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너 정말 이럴래!”
그때 갑자기 플린시아는 내게 다가오더니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형도…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뭐, 셰익스피어가 그랬다고 네가 전에 나한테 말한 적 있었지?”
“엥? 갑자기 뜬금없이 그 얘기는 뭐냐?”
“지금까지 네가 나보다 뭐든지 우월하다고 우쭐했지. 물론 내 능력으로서도 지금의 네 공력이 얼마인지 가늠조차 하기 힘들어. 그러나 그건 너도 마찬가지로 나에 대해 모르고 있지. 사실 회색 마법사인 나조차 나 자신을 추정할 수 없거든. 그러니 이 순간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내가 너보다 낫고, 그게 바로 지금인 거야.”
나는 헷갈렸다.
“도대체 뭐라는 거야?”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후후, 아직도 눈치 못 차렸어?”
그녀는 말이 끝나자마자 손으로 아까 봤던 바람이 양쪽에서는 부는 황무지 한 곳을 가리켰다.
“저 바람…….”
“바람 뭐?”
“마나 폭풍……. 그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남아 있는 그 잔재들의 기운이야.”
“마나? 기운?”
“마나는 나 같은 마법사만 느낄 수 있는 에너지이지. 음, 그런데 마나 폭풍을 일으킬 수 있는 마법사는 그저 우리 세계에서도 전설로 내려오는 정도인데 실제 존재하는지는 나도 몰라…….”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굵직한 음성.
“그자가 여기 있던 드넓은 도시를 이렇게 만들었소. 황무지로…….”
그는 사령관 타키타카였다. 그리고 다시 말문을 열었다.
“도시와 함께 그 안에 있던 수십만 명의 시민이 몰살했소.”
그 말에 나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수십만 명이요?”
“극소수만 살아남았죠. 그들은 지하 기지에 있었기에…….”
그러고는 그가 둔덕 아래 한 곳을 가리켰다.
“이제 그 지하 기지의 문이 열릴 시간이오. 그러니 다들 그곳으로 갈 준비를 하시오.”
사령관은 텐트를 거두고 다시 짐을 챙겼다.
* * *
지하로 내려가는 승강기를 타고 한참을 이동했다. 대략 1시간 정도일까. 그냥 내 추정에는 지하 100층 이상은 온 것 같았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 승강기 문이 열렸다.
철컹!
그리고 그 앞에 펼쳐진 광경. 나는 그만 입을 헤 벌렸다.
“아!”
플린시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와!”
타키타카가 말했다.
“따라오시오. 그리고 아직 놀라기는 이르오. 더 보여 줄 것이 있소.”
그로부터 반나절 후.
나와 플린시아는 이곳 지하 기지의 각각 숙소를 배정받고 잠시 내 방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형도야, 이게 말이 돼?”
그녀는 아직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로 여전히 노란 토끼 눈으로 내게 이것저것 물어봤다.
“이곳은 그냥 하나의 방대한 세계가 분명해. 그것도 지하에 말이야!”
나 역시 이곳의 상상조차 가지 않는 광경에 매우 놀란 상태이지만 그녀 앞에서는 최대한 침착하기로 했다.
“…그래 봐야 지하 기지일 뿐.”
그러자 그녀는 강한 부정을 하듯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돌렸다.
“아냐! 그냥 기지가 아니라고! 아까 네가 본 것들 말이야, 그게 그냥 지하 기지에서 가능한 것이냐고. 일단, 태양! 태양 말이야. 그게 어떻게 지하에 존재해서 방대한 이 드넓은 공간을 비추어 주는 거지? 그것부터 설명해 봐.”
“그, 그건… 뭐…….”
“봐! 너도 당황해서 말을 더듬잖아.”
순간 여기서 나까지 그러면 그녀가 더 당혹해할까 봐 일부러 소리쳤다.
“뭐! 내가 더듬기는 뭘 더듬었다고 그래! 그건 인공 태양이라 이라는 거야!”
“인공 태양? 설마 태양도 만들어졌다고 얘기하려는 건 아니겠지.”
“쯧쯧, 과학 문명의 힘을 모르니 이건 뭐…….”
“정말 그렇게 계속 무시할 거야!”
“후~ 잘 들어 봐. 일단 너는 마법사이니 과학의 개념을 마법의 개념하고 적절하게 섞어서 알아듣기 쉽게 설명할 테니까. 우선 마법 세계에서 근본이 되는 에너지가 마나라는 사실은 네가 더 잘 알지?”
“물론이지.”
“과학에서는 그 마나를 인공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술이 있어.”
“어떻게?”
“일종의 핵융합 장치를 이용해서 엄청난 고열의, 응집된 에너지를 형성하지.”
그 말에 예상했던 대로 그녀는 멍한 표정이었다.
“핵…융합… 장치……. 그게 뭔데?”
나는 한숨부터 나왔다.
“후~”
“후~ 하지 말고 쉽게 설명해 봐.”
“…….”
“뭘 그런 표정으로 노려보는 거야?”
“관두자.”
“관두자니?”
“설명이 불가능해.”
“아니, 설명을 다 해 보지도 않고 그렇게 끝내면 어떡하라고?”
“그냥 그런 게 있다고 쳐. 아무튼 마나 같은 에너지를 너처럼 미련하게 오랫동안 수련해서 얻어내는 게 아닌, 이곳 과학 문명 사람들은 그냥 그럴 필요 없이 자신들이 개발한 기술로 인공 태양을 만든다는 것만 알아 둬.”
“그러니까 그 기술이 뭔데?”
“알려 줘도 모른다니까! 정말!”
“왜 성질을 내고 그래. 그냥 곱게 말하면 안 돼?”
“그건 됐고, 다른 궁금한 점 있으면 얘기해 봐.”
그러자 플린시아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아! 그래, 그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인데. 어떻게 사람들이 판때기에 올라타서 공중에서 자유롭게 이동하는 거지?”
“그건 플레이트 개인 비행 도구야. 그것도 첨단 과학 기술로 만든 이동 장치이지.”
“마나 없이 그게 가능하다고?”
순간 나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마나와 상관없다고 몇 번을 얘기했어! 그건 과학 기술이라고!”
플린시아는 이제 내가 화를 내는 것도 익숙해졌는지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다른 것을 물어보았다.
“형도야, 한 가지 더 궁금한 게 있는데, 여기 사람들 가지고 다니는 무기 말이야. 그건 검도 아니고 마법 스태프도 아닌데 도대체 그걸 어디다 사용하는 거야.”
“그건 레이저 건이라고, 흠……. 인공 태양과 마찬가지로 그 안에 에너지를 응축시켜 순간 밖으로 폭발하면 발사되는 원거리 무기야.”
“원거리 무기라고?”
“그래, 네가 마법 스태프로 마법을 발사하는 것과 비슷하지.”
“와, 신기하다.”
“더 이상 물어보지 마라.”
“그 레이저 건의 위력은 얼마나 돼?”
“후~ 그건 나도 몰라. 과학 기술이 더 발달되었냐, 아니면 그보다 덜 발달되었나 정도에 비례해서 그 위력을 생각하면 돼.”
“그럼 여기 타이탄 행성의 과학 기술은 어느 정도 되는데?”
그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그게 궁금해서 타키타카 사령관에게 자세히 물어볼 참이야. 이곳이 현재 처한 상황, 뭐 이런저런 정보들. 애초 우리는 여기 타이탄 행성에 대해서 아는 게 하나도 없이 그냥 왔잖아.”
그때 문을 확 열고 들어오는 선배 아테온.
“너희 여기서 뭐 해?”
플린시아가 그를 반겼다.
“선배님, 오셨어요.”
“지금 한가하게 인사를 받을 때가 아냐. 아무래도 무슨 일이 벌어진 것 같은데.”
“무슨 일이요?”
그러자 아테온이 조용히 하라고 손을 입에 갔다 대며 말했다.
“가만히 들어 봐.”
그때였다.
쿵!
쿠웅!
쿵!
뭔가 폭발음과 함께 이곳 지하 기지 전체에 미세한 진동마저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번엔 사령관 타키타카가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와서 외쳤다.
“다들 나를 따라오시오!”
아테온이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그가 다시 온 것 같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카엘, 우리 아르센 도시를 초토화한 자요. 그리고 여기 지하 기지에 형성된 방어막을 계속해서 뚫으려 하고 있소. 물론 그렇게 쉽게 무너질 이곳이 아니지만.”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자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어떤 힘으로 그 도시 전체를 황무지로 만들었는지요.”
“그는 원래 베라 행성의 천체 물리학자였소. 그곳은 여기 타이탄 행성보다 과학 문명이 훨씬 발달되었죠. 그런데 그가 새로운 신물질의 비밀을 밝혀내고 그것을 무기로 이용하면서 그의 침략이 시작되었던 겁니다.”
그때 나는 한 가지 궁금한 게 생겼고, 곧바로 플린시아에게 물었다.
“플린시아, 네가 전에 말하기를 여기를 황무지로 만든 자는 폭풍 마나를 시전할 줄 아는 마법사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 말에 플린시아는 여전히 확신했다.
“맞아, 폭풍 마나는 마법사만이 할 수 있는 전설의 마법이지.”
“그런데 사령관께서 말씀하기를 베라 행성의 천체 물리학자라 하는데, 이거 뭔가 앞뒤가 맞지 않아.”
나는 잠시 생각에 잠기다 다시 사령관에게 물었다.
“그런데 베라 행성의 침략이라고 한다면 군대가 온 것입니까?”
그러자 타키타카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니오, 그 혼자 왔소.”
그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혼자서요?”
“네, 혼자.”
“아니, 그건 좀 이해하기 어려운데요. 아무리 그래도 행성 대 행성 간의 전쟁인데 어떻게 단독으로 이곳에 와서 도시 전체를 파괴할 수 있다는 거죠?”
“그는 그냥 과학자가 아닙니다. 베라 행성에서조차 그는 뛰어난 천재 물리학자였죠. 그래서 그 신물질을 발견하게 된 것이고, 그로 인해 오늘날 우리 타이탄 행성은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고…….”
“그 신물질이 얼마나 강력하기에 도시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는 거죠?”
“그 신물질에 대해서는 저희도 밝히려고 노력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소.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기존의 핵융합 기술과는 다른 별개의 그 어떤 물질인데……. 그걸 모르겠소.”
별개의 그 어떤 물질? 나는 사령관의 말을 듣다가 의아한 게 있었다.
사실 여기 타이탄 행성과 베라 행성의 과학 문명은 지구보다도 훨씬 고도로 발달된 첨단일 것이고, 핵융합 기술에서도 몇 단계 위의 고도일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그 개념과 다른 별개의 신물질이라니.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렇게 본다면 나 역시 플린시아와 마찬가지로 이런 과학 행성에서 말하는 기술을 피차 똑같이 모르는 처지이다.
그나마 아테온은 과학에 대해서 우리보다 더 나을까. 역시 이번엔 그가 사령관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이번 일에 우리 시공 전사들의 도움을 바란 것인가요?”
타키타카는 즉각 대답했다.
“그렇소. 그대들의 도움이 필요하오.”
“흠, 그럼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 같군요.”
“그건 무슨 말이오?”
“일단 여기 이형도와 플린시아는 내 후배로서 과학 문명과는 거리가 먼, 또 다른 개념의 전투 기술을 습득한 자들입니다. 나나 사령관님처럼 이런 문명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대충 알아듣고 대응을 할 텐데, 솔직히 여기 두 시공 전사들은 지금 무척 당황하고 있을 것입니다. 후후, 내심 아주 식은땀을 흘리면서.”
그 말에 사령관의 눈빛이 조금 흔들렸다.
“그, 그렇소?”
“대신 나는 이들과 다릅니다.”
“다르다니요.”
“즉, 과학 문명에서 정상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고 당당히 시공 전사가 된 경우라 할 수 있지요. 그래서 말인데, 이번 임무는 전적으로 내게 맡겨 주면 잘 해결해 보겠습니다.”
나는 속으로 피식 웃고 말았다.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고? 시공 아카데미의 과정을 3년으로 졸업하는 데 7년이나 걸린 주제에. 게다가 나와 플린시아는 근 1년 만에 조기 졸업을 했다.
그러나 뭐, 한 가지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만 했다. 그건 바로 그가 과학 문명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것. 그런데 과연 그의 주 무기가 무엇인지 이제는 그게 궁금했다. 나는 아직 한 번도 아테온이 전투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기에 그의 전투 계열을 파악할 수 없는 상태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