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물론 상관은 없어. 어차피 내가 여기 시공 전사들을 다 몰살해도 은하 연합 산하 단체인 윤리 위원회에서 잘릴 테니까. 그래서 내가 이런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지. 이제 지름길이니까?”
“지름길이라니?”
“흠, 초시공 전사가 되려면 시공 전사의 임무가 150번 수행 완료가 되어야 하고, 두 번째는 은한 연합 의원들의 만장일치 추천을 받아야 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은하 연합의 모의 테스트에 합격해야만 비로소 초시공 전사 입단을 위한 그 특별한 장소로 갈 수 있는 허락이 떨어지거든.”
“…….”
“그런데 내가 원래 성격이 급해서 그런 절차가 귀찮더라고. 지금 내 전투 실력으로 보자면 은하 연합의 그런 거추장스러운 형식과 절차를 통하지 않고 초시공 입단을 위한 시험 장소로 곧바로 가는 게 훨씬 낫지.”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설령 그렇게 한다고 초시공의 그 특별한 시험 장소에 갈 수 있을까. 너는 동료 시공 전사들 죽인 살인자일 뿐인데.”
그러자 그녀는 갑자기 큰 소리로 웃었다.
“호호호, 초시공 전사의 그 특별한 시험 장소는 윤리 개념 따위는 보지 않지. 그냥 강한 자만이 들어가면 인정을 받는 곳이라고.”
“윤리 개념이 없다고?”
“그래, 그런 거 따지지 않아. 일전에 바로 초시공 전사로 등극한 ‘레이칼스’ 그자만 보더라도 살아생전에 얼마나 흉악하고 악행을 저질렀는지 몰라서 그래? 그저 윤리 따지는 놈들은 은하 연합 소속의 시공 아카데미 출신의 전사들뿐이지. 초시공 전사는 은하 연합 소속이 아닌 독자적인 단체라고. 그곳에서 내세우는 것이 일명 ‘강한 자만 살아남는다.’ 후후.”
처음 듣는 소리였다. 초시공 전사는 은하 연합의 소속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긴장감이 밀려왔다. 저렇게 자신만만해하는 아카시렌은 자신의 전투 능력에 얼마나 자신이 있으면 이렇게 많은 시공 전사들을 한꺼번에 몰살시키려고 검을 빼 들었던가. 그런 궁금증을 그녀가 지금 말하기 시작했다.
“후후, 너희들이 신주 모시듯 했던 마아탱의 전투력을 얘기해 줄까? 물론 강하긴 강해. 그건 인정하지. 하지만 딱 거기서 거기라는 사실. 뭐, 149번의 임무를 마치고 초시공 전사의 예비 후보감으로 나선다는데 그건 정말 창피한 일이야. 초시공 전사가 되는 게 무슨 어린애들 장난도 아니고 말이야. 후후, 어쨌든 나는 그런 시건방진 놈을 단 일 검에 죽여 버렸지. 그렇다면 지금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너희는 짐작도 가지 않을 거야.”
그때 나는 다른 시공 전사들을 뒤로 두고 혼자서 앞으로 나섰다.
“그럼 나는 어떨까? 과연 단 한 방으로 나를 보낼 수 있을까?”
이런 자신감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모르지만 왠지 그녀와 한번 승부를 보고 싶었다. 아니면 내게도 믿는 구석이 있었을까. 바로…….
은하검.
아직 임무를 수행하면서 이 검을 제대로 써 보지도 못했고, 그 진가도 몰랐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번 승부를 통해 이 은하검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은 욕망이 새록새록 돋았다. 그게 용기인지 객기인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동안 숱한 전투를 치르면서 얻어진 승부욕과 호전적 기질이 자연스럽게 배인 전사로서 거듭난 느낌이었다.
아카시렌은 내가 당당히 나서자 일단 나를 살펴보았다.
“흠, 공력을 숨기고 있군. 물론 그만큼 고수다 이건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이지.”
그 말이 맞았다. 그녀 역시 그 어떤 공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을 다스릴 정도라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대한 존재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이 승부는 뭔가 손에 땀을 쥐게 만들며 내 머릿속에 아드레날린을 마구 뿜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때 플린시아가 걱정스러운 듯 내게 말했다.
“형도야, 괜찮겠어?”
“괜찮지 않으면?”
“내가 대신 나설까?”
“아니.”
“그럼 함께 싸울까?”
“네가 의리가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으니까 이쯤에서 너는 빠져 있어.”
“꼭 말을 그렇게 꼬아서 얘기해야 직성이 풀리니?”
“아니, 나 정말 긴장하고 있거든. 오래간만에 강한 상대를 만난 것 같아.”
그때 아카시렌이 내게 말했다.
“어떤 식으로 대결을 할까?”
“어떤 식이라니?”
“우리 같은 고수들에게 있어서 싸움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지. 첫 번째는 공력의 대결이고, 두 번째는 순수한 검술. 그런데 솔직히 나는 공력 같은 거로 그저 겉만 화려한 싸움은 원치 않는데. 괜히 시끌벅적 요란만 떨고. 게다가 내 성격이 원래 그렇게 잘난 체하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생각해?”
“후후, 잘난 체는 지금까지 해 놓고 무슨 말이야. 아무튼 뭐, 후자로 하지. 순수 검술. 나도 시끄러운 것은 싫거든.”
내가 후자를 택한 것은 바로 은하검을 내게 물려준 무림인 목유성의 신검대법 때문이었다. 그는 무림에서 수십 년간 그 모든 절세 무공을 익힌 자였다. 물론 내게는 그 수백의 비급 검술이 각성되어 있는 터, 그래서 순수 검술만으로 승부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다시 말했다.
“시원해서 좋군. 그럼 시작할까.”
아카시렌은 검을 들어 내 앞으로 다가왔고, 나 역시 은하검을 꽉 쥐고 그녀에게 향했다.
그녀의 보폭의 움직임은 처음부터 심상치 않았다. 무공에서도 처음 발검을 하기 전에 취해야 할 보폭, 즉 보법에 그 기본이 매우 중요했다. 물론 나는 보법의 최고 절세 비급인 ‘태양자연체보법’을 펼치며 서서히 앞으로 다가갔다.
순간 그녀는 내 보폭을 보더니 다소 움찔했다.
“음, 검술을 조금 아는 놈이군……. 그렇다면.”
갑자기 그녀의 보폭에 변화가 생겼다. 조금 전보다 좁아진 보폭의 넓이, 그리고 잔걸음처럼 살금살금 전진해 왔다.
그건 어떤 의미일까, 라고 생각하는 그 즉시 그녀의 발걸음이 빨라지며 곧바로 검 끝이 내 정수리를 향해 내리쳐졌다.
“헛!”
나는 상체를 비틀어 가까스로 피했고, 그대로 역공을 펼쳤다.
원천기술역발검 제5장.
삭!
순간 그녀 역시 상체를 비틀어 피했고, 이내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고는 다소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음, 제법인데. 그 발검 기술.”
“고맙군. 칭찬해 줘서.”
“호호, 그게 칭찬으로 들렸나? 어차피 이번 단 한 번의 교합으로 나는 너를 다 파악한 거 같은데.”
“파악이라니? 나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아카시렌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검술의 흐름을 보면 그 완성도 보이지. 나는 그것을 알 수 있어.”
순간 나는 뜨끔했다. 정말 그녀가 파악했을 수도 있다고 말이다. 적어도 그녀는 마아탱을 단 한 방에 죽인, 어마어마한 전투 실력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젠장, 뭔가 말리는 느낌인데. 그런 다른 무공 비급을 써 보자.’
그때 그녀가 다시 공격해 들어오며 외쳤다.
“내 장담하지! 이 일 검으로 승부는 가려졌다는 것을.”
삭!
순간.
나는 방어가 아닌 검을 정면으로 찌르기 자세와 함께 외쳤다.
“화산검법 매화수 제9성!”
파팟!
“헛!”
공격하려다 오히려 내 절묘한 검법에 뒤로 물러나는 아카시렌.
“뭐, 뭐야! 그 검술은?”
“말해 줘도 모를걸. 나도 처음 시전하는 검법이라서.”
그녀는 이 상황이 말도 되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럴 수는 없어. 내 카르티아 검술을 맞받아치다니.”
“그냥 맞받아친 정도가 아닌 것 같은데. 네 앞 머리카락이 잘려 나갔으니까.”
그녀는 손으로 자기 앞머리를 만지더니만 경악했다.
“뭐, 뭐야! 어떻게 이런 일이!”
“나도 놀랐어. 설마 이게 먹힐 줄은.”
매화수 제9성이었다. 초식은 물론 중간 정도의 검법도 배제하고 무조건 최종 단계의 9성만을 사용하기로 했다.
어쨌든 왠지 자신감이 붙었다. 무공의 절묘하고 오묘함은 바로 이런 맛이라는 것을 나도 느꼈고, 그 쾌감을 더 즐기고 싶었기에.
“이번엔 내가 선제공격한다!”
파파파팟!
독고구검 제9장 천외비전검법.
“헛!”
그녀가 이번에도 내 검을 막지 못하고 그대로 뒤로 물러났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눈빛이 가늘게 떨렸다.
“아, 도대체 무슨 검술을 쓰는 거기에 매번 그 발검 형태가 달라지는 거지?”
“그거야 매번 다른 검법을 쓰니까. 아직 보여 줄 게 너무 많아서 뭐부터 꺼내야 할지 모르겠어.”
나는 이어 검을 들어 다시 공격했다.
“건곤대척 제9장 세혈지법술!”
파파파팟!
“아아! 악!”
내 검이 그녀의 팔을 베는 순간이었다.
팔뚝에서 피가 몽글몽글 흘렀고, 그녀는 연신 나를 귀신 바라보듯 혼비백산해 있는 모습이었다.
“인제 보니 잔기술에만 능통해 있군.”
“무슨 섭섭한 말씀. 세상에 무공의 절세 비급을 잔기술이라고 표현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을걸. 어쨌든 한 번 더 보여 줄까. 이번에 목을 겨냥할 텐데.”
그러자 그녀가 큰 소리로 외쳤다.
“잔기술 따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공력 대결을 하는 게 어때.”
“오호! 불리하니까 공력 대결이라고? 뭐, 그것도 좋다.”
그녀가 말하는 공력이란 무림에서의 내공에 해당한다. 그리고 나는 그 공력 대결에도 자신이 있었다. 왜냐하면 신검대법으로 인해 나는 그 갑자가 계산이 안 될 정도로 엄청난 내공 수위에 도달해 있기 때문이다.
그때 아카시렌은 공력을 뿜었는지 그 아름다운 금발이 고슴도치 털처럼 바짝 섰다.
웅~
순간 진동음이 일며 그녀가 딛고 서 있는 연병장 흙바닥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사방으로 쫙쫙 갈라졌다.
‘공력이 장난이 아니군. 젠장, 어차피 예상했던 일. 나도 내공을 끌어 올려야 하겠군.’
나는 심법 호흡으로 운기조식을 했고, 그 순간 내가 딛고 있는 땅도 틈을 보이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나도 이거 할 줄 안다, 후후.”
“인제 보니 보통 놈이 아니었군.”
“아니, 나는 원래 보통 놈 맞아. 네가 스스로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착각을 하는 거지.”
“뭐라고!”
그녀는 검을 들어 다시 공격해 들어왔다. 이번에는 순수 검술이 아닌 공력이 잔뜩 실린 검이었기에 활활 타오르는 용암 줄기가 나를 향해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다.
물론 이럴 때 사용하라고 딱 알맞은 무공이 생각이 났으니.
“빙결대법 제9장 냉한수라!”
슉!
내 은하검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푸른 냉기가 그녀의 화염 줄기가 맞부딪쳤다.
쾅!
폭음 소리와 함께 나와 그녀는 각자 뒤로 퉁겨 나갔다. 물론 화염 줄기는 빙결이 되어 있었고, 부상은 그녀가 더 큰 것 같았다.
“컥! 컥!”
입가에 선혈을 흘리는 것을 보니 말이다.
“내상을 입었군.”
“컥! 컥! 도대체 무슨 검법이기에?”
“이거 말이야? 흠, 무공 언어로는 뭐라고 해석이 안 되니 그냥 얼음 검술이라고 말해 줄 수밖에 없네.”
그녀는 이제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두려움마저 이는 반응을 보였다.
“너무 자신만만해하지 마! 내게는 필살기가 남아 있으니까!”
“필살기? 그거 개나 소나 다 있는 거 아닌가? 불리할 때 최후의 한 방을 준비하는 것은 대가리가 있다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 뭘 그리 대단한 것처럼 소리치는 거지. 그리고 뭐, 나는 필살기가 없겠냐?”
그런데 막상 생각해 보니 내가 준비한 필살기는 없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이것저것 막 섞어서 사용한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