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컥! 컥!”
결국 플린시아는 자신의 마법을 이용해 막세우스의 팔을 강제로 떼어 냈다.
펑!
그 반탄력으로 막세우스는 뒤로 밀려나 교실 벽에 등을 부딪쳤다.
플린시아는 그에게 다시 따져 물었다.
“너 미쳤어! 갑자기 왜 형도 님을 공격하는 거지?”
순간 막시무스의 얼굴이 붉게 변색했다. 아마도 조금 전 자기 행동에 창피함을 느꼈던 것일까. 그 역시 한 차원에서 절대 군주 소리를 듣던 지고지순한 강자.
그런 그가 자기 감정도 다스리지 못하고 돌발 행동을 했다는 사실에 스스로 충격이 심했던 모양이다. 이처럼 질투라는 감정은 아무리 강대한 권능을 지녔다 할지라도 그 두꺼운 벽을 너무도 허무하게 깨트려 버릴 정도로 엄청난 위력을 지닌 듯하다.
하기야 무력이 아닌 오로지 정신 수양으로 부처님이나 예수님 같은 성인들만이 깨달음을 얻는 것이 숭고한 그 무엇인데 무조건 강하다고 해서 그것에 비례해 성찰이든 해탈을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법이다.
여하튼 문제는 지금 이 상황…….
결국 막세우스는 플린시아의 질문에 대답도 하지 못하고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 이후 며칠이 지나면서 내게는 절대 원치 않는 일이 생기고야 말았다. 그건 바로.
왕따.
막세우스 패거리들이 노골적으로 나를 괴롭히기 시작한 것이다. 막세우스가 시켜서 한 일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자기 대장이 내 앞에서 창피를 당한 것이 화근이 된 것 같았다.
더 나를 슬프게 만든 것은 플린시아의 패거리들조차 나를 미워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자기들이 따르는 플린시아 대장이 나 같은 하찮은 놈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이해하기 어려웠던 모양이었다.
어쨌든 나는 졸지에 양 패거리들을 적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그렇다고 플린시아 혼자서 나를 보호하는 것도 역부족이었고, 나는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빠지게 되었다.
각 차원에서 가장 강한 군주들로 편성된 이 교실의 학생들, 그들이 나를 못살게 구니 정말이지 하루하루, 아니 단 일분일초도 내 목숨이 내 목숨이 아니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시공 아카데미의 학칙상 강자가 공격하고 약자가 당했을 때 그에 따른 벌칙이 없다는 것이다. 진정한 시공 전사를 가려내기 위해 강자 생존의 법칙이 통용된다고 할까.
그걸 진작 알았다면 나는 일찍 한 패거리에 달라붙어 쥐 죽은 듯 살았어야 했는데……. 하지만 인제 와서 후회한들 뭔 소용 있으리.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이다.
그 한 가지는 꿈을 꾸어 다시 포식의 권능으로 아이템을 먹고 강해진 것. 하지만 요즘 들어 내가 원한다고 해서 꿈을 마음대로 꿀 수 없었다. 그래서 당장 그것에 의지할 수 없었고, 다른 하나의 방법은 이곳 현실에서 스스로 강해지는 것이다.
그건 내가 과학이란 개념을 더 잘 알고, 그 유리한 점을 이용해 하루빨리 홀로그램 가상 시스템에 접목해 아카데미에서 가르치는 전투 기술을 배우는 것이다. 또한 공력 증폭 기술도 배워야 하고. 문제는 그 배우는 시간 안에 나는 파리 목숨이라는 것.
그 시간을 벌기 위해서는 결국 플린시아와 더 친해지고 그녀의 곁을 한시라도 떠나지 않아야만 했다. 즉, 그녀가 내 목숨줄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차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녀에게 빌붙어 사는 수밖에.
또 며칠이 흘렀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위험한 일이 여러 번 있었다.
나보다 공력이 강한 학생들의 노골적이거나 우회적인 공격에 나는 그야말로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물론 플린시아는 그들로부터 나를 보호하느라 최선을 다했고.
하지만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그건 바로 시공 아카데미에서 치르는 첫 번째 중간고사였다.
시험 내용은 이랬다.
[각자 홀로그램 시스템에서 익힌 전투 기술을 응용해서 상대적 대결을 통해 점수를 매기는 방법.]
“빌어먹을! 대결이라면?”
상대가 죽어도 상관없는 무자비한 대결…….
“아! 난 진짜 죽었다. 중간고사는 플린시아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고……. 아! 어떡하지.”
그나마 내게 한 가지 남아 있는 희망은 바로 홀로그램 시스템의 전투 기술 각성 프로그램이다.
정말이지 열심히 익혔다. 그 전투 기술은 검술의 기본기가 없는 내게 정말 필요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공력의 중폭 기술은 실패했다.
사실 여기 기기는 일정한 공력 수준 이상에서만 작동 되게 마련이고, 다른 학생들은 거기에 맞추어 자기 공력을 키워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워낙 기준에 미달 되어 있기에 증폭 기술 자체를 사용하지도 못했다.
중간고사 내 첫 상대는 막세우스파의 갈라카스라는, 아카스 차원의 군주였다. 그의 전투 계열은 검이었고, 검술과 마법인 혼용 검술을 사용한다.
그리고 오늘 나는 대련장에 나와 갈라카스 앞에 서 있었다. 이를 지켜보는 학생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죽여 버려!”
“원래 자격 미달인 놈이 제 몸에 맞지도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거든.”
“그런 주제에 감히 플린시아 대장에게 꼬리를 쳐!”
그건 너무 억울했다. 원래 여자가 남자에게 꼬리 치는 게 아닌가. 그런데 쪽팔리게 남자인 내가 여자에게…….
하기야 나 같은 약자는 무조건 강자 생존의 이 교실에서 퇴출당해야 하는 것이 섭리이다. 물론 나도 안다. 하지만 내게도 인격이라는 게 있는데……. 빌어먹을! 저놈들은 아예 나를 인간이 아닌 벌레 취급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열 받는다.
그리고 대결이 임박해 있을 때 유일하게 내게 미소의 눈길을 주는 플린시아. 그녀는 내게 다시 전음을 보냈다.
- 형도 님, 내가 가르쳐 준 그 방법대로면 이 대결에서 이길 수 있어요.
나도 전음을 보냈다.
- 과연 그게 가능할까요?
- 네, 한 번도 시험해 본 적은 없는데, 이론대로라면 가능해요.
아~ 이론대로라…….
곧이어 갈라카스가 먼저 검을 뽑았고, 이어 내게 다가왔다. 그는 잠시 내 얼굴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 하필 첫 상대가 너 같은 새끼라니……. 이겨도 감흥이 없을 테고…….”
그때 다시 들리는 플린시아의 전음.
-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봐요. 그리고 화를 더 돋워야 해요.
- 화를 더 내게 하라고요? 아… 지금 내가 저 무시무시한 놈의 화를 더 돋울 상황이 아닌 것 같은데요…….
- 그래도 반드시 해야 해요. 상대가 화를 참지 못하고 분노를 유발하는 게 첫 번째 목적이니까요.
결국 나는 그녀가 하란 대로 하기로 했다. 어차피 이래저래 희망 없는 목숨이 아닌가.
“후후, 생긴 건 꼭 마른 북어 대가리처럼 생겨서. 거기에다 고기 썩은 냄새까지 풍기니, 이거 대결하기 전에 그 향에 취해 먼저 기절해 뒤지겠다!”
순간 갈라카스의 눈빛에 살기가 확 돌았다.
“뭐라고! 이 개새끼가!”
“내가 개새끼면 너는 벌레 새끼다, 흐흐. 아니, 벌레가 아니라 기생충에 더 가까울 것 같은데. 남의 내장에 들어가 살이나 파 처먹고 사는 기생충!”
아! 내가 원래 이러는데 소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말이 술술 나왔다. 그건 아마도 삶을 완벽히 포기한 자만이 마지막으로 마음껏 나불댈 수 있는 그런 기분이랄까.
어쨌든 효과는 만점인 것 같았으니.
“뭐, 뭐라! 이 개새끼가 정말.”
놈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검을 들어 공격할 때. 또다시 들리는 전음.
- 바로 지금이에요! 회색 마법 흑사술의 ‘공력 전이법’은 상대의 분노에 비례해서 그 효력이 시전되고, 동시에 증가하거든요.
그 순간.
스스스.
내 몸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공력의 기운. 바로 플린시아가 내게 전해 주는 흑사술 공력이었다.
나는 검을 들어 그와 맞섰다.
챙!
“악!”
단말마의 비명을 지른 자는 내가 아니라 상대였다.
털썩!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마는 갈라카스.
일순간에 정적이 흘렀다.
…….
…….
아무도 이 대결의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던가.
나 역시 내가 직접 검을 시전하고도 믿지 못한 채 멍하니 서 있었다.
- 공력도 전이된다는 것을 이제는 믿겠죠?
- 그, 그래도 이건…….
- 어쨌든 이겼으니 다행입니다.
그때 옆에서 지켜보던 교관 킬리온은 큰 소리로 외쳤다.
“제2 조 이형도 승!”
하지만 학생들은 조금 전 상황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위기였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저놈이?”
“맞아, 아무래도 무슨 술수를 쓴 거 같은데.”
“혹시 공력 증폭 기술에 숙달한 거 아냐?”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군. 저 자식은 과학 시스템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를 하고 있으니까.”
그러자 그때 막세우스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렇게 생각하지 않다니?”
“공력 증폭 기술이라면 계속해서 그 공력이 저놈에게서 느껴져야 하는데 순간 반짝하고 사라졌어.”
“반짝하고 사라지다니? 그건 무슨 뜻이지?”
“누군가 저놈에게 공력 전이를 한 게 분명해.”
“공력 전이라니?”
그때 막세우스는 플린시아를 바라보며 다시 말문을 열었다.
“공력 전이 기술을 시전할 수 있을 정도로 고강한 존재는 이 교실에서 나와 다른 한 명.”
“다른 한 명이라면, 혹시 플린시아?”
막세우스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무표정으로 침묵을 지켰다. 그런 그에게 교우들이 흥분해서 소리쳤다.
“그건 반칙이잖아! 당장 교관님에게 그 사실을 알려야 해.”
“맞아, 저놈은 비열하게 남의 공력을 이용해서 갈라카스를 제압한 거라고! 그게 말이 돼?”
순간 막세우스는 화를 냈다.
“말이 안 되면? 다들 닥치고 조용히 있어!”
그의 말에 교우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막세우스는 다시 말문을 열었다.
“어차피 이형도는 죽은 목숨. 운이 좋아 토너먼트에서 이기고 올라와도 나와 만나게 되어 있거든. 그때는 공력 전이 기술이 통하지도 않지. 왜냐하면 내가 플린시아보다 공력이 훨씬 강하거든.”
그는 말하다 말고 입술을 질겅질겅 씹으며 형도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그리고 내심 뭐라도 중얼거렸다.
‘비열한 새끼, 플린시아를 홀리고도 모자라 그녀의 도움까지 받는다라……. 나와 맞붙게 된다면 반드시 최대한 고통 속에서 서서히 죽음을 맞이하게 해 주겠다. 두고 보자.’
* * *
그로부터 일주일 후.
참으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나는 플린시아의 회색 마법의 공력 전이 기술 덕분에 준결승까지 오를 수 있었다.
물론 즐겁지는 않았다. 내 성격상 그런 반칙으로 승승장구한다는 것이 정말 내키지 않았으니 말이다. 다만 그렇게 편법을 부려서라도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에 스스로 위안 삼을 뿐.
그리고 밀려든 자책감, 괴리감, 창피함. 내가 이렇게라도 생존해야만 할 이유가 있을까?
물론 태어나는 모든 생명체는 살아가는 데 집착함으로써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는 것이 본능이다. 그러나 그 경우는 짐승들에 해당하는 것이고, 나 같은 인간에게는 나름 이성과 윤리, 자존심들이 있다. 그렇게 따지면 나는 이 중간고사에서 당연히 탈락하고 이미 저세상에 가 있었을 것이다.
그 부작용으로 나는 요즘 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다.
‘빌어먹을, 그냥 죽어 버릴까.’
게다가 다음 준결승에 맞붙게 될 상대는 막세우스이다.
어차피 승산 없는 게임. 그리고 나는 그냥 알 수 있었다. 증오에 불타는 그의 눈빛을 볼 때 절대 나를 그냥 곱게 죽이지 않을 것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