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그러자 메튜가 외쳤다.
“아버지! 절대 그런 약한 마음을 품으면 안 돼요!”
잠시 후 나는 메튜에게 내가 지닌 황금을 모두 건네주며 말했다.
“이 정도면 당분간 도움이 되겠지?”
아버지는 그 장면에 감동하였는지 다시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아니, 뉘시기에 그런 귀한 금을?”
“그냥 받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저는 이만.”
그때 아버지가 외쳤다.
“잠깐만요!”
나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다 보았다.
“네?”
“저는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입니다.”
그러고는 아들에게 말했다.
“메튜, 검을 가져오너라.”
순간 메튜는 깜짝 놀랐다.
“아버지, 설마 그걸 저분에게 주려고…….”
“그냥 내가 하란 대로 해라.”
잠시 후 메튜는 낡은 천에 둘둘 감긴 기다란 형체의 물건을 들고나왔고, 나는 그게 검이라는 것을 알았다.
“메튜, 그 천을 풀어라.”
이어 천이 완전히 풀린 다음 나는 그만 입을 헤 벌렸다.
검이 맞긴 맞는데 그 온전하고 날렵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손잡이를 제외한 전체가 심하게 녹이 슬고 부식되어 있었다.
내가 살면서 세상에 이렇게 낡고 초라한 검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게다가 검 끝의 대략 15센티가 부러져 이 검의 생명은 거의 끝났다고 봐야 했다.
아버지가 내게 말했다.
“그걸 드리리다.”
“이 검을요?”
“보기에는 그래도 쓸모가 있을 겁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성의는 감사하지만 제게 이 검은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 그냥 넣어 두세요.”
그런데 아버지는 다시 말했다.
“제발 받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 철검은 녹이 슬고 부러졌지만 분명 쓸모가 있습니다.”
물론 나는 그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그렇다고 저렇게 완강히 가져가라고 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참에.
갑자기 허기가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나는 어리둥절했고.
“서, 설마 포식의 권능이……?”
그런데 정말.
[포식의 권능 발화]
또, 내 머릿속으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포식의 권능이 발동되었습니다.]
[철검을 포식합니다.]
[고유 특성 모든 스텟 +108,200강화(A등급)를 흡수합니다.]
전설도 아니고 아예 레어 등급조차 없었다. 그런데 스텟이 +108,200이라니! 십만 단위로!
섬광이 일었다.
파팟.
역시 현실로 돌아왔다. 역시나 허공으로 나타나는 홀로그램 글씨들.
[방어력 백만]
[특수 스킬 대지의 힘을 이용할 수 있다. (발동 시 물리 공격력 +90,625% 추가 : 마법 공격력 +159,000)]
“물리에 이어 마법 공격력도 추가되다니.”
[내구도 999/1,000]
[철검 : 더 이상 포식할 수 없음.]
[방어력 1,510,760]
* 트레이더가 되는 법
[본 아이템들은 임의의 영역에서 거래할 수 없음.]
[거래 자격 포인트 +500 이상 시 거래 가능. 상점 개설 가능.]
[거래 자격 포인트 +3,400 획득!]
[현재 포인트 +5,000 이상]
역시나 속성을 지닌 채 현실로 그대로 나타난 템들. 이번엔 두 개다!
아! 그리고 거래 자격 포인트가 이제 5,000 이상이라니!
나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런 녹슬고 부러진 철검에 스텟이 말도 안 되게 올라간다는 사실이 말이다.
더구나 레어나 전설 템도 아니다.
“정말 궁금하네!”
물론 그다음에는 내 정보창이 궁금했고, 외쳤다.
“정보창!”
[이형도]
[레벨 17,327]
[꿈을 걷는 자, 트레이더]
[체력 134,323 힘 235,020 민첩 477,515
마력 226,309 지혜 328,412]
“뭐야! 이건 말이 안 돼! 레벨이 한 번에 5,000대에서 올라 1만 7,000대에 이르다니!”
[액티브 스킬]
[고유 – 포식(유일 등급)
아이템을 흡수하여 능력의 일부를 가져온다.]
[고유 – 손목의 근력(유일 등급)]
[고유 – 기류 발사]
[고유 – 현재 방어력의 7제곱(유일 등급)]
[고유 – 대지의 힘]
[고유 – 케논의 마법화]
[고유 – 공력의 묘미]
[고유 – 철검]
〈카르마타파 : 74조(카르마타파는 그대에게 협조를 할 것입니다.)〉
[패시브 스킬]
[마르지 않는 체력 등급에서 (S등급으로 승격)
체력 상승 258,300%
손목 근력 상승 147,440%
도약 능력 상승 129,530
물리 공격 상승 171,425%]
[비행 능력! (추가 순간 이동)]
[공력의 묘미!(추가 관념의 기술)]
“패시브 스킬 퍼센트 수치가 거의 수만에서 수십만이 업이라.”
그야말로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니, 그저 일반 마계 전사가 내게 준 평범한 철검인데 이 정도로 말도 안 되게 스텟이 엄청나게 업이 되었다는 것이.
“아! 뭐야! 도대체! 레어 템도 아니고 전설 템도 아닌, 그저 녹슬고 부러진 철검이 어째서 이런 수치를!”
이건 분명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었다.
지금 내가 하는 이 게임에서 버그를 일으켰을 수 있다고도 생각해 보았다.
“그래, 버그 아니면 이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할 방법이 전혀 없다고!”
* * *
다음 날.
현실로 돌아온 내게 가장 시급한 문제부터 해결해야만 했다.
나는 대련장에서 준결승 상대인 막세우스와 지금 막 대결을 벌이려 했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비웃고 야유하는 함성들.
“하하, 도대체 저 자식이 들고 있는 게 무기야, 쓰레기야?”
“보아하니 검 형체를 띠고 있는데……. 녹이 덕지덕지 붙어서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게다가 검날이 부러졌는데.”
하지만 정작 막세우스의 표정은 한없이 진지하기만 했다.
‘뭐야, 이 자식. 공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잖아. 최소한의 1퍼센트조차 그런 게 없어. 도대체 이게 가능한 일인가? 공력이 전무한 존재가 있을 리 없어.’
나는 이제 그의 관념을 읽기까지 했다.
“나도 그게 신기하거든.”
순간 막세우스는 깜짝 놀랐다.
“내 관념을 읽다니.”
잠시 후 대결은 3초도 지나지 않아 끝이 났다.
내가 철검을 뽑자마자 그가 기권해 버린 것이다.
그 날 오후.
나는 이 철검을 다시 집어 들고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과연 이 검의 내력이 어떤지 정말 궁금해서 미치겠구나.”
그때 들려오는 소리.
[레벨 17만에 따른 새로운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스킬은 ‘회상의 묘미’.]
회상의 묘미? 그건 뭐지?
이어 다시 들려오는 음성.
[철검의 회상을 원합니까?]
“어? 철검의 회상……? 아. 그, 그래. 좋지. 당장 그 스킬을 사용하겠다.”
[스킬 회상의 묘미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내 주변이 바뀌었고, 이내 제삼자의 관점으로 그 누군가를 볼 수 있었다. 회상의 묘미는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 * *
유성이 페이튼에게 말했다.
“스승님,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이에 페이튼이 부드럽게 다독거려 주었다.
“너무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시간이 있으니.”
유성은 20갑자에 이르러야만 시도할 수 있는 신검대법을 연공 중에 있었다.
검과 합위일체가 되어 내공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절세 무공, 그의 고향 무림 역사상 단 한 명의 초절정 고수만이 시전이 가능했다는 전설이 내려올 뿐이다.
“유성아, 이번이 몇 번째 검이더냐?”
“12,407개째입니다.”
연공을 시작한 지 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유성이 신검대법에 매진하게 된 이유는 타이탄 행성의 시공 전사에 대항하기 위해서이다.
차원계에 존재하는 그 모든 초합금 무기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그들에게 영향을 받지 않는 무기, 즉 검과 합위일체가 되는 신검대법이 유일한 대항법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페이튼 역시 유성의 연공에 함께 참여해 그를 돕고 있었다.
신검대법의 과학적 해석이랄까. 유성이 무공의 원리를 실현한다면 페이튼은 정신 감응 장치로 그의 마음을 통해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즉, 유성은 심안을 열어 수련에 임했고, 페이튼은 초나노원자 현미경으로 함께 검을 확대해서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이제 심안을 열고 그 검을 계속 확대해서 보아라.”
스승의 지시에 유성은 능숙하게 12,407번째 초합금 금속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진정 내공 수위 20갑자 이상에 이르러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순식간에 분자 구조 배열이 보였다. 더 확대하니 동그란 원자가 나타났고, 이윽고 더 커져 원자핵을 도는 전자들의 무섭도록 빠른 회전을 볼 수가 있었다.
그때 들려오는 스승의 외침.
“멈춰!”
순간 유성은 내공을 최대로 끌어 올려 그렇게 했다. 그러자 원자 배열이 파! 하고 사라지면서 새로운 개념의 형태가 나타났고, 그건 타원형의 작은 우주를 보듯 매우 역동적인 점의 집합체였다.
“바로 그 아누를 보는 것 자체, 즉 그걸 간섭이라 하는데 생각만으로도 그 아누는 원하는 형태로 변하지. 바로 아누 소립자 파동으로! 그 파동을 네 것으로 만들어라.”
심안을 열고 끝없이 확대, 회전하는 우주. 더 확대하니 그 점들만 수십억 개, 우주의 행성 같아 보였다.
그렇다면 만물의 이치란 뱀이 꼬리를 물고 끝없이 회전하는 것처럼 애초 시작점이나 끝점이 없는 원 고리의 세계란 말인가.
“너는 이미 그 독특한 무공이 신체에 융화되어 있기에 아누의 원리만 알아도 파동의 힘을 절로 얻게 돼. 네가 연공하는 신검대법이 바로 그런 원리가 아니더냐. 이제 네 몸속의 원자와 검의 원자를 움직여 서로 융화시켜라.”
유성은 소립 원자 형태의 아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능력까지 도달했다. 배열 형태를 원하는 대로 응집시키니 원소 배열이 달라졌으나, 그 간섭은 이내 수 초의 효과도 없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자신의 신체 조직의 원자와 검의 원자와 합체를 시켜야만 합위일체가 이루어지는데, 매번 그 경지까지 왔다가 끝내…….
뚝.
검이 부러지고 말았다. 또 실패였다.
“안 되겠습니다.”
“흠.”
“수년 동안 갖가지 종류의 초합금들을 통해 시도를 해 봤지만 소용없는 일인 것 같습니다.”
이에 페이튼 역시 아무 말도 못한 체 그저 허공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로부터 7년 후.
이번이 30만 번째 금속이었다. 유성은 두 동강이 나 있는 검의 잔해를 허탈한 심정으로 바라봤다.
실의에 빠져 있는 유성을 페이튼이 위로했다.
“그간 자네의 신검대법은 헛되지는 않았네. 자네 역시 금속을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생겼으니 말일세.”
“적으로부터 제 무기를 온전하게 지키지는 못합니다.”
“이제 포기하게나. 더 이상 자네에게 부담 주기 싫네. 은하 연합도 이제 더 이상 타이탄 행성의 만행을 두고 보지만은 않을 걸세.”
유성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설령 은하 연합이 나선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평행 우주의 공간 개념의 행성들만 관리할 뿐 차원계는 영향을 전혀 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현재로서는 언제인가 야욕을 드러낼 아스타라노 초인들이 등장할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그들도 노심초사하고 있다.
이를테면 최근 우주 전역에서 발생하는 원인 모를 전함 폭발 사건들이 초인계와 무관하지 않으리라고 추측되며 무려 마흔 개에 달하는 차원들이 타이탄 행성의 시공 전사들에 처절히 유린당하며 지옥으로 변해 가고 있다.
하지만 이곳 플레이아데스 성운에는 스승 페이튼 외에 아직도 걸출한 시공 전사가 배출되지 않고 있으니, 유성은 그 짐을 혼자 다 짊어진 듯 마음이 불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