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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얻은 레어템, 현실에는 역대급-70화 (70/143)

70화

그리고 대략 1분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아, 아…….”

이윽고 갑자기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바로 앞의 그 누군가에게 기도하는 것이 아닌가.

“아! 절대자여!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주는 거죠? 아아.”

나는 플린시아에게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다가가려고 했다. 그러자 나를 말리는 사람이 있었다.

“네가 나가면 그녀는 죽어. 그러니 쓸데없는 짓 하지 마.”

나를 만류한 사람은 리베카였다.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만 다시 말문을 이어 갔다.

“아까 나한테 자기는 사념 따위에 넘어가지 않는다며 큰소리를 친 이유가 있군. 생각보다 저렇게 강할 수가……. 하지만 사념의 힘은 그보다 훨씬 강하지. 그건 인간 자신이 만들어 낸 자기만의 관념이니, 그게 사념으로 변하는 순간 그 안으로부터 절대 헤어 나올 수가 없어. 뭐, 세상에는 절망, 좌절, 고통, 두려움 그런 것만 있는 줄 알면 오산이지.”

“…….”

“물론 그녀가 그런 것 따위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 저런 인간은 나도 처음 보니까. 하지만 정녕 인간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감정이 뭔 줄 알아? 그건 절망이 아니라 질투지. 특히 저 여자처럼 강인한 정신력이 있다면 더욱 큰 문제이지.”

“…….”

“항상 자신이 절대자라고 자만하며 살아왔는데 자기보다 상상조차 못할 만큼 강대한 존재를 만났다면 저런 현상이 일어나지. 처음에는 부러움, 그다음에는 추앙, 그리고 그 절대자를 닮고 싶은 마음에 온갖 노력은 해 보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때 그제야 질투라는, 아주 무시무시한 놈이 자신을 공격하지.”

나는 그 말에 의아했다. 플린시아는 자기 차원에서 그야말로 마법사가 이룰 수 있는 궁극의 경지인 회색 마법사의 위치에 있었다. 그리고 정말로 그녀는 자신이 가장 강대하고 저 높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내게 농담으로 자신은 신적인 존재였다고 말하곤 했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그 누구에게 저렇듯 경외를 드리고 질투를 느낀다면……? 그때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으니.

‘설마……?’

그때 플린시아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카이 님, 제가 과연 카이 님의 발끝이라도 따라갈 수가 있습니까? 제발 대답 좀 해 주세요. 그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저는 앞으로 살아가는 데 일말의 희망이라 있을 테니까요.”

빌어먹을! 역시나 그 녀석이었다. 초시공 전사 카이…….

플린시아는 계속 허공에다 말문을 이어 갔다.

“카이 님께서는 제게 늘 이렇게 말씀해 주셨지요. 그곳에 가면 제가 감히 상상조차 못할 세상이 있다고요. 그리고 저는 물었죠. 그곳이 어디냐고? 그럴 때마다 답해 주곤 했죠. 그곳은 초시공이라고. 그리고 제게 설명하였지만 저는 언제나처럼 그 내용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않았지요. 어떻게 그런 세상이 존재할 수 있냐고요.”

“…….”

“지금도 저는 크나큰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초시공이 정녕 그런 곳이라면 왜 카이 님은 그곳에 머물지 이곳 지상에 강림하여 저희와 어울렸는지 말이죠. 아! 그래도, 저는 믿습니다. 바로 제가 현재 시공 전사의 임무를 수행하는 이유도 언제가 그곳, 초시공의 세계에 가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카이 님에게 인도받기 위해서. 아아, 그립습니다. 아아.”

그녀는 뭔가에 도취가 된 듯 황홀경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녀가 말한 내용 중 초시공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카이가 그녀에게 초시공에 관한 그 무엇을 이야기해 주었기에 플린시아 저토록 갈망을 넘어 염원하는 것인지 말이다.

그때 카엘이 외쳤다.

“후후, 서론이 길군. 이제 폭풍 마나의 수치를 높여 아주 소멸을 시켜 버리겠다.”

순간 그의 기기로부터 섬광이 일어났다. 나는 그 즉시 플린시아에게 다가가 그녀를 피신시켰고, 대신 그 빛에 내가 휩싸이게 되었다.

파팟!

“아!”

눈이 너무 부셨고, 나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내게 이상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으니. 나 역시 앞서 그 빛에 쏘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잠시 몽롱한 기분이 들었다.

그 순간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 그건 놀랍게도 지구를 침략한 크리처들이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마구 해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젊은 사내가 검을 들어 홀로 그들을 막고 있었는데, 그 뒤에는 엄마와 내가 있었다.

‘아. 아, 아버지!’

당시 나는 고작해야 여섯 살 정도. 엄마는 나를 안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는데, 그 앞에 아버지가 우리를 보하려고 피를 흘리며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크리처들에게 둘러싸인 채 공격을 받았고, 엄마는 울부짖었다.

“여보! 여보!”

아버지는 그런 엄마에게 외쳤다.

“당장 형도를 데리고 도망쳐! 당장!”

엄마는 나를 안고 그 자리를 뜨면서 계속 울었다.

“우리만 갈 수 없어요! 여보! 제발.”

“지체하지 말고 당장 도망가! 그렇지 않으면 당신과 형도가 죽어! 여기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제발 도망쳐!”

엄마는 마지못해 나를 안고 건물 모퉁이를 돌아섰다. 그때 들리는 비명.

“악!”

어린 나이에도 나는 그게 아버지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일시적인 기억 상실에 걸렸다. 그 당시의 충격이 너무 컸던가. 그렇게 새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바로 이 순간, 폭풍 마나에 휩싸인 내게 그런 기억이 떠오르게 된 것이다.

“아, 아버지. 흑.”

눈물이 주룩 흘렀다.

“아버지.”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성.

카엘은 웃기 시작했다.

“하하, 옛날 회상을 하는 모양인데 이걸 어쩌나. 이쯤에서 죽어 줘야 하는데.”

그리고 그는 폭풍 마나 수치를 더 올려 날 아예 소멸시키려고 했다.

“그럼 잘 가게나! 후후.”

폭풍 마나의 섬광이 다시 터졌다.

파파파팟!

그 순간.

띠링!

[카르마타파의 도움을 받겠습니까?]

NPC 음성이었다. 나는 이 위기의 순간에 있어서 당장 대답했다.

“도움을 받겠다!”

그러자 예전과 마찬가지로 주변 모든 사물이, 시간이 정지가 된 것처럼 일시에 멈추어 버렸다.

“…….”

이어 눈앞에 스르르 나타나는 형상.

“이번에 두 번째 도움을 요청했군.”

그는 황제였다.

“다, 당신은……?”

“나일세. 너의 과거의 모습. 그래, 나의 미래의 모습인 네가 곤경에 처했으니 당연히 나는 게임의 법칙대로 카르마타파의 힘을 줘야 하겠지. 그나저나 이번 네 상대는 조금은 곤란한 놈이군. 뭐, 힘이 아닌 정신을 지배함으로써 그 승부를 가른다. 후후, 비열한 놈. 인간의 가장 나약한 내면의 감정과 기억을 떠올리게 하여 스스로 파멸시킨다고. 쯧쯧, 하여간 인간들이 이래서 나약하다는 소리를 듣는 거라고. 특히 미래의 내 모습인 너 말이야. 그렇게 순해 빠져서 무슨 게임을 한다고.”

나는 그에게 말했다.

“황제여, 어떤 방법으로 나를 도우려고 하는 거죠?”

“물론 지난번처럼 시간 지체 현상을 일으켜 네가 먼저 선수를 칠 기회를 줄 수도 있지만 뭐, 굳이 그럴 것까지는 없어 보이는데.”

“그럼 어떻게……?”

황제는 입가에 묘한 미소를 흘리더니 말했다.

“후후, 그냥 네가 과거의 나로 잠깐 빙의가 되면 돼.”

“빙의라니요?”

“어떻게 보면 빙의라는 말은 올바른 표현이 아니군. 사실 너는 네 과거의 모습인 나로 잠깐 돌아오는 것이지. 바로 자기 자신에게로. 다시 말해 아직도 믿지 않는 모양인데, 지금 너처럼 순한 녀석도 과거 전생에는 악마였던 적이 있다는 사실. 어쨌든 뭐, 이건 내 도움을 받는다기보다는 원래, 한때 네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에 의미가 있지. 그럼 건투를 비네.”

파팟!

황제의 모습이 사라지자마자 시긴 지체 현상도 풀렸다. 그리고 나는 이상한 감정이 느꼈다.

뭐랄까…….

아무런 감정이나 느낌 같은 게 없었다. 이를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지만 현재 이형도의 그런 성격과는 거리가 먼, 무척 태연하고 여유로운 기분이랄까.

폭풍 마나의 빛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멀쩡하여 보이자 카엘은 당황했다.

“뭐, 뭐야! 아무렇지도 않잖아!”

그는 폭풍 마나 기기의 빛 수치를 최대로 증폭시켰다.

“하하, 아마 이 정도 수치면 미쳐 죽을 것이다. 악마가 아닌 이상에야!”

“…….”

하지만 아무 이상도 없었다, 그리고 생각이 드는 것은…….

‘악마가 분명하나 보네.’

바로 황제 말이다. 얼마나 악행을 저질러 왔으면 정말이지 그한테 빙의가 되고 나서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단 말인가.

정녕 지금 이게 내 전생의 모습이란 말인지. 정말이지 내가 절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황제의 이런 냉철한 마음에는 분명 그 어떤 두려움이나 절망 같은 게 있을 법한데, 이토록 완벽하게 자신의 감정을 조율할 수 있단 말인지. 다시 말하지만 황제는 악마가 틀림없다.

물론 그 덕분에 나는 폭풍 마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으며 더 이상 시간을 끌 이유가 없었고, 그대로 카엘에게 다가가 그가 손에 쥐고 있는 폭풍 마나 기기를 은하검으로 부숴 버렸다.

삭!

“아! 내 폭풍 마나 기기!”

하지만 나는 그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아까 그의 아내 리베카와 나눈 대화를 들어 보니 이자 역시 아들이 죄없이 희생당한 그 분노에 사로잡혔을 뿐, 그렇게 나쁜 자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리베카가 그에게 달려 울부짖는다.

“여보! 흑.”

카엘 역시 이제야 정신을 차린 듯 그녀를 꼭 안아 주며 오열을 했다.

“흑, 여보! 미안해.”

사령관 타키타카는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당장 카엘을 체포하도록!”

【 미니 블랙홀 】

한 줄기 바람이 내 코끝을 스쳐 지나갔다.

“상큼하군. 아주 좋아.”

그런 내 말에 플린시아 역시 환한 미소를 짓는다.

“후후, 시공 아카데미에도 이런 전망대가 있는 줄은 나도 처음 알았어.”

“그동안 우리가 숙소에 처박혀 지내기만 했었으니. 뭐, 이제는 여기가 제2의 고향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친숙해졌다니까.”

“맞아, 아마도 우리가 시공 전사의 임무를 두 번이나 성공했기에 그만큼 여유가 생긴 것일까?”

나는 빙그레 웃었다.

“인간이란 적응의 동물이라 누가 그랬던가. 아무튼 휴식이란 게 좋긴 좋군. 그나저나 다음 임무가 벌써부터 기다려지는데.”

플린시아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뭘 그리 급해. 우리 조금 더 푹 쉬자. 에휴, 지난번 그 임무는 조금 힘들었어. 폭풍 마나에 생각을 지배당한다는 것이 그렇게 괴로워질 줄 몰랐거든.”

“너는 별로 괴로워 보이지 않았는데.”

“그게 무슨 말이야?”

“오히려 황홀경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를 못하더군.”

그녀는 안색이 굳어졌다.

“너 또 카이 님 얘기하려는 거지? 정말 왜 그분에 대해서 그렇게 못마땅하게 여기는 거지.”

“내가 언제? 그냥 그렇다는 거지.”

“괜히 시샘하지 마. 카이 님은 초시공 전사로서 우리가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분이시니까.”

결국 나는 화를 내고 말았다.

“어차피 같은 인간! 우리보다 조금 실력이 나을 뿐이지! 젠장!”

“조금 실력이 나을 뿐이라고? 그거 웃겼다. 후후.”

“뭐가 웃겨!”

“초시공 전사가 얼마나 위대한지 몰라서 그래? 그 경쟁률만 하더라도 우리 같은 시공 전사들 사이에서 수십만 분의 1이라고. 하물며 여기 시공 아카데미에서 유일하게 배출된 최초의 초시공 전사가 카이 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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