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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얻은 레어템, 현실에는 역대급-47화 (47/143)

47화

“당신, 타르켄 전사 맞지?”

나는 다소 흥미로운 녀석을 만난 듯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떻게 알았지?”

“큭! 그야 그냥 보면 알지. 당신은 검을 지니고 있고 다른 두 명은 로브 차림이라. 그럼 신관이 모시는 그 위대하고 위대하신 타르켄 전사가 분명하겠지.”

레아가 물었다.

“아까 당신도 타르켄 전사라 그랬는데, 왜 신관들이 보이지 않는 거죠?”

그러자 청년 카이는 갑자기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힘없이 말했다.

“도망갔어.”

“도망가다니요?”

“내가 너무 격이 없이 촐랑거리는 성격이라나? 쳇, 뭐 타르켄 전사는 항상 진지해야만 하는지 나는 그 이유를 모르겠어.”

그의 말에 레아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당신이 정말 타르켄 전사라면 신관은 절대 도망가지 않아요. 그들은 자신의 임무를 다해야 하거든요.”

“조금 전 절대라는 말을 했는데 앞으로 절대라는 말을 쓰지 말아요. 큭, 그 신관들을 보면 정말 답이 없어요.”

레아는 여전히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네. 신관의 보호 없이 혼자 다니는 타르켄 전사를 본 적이 없는데.”

“큭, 지금 보고 있잖아요.”

아서가 물었다.

“몇 호지?”

그 질문에 카이는 다소 창피하다는 듯 대답했다.

“4,445호. 큭, 하위 중의 하위 전사이죠.”

그 말에는 내가 더 놀랐다. 바로 내 아래가 아닌가. 이번엔 그가 물었다.

“당신은 몇 호?”

“4,444호.”

순간 그가 마구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4,444호라고! 그럼 나나 당신이나 도토리 키재기네! 와, 정말 이렇게 만날 수 있는 건가! 4,444호와 4,445호 말이야! 큭! 큭!”

순간 아서는 화를 냈다.

“우리 타르켄 전사는 너와 질적으로 다른 사람이야! 그러니 함부로 말하지 마.”

“엥? 다르다니? 뭐가 다르다는 거야?”

“우리 4,444호는 얼마 전에 베른 종족 제5색…….”

순간 나는 아서의 입을 틀어박았다.

“아서! 그만해.”

그리고 나는 그에게 말했다.

“아무튼 반갑네. 당신 말대로 4,444호와 4,445호가 이런 외진 곳에서 만난 것도 인연인 것 같아.”

카이는 매우 좋아했다.

“큭! 큭! 처음부터 알아봤지! 당신은 나와 얘기가 통할 것 같다고.”

레아는 여전히 그를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흠, 신관 없는 타르켄 전사라니……. 그럴 리가 없는데…….”

* * *

그로부터 며칠 후.

정말이지 세상 살다 보면 그런 경우가 있다.

한 가지 일이 귀찮거나 고민이 될 때 그걸 이겨 내고자 엄청나게 번뇌에 시달린다. 그리고 막상 이겨 내고 보면 그보다 더 큰 놈이 다가와서 지친 나를 더욱더 지치게 만드는 현상.

지금 내 심정이 그렇다.

“큭! 그래서 내가 베른 종족 그놈 뒤로 가서 몰래 검으로 등을 콕 찔렀지. 그랬더니 개구리 경련 일으키듯 바들바들 떨며 죽더라고.”

카이의 무용담에 아서가 민감한 반응만 하지 않더라도 이 여행은 그냥 조용해질 텐데.

“카이! 그건 정말 치사하고 졸렬한 방법이잖아. 뒤에서 몰래 찌르다니! 너 명색이 타르켄 전사이면서 그걸 자랑질이라고 하냐!”

“큭, 잊었어? 나는 4,445호. 하위 중에서 하위. 그런 방법 아니면 나보다 강한 베른 종족을 해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그래도 그렇지. 그리고 그런 일이 창피하지도 않냐! 후~ 그냥 조용히 입 다물고 반성이나 하쇼.”

그때 앞서가던 레아가 뭔가를 발견했고, 뒤따라가던 우리에게 알렸다.

“다들 조용히! 저기 건물이 있어.”

레아가 손으로 가리킨 곳을 보니 안개로 가려진 구릉지 언덕 부근에 뭔가가 뾰족 튀어나와 있었다.

“안개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데.”

아서가 말했다.

“흠, 언뜻 봐서는 성 같은데.”

레아는 지도를 펴 보이며 고개를 갸웃했다.

“음, 여긴 헤트벅트 지방인데……. 이 근처 구역에 성은 존재하지 않아.”

그때 안개가 걷히며 정말 아서 말대로 검고 칙칙한 건물이 그 모습을 거의 드러냈다. 아서가 다시 외쳤다.

“그럼 저건 뭐야? 성루, 성벽, 그리고 중앙에 망루까지 보이는데. 성이 아니면 내 장을 지진다.”

그때 카이가 냅다 그쪽으로 달려가는 게 아닌가.

“카이! 어디가?”

“큭! 드디어 숙식할 곳을 찾았다! 당장 가서 따듯한 욕조에 몸을 담그고 좀 쉬어야겠어!”

“미친놈! 거기 누가 사는 줄 알고! 당장 이리 돌아와!”

“싫은데.”

결국 녀석은 성문 앞까지 갔다. 결국 우리 역시 그 뒤를 따라갔고.

잠시 후.

“문 열어! 문 열라고! 사람이 왔으면 기척이라도 내야 하는 거 아냐!”

그런 카이의 호들갑에 아서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그를 만류했다.

“제발 닥치고 있어! 아무래도 성의 분위기가 너무 음침하고 으스스해. 그냥 우리 돌아가자.”

내 생각도 그랬다. 성은 확실히 맞는 것 같은데 그 모든 것들이 검회색으로 칙칙하고 매우 낡아 보였다. 특히 안개로 알고 있던 뿌연 기체는 인제 보니 땅바닥에서 기어 올라오는 연기 같은 것으로, 그 냄새도 다소 고약하게 느껴졌다.

그런데도 카이는 아예 성문 앞에 다가가 그것을 완력으로 열려고 했다.

그런데.

끼익!

그 거대한 철문이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사람이 들어갈 정도의 틈이 생겼다.

아서는 깜짝 놀라 물었다.

“너 그걸 어떻게 연 거야?”

“큭, 다 요령이 있지.”

“아무리 요령이라도 저 거대한 철문이라면 장정 백 명이 달라붙어야 가능할 것 같은데.”

“잔말 말고 들어오기나 해!”

카이는 성문 안으로 들어갔고, 나머지 일행은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그로부터 잠시 후.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아서는 카이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그를 설득하려 했다.

“카이, 제발 다시 나가자. 여기는 왠지 기분이 나쁘다고.”

“큭, 그럼 노래를 불러 봐. 조금 도움이 될 테니.”

“너 정신 나갔어! 지금 이런 곳에서 노래를 부르라고!”

“왜 못해. 그럼 내가 하지.”

카이는 목청을 가다듬더니 이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먼 여정을 마치고 귀환하는 병사들을 맞이해 주게나~ 우린 일곱 개 대륙과 수많은 산맥과 바다와 강을 건너 여기까지 오게 되었느니라. 위대한 병사에게는 따뜻한 손길이 필요한 법! 기나긴 고독과 외로움을 달래 주오. 그러니 어서 당장 나와 우리를 환영해 주오~”

나는 카이의 노랫말을 듣고는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다.

목청도 좋고 리듬감과 바이브레이션까지 할 줄 아는 게 흡사 아이돌 그룹의 싱어 정도 실력은 되지 않을까, 하는 감탄이 들었다.

그때였다. 어디서 들려오는 여자의 음성.

[일곱 개 대륙과 바다와 수많은 산맥과 강을 거쳐 이곳까지 온 그대를 환영하는 바입니다.]

순간 우리는 깜짝 놀랐고, 그 음성의 진원지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성안에서 가장 큰 건물 앞쪽 계단 위에 한 여인이 서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황금빛, 긴 드레스에 허리까지 치렁거리는 초록의 머리칼. 백옥의 살결에 그윽한 푸른 눈빛, 더 이상 미사여구가 필요 없을 정도로 완벽한 미모…….

그때 아서가 외쳤다.

“마녀다! 마녀라고! 이런 음침한 성안에 여자 혼자 살 리가 없다고!”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사람이 없다고요? 후후, 설마 그럴 리가 있나요?”

그때 현관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들, 그들은 시종 복장을 한 남자와 여자들로서 각자 두 손을 모은 채 우리를 향해 고개 숙여 예의를 표했다.

“에드리아 가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대략 백 명에 달하는 시종들이 일제히 소리 모아 우리를 진심으로 환영하는 것 같았다.

그로부터 시간이 흐른 뒤.

믿을 수 없는 광경이 성안의 드넓은 홀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토록 낡고 침침해 보였던 성 외부에 비해 이 실내는 정반대로 온갖 화려한 장식물로 전체가 도배되다시피 했고, 그것들은 한결같이 매우 고급스럽다 못해 사치스럽게 보였다.

무엇보다 우리를 위해 긴 테이블에 차려진 산해진미의 음식들의 냄새는 코끝을 자극하고도 모자라 포크 대신 손으로 집어 먹게 될 정도였다. 실제로 카이는 벌써 입으로 음식을 마구 집어넣기 시작했다.

“와! 정말 맛있다. 세상에! 이건 뭐지. 처음 보는 요리인데. 아서, 너도 먹어 봐. 정말 끝내줘.”

하지만 아서는 여전히 의심이 많은 듯 눈앞에 음식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오히려 사방을 둘러보며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

그때 이 성의 주인인 여인이 말했다.

“아!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제 이름은 베아체입니다. 이 성의 안주인이고요. 아무쪼록 손님으로 오신 여러분이 여기서 지낼 동안 최선의 대접을 약속할 테니 마음껏 즐기시길 바랍니다.”

나는 그녀의 호의에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우린 그저 지나가는 손님인데 이런 귀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군요.”

그러자 여인 베아체는 내 말에 수긍이 간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저의 성은 그 어떤 손님이 와도 이렇듯 성대하게 대접한답니다. 물론 제 말씀이 이해가 가지 않으시겠죠. 요즘 같은 가뭄과 전란에다 먹을 것이 없어 사람들은 배를 곯아 굶어 죽는, 아주 힘든 시기인데 어떻게 이런 귀한 음식을 대접할 수 있는지 이상하게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세상에는 그대가 생각하는 것 외의 사연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바로 저의 성이 그럴 때 해당하지요.”

그때 카이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

“에휴! 뭘 그리 궁금해. 그냥 먹을 거 주면 고마운 거지.”

베아체가 다시 말문을 이어 갔다.

“그 사연을 듣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말씀드리죠. 저희가 손님을 성대하게 대접하는 것은 바로 그분의 뜻입니다.”

“그분의 뜻이라니요? 그럼 그분은 누구죠?”

“제 남편인 이 성의 주인, 아르테스입니다.”

“아르테스?”

베아체는 갑자기 울먹이며 다시 말했다.

“남편은 임종하기 전에 제게 한 가지 간곡한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내가 죽거든 그동안 내가 모은 전 재산을 이 성을 방문한 손님에게 아끼지 말고 쓰라고요.”

순간 아서가 큰 소리로 말했다.

“아르테스! 그 이름을 들어 본 것 같아요……. 아니, 그분에 대해서 이제 방금 기억이 났어요.”

레아 역시 뭔가 아는 듯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아르테스 님이라면 초인계의 거상 중 한 분인데……. 동명이인이 아니라면 정말 그분이 맞나요?”

베아체는 결국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고, 흐느끼기까지 했다.

“네, 맞아요. 제 남편은 초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거부였습니다.”

그토록 의심이 많았던 아서는 그제야 안심을 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랬군요. 그렇다면… 이 성안의 귀중한 장식품이나 비싼 음식 요리들이 이해가 가는군요.”

“그렇게 알아주시기만 해도 감사드립니다.”

아서의 경계심은 거의 다 풀렸지만 아직 확인할 게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제가 알기로 아르테스 님은 돈 쓰기를 아까워하는 구두쇠인 것 같은데.”

“돌아가시기 전에는 그랬었죠, 흑. 그래서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많이 당해 왔었고요. 하지만 남편은 그런 말을 듣고도 무시했죠.”

아서는 다시 물었다.

“그런데 왜 그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그런 유언을 남겼죠.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건가요?”

그때 베아체는 옆에 시종장으로 보이는 백발노인에게 말했다.

“하레스, 가져 그걸 여기로 가져다주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시종장이 뭔가를 들고나왔는데, 그건 바로 황금빛 찬란한 검이었다.

아서가 물었다.

“그건 뭐죠?”

“그토록 인색했던 남편이 임종 전에 마음이 바뀌게 된 계기는 바로 이 황금 검 덕분이랍니다.”

베아체는 그 검을 우리에게 더 잘 보이도록 손잡이 쪽을 내밀었다. 그리고 직접 손으로 하단 부분을 가리키며 계속 말문을 열었다.

“여러분 여기 문양이 보이시나요? 황금빛 바탕에 가문의 이름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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