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
“사실 이 조홀 은하계에 시공 아카데미 기관만 수천 개가 넘지. 하지만 초시공 전사 출신이 있는 아카데미는 불과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라고. 그러니 카이 님에 대해서 뭐라도 까고 싶으면 하지 마. 우린 그럴 만한 자격도 없고, 오로지 그분이 한때 지냈던 여기 시공 아카데미에 있는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알아야지.”
“너야말로 그만해라. 듣기 싫으니까.”
“치, 괜히 열 내지 말고 그냥 저 앞의 풍경이나 감상하자. 아마 카이 님도 여기에 올라와서 저 광경을 보셨을 거로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두근해.”
나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그녀에게 말문을 열었다.
“초시공이라는 게 뭔지 너는 알지. 지난번 보니 그곳에 대해서 좀 아는 것 같은데.”
그러자 플린시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나도 잘 몰라. 단지 카이 님이 대충 말해 줘서 조금 아는 정도지.”
“그곳은 어떤 곳이래?”
“글쎄다. 분명 우리가 사는 이런 세계와는 다르다고 했어.”
“뭐가 다르다는 거여. 여기가 어때서.”
“흠, 그렇게 궁금하면 너도 초시공 전사가 되어 봐. 그리고 나한테 자세히 알려 줄래.”
나는 자리에서 확 일어나 버렸다.
“빌어먹을. 갑자기 배가 고프네! 그러고 보니 점심때가 된 것 같은데.”
내가 식당으로 향하자 그녀도 뒤따라왔다.
“같이 가. 나도 허기가 져.”
* * *
그로부터 며칠 후.
드디어 새로운 임무가 떨어졌다. 나와 플린시아는 학장실에서 그 임무에 관한 사전 정보를 듣는 중이었다. 학장은 다소 흥분 어린 목소리로 계속 떠드는데, 마치 이번 임무는 매우 중요하니 반드시 성공하라는 재촉처럼 들렸다.
“에고, 뭐냐? 내가 어디까지 말했더라?”
학장은 너무 나이를 먹었던가? 아니면 치매에 걸렸던가. 계속해서 말을 더듬거리거나 자신이 한 말을 까먹었다. 하기야 학장의 나이가 324살이나 되었다. 물론 지구의 나이 기준으로 볼 때 벌써 죽어도 한참 죽어야 할 나이인 고조할아버지뻘이지만 여기서는 보통 250에 300살을 노인네로 취급한다.
아무튼 학장의 말발로는 다소 힘겨웠던가. 결국 홀로그램 장치로 부연 설명을 허공에 뜨게 한 뒤 다시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번 임무는 우리 조홀 시공 아카데미의 이름을 저 수많은 다른 아카데미들에 알릴 기회이네. 그러니 반드시 자네들이 성공해서 우리 학교를 빛나게 해 주게나.”
나는 답답했다.
‘그건 이미 백 번 넘게 들었으니 제발 임무 내용에 대해서나 말 좀 하쇼!’
학장은 내 마음을 알았던가.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임무 내용을 말하기 시작했다.
“잘 듣게나. 이번 임무는 플레이아데스 성운에 관한 것이네. 그곳은 은하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을 간직한 별자리이자 고도의 영성들이 사는, 아주 축복받은 행성들이 모여 있는 곳. 그중에서도 가장 크고 핵심의 별인 베가 행성이 있다네. 바로 이번 임무는 그 베가 행성에서 발생한 초자연 현상을 조사하는 것일세.”
“초자연 현상이라니요?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일단 그 전에 베가 행성에서 과학자들이 비밀리에 뭔가를 연구했던 일에 관해 그 행성의 기자가 쓴 칼럼을 먼저 읽어 보게나.”
순간 홀로그램의 그 기사 내용이 떠오르기 시작했고, 나와 플린시아는 자세히 읽기 시작했다.
[우주 최대 입자 가속기가 “세상의 멸망을 초래할 수도 있다.”며 과학자들이 가동 중지를 촉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고 베가 행성 일간 타이르켄 전자 메일이 1일 보도했다.
과학자들은 이 실험이 은하 인권 협약에서 규정한 생명에 대한 권리를 위반한다며 베가 행성을 포함해 이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스무 개 행성들을 상대로 은하 인권재판소에 제소했다.
베가 행성 산하 가속기 연구소(CERN)의 거대 강입자 가속기(LHC)는 우주 탄생의 순간인 빅뱅의 신비를 풀기 위해 44조 바이트를 들여 베가 행성 수도 클모트 근처 지하에 건설한 은하 최대 과학 실험 장치이다. 둘레가 307킬로나 되는 이 입자 가속기는 두 개의 입자 빔을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충돌시켜 우주 탄생의 이론적 기원인 빅뱅 직후의 상황을 재현하는 실험을 진행한다.
그러나 소송을 제기한 과학자들은 이 거대 강입자 가속기가 입자 파편들을 초고속으로 충돌시키고, 섭씨 1조 도가 넘는 온도를 조성함으로써 베가 행성을 파괴할 수 있는 미니 블랙홀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거대 강입자 가속기가 미니 블랙홀을 만들어 내고, 이 블랙홀이 4년 안에 베가 행성을 완전히 삼킬 만한 크기로 팽창할 수 있다고 과학자들은 우려하고 있다.
소송을 제기한 과학자 중 한 명인 하르트 칼스 은하 연구소의 화학자 파가로니는 “CERN도 입자가 충돌할 때 미니 블랙홀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인정했으나 그들은 이게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내 계산으로는 미니 블랙홀들이 살아남아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팽창하면서 베가 행성을 내부로부터 삼켜 버릴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자신의 계산이 오류라는 것을 입증할 안전성 회의를 열어야 한다고 CERN에 촉구했다.
그러나 은하 인권 재판소는 가동 중지령에 대한 요청을 일단 기각했으나 앞으로 개최될 행성 스무 개국 정상 회담에서 논의될 세계 안전을 위한 미래 보고서 회의에서 가속기 사용 금지 법안의 통과에 더욱 힘이 실릴 모양이다.]
[은하 산하 베가 행성 뉴스 보도 내용 발췌]
나와 플린시아는 그 내용을 읽고 직감한 듯 동시에 말했다.
“결국 블랙홀이 베가 행성을 삼켰군요.”
이에 학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맞네.”
“그래서 어떻게 되었죠?”
“자네들 생각이라면 물론 블랙홀에 삼켜졌기에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갔겠지, 하겠지만 그 결과는 전혀 의외였네.”
“의외라니요?”
“하기야 은하 어떤 행성도 실제로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서 살아 나온 자가 없어 그 경험을 듣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이건 다르네. 바로 베가 행성 과학자들이 만들어 낸 자체적 소형 블랙홀이었기 때문이지.”
“…….”
“어쨌든 베가 행성은 놀랍게도 현재까지 건재하다네. 예전처럼 그들은 보통의 일상에 하던 일에 열중하며 살지. 다만… 수년 전부터 이상한 일들이 생기면서 지금은 큰 혼란에 빠져 있다네. 바로 자네들이 집중해서 들어야 할 부분을 지금부터 말해 주겠네.”
나와 플린시아는 눈빛을 반짝이며 학장의 말에 경청했다. 학장은 말하기 전에 다소 긴장을 했는지 물 한 잔을 들이켜고는 다시 천천히 말문을 이어 갔다.
“모든 행성이 그렇듯이 베가 행성에는 행성 전사를 배출하는 거대한 기관이 있다네. 행성 전사들의 역할은 각 행성 간의 전쟁이나 더 나아가 은하 대전쟁에서 특수 임무를 부여받고 활동하는 최정예 병사들이지. 그런 특수전사들을 키워 내기 위한 기관은 흡사 우리 시공 아카데미와도 비슷한데, 그들의 규모가 훨씬 크다네.”
“…….”
“보통 한 행성 기관에 예비 행성 전사들만 무려 7,000명이 이르며 베가 행성 같은 경우는 무려 12,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과 전투 교육 체계가 이루어진 곳이지. 물론 베가 행성의 수백만 군인들의 꿈이 바로 행성 전사 기관에 들어가는 것이기에 그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하네. 그런데 바로 그곳에서 아주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데, 바로 교육생들의 의문의 죽음이 시작되었다는 것일세.”
“의문의 죽음이라니요?”
“처음에는 그저 사고인 줄 알았지만 점차 그 희생자 숫자가 늘어나면서 베가 행성 당국에서 조사 위원회를 구성하고 본격적으로 수사를 시작했네. 그리고 맨 첫 번째로 알아낸 것은, 그 죽음이 바로 소형 블랙홀이 베가 행성을 덮쳤을 때의 그 날짜와 정확히 일치된다는 거였어.”
“날짜가요?”
“그래서 블랙홀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계속해서 수사는 진행되었지만 희생자들은 점점 늘어날 뿐이었지. 하지만 그 원인을 밝혀낼 수가 없었지. 다만 그 어떤 강력한 존재에 의해 살해당했을 거라는 사실 외에는.”
“희생자들은 어떻게 죽었나요?”
“그들은 하나같이 뭔가 날카로운 무기에 베이거나 난도질당한 채 끔찍한 죽음을 맞이했지.”
“날카로운 무기요?”
“일종의 검이나 그런 계통의 원시적인 무기일세. 참 희한한 일일세. 베가 행성의 고도로 발전한 과학 문명으로 볼 때 레이저 건이나 다른 첨단 무기를 사용하는데, 그 하찮은 검에 당하다니 말일세.”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있습니까?”
“흠, 어제 날짜로 보고가 들어 바에 의하면 정확히 3,568명이라네. 행성 기관의 교육생이 12,000명인데 거의 3분의 1 수준에 달하는 자들이 죽었으니 베가 행성으로서는 그것만큼 중대한 일이 없었지.”
“대체 누가 그들을 죽인 거죠?”
“그것을 알고자 자네들 같은 시공 전사를 파견하는 게 아닌가. 베가 행성 정부는 은하의 모든 시공 아카데미에 전문을 보냈다네. 하루 빨라 시공 전사를 파견해서 이 진상을 규명해 달라고. 물론 우리 아카데미도 그걸 통보받았고, 대표 격으로 자네들을 보내는 것일세.”
나는 호기심이 일었다. 대체 누가 그 많은 자를 희생시켰는지 말이다. 그것도 검과 같은 날카로운 무기로 말이다. 학장이 다시 말문을 이어 갔다.
“명심하게나. 현재 베가 행성에는 그야말로 이름 있는, 각 시공 아카데미에서 최고의 전사들을 파견하여 지금 그 진상을 규명하고 있다네.”
“대략 얼마나 되죠?”
“숫자를 말하는 건가?”
“네.”
“현재 총 177명의 시공 전사들이 그곳 베가 행성에 있네. 어쨌든 이번 임무는 물론 그 희생자들을 살해한 범인을 색출해 내는 것도 있지만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건 각 시공 아카데미들 간의 자존심 싸움이지. 만일 자네들이 임무에 성공하면 그야말로 우리 조홀 시공 아카데미뿐만 아니라 자네들의 명성도 전 은하에 알려질 아주 절호의 기회일세. 그러니 이번 임무에 최선을 다하도록 하게나.”
나와 플린시아는 동시에 대답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말로만 하지 말고. 아무튼 당장 그곳으로 파견 나가게나. 다른 시공 전사들에게 그 공이 돌아갈 수도 있으니 당장!”
우리는 곧바로 학장실을 나왔고, 숙소에서 대충 짐을 싸고 전함에 몸을 실었다.
* * *
그로부터 한 달 후.
나는 이곳 베가 행성에 와서야만 내가 졸업한 조홀 시공 아카데미의 그 위치를 알게 되었다. 얼마나 초라한지…….
일단 베가 행성 관계자들이 우리에게 하는 그 행동부터가 달랐다. 가장 하급의 여관 숙소, 그리고 그저 왔냐, 하는 정도의 미미한 인사치레, 그 이후로는 우리가 무엇을 하든 관심도 없었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다만 사건이 일어난 행성 전사 교육 기관을 들락날락할 수 있는 통행증 정도만 배급받았을 뿐, 이곳에서 당연히 우리에게 해야 할 사건 브리핑은 전혀 받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내가 더 기분 나쁜 것은 우리 말고 다른 시공 아카데미 출신의 시공 전사들은 과분할 정도로 대접받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러한 차별에 무척이나 화가 났는데, 플린시아로부터 그 전모를 듣고 나서야 조금은 성질이 누그러질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