 상대해 보니? 내가 마왕이란 위치에 오른 것이 그저 마계에서 왕 노릇이나 하는 그런 하찮은 놈이라 생각했나? 여기는 49차원의 신계이다! 애초 그것부터 공부하고 왔어야지!”
바젤이 손에 힘을 주자 청년은 숨통이 끊어지는 듯 헐떡였다.
“컥! 컥!”
그 와중에도 바젤의 잔소리는 끝이 없는 것 같았다.
“권능! 그래, 권능이라는 것이 과연 인간의 개념으로 어떻게 해석되었는지, 너 같은 놈이 내게 도전을 해 왔는지 모르겠다만 죽기 전에 내가 직접 생생하게 깨닫게 해 주겠다.”
바젤은 갑자기 목을 조르던 손을 놓았고, 청년은 그대로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바젤이 이번에는 손가락 하나를 까닥하자.
홱! 홱!
가만히 서 있던 청년의 몸이 저절로 허공에 떠서 빙글빙글 돌았다.
“아아아.”
“아직도 너는 이게 권능을 사용하는 것이라 믿고 있겠지. 나는 그런 네놈에게 더욱 화가 난다! 이런 것은, 권능도 아닌 벌레 밟는 정도로 쉬운 것이지. 그런데 네놈에게는 엄청난 힘으로 느껴질 테니 내 고독은 바로 너 같은 인간 약자들 때문에 생긴, 아주 몹쓸 병이다.”
청년의 몸은 더욱 빠른 속도로 돌기 시작했다.
“아아아아.”
“빌어먹을! 도대체 왜 그리 약해서! 이제 막 시작하려고 하는데 대항 한번 받아 보지 못한 게 너무 아쉽다. 하지만 이 짓도 이제는 너무 식상해.”
바젤이 손가락을 튕기자.
펑!
청년의 몸이 허공에서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허무해. 너무 허무해.”
바젤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군신 아레스에게 가서 투정 부리듯 말했다.
“군주시여! 이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리에게 원한을 품은 자는 제가 제거했습니다.”
그러자 군신 아레스는 지그시 눈을 감고는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후~ 무엇이 자네를 그렇게 스스로 한심한 작자로 만들었는가?”
바젤은 의아한 듯 물었다.
“무슨 말씀이온지요?”
“정말 생각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자네가 그렇게 떠들던 권능이 그것밖에 안 되는지……. 흠… 머리가 아프군…….”
“군주님, 제가 알아듣기 쉽게 말씀해 주시면…….”
그러자 아레스는 손을 들어 나와 플린시아, 그리고 학센이 있는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네 눈에는 저들이 보이지 않는가?”
그제야 바젤은 우리를 살펴보며 말했다.
“저들 역시 침입자들……. 저들도 인간인데요. 무엇이 문제인가요?”
아레스는 다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인간……. 그래, 자네 기준에서 인간은 아주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겠지. 그건 이해하네만, 내 기준에서 볼 때는 인간이야말로 가장 두려운 존재일세. 그리고 그런 인간 앞에서 자네의 그 우둔함은 지금, 이 순간에도 드러나지 않았는가?”
바젤은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드러나다니요? 무슨 의미인지요?”
“자네는 조금 전 죽인 그 청년이 정말 우리에게 원한을 가지고 대원들과 수하들을 제거한 장본인이라 믿는가?”
“네,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에 아레스는 혀를 끌끌 찼다.
“쯧쯧, 그게 생각의 한계일세. 자네의 권능으로 그리 쉽게 제압을 당한 자가 어떻게 우리 대원들을 제거할 수 있는지 생각은 해 봤는가?”
“그건 제가 강하기 때문이 아닌가요?”
아레스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닐세, 우리 대원들 역시 자네만큼 전투력이 강한 자들일세. 그런 그들이 당했다면 분명 그 이름 모를 청년은 아닐세.”
“그럼 누구입니까?”
그러자 아레스란 인물은 우리 쪽을 바라보았다.
“저들 중에 있네.”
바젤 역시 우리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진짜 자객이 저 셋 중에 있다는 것인데……. 제가 보기에 그리 큰 공력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한편 나는 내심 그 군신 아레스란 자의 안목이 대단하다 느꼈다. 그리고 분명 그는 나 아니면 플린시아를 두고 그런 추측을 한 것 같았다. 내 공력이나 그녀의 공력이나 솔직히 시공 전사로서의 그 기준으로 볼 때 훨씬 상회하는 것은 맞기 때문이다.
나는 은하검의 소유자이고 플린시아는 무한한 마나를 지닌 회색 마법사. 그런 생각이 드니 이제는 과연 아레스가 우리 둘 중 누구를 고를지 그게 궁금했다.
사실 나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는 중이다. 과연 나와 플린시아 중 누가 강할까, 하는 기대감. 다소 어린아이와도 같은 생각이지만 늘 호기심이 있었다. 플린시아의 전투력이 어느 정도 될까, 하는…….
그리고 은근한 기대가 생겼다. 그래도 내가 플린시아보다는 조금이나마 우월하지 않을까, 하는……. 그래서 아레스의 최종 선택은 분명 나일 것이다, 라는 확신을 했다.
그때 바젤이 아레스에게 물었다. 도대체 저들 중에 누구입니까. 이에 아레스는 묘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기 시작했고. 이어 손을 들어 한 사람을 가리켰다.
“바로 저자일세.”
놀랍게도 그가 가리킨 자는 나도 아니고 플린시아도 아닌, 학센인 것 같았다.
바젤이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기 해머를 들고 있는 돼지 같은 놈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레스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바젤을 나무랐다.
“자네가 그렇게 하대할 그런 존재가 아닐세.”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러자 군신 아레스는 다시 학센을 살펴보더니 말문을 열었다.
“작고 뚱뚱하고 청동빛 해머를 지닌 자. 물론 이 은하계에서는 그런 전사들이 수두룩하지만 그들 중에 오직 한 사람, 소위 ‘천둥의 신’이라 일컫는 해머 전사의 제왕이 존재하는 법. 그리고 매우 유감스럽지만 바로 저자가 그 천둥의 신이 아닐까 하는데.”
그러자 바젤은 깜짝 놀랐다.
“처, 천둥의 신이라니요? 그는 조홀 은하계 최고의 해머 전사 아닙니까? 설마 그런 자가 왜 이런 곳에 등장 한 것인지요.”
“난들 알겠나. 적어도 그자는 우리게 원한이 있는 듯 보이는데.”
“그럼 저자가 우리 대원과 수하들을 제거한 그 장본인입니까?”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추측할 수밖에 없지.”
나는 그들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학센이 조홀 은하계 최고의 해머 전사라니. 비록 천둥의 신이라는 그 별칭은 들어 본 적이 없지만 아무튼 매우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그때 아레스가 학센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대는 천둥의 신이 맞지요.”
그러자 학센은 다소 대답을 머뭇거리다가 이내 대답을 했다.
“맞다.”
순간 아레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역시.”
하지만 바젤은 큰 소리로 외쳤다.
“천둥의 신이고 나발이고, 도대체 우리와 무슨 원한이 있기에 여기를 찾아왔나?”
그러자 학센은 그 온화했던 얼굴에 이내 독기가 서려졌고, 거친 음성을 내뱉었다.
“켄타우리 성단, 타이탄 행성에서 벌인 네놈들의 만행을 잊었는가?”
그러자 바젤은 눈알을 돌리더니만 말했다.
“그래, 거기서 우리는 사령관을 제거하기 위한 작전을 수행 중에 있었지.”
“네놈들은 수행일지도 모르지만 그 작전에 성공하기 위해 타이탄 행성 주민들 20만 명을 살육했었고.”
“그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래야만 숨어 있던 사령관 바타카가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에.”
“그게 사람이 할 짓인가? 사령관을 유인하기 위해 죄 없는 주민들 20만 명을 살육한 것이.”
“그나저나 네가 그 작전이랑 무슨 관계가 있기에 그렇게 열불을 내는 거지?”
“살육당한 주민 중에는 바로 내 아버님과 어머님이 있었다.”
순간 바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거야 뭐, 안 된 일이지만 우리가 어떻게 일일이 가족이나 친척 관계, 다 따지고 작전을 수행할 수 있나. 그건 어쩔 수 없는 순서였다.”
이에 학센이 담담히 말했다.
“나도 오늘 어쩔 수 없는 순서를 밟으려 하니 이번에는 너희들이 이해해라.”
바젤이 피식 웃었다.
“크크, 얼마든지.”
학센이 그 큰 해머를 들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바젤 역시 검을 뽑아 들고 그 앞으로 나아갔다.
“그 뚱뚱한 몸으로 과연 전투를 치를 수 있겠나?”
그러자 옆에 있던 아레스가 그에게 경고를 했다.
“바젤! 정신 차려! 상대는 천둥의 신이다!”
“군주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 역시 마왕입니다. 바로 이곳 49차원의 통치자. 그렇게 따지면 위명은 제가 더 한 수 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