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빌어먹을! 시공 아카데미 선배로서 7년 만에 겨우 졸업한 바로 그 작자이다.
애초 내가 이곳 시공 아카데미에 발을 디딘 첫날부터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가 이번 임무에 우리와 함께 배정받은 이유는 초고도 과학 문명이 발달한 행성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의 전투 계열은 첨단 무기 등을 활용한 현대 전사랄까.
그때 플린시아와 아테온이 내 숙소에 들어왔다.
“형도야, 뭐 하고 있어?”
“뭐하긴, 그냥 있지.”
그때 함께 들어온 아테온이 나를 보며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어이, 후배. 선배 보고도 인사도 하지 않냐?”
“안녕하세요.”
“엎드려 절 받기 식이군. 아무튼 이번 임무 함께 잘해 봄세.”
“네, 그러죠.”
플린시아는 무슨 이유인지 다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 임무 배정지, 타이탄 행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가 없어. 상부에서 그냥 전함을 타고 일단 그곳에 가래.”
“왜 정보가 없는 거지?”
그때 아테온이 말문을 열었다.
“타이탄 행성은 은하 연합에서조차 매우 신중하게 다루는 행성 중 하나이기 때문이지. 특히 그곳은 일급비밀로 분류된 곳으로, 사전에 정보가 차단되어 있어.”
플린시아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선배님, 그래도 그렇죠. 우린 시공 전사로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그곳에 배정받았는데, 그렇다면 적어도 대략적인 정보는 제공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러자 아테온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쯧쯧, 이래서 내가 초임자들하고 함께 가기를 꺼리는 거라고. 상부에서 정보를 주지 않으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지 뭘 그리 궁금해 해. 막말로 까라면 까는 거지!”
그 말에 플린시아는 입을 꼭 다물었다. 나 역시 그랬고. 웬만하면 이번 임무에서 저 인간하고 최대한 말을 섞지 않기로 했다.
그때 아테온이 내게 말을 건넸다.
“그리고 너 이형도. 지난번 레무리아 차원에서 제법 공 좀 세웠나 본데, 그거 가지고 우쭐대지 마라.”
“우쭐댄 적 없는데요.”
“저 봐라, 선배가 말하는데 바로 치고 들어오는 거. 아무튼 후배면 후배답게 행동하도록. 그리고 이번 임무의 대장은 나니까 그런 줄 알아.”
그러고는 문을 닫고 홱 나가 버렸다.
이에 플린시아는 내 표정부터 살폈다.
“형도야, 네가 이해해.”
“이해하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에는 너와 성격이 맞지 않는데, 좀 걱정이 되긴 하다.”
“그래, 너는 성격이 맞고?”
“난 괜찮아. 선배가 말투는 저래도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아.”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는 법. 하지만 좋은 사람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을 정도로 드물지.”
그녀는 그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말았다.
“후~ 이번 임무는 처음부터 꼬이는 느낌이 드는데.”
* * *
그로부터 이틀 후. 전함은 광속의 속도로 초공간을 비행하며 드디어 타이탄 행성에 도착했다.
우리는 각자 짐을 챙기고 이 낯선 행성에 내려서 현지인의 안내를 받으며 어디론가 향했다. 우리가 탄 이 소형 우주선은 마치 비행접시처럼 엄청난 속도에 자유자재로 턴을 하며 목적지를 향해 갔다.
그로부터 대략 1시간이 지났을까. 조종사는 우리와 가이드를 맡은 현지인을 어느 지역에 내려놓고 그냥 가 버리는 것이 아닌가.
아테온이 입맛을 다셨다.
“쩝, 이제 정말 시작인가.”
플린시아는 시방을 둘러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풀 한 포기 없는 황량한 곳이네.”
그때 현지인이 말했다.
“자, 저를 따라오시죠.”
아테온이 처음부터 불만을 터트렸다.
“걸어서 가려고요?”
“네.”
“얼마나 먼데요.”
“대략 반나절이면 도착합니다.”
“헐~”
그로부터 해가 중천에 떠오를 시점이었다.
아테온은 다시 불만을 터트렸다.
“여기 과학 문명이 존재하는 행성 맞아요?”
현지인이 짧게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아무리 봐도 아닌 것 같은데. 온통 바위와 붉은 흙바닥만 보이니. 그나저나 당신 이름이나 압시다.”
“저는 타키타카라 합니다.”
“타키타카……. 그런데 원래 그렇게 말수가 없소?”
“아닙니다.”
“그럼 뭐라도 설명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곳에 대해서 말이죠. 우린 3시간이나 함께 왔는데 아직 아무런 정보도 듣지 못했다고요.”
“목적지에 도착하면 자세히 설명을 들을 수 있습니다.”
“흠, 그나저나 얼마나 더 가야 하지?”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그로부터 1시간 후. 현지인 타키타카는 말문을 열었다.
“다 왔습니다.”
그런데 사방을 둘러보니 아무런 건물이나 요새 같은 건 보이지 않고 그냥 바위와 돌만 있는 황무지였다.
아테온이 언성이 높아졌다.
“뭡니까. 여기는 아무것도 없잖소!”
타키타카는 그저 묵묵히 침묵을 지켰고, 그때 아테온이 외쳤다.
“아! 이제 알았다. 여기 타이탄 행성은 과학 문명이 발달된 곳! 그렇다면 분명 땅이 꺼지면서 승강기 비슷한 게 올라올 거야. 바로 지하 도시로. 하하, 어때, 내 말이 맞지요?”
그러나 타키타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이에 아테온은 다시 머리를 굴리더니만 말했다.
“흠, 이제 생각해 보니 과학 문명이 보통 발달한 정도가 아니로군. 분명 초고도, 최첨단 기술을 시용하고 있는 게 맞아. 그렇다면 저 앞이 보이는 황무지에는 분명 거대한 투명막에 가려진 도시가 안에 있을 거야. 후후, 이번에는 내 생각이 정확히 맞을 거요!”
“그것도 아니요. 우린 여기서 지냅니다.”
“여기서? 그냥 황무지인데. 그리고 당장 잠잘 건물도 없잖아. 지금 나와 장난하자는 거요!”
그러자 타키타카는 갑자기 허리를 숙여 그 앞의 돌무덤 같은 곳을 손으로 헤집어 뭔가를 꺼냈다. 그러고는 그것을 펼쳐 보이는데, 바로 텐트였다.
“잠은 여기서 잘 겁니다.”
순간 일행은 그만 어이가 없다는 듯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노, 농담 아니겠지요?”
“각자 앞을 살펴보시오. 돌무덤 같은 것이 있는데, 그 안을 걷어 내면 텐트가 있을 것이오. 다들 피곤할 텐데 텐트를 펼치고 각자 알아서 잠이나 휴식을 취하기를 바랍니다.”
그의 목소리가 진지한 것을 보아서 농담은 아닌 것 같았다. 아니, 애초 유머라고는 전혀 할 줄 모를 정도로 무뚝뚝해 보였으니.
아테온은 지금의 이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얼굴이 하얗게 굳어져 있었다.
“이보시오, 안내인. 우리는 시공 전사요. 타이탄 행성에 파견 나온. 그런데 지금 이게 뭐요?”
타키타카는 아테온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만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래서 뭐가 문제죠.”
“뭐가 문제라니? 그걸 말이라고 하쇼.”
그제야 타키타카는 처음으로 자기 감정을 드러냈다.
“후~ 여기 사정이 그러하니 이해해 주기를 바라오. 그리고 나는 안내인이 아니라 이곳 제7 구역 사령관이오.”
그 말에 우리는 다시 한번 놀랐다.
“사령관…….”
그렇게 시간이 흘러 밤이 되었다. 타키타카는 어디서 장작을 구해 왔는지 모닥불을 피워 놓기 시작했고, 아테온은 여전히 이 상황을 놓고 화가 많이 난 상태였다.
“빌어먹을, 시공 전사로 활동하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네. 도대체 이게 말이 된다고 봐! 부하들 한 명 보이지 않는 자가 스스로 사령관이라고 하지 않나. 건물 하나 없는 이런 황무지에 텐트 달랑 몇 개 쳐 놓고 숙소라고? 하.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나오지 않네.”
한편 나와 플린시아는 그곳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서 주변 지형을 살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형도, 너는 어떻게 생각해?”
“뭐를?”
“지금의 이 상황.”
“이 상황이 어때서?”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한데.”
“뭐, 사정이 있겠지.”
“그래도…….”
나는 잠시 주변을 한 번 더 둘러보고는 말문을 열었다.
“흠, 묘한 곳이군.”
“묘하다니?”
“여기 지형부터 달라.”
“어떤 면에서? 나는 그저 황무지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너는 과학 문명이라는 것을 거의 접해 본 적이 없지.”
“뭐, 그렇지. 시공 아카데미에서 보고 배운 게 내가 아는 과학 문명의 전부야.”
“그래서 나와 네가 보는 차이점이 생기는 거로군.”
“차이점? 그게 뭔데?”
“저 황무지는 그저 자연스럽게 형성된 지형이 아냐.”
“아니라고?”
“내 눈에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세트장 같은데.”
순간 플린시아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이 드넓은 황무지 지역이 만들어진 거라고? 설마.”
“후후.”
“지금 그 웃는 의미는 뭐야?”
“그냥 웃겨서.”
“뭐가 웃겨?”
“과학 문명을 모르는 너한테 지금 눈앞에 보이는 무수한 가짜의 흔적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황당해서. 후~”
“그 말투, 마치 나를 무시하는 것처럼 들리는데.”
“무시하는 건 아냐.”
“그게 무시지 뭐야.”
“이럴까 봐 내가 뭐라 설명하기가 무섭다는 거지.”
플린시아는 잔뜩 화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그럼 잘나고 잘나신 네가 잘 설명해 봐. 이 무식한 내가 어떡하든 잘 이해하도록 노력할 테니.”
“흠, 노력해서 될 문제가 아닌데.”
순간.
“너! 보자 보자 하니까 정말!”
“후후, 그럼 잘 들어. 일단 하늘 위에 떠 있는 태양을 봐.”
그녀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물었다.
“눈 부셔?”
“아, 아니…….”
“원래는 눈이 부셔야 정상이지?”
“으, 응…….”
“그게 첫 번째 증거고. 두 번째는 저기 바위들 보이지? 그런데 각각 그림자 방향이 같아? 달라?”
“…어? 조금 이상한데…….”
“그림자 각도가 다르지. 그게 두 번째 이유이고. 세 번째는… 음… 네가 찾아봐.”
“내가?”
“앞서 힌트를 주었으니 돌대가리가 아니라면 뭐, 나머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텐데.”
“…돌대가리라고!”
그녀의 눈매가 확 치켜 올라갔다. 나는 피식 웃었다.
“후후, 싫으면 말고. 뭐, 네가 그렇겠지. 그래, 관둬라. 내가 알려 줄게.”
순간 플린시아는 소리를 질러 버렸다.
“말하지 마! 내가 찾을 거야!”
“…정말?”
“그래, 찾는다고! 이 잘난 놈아!”
그리고 그녀는 씩씩거리다가 눈을 까뒤집고 앞에 보이는 황무지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 후. 나는 다소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다시 피식 웃었다.
“후후, 그럼 그렇겠지. 됐고! 내가 말해 줄게. 그게 뭐냐 하면…….”
순간.
“잠깐! 말하지 마! 방금 찾았으니까.”
“오! 진짜? 그래 뭔데?”
“바람.”
“바람?”
“바람이 부는데 그 흙먼지가 같은 방향이 아닌 각각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는 게 이상해.”
“이상하다……. 그거야 뭐,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냐? 바람이 한 방향으로만 불라는 법은 없잖아.”
순간 그녀가 갑자기 엷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호호, 인제 보니 돌대가리는 너였네.”
“뭐?”
“안 보여?”
“뭐가?”
“후~ 형도야, 그런 돌머리로 나더러 뭐라 한 거니. 호호, 정말 안 보여?”
“…어?”
나는 잠시 당황했다. 내가 세 번째 증거로 말하려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다른 것이었는데, 그녀는 내가 모르는 뭔가 발견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플린시아의 뒤끝 작렬한 복수를 내가 맛봐야만 했다.
“쯧쯧, 그렇게도 과학 문명을 잘 알고 있다고 떠버리더니. 꼴좋다!”
“…그, 그럼 네가 말해 봐…….”
“‘말해 주세요.’라고 공손히 부탁하면 말해 주지, 후후.”
“젠장, 뭔데!”
“젠장? 지금 나한테 젠장이라고 그랬어? 그래, 뭐. 듣기 싫으면 관두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