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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얻은 레어템, 현실에는 역대급-68화 (68/143)

68화

그런데 지금, 이 순간……. 그런 어머니에게서 받은 감정이 느껴지다니…….

“아!”

원래의 이 게임이 리베카가 발사한 빛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인데, 놀랍게도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때 옆에 있던 플린시아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아버지… 흑……. 아버지…….”

나는 그녀의 어깨를 톡 쳤다.

“플린시아, 왜 그래?”

“갑자기 아버지와 함께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나서.”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녀 역시 나와 같은 그 어떤 추억에 감동하는 것인가.

그녀는 다시 흐느꼈다.

“흑, 아버지는 어린 내 품에 안겨 돌아가셨어. 흑, 나는 평생 아버지가 폭설 한가운데서 힘없이 눈을 감는 장면을 단 한시도 잊어버린 적이 없었어. 흑.”

그때였다.

우리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잡았다.”

그녀는 리베카였다.

“호호, 시공 전사도 별수 없군. 내가 발사한 전자 마나 빗속에 들어가면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지.”

그 말에 나와 플린시아는 그저 멍하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때 리베카는 전자 마나 기기를 품 안에 집어넣고는 우리에게 말했다.

“그래도 제 부모들을 생각하니 아주 개차반들은 아니네. 제법 인성이 있어. 흠, 원래 내가 만나 본 시공 전사들은 싸가지가 꽤 없던데, 흠……. 이것들은 그래도 좀 다르네. 그나저나 어떻게 할까?”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뭔가 결심을 굳힌 듯 말했다.

“따라와!”

내가 물었다.

“따라오라니요?”

“내 남편에 대해 얘기를 듣고 싶다며!”

* * *

넓은 정원이었다. 이런 지하 기지에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만큼, 정원에서 자라는 그 모든 식물은 정말 아름다워 보였다.

마치 전문 정원사 여러 명이 수많은 시간을 공들여 가꾸어 놓은 듯 정원의 꽃들과 나무는 그야말로 어느 황궁의 정원보다도 훨씬 정교하고 예뻤다. 그 가운데 돌 탁자에 나와 플린시아는 맞은편에 앉아서 차를 따르는 리베카의 표정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녀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너희 둘! 사람 얼굴 처음 봐!”

“아, 아닙니다.”

“그럼 내가 타 준 이 차나 먹어.”

그녀는 찻잔 두 개를 우리 앞으로 내밀었다. 그때 확 풍겨 오는 이상한 냄새. 나는 나도 모르게 코를 막았고, 플린시아도 인상을 찡그렸다. 그런 우리에게 리베카는 화를 냈다.

“이것들 봐라! 이게 얼마나 귀한 차인데! 꼴값들을 떨고 그래! 이건 냄새만 고약하지 맛은 타이탄 행성에서 최고로 비싸고 끝내준다고. 그러니 당장 처먹어.”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래도 그녀의 성의를 봐서라도 일부러 찻잔을 들고 한 모금 마셔 봤다.

순간.

그 액체가 혀끝에 닿자마자 입안에서 확 퍼지는 향기. 약간 박하 향 같은데, 그보다는 훨씬 약하고 은은한 향미랄까.

플린시아 역시 내가 먹자 자기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예상대로 그녀의 눈빛도 확 빛이 났다.

“아. 세상에!”

리베카는 그런 우리 모습에 입술을 실룩거리며 말했다.

“하여간 의심 많은 것들은 진짜 경험해 봐야 그제야 믿는다니까. 그나저나 내가 알기로 여기에 시공 전사들 총 세 명이 온 것 같은데, 다른 한 놈은 왜 보이지 않는 거지?”

나는 그 질문에 즉각 답했다.

“아, 아테온은 사령관 타키타카와 둘이서 긴밀한 상담을 하느라.”

“쳇, 무슨 얼어 죽을 상담은! 하여간 너희 둘은 오늘 날 만난 것을 아주 행운으로 여겨. 그것도 인생에 있어서 오늘 아주 중요한 말을 듣게 될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내가 공손히 대답하자 그녀가 다시 나를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며 말했다.

“너를 보면 볼수록…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이야. 음… 뭐랄까. 좋은 놈과 나쁜 놈을 절묘하게 결합한, 아주 묘한 인상……. 어찌 보면 착한 것 같은데, 어찌 보면 악마보다 더 악할 것 같은데, 또 가만히 들여다보면 천사의 눈빛을 지니고 있고……. 그런데 보면 흉악함이 깃들어 있는 아주 복잡한 놈.”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내심 웃음이 나왔다.

‘정확하군……. 마치 용한 점쟁이를 만난 것 같은데.’

하기야 틀린 말은 아니다. 나도 내 속을 모르는데. 현재까지 나는 아직도 내가 형도인지, 황제인지 헷갈릴 만큼 혼란을 겪는 중이다.

물론 나는 이형도이기에 내가 황제를 누르고, 스스로의 윤리와 이성을 지니고 그 모든 일을 판단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그게 함정인 것 같았다. 바로 나는 선한 사람이라는 것에 만족하는 그 자체가 말이다.

사실 내가 지구로부터 이 모험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포식의 권능으로 아이템을 먹고 강해지면서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나인 이형도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황제의 그 성질과 강단, 그리고 때로는 악마 같은 성질이 내 안에 잠재되어 있기에 나는 매 순간 중요한 일을 경험하거나 결정할 때 엄청난 도움이 되곤 했다.

지난번 내게 나타난 황제, 그가 한 말이 생각이 난다.

그는 나더러 너의 과거이자 악이고, 너는 내 미래이자 선이라고 했다. 우리는 바로 그 선과 악을 결합해 가는 과정이고, 그런 도박을 그 어떤 절대자와의 게임 중에 있다는 말.

요즘도 과연 그게 무슨 뜻인지 생각에 생각을 많이 한다.

선과 악의 결합이라……? 그래야만 진정한 균형의 질서가 내 안에서 잡혀간다는 말, 아직도 그게 개소리로 들리는 걸 보면 나는 이 지긋지긋한 게임의 여정이 많이 남아 있을 거라는 회의가 든다.

그리고 지금처럼 나를 어느 정도 파악하는 그 주인공도 만날 수 있고……. 그래서 나는 지금 리베카가 하는 이야기에 온갖 집중을 해서 귀를 활짝 열어 놓는 중이다.

“하지만 그게 네 매력일 수도 있겠군. 호호,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 같지만 역설적으로 본다면 확실히 이것에도 속하고, 저것에도 속하는, 나름의 주관이 있는 녀석. 그러나 과연 너의 그 주관을 이끄는 존재가 선인지, 악인지는 정말 모르겠어. 적어도 지금 내 앞에서 그런 은근한 미소를 짓고 내 말에 진심으로 경청을 하는 것을 보니 일단 착한 놈으로 받아들이는 게 낫겠지.”

바로 내가 원했던 대답이었다. 바로 지금의 내 모습을 바라보는 그녀의 관점. 왜냐하면 나 역시 아직은 황제가 아니라 이형도인 나로서 그 존재를 확인받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호호, 이거 서론이 너무 길었나. 자, 본론으로 들어가서, 나는 너희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고 싶군. 당장 돌아가! 쓸데없는 시간 낭비하지 말고.”

나는 그 말에 당황했다.

“돌아가라니요? 무슨 말인지?”

“내 남편은 너희가 상대하기에는 너무도 교활한 족속이거든. 물론 강하기도 하고. 그러니 그냥 돌아가라고. 물론 시공 전사로서 임무를 띠고 타이탄 행성에 왔겠지만 그따위 자존심을 집어치우고 괜히 사념에 빠지기 싫으면 돌아가라고.”

“사념이라니요? 그건 무슨 의미인지.”

리베카는 잠시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만 혀를 끌끌 찼다.

“쯧쯧, 아까 내가 쏜 전자 마나의 빛을 경험하고도 그런 말이 나와? 그래! 이왕 말 나온 김에 해 주지. 전자 마나에 의해 너희는 그 빛 속에서 도망가기는커녕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했어. 왜인 줄 알아? 바로 관념이 흐트러졌고, 이내 사념이 머릿속을 침투했기 때문이야.”

“…….”

“아마 너희 둘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애틋한 순간들이 떠올랐겠지. 이를테면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했던 추억, 그리고 아픈 기억들 등등. 그건 내가 발사한 전자 마나의 성질이 행복을 불러일으키는 에너지이기 때문이지.”

“행복을 불러온다고요?”

“그래. 행복, 사랑, 뭐 더 예를 들자면 따뜻한 감정들, 애틋하고도 아련한 기억들.”

그건 맞는 말 같았다. 나는 엄마의 품에서 너무도 행복한 지난 순간들을 느꼈고, 플린시아 역시 아버지와의 애틋한 이별을 느꼈으니 말이다. 그게 그녀가 발사한 전자 마나 덕분이던가.

그때 리베카는 다시 말했다.

“그런 감정에 쉽게 휘둘린다면 내 남편을 절대 이길 수가 없어. 왜냐하면 남편은 내가 지닌 전자 마나 기기보다 훨씬 강력한 무기를 발명했거든.”

“강력한 무기요?”

“그건 폭풍 마나 기기라는 것인데, 바로 내 전자 마나와는 아주 반대되는 성질의 빛을 발사하지.”

“반대의 성질이라면?”

“뭐, 이제는 알겠지. 행복과 반대되는 성질은 절망, 좌절, 고통, 두려움 등등이 있는데 과연 너희들이 그런 사념의 에너지 빛에 휩싸인다면 과연 도망치거나 저항할 수 있을까? 너희들이 이 질문에 어디 한번 대답해 봐.”

그녀의 질문에 나와 플린시아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한마디도 대답하지 못했다.

“…….”

“…….”

“거봐, 자신 없잖아. 그러니 가 보라는 거야. 내 남편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그런 인간의 사념을 극대화하는 신물질이고, 그것으로 이 타이탄 행성을 거의 점령했어. 그리고 남은 것은 바로 이 지하 기지 한 곳이지.”

“…….”

“그나마 여기 사람들이 왜 행복해 보이는지 알아? 그건 바로 내 전자 마나 기기 덕분이야. 내가 매일 광장에 군중들을 모아 놓고 전자 마나 기기를 발사하는 이유를 알겠지. 그게 바로 남편의 절망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행복의 에너지를 주고자 일종의 게임, 놀이를 하고 있었던 것이지.”

나는 그제야 알았다. 왜 지하 기지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편안한 표정을 하고 있었는지 말이다.

그리고 걱정이 앞섰다. 정말 리베카의 말대로 그 남편인 카엘이 인간의 사념을 조종할 수 있는 기기를 발명했다면 과연 내가 그와 부딪쳤을 때 승산이 있을까, 하는 우려.

가뜩이나 나는 내 정체성에 관해 고민이 가득한데 만일 카엘이 절망과 고뇌의 기류를 발사한다면 과연 내가 그것을 어떻게 견딜 수 있는지에 대한 회의감.

그때 플린시아가 말했다.

“그와의 대결은 사념의 전투가 아닌 실질적으로 무기를 들고 물리적으로, 육체적으로 공격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충분히 우리가 시공 전사로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으리라고 보지요.”

그러자 리베카가 코웃음을 쳤다.

“흥, 물리적으로, 육체적으로? 그 전에 생각을 지배당하면 그게 다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몰라? 멍청한 것.”

하지만 플린시아는 그대로 그녀의 말에 순응할 것 같지 않았다.

“내게 좌절이나 두려움 따위는 없어요! 내가 회색 마법사로서 그 위치에 오른 것은 내 감정을 절대 그 누구에게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죠.”

순간 리베카는 플린시아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마구 웃었다.

“호호호, 좌절과 두려움이 없다고! 그럼 네가 뭐, 신이라도 된단 말이야. 아니, 아무리 신이라도 그렇지 우주 만물에 지능을 갖추고 있는 생명체 모두가 생각한다면 당연히 두려움, 공포, 시샘, 좌절 등은 필수로 따라오는데, 그럼 너는 도대체 어떤 존재이기에 그렇게 오만방자한 헛소리를 늘어놓는 거지! 호호호, 멍청한 것!”

순간 플린시아는 화를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냥 참으려고 했는데 처음부터 너무한 거 아닌가요! 언제 봤다고 반말에 이제는 멍청이라고 욕까지 하다니!”

그러자 리베카는 한술 더 떠서 말했다.

“이것 봐, 자기 감정 하나 다스리지 못하는 주제에 뭐, 자기는 태어나서 남들에게 속마음을 절대 드러낸 적이 없다고! 그럼 지금 네가 하는 이 행동은 어떻게 설명할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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