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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얻은 레어템, 현실에는 역대급-78화 (78/143)

78화

“그럼 도대체 누굽니까?”

“지금 누가 궁금한 게 아니라 당장 자네를 걱정해야 할 판이네.”

“그건 무슨 말씀이죠?”

“겔릭도 살해당했다네.”

“겔릭도요!”

“아르휀도 죽었고.”

“어떻게?”

“바쿠어스도 당했지.”

“아…….”

아레스의 말에 가뜩이나 충격에 휩싸인 그는 더욱 불안에 떨었다.

“어, 어떻게?”

“아무래도 그들의 죽음은 계획적인 것 같네. 살해당 한 자들 모두가 에이른 대륙에서 내 지휘하에 특수 임무를 수행하던 대원들이었으니.”

“아……. 그러고 보니 그, 그렇군요.”

“이제 자네와 나만 남았네.”

“도, 도대체 누가 그런 짓을?”

“그걸 알고 싶어 이곳에 온 것이네. 바로 그 살인자의 다음 목표가 자네일 테니까.”

그 말에 바젤은 잠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런 아레스가 그의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

“후후, 걱정하지 말게나. 자네만큼은 내가 옆에서 지켜 줄 테니까. 솔직히 나는 은근히 기대하고 있네. 과연 내 수하들을 제거할 만큼 그 누가 그토록 강한가 말일세.”

“그럼 그놈도 여기 49차원에 왔다는 것입니까?”

“그렇게 생각한다네. 아무래도 나와 자네들과 원한 관계가 있는 자가 아닌가 하는데……. 도대체 누굴까……?”

* * *

희망…….

과연 그런 단어가 실제로 존재하는 건가?

한때 내가 그리도 희망을 운운하며 그 누구에게 강조했던 그 단어가 지금은 무색하리만큼 그 빛을 잃어 가고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끔찍하고 처절한 광경들. 저기서 과연 인간들이 살아남을 일말의 희망이라는 게 정말 남아 있는 걸까?

“형도야! 무슨 생각해! 당장 저들을 구해야지!”

“아! 그, 그래!”

하늘에 떠 있는 수십 마리의 드래곤에 의해 화염이 마구 뿜어지면서 지상에 흩어져 있는 인간 난민들이 불에 타거나 재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플린시아! 네가 왼쪽을 맡아! 나는 오른쪽 놈들을 맡을 테니까!”

“그렇게 얘기할 시간이 사람들이 몇십 명은 더 희생당했겠다!”

그녀는 곧바로 상공을 솟아올라 마법 스태프를 들어 눈앞에 있는 드래곤에게 회색 마법을 발사했다.

파파파팟!

“크앙!”

나 역시 은하검을 필두로 그대로 천공 날개를 펼치고 저 무지막지한 괴수들을 향해 돌진해 들어갔다.

슈슈슈!

“크앙!”

“컥!”

놈들의 정수리가 갈라지고 피와 골수가 터져 나왔다. 물론 내게 뿜어지는 화염은 덤이었고.

“헛!”

뜨거웠지만 견딜 만했다. 상상의 영물인 드래곤이 내 검에 의해서 속수무책 즉사해 나가는 모습에 나는 그 와중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와. 인제 보니 나 장난 아니네.”

아직도 내 전투 능력에 대해 부족함을 늘 느껴 왔는지라 이런 실질적인 전투를 통해야만 스스로 존재감을 알 수가 있는 멍청한 녀석이 바로 나이다.

바로 옆에 플린시아의 회색 마법의 그 어마어마한 위력에 한 번에 드래곤 두세 마리가 그대로 죽어 나가는 모습에 그녀의 위용에 입이 절로 벌어지는…….

“형도야! 갑자기 왜 멈춘 거야! 당장 서둘러야 해. 아직 저 뒤편에 놈들의 화염 공격에 사람들이 죽어 가잖아!”

“오케이!”

이번에는 그대로 빛의 속도로 그냥 놈들의 몸통을 헤집고 관통해 들어갔다. 사람들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시간이 없었다.

플린시아 역시 자신의 마나를 높여서 드래곤들을 아예 몰살시키는 중이다.

크앙!

컹!

잠시 후.

우리는 이제야 지면에 안착할 수가 있었고, 현재 지상의 광경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형도야, 우리가 너무 늦은 것 같아. 희생자들이 너무 많아.”

“빌어먹을! 늦은 게 아니라 늦게 발견한 것뿐이지.”

“일단 부상자들부터 살펴볼 게. 너는 혹시라도 살아남은 드래곤들을 확인 사살해!”

“알았어!”

그로부터 반나절이 흐른 시점이었다. 태양은 서산으로 기울어질 오후 무렵.

생존 한 사람 중에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중년인이 우리에게 다가와 말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당신들 아니었으면 우린 몰살했을 겁니다. 흑, 정말 고맙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우리 주변에 몰려와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표현을 했다. 그들 중에는 아이들도 보였는데, 옷 전체가 거의 피로 물든 채 엉엉 울고 있었다. 나는 그런 모습에 코끝이 찡해지기 시작했다.

이곳은 군인들끼리 전투를 벌이는 전쟁터가 아니었다. 이들은 머나먼 행성에서 이곳으로 강제 추방된 유배자들로서 대부분 무기도 없이 그저 죽음을 기다리는, 가혹한 운명의 사람들이었다.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유배지라면 최소한 목숨은 보장되어야 하는데 이런 대규모 학살이 자행되니 말이다.

그때 플린시아는 내 곁으로 다가와 급히 말했다.

“형도야, 여기는 이쯤에서 끝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분명 그곳에도 또 같은 만행이 저질러질 테니까.”

“알았어! 당장 가자.”

휘리리릭!

나는 천공 날개를 펼쳐 그대로 날아올랐고, 플린시아 역시 내 뒤를 쫓아왔다.

“왜 여기는 사람들을 못 죽여서 안달이지! 유배지라면 그냥 놔두어도 될 것을 말이야! 이 빌어먹을 마왕 바젤 새끼! 어디 걸리면 아주 요절을 내 버릴 테다!”

플린시아 역시 매우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그자는 내게 맡겨! 나도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우리는 서로 울분을 토하며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다.

* * *

그로부터 며칠 후.

“하아! 하아!”

“아!”

나와 플린시아는 거의 녹초가 되어 평원 둔덕에 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플린시아의 로브는 거의 붉은 핏물로 물이 들었고, 나 역시 얼굴에 식은땀 대신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후~ 오늘은 이쯤에서 마무리할까? 꽤 많이 죽인 것 같은데.”

나는 말을 잠시 멈추고 저 들판에 널브러진 마물들의 시체들을 보았다.

“대략 수천은 되어 보이는데…….”

하지만 플린시아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마법 스태프부터 챙겼다.

“우리가 힘들다고 잠깐 쉬는 이 시간에도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어. 그러니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자.”

“플린시아, 그래도 잠은 자 둬야지. 거의 3일을 밤낮으로 사냥하느라 꼬박 셌는데 말이야.”

“그럼 넌 여기 있어. 나 혼자 갈 테니까!”

그녀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대로 하늘로 솟구쳐 올라 비행을 시작했다. 나 또한 마지못해 뒤를 따랐고.

“이봐! 같이 가!”

그로부터 날이 저물기 시작할 무렵.

나는 거의 기진맥진하여 결국 천공 날개를 접고 지면에 안착했다. 플린시아 역시 나에 대한 배려인지 잠시 갈 길을 멈추었다.

“플린시아, 놈들 죽이고 사람들 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좀 효율적으로 생각하자. 여기까지 수 킬로미터 오는데 죽인 마물들만 천 마리는 넘을 것 같은데, 이 정도면 된 거 아냐?”

그제야 그녀도 수긍하는 듯 말했다.

“그래, 공력은 남아돌아 놈들을 한없이 처치할 수 있지만 잠이 오는 것은 견딜 수가 없지.”

잠시 후 우리는 나무 아래 모포를 깔고 일단 눈을 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함! 잘 잤다.”

눈을 뜨고 기지개를 켰다. 그런데 옆에 있어야 할 플린시아가 보이지 않았다.

“뭐야, 어디 간 거야?”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살폈지만 없었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를 뒤져 보기로 했다.

“플린시아! 어디 있어!”

그때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도야, 당장 이리 와 봐!”

“어디?”

“여기, 뒤쪽에 큰 나무들이 운집한 곳.”

“뭐냐? 왜 거기 갔어?”

잠시 후 슬렁슬렁 걷는데 그녀의 목소리가 더 급해졌다.

“빨리 와 봐!”

“아! 도대체 뭔데 그래?”

이어 그녀를 발견하고 곁으로 다가가니 바로 앞에 뭔가가 있었다.

“저건 뭐야?”

“직접 살펴봐.”

“음, 볼록 튀어나온 게 무슨 공 같은데.”

“공치고는 너무 크잖아. 게다가 머리, 팔, 다리도 달렸고…….”

“마물인가? 그럼 죽여야지.”

내가 검을 빼 들자 그녀가 말렸다.

“잠깐! 사악한 기류가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마물은 아닌 것 같아.”

“마물이 아니라면……?”

“글쎄…….”

그녀 역시 저게 뭔가,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결국 나는 그에게 다가가 볼록 튀어나온 배를 발로 톡톡 건드려 봤다.

“너 뭐니, 도대체?”

그때 상체를 일으키는 정체불명의 사람.

“아! 머리 아파. 아아! 머리가 깨질 것, 같아! 술을 너무 먹었나……. 아! 속도 매스껍고! 죽겠네.”

보아하니 그자 주변에 술 가죽 통으로 보이는 것들이 수십 개는 되어 보였다. 그때 그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랐다.

“헉! 다, 당신들 뭐야?”

나는 되물었다.

“그러는 당신은 뭐야?”

“나, 나는 그냥 학센…….”

“학센?”

그가 우리를 다시 살피더니만 물었다.

“인간 맞아요?”

“네, 우리 인간 맞아요.”

“나도 인간인데……. 거, 잘됐네. 같은 인간끼리 이런 데서 만나기도 힘든데 만났으니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볼록 튀어나온 배에 오리 궁둥이, 짧은 다리인지라 매우 힘겹게 보였다. 그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정신으로 인사합시다. 나는 학센이오. 어젯밤 과음해서 여기 들판에 그대로 잠이 들었나 본데……. 음… 그나저나 당신들, 유배자들이오? 하긴, 뭐 이곳 49차원의 인간 중에 유배자들 아닌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럼 어느 행성에서 추방당해 여기까지 오게 된 거요?”

“…….”

“대답이 없는 걸 보니 두 분도 사연이 꽤 기구한가 보죠. 후~ 그런데 어째 용케 아직도 살아남았소? 여기는 마물들이 득실득실하는 곳인데.”

나는 되물었다.

“그러는 당신은 어떻게 안전합니까?”

그러자 그는 갑자기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만 바위 뒤쪽에 가서 뭔가 큼지막한 것을 집어 들고 왔다.

“후후, 내게는 이런 믿음직한 무기가 있소.”

우리는 그것을 보고 다소 놀랐다. 거대한 도끼, 해머… 아니, 그 끝이 뭉툭한 것으로, 봐서 무기가 아니라 그냥 철근 막대기에 쇳덩이를 올려서 묶어 놓은 것 같았는데, 한눈에 봐도 매우 엉성해 보였다.

“설마 그걸로 마물들을 상대한 것은 아니겠죠?”

내 질문에 그는 오히려 내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이게 어때서요…….”

잠시 후.

모닥불이 지펴졌고, 그 위에 꼬치구이가 노릇노릇하게 익어 가고 있었다.

그 큰 덩치에 비해서 가벼운 손놀림, 고기를 불가에 익히는 솜씨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후후, 사람은 역시 먹기 위해 사는 거죠. 될 수 있으면 많이요.”

그는 이미 모닥불에 올려놓은 꼬치 숫자만 스무 개가 넘어 보이는데, 배낭에서 다시 한 움큼을 집어 들고 불가에 올렸다.

“그 많은 것을 누가 다 먹으려고…….”

내 말에 그는 당연하다는 듯.

“내가 먹지요. 이것도 좀 모자란 것 같은데…….”

그는 다시 배낭에서 열 개 정도 꺼냈다.

“이런 환경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이왕이면 배불리 먹고 죽으면 억울하지도 않지요.”

그때 플린시아가 물었다.

“어디서 왔어요?”

“토레타 행성입니다.”

“토레타?”

“흠, 벌써 고향이 그립군요. 내 아내와 자식들……. 에휴~ 그래도 천만다행이지. 가족은 무사하고 나만 끌려왔으니…….”

“어쩌다가 고향에서 추방되었는지 물어도 될까요?”

그러자 학센은 깊은 한숨을 내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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