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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얻은 레어템, 현실에는 역대급-62화 (62/143)

62화

“내 차원에도 시기와 질투는 있어. 나보다 전투력이 강하면 당연히 질투가 나고 그런 거지.”

“그게 아냐. 우리 인간은 평화 자체를 인지하지 못할뿐더러 자신을 너무 학대하고 괴롭혀. 나 역시 그래 왔었고…….”

“너도? 그건 이해가 가지 않는데. 내가 보기에 너는 늘 밝고 행복해 보이는데.”

“후후, 그랬다면 그건 내 겉모습만 본 거야. 나 역시 지구의 다른 인간들처럼 항상 번뇌에 시달리지. 고민과 고민, 또 고민에 괴로워하다가 결국 답을 찾지 못하고 그냥 살아가는 중생.”

“흠… 그렇다면 생각을 바꾸어야 하겠다. 지구에서 태어나고 싶단 말 말이야. 그리고 방금 생각났어.”

“뭐가?”

“존재하는 생명체는 원천적으로 늘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거라고. 그러다 보면 언제가 자기가 그런 고뇌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결국 자기가 만든 갈등에서 자유로운 의지를 갖게 될 능력이 생긴다고. 그게 아마 성장을 위한 거라나. 그렇게 본다면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축복이라고. 그 사실만으로도 자기가 존재하고 있음을 느낀다나.”

듣고 보니 방금 플린시아가 말한 내용은 상당히 고차원적 존재, 즉 해탈한 성인의 입에서 나올 법한 심오한 내용이었다.

“누구한테 그 말을 들었지?”

“그분이지.”

순간 내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분이 혹시……?”

“초시공 전사 카이 님이야.”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도대체 그 자식은 전투력도 그렇고, 이제는 사상까지 나를 압도할 정도로 괴물인지 말이다.

‘빌어먹을!’

“왜 카이 님 얘기만 하면 그렇게 똥 씹은 표정이지?”

“젠장! 내가 똥 씹는 거 봤어!”

“왜 갑자기 화를 내고 그래!”

“그나저나 왜 얘기가 딴 데로 빠졌지? 내가 무슨 얘기 하다가?”

“네가 전생에 아나키였을 수 있다는 대목에서.”

“하하, 그랬었지. 벌써 치매에 걸렸나? 아무튼 그건 그냥 웃기려 한소리니까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 버려.”

이번엔 플린시아가 다소 진지하게 변했다.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사실? 내가 아나키?”

“레무리아 차원의 창조주라면 절대 허튼 말을 할 분이 아닌 것 같은데 그런 예언을 했다면 그건 분명 신빙성이 있을 거야.”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아니다! 하하, 내 주제에 뭐, 창조주의 환생자라고? 후후, 그건 정말 웃겼다.”

“웃기기는. 네가 먼저 언급한 얘기잖아.”

“됐고! 그나저나 그럼 우리가 앞으로 할 일은 뭐지?”

“아나키의 연인 헤라와 천공 전사 에피루를 도와서 현재 쟈크딘이 어떻게 아나키의 힘을 이용해서 그 위치에 올랐는지부터 밝혀야겠지.”

“쟈크딘이 창조주 아나키의 힘을 이용한다고? 그건 아직 추측일 뿐이잖아.”

“그건 우리가 추측할 문제가 아니라 헤라와 에피루가 그렇게 확신하고 있다는 말을 믿고 받아들이는 문제겠지.”

“흠, 벌써 골치가 아프군. 그냥 막 전투하고 싸우고 하는 게 내 체질인데. 이런 복잡한 진행은 마음에 들지 않아.”

“형도야! 정신 차려! 뭐 시공 전사는 아무나 하는 것인 줄 알았어? 아카데미 교관 말대로 시공간을 넘나들며 차원의 질서와 법칙을 확립하기 위해 그 세계에 개입하는, 아주 중대하고 중대한 임무라고.”

“아이고. 됐다, 됐어. 그냥 할 테니까 잔소리는 그만해.”

* * *

태양의 열기가 푹푹 찌든 사막이었다. 그것도 사방에 끝이 보이지 않는 황량한 모래사장 한복판.

그런데 놀랍게도 그곳에 흰 가운을 착용한 노인이 엎드려 뭔가를 심고 있었다. 그건 작은 묘목으로 보였고, 노인은 모래 위에 겨우 지탱해 서 있는 그것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허허, 너도 아무 탈 없이 잘 자라 주렴.”

이런 사막에 식물을 심는다는 것이 어찌 보면 정신 나간 짓이지만 노인의 그 진중한 표정을 보았을 때 정말 기적이라도 일으킬 것 같은 인상이었다.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장소에 또 묘목을 심기 시작했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흠, 진짜 기적을 보고 싶군. 그의 힘이 아닌 그저 순수한 노력으로 말이야. 이제는 권능을 사용하는 것 자체에 싫증이 나고 이골이 날 지경이니.”

바로 그때였다. 그의 앞에 한 형체가 흐물거리더니만 이내 그 모습을 확연하게 드러냈다. 대략 40대로 보이는 중년인.

그는 노인에게 정중히 허리 굽혀 인사를 하고 말문을 열었다.

“쟈크딘 님, 저 아라카스가 알현을 드립니다.”

“어서 오게나. 마침 자네를 부를 참이었는데.”

“무슨 일로?”

“아니, 자네부터 먼저 보고해 보게나. 최근에 뭐 새로운 소식이라도 있는가?”

그러자 아라카스는 다소 걱정스러운 얼굴로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저, 저기 말란타라의 금제 구역 괴수들이 그 누군가에 의해 몰살당했습니다.”

그 말에 쟈크딘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허허, 나도 알고 있네.”

“알고 계신다고요?”

“흠, 어차피 창조해 놓고도 부담되는 녀석들이었는데 누가 깨끗이 청소해 주었다니 고마울 일이군.”

그의 태연함에 아라카스는 당황했다.

“그, 그래도 쟈크딘 님께서 직접 창조한 피조물들인데 누가 감히 그런 짓을?”

“다 할 만하니 했겠지. 그나저나 보고할 내용이 그것뿐인가?”

“또 한 가지 있습니다.”

“이번에는 조금 더 흥미로운 보고였으면 좋겠군.”

“천공 전사 에피루가 탈출했습니다.”

그 대목에서는 그토록 태연했던 쟈크딘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에피루가?”

“네, 그렇습니다.”

“혼자서 탈출하지는 않을 테고……. 그곳은 달의 왕 가란시스가 특별히 만든 절대 감옥인데…….”

“조사단을 파견하고 보고를 들었는데, 누군가 외부 장치를 작동시켰다 합니다.”

“누군가……? 또 누군가인가?”

쟈크딘은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뒷짐을 쥔 채 사막의 저 뜨거운 태양을 올려다보았다.

“아, 하늘 아래 태양이 한 개로는 부족했던가? 가뜩이나 이 더운 여름날에 하필 또 다른 태양이 고개를 갸웃거리니.”

“무슨 말씀이온지?”

“자네는 그만 가 보게나.”

“저기, 그들이 누군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물론 궁금하네. 하지만 내가 먼저 그들을 찾지 않겠네.”

“그 말의 의미는?”

“기다린다는 뜻일세.”

“기다린다고요?”

“어차피 자네 같은 수하들 상대가 아닐세.”

“혹시 그들의 존재에 대해 아시는 것이라도?”

이에 쟈크딘은 더 이상 말을 삼갔다.

“…….”

“무슨 불편한 일이 있으신지요?”

“조금 전 내가 가 보라고 하지 않았나.”

“아, 네. 알겠습니다.”

그제야 아라카스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쟈크딘은 다시 자리에 앉아 아까 심으려던 묘목을 만지작거렸다.

“기적이라……. 내가 그 기적은 그저 내게만 일어난다는 착각을 했군. 다른 자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했어. 허허, 그나저나 이거 정말 큰일 났어. 내 평생 소원이 늙어도 곱게 늙는 것인데……. 이렇게 사막에다 정원을 만들어 식물도 가꾸고 열매도 수확하려 했건만……. 그게 다 헛일이 될 것 같으니 참으로 허무해.”

* * *

나는 헤라의 능력을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하고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건 플린시아도 마찬가지였다.

“방금 도대체 뭘 어떻게 한 겁니까?”

내가 묻자 헤라는 다소 쑥스러운 듯 대답했다.

“창조주 아나키 님의 권능 중 아주 작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아무리 권능이라지만 저 밤하늘의 별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다니요?”

“그 별은 이 차원의 위성이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위성이라? 그건 지구의 관점으로 볼 때 달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정말 믿기지 않는군요. 대기권 밖에 있는 위성을 옮길 수 있다는 것이.”

그러자 이번엔 천공 전사 에피루가 한마디 했다.

“창조주 아나키 님의 권능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오. 그리고 그분의 능력을 이어받은 헤라 님에게 저 정도 일은 아무것도 아니오.”

그러자 이번엔 플린시아가 물었다.

“이해가 가지 않아요. 태초에 창조주 아나키 님은 저런 권능을 지녔는데 왜 반란군에게 그렇게 쉽게 당했나요?”

이에 헤라가 대신 대답했다.

“그건 반쪽짜리 권능이기 때문이죠.”

“반쪽짜리라니요?”

“선한 것의 권능, 즉 악이 빠져 있기 때문이죠.”

“무슨 뜻인지?”

“우주 만물은 선과 악이 공존하는, 아주 오묘한 세상이랍니다. 그리고 절대 선이나 절대 악도 존재하지 않는 선과 악의 그 균형을 잡아가는 것이, 이 자연의 섭리입니다. 그런데 아나키 님은 오로지 선함을 추구했지요. 바로 절대 선을……. 그 의미는 반대 성향의 절대 악에 무방비한 상태를 말하기도 합니다.”

플린시아는 이해하지 못하는 듯 다시 물었다.

“그럼 착해서 당했다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그래도 권능이 있는데 그걸 이용하지 못하고, 왜?”

“남을 공격할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죠. 오로지 남에게 배려와 도움을 주기만 했으니까요.”

“그, 그래도 그건…….”

플린시아는 혼란스러웠지만 나는 대충 그 말을 이해할 듯싶었다.

선과 악.

바로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일이 아닌가.

나는 현실에서 이형도라는, 아주 착한 청년이다. 꿈속에서는 못된 황제로서 살고 있고.

그게 바로 형도라는 선과 황제라는 악이 만나서 서로 절충하며 균형 있게 지금까지 이 자리에서 버티어 온 것이다. 다시 말해서 꿈속 황제의 그런 악의 기질이 없었다면 나는 포식의 권능으로 그 많은 아이템을 온전히 먹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나도 이제야 뭔가를 알 수가 있을 것 같았다. 지난번 황제가 나타나 카르마타파에 대해서 말했던 내용들.

전생의 자기와 미래의 내가 만나 선과 악의 균형을 이루어야만 이 게임에서 이길 수 있다고. 바로 그 게임을 황제에게 제안한 그 임의의 존재는 바로 그것을 걸고 황제와 내기 도박을 했다는 것까지.

나는 카르파타파, 즉 업장이 소멸하며 황제의 업을 거두고 그와 반대로 황제는 계속해서 내게 자기 과거의 업장을 내려보낸다. 물론 나는 그것들을 극복하려고 지금 이런 개고생을 하는 거고…….

정말 뭔가 가닥이 잡히는 것 같았다. 내가 하는 게임의 본질을 말이다.

공교롭게도 그 해답을 이 머나먼 레무리아 차원에서, 나는 헤라라는 여인에게 듣고 있었다.

이번엔 천공 전사 에피루가 말했다.

“아나키 님에게 반란을 일으킨 자는 절대 악인 달의 왕 가란시스였소. 물론 아나키 님이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죠. 그래서 아나키 님은 모든 것을 체념하고 그냥 희생당하기로 마음먹었지요. 그리고 훗날을 도모했습니다. 그대들 같은 구원자들이 언제가 이곳을 찾으러 올 줄 알고 예언을 한 거죠.”

그때 플린시아가 다시 물었다.

“그 구원자들이 왜 우리죠?”

“그대들은 선과 악의 균형을 완벽하게 이룬 존재들이니까요.”

그 말에 플린시아는 깜짝 놀랐다.

“우리가요? 어떤 의미로 그런 말씀을 하는 거죠?”

“그건 우리도 모릅니다. 다만 아나키 님께서 운명하실 때 하셨던 마지막 유언을 말한 것뿐입니다.”

“마지막 유언이요?”

“천공 전사의 수장인 저 에피루와 헤라를 깨우는 자들이 곧 선과 악의 균형을 이룬 자들이니라. 이렇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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